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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96화 (96/250)
  • 제96화

    제96편

    멈춰 선 한세희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가만 보자……. 저 여자 낯이 익은데.’

    조그만 키에 인형처럼 조그만 얼굴 안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꽉 차 있다. 앵두같이 붉은 입술이 노골적이고 곱슬곱슬한 머리는 뒤로 길게 땋아 찰랑인다.

    ‘그래, 분명 저 사람은 중국의 S급 헌터 장 리. 그가 왜 여기에…….’

    후우욱.

    입김의 흰빛이 짙어지고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한국 영해입니다.”

    “응? 그럴 리가! 접속수역일걸?”

    그녀는 유창한 한국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잘한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걸로 우리나라에서 유명했거든.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한국에 우호적인 이미지였는데…….

    대체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그런 건 사실 당신한테 상관없는 것 아닙니까?”

    “아하하! 그렇지. 이제 말이 좀 통하네. 그런데 정말이야. 검은 구름 때문에 생각보다 먼바다로 나온 거라고?”

    “상대할 가치가 없군요.”

    “하긴 이런 먼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누가 어떻게 알겠어?”

    장 리가 비릿하게 미소 짓는다.

    “확실히 여기가 애매한 구역이 맞긴 하거든. 그래서 우리가 좀 먹으려고. 위법은 아니니까 억울해하지는 말고.”

    “역시 그런 이유 때문이었군요.”

    두우웅.

    그녀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배가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는 많은 각성자 헌터들이 보였다.

    “저 수로는 어림도 없어.”

    “너희는 안 되겠지.”

    스으으으.

    장 리 주변으로 바람이 휘몰아치는 듯하더니 그녀의 뒤로 회오리바람이 생겨났다.

    콰아아아!

    순식간에 만들어진 회오리바람이 한세희를 향해 돌진한다.

    리치가 죽으면서 마법은 풀린 상태였지만, 장 리의 기세에 눌려 몸을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한세희에게 안겨 있는 터라 뭘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에 다짜고짜 인간에게 스킬을 쓰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몬스터를 막기에도 모자란다고!!’

    바닷물을 끌어 올리며 광폭하게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쩌저저적!

    엄청난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땐 그 무시무시한 회오리바람이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자세히 보니 그건 얼어붙어 있는 것이었다.

    ‘설마…… 이걸 그냥 통째로 얼려 버렸다고?’

    고개를 살짝 들어 보니 한세희가 한쪽 팔을 회오리바람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의 흰 손은 시체처럼 보일 만큼 창백했다.

    ‘그렇구나! 회오리바람이 바닷물을 끌어 올리는 바람에……. 아니, 그럼 한세희는 바닷물을 순식간에 얼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S급들의 전투에 혼이 나갈 것만 같다.

    아무리 회귀를 했어도 이런 전투에 내성이 있는 건 아니다. 결이 말고는 S급한테 내성이 없다. 게다가 장 리는 본인의 기세를 감출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멀쩡할 수 있었을까.

    물론 완전히 멀쩡하다고는 보기 힘들지만…….

    어쨌든 그건 한세희 덕분이었다.

    한세희는 자신의 기세를 순환시켜 장 리의 기세가 내 신체의 중요한 부위, 즉 머리와 몸통 부위에 닿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손발이 끊어질 것 같다. 이런 미친 기세를 다 봤나.’

    문제는 한세희가 장 리의 기세는 막아 주었지만, 본인의 냉기는 조절할 수 없는지 얼어 죽을 것 같다는 거다.

    신이시여.

    “칫. 열받네.”

    이번에는 장 리가 무기를 꺼내 들었다. 거의 본인 몸통만큼 큰 곤봉이었다.

    “직접 으깨 주지.”

    휙, 휘릭, 휘리릭!

    장 리는 마치 묘기를 부리는 것처럼 화려하게 곤봉을 회전시키며 한세희와 거리를 바짝 좁혔다.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민첩을 그렇게 올렸는데 움직임조차 따라갈 수 없다니.’

    하지만 한세희가 더 빨랐다.

    쏟아지는 장 리의 공격을 가뿐하게 모두 피해 버리는 것이다.

    성인 남자를 품에 안고도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에 솔직히 좌절감이 들 지경이다. 이것이 S급의 격차인가.

    “기세 좀 거둬 주지. 아무 상관 없는 이 헌터가 불쌍하지도 않나. 어차피 네 기세는 내게 통하지도 않는데.”

    심지어 한세희는 공격을 피하며 장 리에게 대화를 시도할 정도로 여유로웠다.

    “흥. 이런 것 바다에 던져 버리지. 뭐가 귀하다고 아직도 품에 끼고 있는 거야? 나와의 싸움에 집중하라고! 새로 키우기로 한 펫이라도 되는 거야?”

    “사람 목숨을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지.”

    “버리기 양심에 찔리면 내가 도와줄게.”

    장 리의 곤봉이 곧장 내 몸 쪽으로 파고든다. 정말 미치겠네. 왜 이러세요, 진짜! 한때는 좋아하던 헌터였는데. 이제 당신에 대한 지지를 모두 철회하겠습니다!

    분명 죽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S급의 공격이 너무 대단해서 몸이 꿰뚫렸는데도 고통조차 느낄 수 없는 걸까?

    고개를 살짝 숙여 몸을 확인했지만 뚫린 곳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한세희가 움직이지도 않았으니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아, 진짜…… 무서워서 죽을 것 같다. 젠장. 이런 놈들이 있는데 어째서 인류 멸망이라는 미래로 달려가는 거냐! 엄청나게 강하잖아!!’

    이번에는 용기를 내, 장 리 쪽을 확인하는데 두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한세희가 한 손으로 장 리의 곤봉을 틀어쥐고 있는 게 아닌가.

    “으윽.”

    심지어 장 리는 한세희가 쥔 곤봉을 빼내지 못하고 부들거리고 있었다.

    ‘미쳤다.’

    같은 S급인데도 장 리보다 한세희가 훨씬 강했다.

    “그만하지. 힘의 차이는 극명하니까. 너희 쪽 헌터들을 데리고 돌아가. 이곳은 한국이 정리한다.”

    “분하다아아아!!”

    장 리가 안간힘을 써 곤봉을 빼내고는 다시 공격하기 위해 휘두르는 순간, 본능적인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처음에는 S급의 기세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분노한 장 리의 기세가 내 폐를 짓누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장 리의 뒤로 나는 놈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쿠과아아아아앙!!

    거대한 뼈가 장 리와 함께 온 배를 한순간에 수장시켜 버렸다. 거대한 뼈의 정체는…….

    “본 드래곤…….”

    숨이 턱 막힌다. 이러다가 정말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겠군.

    “이, 이럴 수가……!!”

    장 리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분명 장 리의 동료들도 쟁쟁한 헌터들일 터였다. S급을 제외하더라도 대부분 A급이지 않았을까.

    공중 이동기가 있는 헌터 몇만이 겨우 위로 튀어 올라 목숨을 부지하고 황망한 얼굴로 자신들의 배가 있던 자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흠.”

    그 모든 걸 지켜본 한세희가 잠깐 생각하더니, 곧바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어, 어어! 그, 그냥 가는 건가요! 괜찮을까요?!”

    “네. 괜찮을 겁니다. 절대로 저 인원으로 본 드래곤을 잡을 수 없어요. 떼거리로 몰고 온 우리도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는걸요.”

    내가 괜찮을지 물은 건 그게 아닌데…….

    하지만 장 리는 한세희를 죽이려고 했으니까. 그녀를 걱정하는 말을 한 번 더 꺼내기가 어려웠다.

    “크어어어어어엉!!”

    꽤 멀어진 후인데도 바로 옆에서 내지르는 것처럼 본 드래곤의 울부짖음이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피부가 저릿저릿하다.

    “아마 근처에서 저 소리를 들었다면 은하준 씨는 죽었을 겁니다.”

    꿀꺽. 침이 넘어간다.

    그래. 본 드래곤이라니. 나는 저런 녀석과 싸워 본 적은 없었다. 저놈은 그냥 S급이 아니다.

    “다행히 장 리 일행이 미끼가 되어 금방 우리를 쫓아오지는 않겠군요.”

    한세희는 나를 안심시키려고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너무나 차분한 그 목소리에 나는 오히려 불안해지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무시무시한 말이라도 한세희가 계속 건네준 덕분에 우리는 체감상 빠르게 항공모함으로 돌아왔다.

    “하준아!”

    항공모함 위에 있던 결이가 곧바로 뛰어왔다.

    “으으…… 삭신이야.”

    “어떻게 된 거야!”

    한세희의 부축을 받아 바닥에 발을 디디는 나를 보며 결이는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물어 온다.

    “어…… 그게, 리치가 타고 있던 와이번한테 낚아채여서…….”

    결이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한세희를 노려본다.

    아니, 내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인데 그렇게 노려보면 좀…….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나는 한세희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재빨리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세희는 무미건조하던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띠며 고개를 까딱인다.

    그러고는 모여든 헌터들을 향해 말했다.

    “보스 몬스터가 포털을 넘어왔습니다. 초상위 S급 본 드래곤입니다.”

    “허억. 보, 본 드래곤…….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니.”

    “서광 길드원들, 준비하죠.”

    한세희는 자기 길드원들을 모으더니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몸은 괜찮아?”

    이번에는 은화 선배가 달려와 나를 부축하고 신선 길드원들이 나를 둘러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걱정했어요.”

    “갑자기 사라져서…….”

    “많이 다친 것 같은데, 얼른 창희 씨한테 갑시다.”

    후욱.

    몸이 들리는 것 같은 느낌에 돌아보니 이번에는 하케임이 나를 번쩍 안아 옮기고 있다.

    “아, 이제 혼자서 움직일 수 있어!”

    “은하준이 모르는 내상이 더 있을 수도 있다. 조심해야 한다.”

    “그래, 하준아. 일단은 말도 하지 마.”

    자초지종을 묻는 얼굴로 결이가 따라붙는다.

    이걸 어디서 어떻게 다 설명한담.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어요. 대신 기운이 많이 흐트러졌네요. 마치…… 상위 랭크의 기세 싸움에 휘말린 것 같은…….”

    류창희가 있는 실내로 들어와 힐을 받고 나니 한결 살 만해졌다. 하지만 한세희에게서 느꼈던 한기는 좀처럼 사라질 줄을 몰랐다.

    몸이 덜덜 떨려 옷을 추슬렀더니, 손에 잡히는 건 내 옷이 아니라 한세희의 코트였다.

    돌려주는 것을 까먹은 거다.

    ‘이런, 곤란하네.’

    그를 다시 만나는 건 껄끄럽지만, 아무래도 목숨을 구해 줬으니 정식으로 감사 인사를 하기는 해야겠지.

    “역시! 한세희 그 자식이 너한테 무슨 짓 한 거지?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런 상황에서 널 데려가 괴롭힌 거야?”

    “아, 아냐. 결아. 정말로 한세희는 날 구해 줬어. 그게……. 아!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하케임!”

    “응?”

    “하케임, 얼른 본 드래곤이 있는 곳으로 가. 네가 도와야 해.”

    “하지만 나보고 힘을 숨기라고 하지 않았어?”

    “본 드래곤은 너무 강해. 아무리 S급 길드장들이라고 해도 사상자가 많이 나올 거야. 그래. 보스가 본 드래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피해가 났던 거야. 그리고 지금 거기에는…….”

    장 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될까?

    잠깐 망설여졌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었다.

    나는 간략하고 재빠르게 한세희가 나를 구한 것부터 장 리의 등장, 그리고 그 무리가 본 드래곤에게 완전히 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줬다.

    “그러니까 어서 지금 떠나는 헌터들과 함께해 줘.”

    “알겠다. 은하준. 네 명령이니까 나는 들을 거야. 그 여자도 찾아보지. 대신 너무 튀게 행동하지 않겠다.”

    “그래, 고맙다.”

    하케임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이 너도…….”

    “그래. 알겠어.”

    하케임을 뒤따르던 결이가 멈칫하더니 뒤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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