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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98화 (98/250)
  • 제98화

    제98편

    뭍으로 돌아오는 일은 생각보다 금방이었다.

    “이야, 우리가 그럼 그 구름 속에서 5일이나 있었던 거야?”

    “대단한데. 시간의 흐름이 좀 달랐던 것 아닐까?”

    “정신없이 싸우느라 몰랐을 수도 있어. 각성자들은 식사하지 않아도 며칠 동안 버틸 수 있으니까.”

    작은 배에서 항구로 내리며 살아남은 헌터들은 잔뜩 들떠 있었다.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집에 가서 쉬도록 해요.”

    대호 형이 길드원들을 챙겨 항구를 벗어난다. 나는 등을 돌려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맑은 하늘이 밝아오고 있다. 산 너머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하준아?”

    “아, 어.”

    “괜찮아? 어디 다쳤어?”

    “아니……. 좀 힘들어서 그래.”

    시체를 본 것이 처음도 아니고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그만 돌아가려는데 어떤 곳에서든 금방 눈에 띌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한세희 길드장님.”

    “아, 은하준 씨.”

    “저…… 코트를 돌려 드리려고요.”

    “아아. 그랬죠. 내가 빌려 드렸었죠.”

    “네. 세탁비는…….”

    “됐습니다. 무슨 세탁비입니까.”

    “그래도요.”

    한세희는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는 먼저 돌아서려 한다. 나는 그를 불러 세웠다.

    “저, 그런데.”

    “뭔가 더 할 말이 있나요?”

    한세희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입 안에 있는 말이 목젖을 건드린다. 나오고 싶다고 소리를 지른다.

    “혹시 바다에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하셨나요?”

    “…….”

    한세희는 말이 없다.

    “저는…… 거길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길드장님이라면 그 스킬을 사용했을 때 바다가 얼어 버리게 되리란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한번 말이 트이니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줄줄 흘러나온다.

    “스킬을 사용하기 전에 한 번만 확인했다면 더 많은 각성자가 돌아올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본 드래곤을 쓰러트리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만 시체도 더 늘어나지 않을 거라고요.”

    “…….”

    “하지만 다른 스킬을 사용했을 수도 있었겠죠. 맞아요. 누군가를 구할 생각은 못 했습니다. 그건…….”

    한세희는 말을 고르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연다.

    “죽음에 너무 익숙해진 탓입니다. 미안하군요. 내 잘못이고 실수가 맞습니다.”

    “예.”

    나는 한세희에게 꾸벅 인사해 보이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너무 피곤해서 얼른 이불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 * *

    “으아아, 내가 왜 그랬지!”

    한숨 푹 자고 났더니 정신이 돌아오면서 후회가 밀려들었다.

    어쨌든 한세희는 내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고, 또 본 드래곤과의 전투도 마지막으로 이끌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기도 부족한 사람인데 되지도 않는 일침이나 놓고 만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 길드의 수장인 사람인데…….”

    신선 길드의 앞날을 위해서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재수 없는 다른 길드장들에 비해서 인상도 나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지금 와서 찾아가 사과를 하는 것도 완전 오버다.

    “망했다, 망했어.”

    “무앙? 무아앙?”

    “그래, 망량아…… 망했다…….”

    망해도 퀘스트 완료 보상은 확인해야지.

    이번 전투는 정말로 정신이 없었다. 퀘스트가 발생한 줄도 전혀 몰랐으니 말이다.

    본 드래곤을 완전히 쓰러트리고 난 후 퀘스트 완료 알림이 뜨는데 얼마나 놀랐던지.

    그 뒤에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잠들어 버렸으니 보상을 확인하지 못했다.

    과연 어떤 보상을 받을까.

    무려 S급 던전 클리어 보상이다.

    “음? 그러고 보니 어제 경험치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시스템 창을 열어 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은하준]

    혼백의 인도자(Lv. 42)

    *힘: 102

    *민첩: 268

    *지구력: 77

    “레벨이 뭐 얼마나 오른 거야? 단번에 7이 올랐다고?”

    역시 S급 던전.

    S급의 보스 몬스터.

    전투 기여도가 그리 높지 않았는데도 이런 식이면 정말이지 대박이 터졌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도 레벨이 많이 올랐을까?

    아마 다른 길드는 몰라도 우리 신선 길드원들만큼은 레벨이 많이 올랐을 거다. 모두 아직 레벨이 낮으니까.

    아마 다른 길드의 길드원들은 길드 내부에서도 50명을 추려 전투에 참가한 것이기에 고레벨 각성자들이 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렇게까지 레벨이 많이 오르지는 않았을 거다.

    ‘심지어 이 레벨이면 스킬 하나 얻었겠는데?’

    이렇게 난리가 났는데 전혀 신경을 못 쓴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솔직히 말하면 시스템 알림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던 거지.

    스킬 페이지를 열자 아니나 다를까 새로운 스킬이 얻어져 있었다.

    [경계의 안개 숲]

    내 모습을 숨겨 주고 적들을 교란할 유령 안개를 만들어 냅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범위와 지속 시간이 늘어납니다.

    “좋아. 이 스킬도 꽤 쓸 만하고 좋은데. 드디어 생겼군.”

    뭔가 너무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얻은 것들을 보니 위로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만큼 레벨이 올랐으면 결이도 레벨 1 정도는 올랐을 거다. 기쁜 마음으로 거실에 나갔더니 맨바닥에 하케임이 드러누워 있다.

    “뭐 해?”

    “아아, 은하준. 어제 힘을 너무 많이 썼다.”

    목소리에는 하케임 특유의 발랄함이 없었다.

    “혹시 뭔가 떠올랐다든가?”

    “…….”

    정답이군. 하케임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면서 눈을 깜빡인다.

    “기억이랄 것까지는 아니고. 본 드래곤과 싸우다 보니 그런 전투를 수많이 해 왔다는 게 떠올랐어. 수도 없이. 결국에는 무감각해질 정도로.”

    어쩐지 하케임의 말이 어제 들은 한세희의 말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래. 헌터 일은 조금씩 사람을 닳게 만든다. 결코 정신 건강에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은 보통의 직업과는 다르다.

    헌터로서 살아남으려면, 이 과정에서 얼마나 자신을 잃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회귀 전에도 그랬지만, 나보다 훨씬 강한 각성자들이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내가 나를 잊어버린 걸까.”

    “어이. 너답지 않게 우울해하지 마라.”

    “……나도 진중할 때가 있다, 은하준.”

    “이건 진중한 게 아니라 그냥 삽질하는 거야.”

    누워 있는 하케임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숙이고 내려다본다.

    짜식이, 쓸데없이 잘생겨서.

    “그래도 너한테는 두 번째 기회가 있는 것 아니냐? 기억도 하나씩 돌아오고 있고. 이번에는 널 잊어버리지 마라. 잃어버리지도 말고.”

    “…….”

    “내가 말했지? 너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고.”

    “그래. 은하준이 보증한다고 했다.”

    “보증? 보증까지는 한다고 한 적 없는데. 원래 가족 사이에도 보증을 서면 안 되는 거라고 배웠거든.”

    “뭐야? 무슨 이야기야?”

    방에 있던 결이가 팔짱을 낀 채 천천히 거실로 나왔다.

    “결아. 미안하지만 너라도 내가…….”

    살짝 고민이 된다.

    결이는 믿을 수 있는데. 사실 결이는 보증을 서 줘야 할 일도 만들지 않을 거다. 애초에 우린 서로에게 걱정 끼치는 걸 싫어하니까.

    “은하준. 왜 고민하는 거지!”

    하케임은 배신당했다는 듯 억울한 얼굴을 했다.

    “뭔데 그러는데 너희들.”

    “흐으음……. 결아. 그래. 너는…… 너는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야. 그러니까 그때 가서 한번 생각은 해 볼게.”

    “이것 봐! 은하준은 거짓말쟁이다!”

    “아니, 대체 뭐냐고.”

    “아! 그러고 보니 결이 너 레벨 올랐냐?”

    “어…… 응. 나 레벨 이제 23이야.”

    “오, 대박! 엄청 많이 올랐잖아! 미쳤다.”

    “갑자기 화제 전환하지 마라, 은하준.”

    툴툴거리는 하케임을 뒤로 밀고 결이에게 앉아 보라 손짓한다.

    결이는 본 드래곤을 쓰러뜨리는 데에도 기여도가 높았기 때문에 경험치를 나보다 훨씬 많이 받았을 거다.

    “스킬은?!”

    “스킬도 하나 해금됐어.”

    “어떤 건데 어떤 거!”

    결이가 레벨 23 때 열리는 스킬이 뭐였더라. 폭풍의 춤이던가.

    “폭풍의 춤이라고 무슨 비구름이랑 비슷한 걸 만들어 내는 건가 봐. 훈련실 가서 한번 사용해 봐야겠어.”

    “역시!”

    “응? 역시?”

    “아, 역시 좋은 스킬일 거 같다고. S급의 스킬이니까!”

    “그래?”

    “물론이지, 물론. 하하하.”

    폭풍의 춤 스킬을 얻다니. 폭풍의 춤은 광범위 공격 스킬이다. 결이가 얻는 스킬 중에서도 가장 사거리와 공격 범위가 넓어서 잡몹을 쓸어버리는 데 이만한 게 없고 또 보스 몬스터나 네임드 몬스터를 상대하기에도 강력한 스킬이다.

    게다가 길드 단위로 움직이고 공략 던전의 난이도가 올라간 이때 사용하면 딱 좋을 스킬이라 언제 이 스킬을 획득하는지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잘됐다.

    결국 S급 던전 공략에 나서서 얻은 것이 꽤 많다.

    “아이템은 어때.”

    “아, 맞다. 아이템도 엄청나게 얻었어. 인벤토리가 거의 다 찰 정도야. 단홍 상사에 가서 얼른 팔아야 할 것 같아.”

    “난 아직 확인도 안 해 봤네.”

    부랴부랴 인벤토리 창을 확인한다. 그리고 입이 떡 벌어진다.

    “진짜로 인벤토리가 거의 다 찼네. 이런 때는 없었는데…….”

    게다가 나는 한 번 더 놀랐다. 분명 전투 전에 100개의 영혼석을 소비했는데 지금 인벤토리에 남은 영혼석이 105개다.

    던전 바깥으로 나온 몬스터에 S급의 강력한 던전 몬스터여서 영혼석을 무진장 많이 얻은 모양이었다.

    ‘완전 대박인데. 이건 어디에 투자하지?’

    약간 욕심이 난다. 지금 이 영혼석을 소울 포인트로 바꾼 다음에 또 민첩에 투자하면 어떻게 될까?

    비정상적인 속도광 업적이 또 레벨 업을 하게 되는 걸까?

    지금도 충분히 좋은 능력의 헤르메스 세트지만, 여기서 더 업그레이드가 된다면 스킬 쿨 타임이 없는 결이나 하케임처럼 아주 편리한 이동기가 되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이 생기는 것이다.

    “음, 잠깐 나는 혼자서 생각을 좀 해야겠어.”

    “갑자기?”

    “너한테 새 스킬이 생겼으니까 앞으로 전투 때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게.”

    “아직 어떤 스킬인지도 잘 모르잖아.”

    나는 결이의 말을 못 들은 체하고 후다닥 방으로 들어왔다.

    물론 네 스킬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고, 또 사실은 지금 네 스킬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고는 말 못 하니까 말이다.

    스스슷.

    방문을 닫자마자 영혼석을 소환한다.

    “아, 이걸 또 100개를 한 번에 먹어야 하네.”

    약간 아찔한 감이 있지만, 사실 지금은 좀 달콤한 게 필요하기도 하다.

    해서 유리병에 담긴 채로 소환된 영혼석을 입 안으로 털어 넣는다.

    오독, 오도독.

    단맛은 심신을 안정되게 만들어 준다.

    영혼석을 섭취할수록 늘어나는 소울 포인트를 보며 심장이 쿵쾅댄다.

    “좋아, 다 먹었다.”

    혀가 아릴 정도로 달콤해진 입 안의 침을 꼴깍 삼키며 소울 포인트를 분배한다.

    차르르르륵.

    소울 포인트가 분배되는 소리가 들리고 곧.

    띠링.

    기다렸다는 듯이 시스템의 알람이 울린다.

    [소울 포인트를 300개 이상 사용하였습니다.]

    [넥스트 레벨이 해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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