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97화 (97/250)

제97화

제97편

“무사해서 고맙다.”

“너도 무사해라.”

“응.”

결이는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달려 나갔다.

“후우……. 죽겠다아.”

“그러니까 중국 측에서 포털의 소유권을 노리고 접근했다는 거죠?”

“으응…….”

“아니, 아무리 포털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많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요? 그것 때문에 지금 몇 명이 죽은 거람?!”

진보라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구시렁거린다.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멍하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이 모두 현실감이 없다. 그러고 보니 망량이는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망량아…….”

무심코 중얼거리는데 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무와앙!”

“어! 망량아! 너…… 너 이 자식 살아 있었구나!”

“무엉! 몽!”

크기가 조금 작아진 망량이가 문을 넘어 달려 들어왔다.

“너…… 괜찮은 거야?”

“무웅! 뭉! 무웅…….”

망량이는 낑낑거리더니 품으로 파고들었다.

“미안하다, 망량아. 그놈한테서 지켜 주지 못해서.”

“무아앙…….”

“…….”

그 리치 자식. 생각해 보니까 무진장 분하다.

* * *

[내가 가르쳐 준 대로만 훈련하면 한세희인가 뭔가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말씀이야.]

금룡이 떠들어 대는 동안에도 한결의 머릿속은 이미 생각으로 가득 차 복잡했다.

죄책감과 미안함. 분노와 안도감.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하준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집중해야 했다.

“한결, 거의 다 온 것 같다.”

하케임이 진지한 목소리로 한결을 불러 세운다.

“디딜 곳이 필요하면 어깨를 내주지.”

“그거 엄청나게 고맙네.”

“다치지 마라. 다치면 은하준이 슬퍼할 테니.”

“너나 잘하시지.”

눈앞에는 온갖 스킬들이 번쩍이고 있었다.

구름조차 가릴 수 없는 거대한 본 드래곤의 모습은 S급인 한결에게도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놈에게서 하준이가 살아 돌아왔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하준의 말대로 한세희가 아니었다면 돌아올 수 없었을 거다. 그 사실이 너무 분했다.

“죽여 주마.”

한결의 주변으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그래, 가 보자.”

하케임 역시 창검을 쥔 자세를 다시 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격렬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 * *

“어그로 좀 끌어 주지!”

펌플의 길드장 신재민이 양손에 장난감 총처럼 생긴 무기를 들고 본 드래곤에게 공격을 퍼부으며 짜증스레 외쳤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 같은 총은 레이저 같은 탄을 짧게 쏴 댔는데, 본 드래곤에 탄이 맞을 때마다 동전처럼 생긴 아이템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아~ 토큰 수급이 안 되네.”

신재민은 공중 이동기로 재빠르게 움직여 튀어 오른 토큰이라는 것을 몸으로 부딪쳐 흡수했다.

마치 게임에서 아이템을 먹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토큰을 흡수함으로써 신재민 자신에게만 보이는 어떤 게이지를 채우자 장난감 같은 총이 번쩍번쩍 빛난다.

“평소보다 시간 오버됐구요. 나중에 다들 좀 혼날 준비 하시구연.”

지이이잉. 휘비빅!

장난감 총은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여전히 알록달록하고 장난감스러운 바주카포 모양으로 변했다.

“필살기!”

피융~! 신재민의 몸이 밀려날 정도로 강한 반동을 일으키며 바주카포가 쏘아지고 그의 몸 크기보다 큰 탄이 본 드래곤을 향해 날아갔다.

퍼어어엉!! 신재민의 공격은 적중했고 본 드래곤의 왼쪽 어깨가 박살 났다.

구우웅! 첨벙! 박살 난 왼쪽 팔은 차가운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오오오! 역시 재민 님이셔!”

“저거 진짜 강하다니까.”

헌터들이 감탄하는 것도 잠시, 본 드래곤의 공격이 이어진다. 첨벙, 첨벙! 그럴 때마다 헌터들의 시체가 용의 왼쪽 팔처럼 바다에 떨어져 내렸다.

“너무 많이 죽는데.”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본 드래곤의 체력은 착실하게 깎이고 있어.”

손예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리자 한세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한세희 저 자식 말하는 거 들리냐?”

“응. 은하준이 들었다면 화냈을 거다.”

한결과 하케임은 약간 떨어진 곳에서 길드장들의 대화를 들으며 진저리를 쳤다.

“환희가 S급들은 전부 제정신이 아니라더니.”

“너랑 나는 빼고 말이다.”

“그래, 우리는 빼고.”

그때 거대한 본 드래곤의 뻥 뚫린 가슴팍에서 불길한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모이고 있는 게 보였다.

“그오오오오…….”

“한결! 브레스다!”

“피해!”

드래곤의 비기라고 불리는 브레스.

본 드래곤의 브레스는 모든 것을 녹여 버리는 끔찍한 산성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윽, 저 앞쪽 사람들은 피하지 못할 것 같은데!”

“젠장……! 응?”

“한결. 저길 봐라.”

하케임이 가리키는 곳에 누군가 있었다.

“저쪽으로 브레스를 뿜을 텐데 왜……!”

그는 본 드래곤의 아가리가 있는 쪽으로 활강 중이었다.

‘활강이라고?’

불길한 기운이 한결의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리고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저건…… 하준이잖아?”

순식간에 한결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그르르르……. 크하아아아아악!”

본 드래곤의 브레스가 쏘아지고 한결은 손가락 끝이 저릿해지면서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모든 감각이 이미 늦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멍하니 있는 한결의 목덜미를 하케임이 잡아끌어 가까스로 브레스를 피해 냈다.

“정신 차려!”

“하지만 하준이가…….”

“……저길 봐!”

브레스가 멎은 후, 본 드래곤의 바로 머리 위에 은하준이 있었다.

“피했어!”

“허억, 허억.”

은하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그의 품과 손에 다섯 명이나 되는 사람이 들려 있었다.

“하준이가 사람들을 구했어.”

“어, 어떻게…….”

브레스를 뿜은 본 드래곤은 잠시도 지체할 생각이 없이 곧장 남아 있는 오른쪽 팔을 휘둘렀다.

브레스에 살아남은 헌터들 모두 수장시킬 속셈으로.

그리고 그 공격 속으로 은하준이 몸을 내던지는 것을 한결은 똑똑히 보았다.

* * *

‘으아아! 개 무거워!’

본 드래곤의 브레스에서 구해 낸 헌터들은 알아서 다시 자리를 찾아가도록 하고 다시 시작된 용의 공격에서 또 다른 헌터를 구하기 위해 공기를 박찼다.

쒜에에에엑!

바람을 가르는 엄청난 소리를 내며 본 드래곤의 팔이 공중을 가르며 내리꽂힌다.

쉭, 쉬이익! 그 사이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헤집으며 미처 피하지 못한 헌터들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냈다.

n번째 눈.

에스퍼 시야를 이용해 재빠르게 사람들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후우, 후우. 끄으으…….”

“어, 어어……. 고, 고맙습니다!”

“됐으니까 얼른 멀리 떨어져서 다시 자리를…….”

“네, 넵! 감사합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심장을 토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도 예상대로 되기는 하는구나. 확실히 속도가 나와 준다. 아까 한세희와 장 리의 싸움을 보면서도 생각했지. 그들은 분명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랐지만, 어느 정도 눈에 보이는 움직임을 예상할 수는 있을 정도였어. 그 말은 내가 정말로 엄청나게 빨라졌다는 거거든.’

도저히 항공모함에 누워 회복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이 순간에도 수많은 헌터가 목숨을 잃고 있을 거라는 끔찍한 공포.

길드원들에게는 깊이 들어가지 마라, 무모한 행동을 하지 말라 다그쳤지만, 그 끔찍한 기분이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좋아, 벌써 10명 구했다.’

조금 더 위험해지더라도 할 수 있는 걸 한다.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다.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기왕에 소울 포인트를 분배해서 민첩을 올리고 아이템까지 얻었는데 이대로는 너무 시시하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이게 젊어서 사서 고생한다는 건가.’

흐르는 땀을 닦으며 본 드래곤을 노려본다.

‘놈을 죽일 순 없지만, 놈에게 죽을 사람은 최대한 살릴 거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이기도 했다.

“하준아!”

결이의 목소리. 다행이다. 결이와 하케임 둘 다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너희들 괜찮아?”

“우리는 괜찮아. 그런데 넌 여기 왜 있는 거야?!”

“손 하나라도 더 거들어야지.”

“하지만 깊게 관여하지 말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내 마음이랑은 안 맞더라고. 항상 최선을 다해야지.”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은하준. 너 엄청 빨라졌던데. 솔직히 본 드래곤이 속도로는 너를 쫓아오지 못할 것 같았다.”

하케임이 예리한 눈으로 추궁해 온다.

“그 정도는 아니고. 지금은 바쁘니까. 너희는 빨리 본 드래곤 쓰러트리는 데 집중해 주세요.”

“넵. 알겠습니다.”

결이와 하케임이 본 드래곤 쪽으로 이동하는 사이 뒤를 돌아봤다가 한세희와 눈이 마주친다.

“윽…….”

한세희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네. 어쨌든 당신 생각은 틀렸다고? 근처에서 본 드래곤의 울음소리를 들었지만, 난 죽지 않았다고.’

한세희를 잠깐 노려봐 준 다음 다시 급하게 움직인다.

바다에 빠진 사람 중에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더 있을지도 모르니까.

수면 근처로 활강하는 동안에 각성자들의 공격이 본 드래곤에게 쏟아진다.

그때 한세희가 본 드래곤의 코앞까지 다가가는 것이 보인다. 본 드래곤의 날카로운 이빨이 그를 조각내려 했지만, 한세희는 빨랐다.

‘너무 위험…….’

그가 본 드래곤의 공격을 모두 피해 낸 뒤, 용을 향해 후욱, 하고 입김을 불었다. 그냥 입김이 아니었다.

무엇인가 반짝이 같은 것이 한세희의 입에서 나왔고 그것이 본 드래곤의 이마에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숨결이 닿은 부분부터 하얗게 성에가 끼기 시작했다.

‘얼고 있다.’

쩌적. 쩌저적…….

본 드래곤은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부닥쳤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본 그래곤은 어리둥절한 몸동작으로 움찔거렸지만, 장 리의 곤봉처럼 차갑게 굳어 가고 있었다.

트득, 트드득!

얼어가는 몸뚱어리로 움직이는 바람에 본 드래곤의 뼈로 된 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특, 투둑. 휘이잉. 첨벙!

바스러진 본 드래곤의 조각들이 수면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쩌적……. 그 와중에도 본 드래곤은 계속해서 얼어 갔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본 드래곤의 뼛조각이 떨어진 수면에서부터 바다가 얼어붙고 있었다.

“이런. 안 돼!”

바다에 빠진 사람들을 살펴볼 틈도 없이 본 드래곤 주변의 바다가 빠르게 얼어 갔다.

드득, 드드득. 드드드드…….

본 드래곤의 물에 잠긴 하체까지 얼어 갈 즈음, 상반신이 완전히 박살 나고 바다는 얼어 빙판이 생겨났다.

그 바다 얼음에는 헌터들의 시체도 있었다.

‘어쩌면 살아 있는 사람을 찾았을 수도 있어.’

차마 시체를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띠링.

시스템의 알람이 울린다.

[‘시체들의 밤’ 클리어.]

[보상을 지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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