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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00화 (100/250)
  • 제100화

    제100편

    “모르겠어요! 모르겠다고요!”

    “망량아, 진정해.”

    “왜 모르겠죠?! 좀 전에 말씀드린 이야기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워, 원래 이런 건가? 원래 이런 걸지도요. 도깨비불이라는 건…….”

    “워워.”

    불안해하는 도깨비불을 감싸 품에 안았다.

    “그럴 수도 있지.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어. 뭐, 일단 진정해. 그래, 그까짓 거 생각 안 나면 안 나는 대로 살면 되는 거지.”

    “……정말요?”

    “하케임을 봐라. 하케임도 기억이 완전히 날아갔었잖아?”

    “하지만…… 전 기억이 없다는 것조차 방금 깨달았는걸요.”

    “뭐…… 그래도 필요한 정보는 얼추 가지고 있잖아?”

    “……주인님께 도움이 된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앳된 목소리로 벌벌 떠는 것이 안타까워 일단은 망량이를 진정시켜야겠다. 하케임처럼 점점 기억을 되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녀석을 들들 볶아 봤자 좋을 게 없지.

    일단 중요한 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선 넥스트 레벨이 자격 요건이고 그걸 위해선 내 능력이 필요하다.

    둘째, 소울메이트 스킬을 이용해서 각성자들을 또다시 각성하게 만들어 넥스트 레벨을 해금시킨다.

    그게 다다.

    별거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원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거나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닌가.

    너무 의미를 부여하면 생각만 많아지고, 생각만 많아지면 자기 속만 까먹으니까.

    일단은 나도 진정하기로 한다.

    그래.

    생각해 보면 별거 없다.

    오히려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서 뚜렷한 행동 지침이 생긴 거다.

    일단은 주위에 싱크로율이 맞는 사람들부터 시작하면 되겠지.

    망량이는 품에서 토닥여 주었더니 떨림이 잦아들었다.

    “이제 괜찮냐?”

    “네에…….”

    “목소리가 시무룩한데.”

    “아녜요.”

    “그래, 뭐가 어찌 됐든. 앞으로 잘해 보자.”

    “네……!”

    품속에서 망량이가 꼬물거린다.

    “말이 통하게 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요.”

    “뭔데?”

    “……이름 지어 주셔서 고맙다고요.”

    “응?”

    “이름이 생겨서 기뻤어요. 그 전까지는 그냥 도깨비불이었거든요.”

    “뭘 이런 거 가지고. 이름은 마음에 드냐?”

    “완전요.”

    * * *

    [한결]

    영혼 등급: B

    영혼 상태: 불안정

    싱크로율: 73%

    싱크로율 포인트: 0%

    “흐으음. 그냥 소울메이트 스킬을 사용해서 연결되기만 하면 포인트가 적립되는 것 같은데.”

    하루 만에 알아낸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영혼 분별사 스킬로 싱크로율 포인트가 얼마나 오르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거였다.

    “결아, 너한테는 뭐 따로 뜨는 게 없지?”

    “응. 그래서 이게 무슨 스킬인데?”

    결이에게는 새로 생긴 서포터 스킬을 시험해 보는 거라고 설명했다.

    ‘이렇게라면 굳이 결이에게 인류 멸망이나 마지막 퀘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싱크로율 포인트가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때가 됐을 때 각성만 시키면 되니까.

    막막하던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응. 소울메이트를 오래 지속할수록 포인트를 쌓아서 나중에 보너스 버프를 넣어 주는 스킬이야.”

    아주 거짓말도 아니다.

    “나도 해 줘라, 은하준!”

    하케임은 먼저 나서기까지 한다.

    이대로 인화 선배까지 세 명을 각성시키는 건 확정이다.

    ‘그래, 일단은 조금씩 시작하자고. 아직 마지막 퀘스트가 발동되려면 10년도 더 넘게 남았으니까.’

    그동안 강해지는 거다.

    충분히 강해져서 유명해진다면, 그때 미리 마지막 퀘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이 믿어 줄지 모른다.

    그렇게 되어서 더 많은 사람의 넥스트 레벨을 해금시켜 주면 되겠지.

    ‘일단 주변인들 중에서도 싱크로율이 맞지 않는 사람은 조율 스킬을 써서 서서히 싱크로율을 맞춘다.’

    상황이 나쁘지 않다.

    특히 결이가 있어서 스킬을 사용했을 때 어떤 효과가 일어나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스킬이 생겼으니까. 앞으로도 소울메이트는 꼬박꼬박 잘 챙겨 써야겠어. 물론 결이 너는 원래도 빼먹은 적이 없지만 말이야.”

    “좋아. 버프! 좋다!”

    충분히 강한데도 소울메이트에 욕심을 내는 하케임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하케임은 강하니까 마지막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데도 큰 보탬이 될 거다.

    ‘좋아, 이대로 쭉 가는 거다. 그래서 내 넥스트 레벨 스킬은 다른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게 주고 다른 사람들은 넥스트 레벨 스킬이 뭘지 궁금한걸. 얼른 결이를 각성시켜 봐야겠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긴 하지만.’

    소울메이트 스킬을 사용할 수 있도록 사전 작업이 필요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할 일이 많다.

    * * *

    조율 스킬 역시 상대방에게는 그렇다 할 표시가 나지 않았다.

    “뭐예요. 스킬 사용한 거예요? 아무것도 변화가 없는데요?”

    염태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래? 그럼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용해 볼게.”

    “넵.”

    스으으읏.

    많은 마나를 소모해서 한 번에 싱크로율을 맞추는 방법을 써 보기로 한다.

    “엇!”

    마나가 쑤욱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이거 소모 마나가 엄청 많은데?’

    그리고 영혼 분별사를 사용해 실시간으로 수치를 확인한다. 조금 전 적은 마나로 조금씩 보정할 때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수치가 순식간에 튀어 오른다.

    ‘싱크로율 1%를 올리는 데 이렇게 많은 마나가 소모된다고? 싱크로율이 애초에 낮은 사람은 순간적으로 싱크로율을 맞추려고 하더라도 마나가 부족해서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겠어.’

    생각보다 조율 스킬은 까다로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태규의 수치는 원래 약간 아쉬운 정도로 모자라는 것이어서 금방 소울메이트를 사용할 수 있는 수치가 되었다.

    “소울메이트!”

    츠츠츳.

    처음으로 태규와 소울메이트로 연결된다.

    “어엇. 우와.”

    “버프 스킬이 처음도 아닌데 뭘 우와야.”

    피식 웃자 태규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다.

    “그냥 버프 스킬이랑 뭔가 좀 다르네요.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뭔가 형이 더 잘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역시 태규는 감각이 예민한 구석이 있구나. 하케임은 잘 모르더라고.”

    “아, 그런가요? 신기하네요.”

    “앞으로 소울메이트를 사용하기 위해 싱크로율을 완전히 조정하는 방향으로 스킬을 사용할 거야. 괜찮지?”

    “저야 감사하죠. 버프까지 신경 써 주시는데. 아까 조정 스킬을 사용하실 때는 거의 느껴지는 것도 없었구요.”

    조정 스킬은 대상이 적어도 근처 50m 이내에는 있어야 적용이 되는 것 같았다.

    ‘길드원들은 자주 마주치니까 조정하기도 쉬워.’

    더 많은 사람을 효과적으로 각성시킬 방법은 앞으로 궁리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좋아, 일단 대충 정리됐다. 앞으로는 마나 총량을 늘리는 것도 신경을 써야겠군.’

    마나 총량을 늘리려면 방법은 한 가지다.

    던전을 공략하러 가는 것.

    * * *

    “앗! 나 이거! 이게 마음에 들어! 입어 볼래!”

    “그래, 그런데 맞으려나 모르겠네.”

    청바지 두 벌을 집어 들고 탈의실로 달려가는 하케임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워 보인다.

    이렇게나 신나 하다니. 얼른 오지 못한 게 미안해질 정도다.

    그러니까 하케임의 옷을 드디어 사러 왔다는 거다.

    ‘전엔 갑자기 성 대위가 나타나는 바람에 무산됐었지. 오늘은 정말 원하는 거 다 사도록 둬야겠다.’

    레벨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고 던전을 공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룸메이트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하케임과 결이 둘 다 옷을 공유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 했으니까. 그리고 하케임이 덩치가 훨씬 커서 결이의 옷 중에서도 루즈 핏인 옷만을 빌려 입을 수 있었기에 불편했다.

    백화점에 와서 쇼핑만 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리라. 그렇게 생각해 일부러 시간을 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곧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장 오프라인 매장에서 하케임의 몸에 맞는 옷을 찾는 건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았다.

    다리가 왜 그리 긴지 기장이 죄다 짧았다.

    나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는 상황이라 이 사태를 인지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인터넷으로 구해 볼 걸 그랬네. 그건 언제든지 시도할 수 있었는데 말이야.”

    “아니야. 괜찮다. 이렇게 바깥에 나와서 뭔가를 구경하는 것도 즐겁고…….”

    즐겁다기엔 너무 침울한 목소리다. 사실 굳이 밖으로 나온 건 하케임의 기억을 하나라도 되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는데 이 역시도 잘못된 선택이었다.

    얼굴 변형 아이템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하케임은 너무 튀었다.

    어딜 가든지 사람들이 흘긋거리고 몇몇은 몰래 뒤를 쫓아오기까지 했다.

    단호하게 경고해서 쫓아 버렸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사람이 바뀌며 따라붙는다.

    잘생기고 키가 크고 몸매도 좋은 사람의 삶이란 원래 이렇게 고단한 걸까.

    어쨌든 쇼핑도 기억 찾아 주기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 역시 조금 의기소침해진다.

    “달달한 거나 좀 먹고 기운 내 볼까?”

    “좋다.”

    하케임을 데리고 도넛 가게로 들어서자 달콤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나는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거랑 이거, 이거, 이거…….”

    “그래. 이거라도 원하는 대로 다 고르렴.”

    하케임이 자유롭게 도넛을 고르도록 두고 나는 제일 기본 도넛 한 개와 포장해서 결이에게 줄 도넛을 고른다.

    원래 오리지널 도넛이 제일 맛있는 법이지.

    결제하고 자리를 잡은 뒤 달콤한 도넛을 한 입 베어 문다. 그러고 나서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

    의기소침이고 뭐고 싸악 내려간다.

    “그래, 옷은 인터넷으로 다시 사도록 하고.”

    “응? 저기 싸움이 난 것 같다, 은하준.”

    창밖으로 보이는 백화점 앞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인다.

    “아아, 싸움이 난 게 아니라 버스킹이라고.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이야.”

    “음유시인 같은 건가?”

    “음유시인? 뭐…… 그런 거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려나?”

    “이럴 때면 참 신기한 것 같다. 나는 다른 차원에서 왔는데 이곳과는 정말 다르지만 비슷한 부분들이 많다.”

    “그러게 말이야. 그래서 네가 기억을 조금씩 찾을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지.”

    가만히 생각하니 이런 일상적인 하루를 보낸 것이 언제인가 싶다.

    각성자가 되고 나서부터 바쁘게 살았지만, 특히 요 몇 주는 정말 몸도 마음도 피곤했다.

    “너도 너무 걱정하지 마. 기억은 천천히 찾아도 되고. 분명……. 뭐야. 내 이야기 듣고 있냐?”

    하케임은 먹던 도넛까지 내려놓고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보고 싶으면 테이크아웃해서 바깥에서 구경하면서 먹자.”

    “그게 아니라 은하준…….”

    왠지 심각한 분위기에 내 시선도 창밖으로 향한다.

    “우리 일 난 것 같다.”

    “이런…….”

    하케임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잔뜩 모인 광장의 공중에서 포털의 빛이 번쩍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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