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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93화 (93/250)
  • 제93화

    제93편

    하케임을 바라보고 있던 성현준 대위의 눈동자가 나와 마주친다.

    “은하준 님. 오랜만입니다.”

    그의 건조한 목소리는 정말로 오래간만에 듣는 거였다. 지금 보니 성 대위의 옆에 안 소위도 있었다.

    그녀는 꽤 반가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미안하게도 나는 두 사람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양손에 땀이 맺힐 정도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어쩐 일이시죠?”

    “……별일은 아닙니다.”

    그가 하케임 쪽을 슬쩍 본다.

    “신선 길드에 새로 들어오신 분이라고 알고 있는데, 성함이 하태림 님이시라고요.”

    “네, 하태림입니다.”

    생각보다 하케임이 침착하게 대답을 잘한다. 조금 마음이 놓이네.

    “……그런데요?”

    “이런 독특한 분을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한번 직접 뵌다면 기억이 날까 했습니다.”

    성 대위라면 이미 하케임에 관해서 모든 조사를 마쳤을 거다. 안사홍이 준 가짜 신분으로는 대한민국에서 헌터로 있을 수 있는 모든 과정을 순조롭게 끝냈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서류상으로는 완전히 깨끗한 신분증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지 않은가.

    성 대위가 자질이 괜찮은 각성자들을 불러다가 괴물 특수부대에 강요로 입대하게 만든다는 걸.

    “하지만 낯설군요. 이런 분이라면 분명 기억할 만한데 말입니다.”

    “글쎄요. 성 대위님도 생각보다 그렇게 꼼꼼하신 성격이 아닌가 보네요.”

    방긋 웃으며 내가 먼저 재빨리 맞받아치자 성 대위가 재밌다는 듯 픽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게다가 우리 태림 씨는 저보다 훨씬 이전에 각성하신 분이라…….”

    “그렇죠. 그렇게 기록되어 있더군요.”

    성 대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 애초에 하나도 믿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혼혈입니다. 부모님 중 한 분은 이중 국적을 가지고 계시고요. 해서 각성 당시에 국적 문제로 이런저런 일이 있었죠. 불려 간 곳도 많고요. 그래서 성 대위님을 뵙지 못한 것 아닐까요? 물론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만.”

    하케임이 미리 일러두었던 스토리를 제대로 말했다. 심지어 평소보다 발음이 좋아서 놀라울 정도다.

    ‘평소에는 약간 대충 말하는 거였구나.’

    각성자가 혼혈이거나 이중 국적을 가진 경우에는 국가 간에 서로 각성자를 데려가기 위해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특히나 세컨드 오픈 이전에는 각성자의 수가 아주 희소했기 때문에 각성자 하나를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거의 피가 터지는 로비가 오가곤 했다고 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각성자 하나가 얼마나 많은 군사력을 대체할 수 있는가.

    “그렇죠. 맞는 말씀입니다. 하태림 님의 기록에는 문제가 될 일은 전혀 없습니다. 당시에 제가 워낙 바빴기 때문에 아쉽게도 하태림 님을 놓쳤을 수도 있죠. 저도 생각보다 꼼꼼하지는 않으니까요.”

    성 대위는 나를 바라보며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그는 하케임의 말에 설득당한 것 같지는 않았다.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일을 굳이 걸고넘어져서 복잡한 조사를 받게 하지는 않으려는 것 같았다.

    그때 그가 뭐라고 했더라.

    상부에서 반대했지만, 나를 지켜보고 싶었다고 했던가.

    이번에도 그의 호기심이 발동한 것일까.

    “하태림 씨 같은 분을 놓치다니 정말 아쉽네요. 분명 좋은 군인이 됐을 겁니다.”

    “하하하.”

    하케임은 짧게 웃고 말았다.

    엄청나게 심각한 분위기가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인데 정말이지 성 대위의 속은 알 수가 없다.

    “신선 길드의 활약은 잘 봤습니다.”

    “윽. 그거 칭찬이 아닌 것 같은데요.”

    “뭐, 딱히 칭찬을 드리고 싶은 입장은 아니지 말입니다.”

    하기야 성 대위 입장에서는 내가 류창희와 류환희를 꼬드겨 둘 다 낚아채어 가 버린 것이니 싫을 만도 하다.

    그것 때문에 한동안 내게 연락을 끊은 것도 있을 테고.

    그때 성현준 대위의 휴대폰이 울렸다.

    띠리리릭. 삑.

    “잠시.”

    성현준 대위가 잠깐 자리를 떠나 통화하는 동안 나는 하케임을 바짝 가까이 끌어당겼다.

    “잘했어.”

    “물론. 나는 잘한다, 은하준. 항상.”

    “지금은 말투가 또 이상해졌잖아.”

    “중요할 때만 잘하면 된다.”

    “말은.”

    하케임의 어깨를 퍽 하고 치다가 정면에 있던 안 소위와 눈이 마주쳤다.

    안 소위와는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골격근량이 더 늘어난 것 같았다.

    나와 다시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절도 있게 고개를 까딱였다. 멋진 군인이라. 역시 그건 안 소위를 두고 하는 말일 거다.

    “후…….”

    잠깐 사이에 전화를 마쳤는지 성 대위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한데 통화의 내용이 좋지 못하였는지 표정이 상당이 어두웠다.

    “죄송하지만 세 분 저희와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

    심장이 철렁한다.

    혹시 성 대위와 대화를 나누는 잠깐 사이에 새로운 조사가 이루어진 걸까? 해서 하케임의 정체가 탄로 나 버린 걸까.

    우리는 모두 각성자 교도소에 구치되는 걸까?!

    “무, 무슨 일이죠?”

    “서해에서 일이 터졌다고 합니다.”

    “서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얼이 빠진다.

    서해에서 터진 일이라면 하케임과는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하케임의 정체가 들킨 것은 아니란 말이다.

    다행이라고 할지…….

    하지만 서해에서 일이 터졌다니, 대체 무슨 일일까?

    “자세한 사항은 도착해야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지금 서울의 모든 길드를 소집하고 있는 중입니다.”

    세상에. 서울의 모든 길드를 소집한다고?

    그렇다는 건 사건의 규모가 꽤 크다는 거다. 얼마 전에 있었던 남산의 드래곤 사건과 비슷할까.

    그 정도만 되어도 재해 수준의 끔찍한 사건이었다.

    “어차피 신선 길드에도 따로 연락이 들어갈 테니 여러분은 여기서 저희와 함께 이동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고 황당한 일이어서 이대로 성 대위에게 속은 것이고 각성자 교도소로 가는 건 아닌지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정말로 서해였다.

    “대천…….”

    “여기서 배로 3시간은 움직여야 합니다.”

    “꽤 떨어진 곳이로군요.”

    “움직이시죠.”

    항구에 중간 크기의 배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 배를 타고 가서 큰 배로 옮겨 타게 된다고 했다.

    “어라. 이게 누구야. 아기 S급들의 사랑을 잔뜩 받는 은하준 씨 아닌가?”

    들어 본 적 있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외모의 여성이 서 있었다.

    “길드 해령의 손예원.”

    “오! 이번에는 내 이름 기억해 주는 거야? 정말 고마운데!”

    손예원은 입을 커다랗게 벌리며 활짝 웃었다.

    “옆에는 또 누구야? 피지컬 좋은데? 그쪽도 S급인가?”

    “A급입니다.”

    하케임이 이번에도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재빠르게 대답했다.

    “아웅, 아쉬워라. A급이라니. 은하준은 S급만 친구로 받아 주는 거 아니던가? 깔깔깔!”

    “상황이 심각하니 좀 조용히 하는 게 좋겠군요.”

    “……윽.”

    손예원의 뒤에서 나타난 건 한세희였다.

    온통 새하얀 남자가 나타나자 로비의 분위기가 얼어붙는 것처럼 차가워졌다.

    ‘분명 전에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좀 더 너그러운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컨디션이 나쁜 모양인지 상당히 날이 서 있는 모습이었다.

    “이쪽으로 와요.”

    이제 스무 살은 되었을까. 상당히 앳되어 보이는 남성이 약간 떨어진 곳에서 손짓했다.

    “지금 저 둘 다 기분이 안 좋거든요. 애초에 괴물 특수부대한테 호출당하는 걸 엄청 싫어해서…….”

    “아, 그렇군요.”

    “난 길드 펌블의 신재민이예요.”

    “……! 펌블 길드장 신재민 씨 말이에요?”

    “네, 다들 제가 자기소개를 하면 놀라곤 하죠.”

    “미안하네요.”

    “익숙해요.”

    신재민은 우리를 이끌어 선박의 위층으로 안내했다.

    “곧 이쪽으로 길드원들도 모일 거거든요. 대기하시면 될 거예요. 그나저나 드디어 은하준 씨를 만나 보네요. 저번에 직접 가지 못해서 얼마나 슬펐는데요.”

    분명 내기를 해서 진 사람이 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싶다.

    “이쪽……은 처음 보는 분이네요. 흐응.”

    신재민이 하케임을 살짝 훑어본다. 그리고 이내 흥미를 잃은 듯 난간에 기대 버린다.

    그는 지루한 듯 노래를 조금 흥얼거리다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몸을 확 틀어 조그만 입을 연다.

    “사실 모두 궁금해하거든요. 은하준 씨를 말이에요.”

    “저를요?”

    “네. 사실 독특하잖아요? 처음에는 S급인 한결 씨 때문에 은하준 씨가 좀 눈에 들어왔죠. 줄곧 둘이 붙어 다니길래. S급으로 각성한 각성자들이 이전의 인간관계를 지키는 건 좀 힘들거든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슬슬 알겠다.

    그와 동시에 불쾌한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런데 이게 웬걸. 주변에 S급이 둘이나 더 추가됐잖아요? 뭐 운이 좋게 꼽사리 끼게 됐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예원 누나랑 저랑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게 왜 신기할 일이죠. 많은 S급과 함께 일하는 게 별다른 일인가요?”

    “아, 혹시 기분 나빴어요? 미안해요. 내가 말투가 좀 그래서.”

    “…….”

    “사과할게요. 화 풀어요.”

    신재민은 눈으로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입은 웃음을 참느라 고생 중이다. 어리고 순해 보이는 인상과 딴판인 성격이군.

    어차피 반응해 봤자 이런 부류는 더 즐거워할 뿐이다.

    “그러죠.”

    그냥 무미건조하게 잘라 내는 편이 제일이다.

    “재미없네.”

    신재민이 중얼거린다.

    들으라고 그런 건지 생각 없이 말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준아!”

    결이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린다. 돌아보니 신선 길드의 길드원들이 다 함께 배에 오르고 있었다.

    “우와! 한결이 형이다!”

    신재민은 기대어 있던 난간에서 훌쩍 내려와 결이 앞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안녕하세요, 형. 전 신재민이라고 해요. 저도 S급인데, 잘 부탁드려요.”

    “어, 어? 아, 네…….”

    내게 곧장 달려오려던 한결이가 신재민에게 붙잡혀 우왕좌왕하고 있다.

    “나중에 기대할게요. 어떻게 싸우는지 꼭 좀 보고 싶었거든요.”

    신재민은 씩 웃더니 자리를 벗어났다.

    “쟤 뭐야?”

    “펌블 길드장이래.”

    “뭐? 저 어린애가? 미성년자 아냐?”

    “내가 알기로 미성년자는 아냐. 얼굴이 동안이라 그럴걸. 25살이던가 그럴 텐데.”

    “그럼 내가 형은 아닌데?”

    “……난들 알겠냐. S급 중에는 이상한 녀석들이 너무 많아.”

    결이가 움찔한다.

    “내가 널 보고 한 소리겠니.”

    “……흥, 그나저나 이게 무슨 일인지 제대로 설명은 들은 거야?”

    “아니. 현장에 도착해 봐야 안다고 하던데.”

    “우리도 그렇게만 들었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으니 불안함이 더욱 커져 간다.

    곧 배는 길드 사람들로 북적이게 됐고 배는 서쪽을 향해 출항했다.

    내리쬐는 햇살과 파도를 가르며 얼마나 움직였을까.

    저 멀리 거대한 검은 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세력이 엄청났는데 맑은 쪽과의 경계가 분명해서 마치 다른 차원이 나란히 포개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건가 본데.”

    콰릉, 콰르르릉. 번쩍.

    구름은 번개와 비를 품고 있는 듯 요란한 소리를 냈다.

    “자, 여러분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간단히 브리핑하겠습니다.”

    배의 선수에 처음 보는 군인이 나타나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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