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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88화 (88/250)
  • 제88화

    제88편

    “이게 뭐예요?”

    모두 의자에 앉아 프린트를 살펴본다.

    “윽, 이거 우리 길드에 관해 작성된 기사들이네요.”

    진보라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프린트물을 슬쩍 내려놓는다. 내 손에 들린 프린트물에도 낯 뜨거워지는 내용이 잔뜩 실린 기사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일주일 지났다고 이젠 좀 잠잠해지긴 했지만, 이런 소리를 들었는데 참을 수야 없지.”

    “맞아요!”

    염태규가 주먹을 꽉 쥔다.

    휴대폰을 꺼내 슬쩍 확인해 보니 확실히 신선 길드에 관한 관심이 줄어들어 있었다.

    ‘하케임에 관한 기사는 하나도 없군. 정부에서 이야기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관리를 한 건지. 이건 우리 쪽에서도 환영이지만.’

    하지만 얼굴 인식 제어 마법까지 사용해도 사람들의 이목을 끄니 활동을 시작하면 금방 소란스러워질 거다.

    “흠, 으흠. 그럼 이제 기자들도 잠잠해졌으니까. 슬슬 다시 활동을 시작했으면 하는데.”

    대호 형이 눈을 빛냈다. 모두 잠자코 있는 동안 좀이 쑤셨을 거다.

    “좋아요. 전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길드장님!”

    “맞아, 언제까지 웅크리고 있을 수 없으니까요.”

    “창희 씨는 이제 괜찮나요?”

    “네, 일정 수준 회복 후엔 스스로 스킬을 사용해서 회복했습니다. 완전히 이전처럼 컨디션 회복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좋다, 좋다! 최대한 빨리 가고 싶어요, 전! 오빠들도 그렇지?”

    다시 던전 공략을 할 수 있다는 말에 길드원들이 들뜬다.

    “좋죠. 하케임도 전력을 보탤 테니 B등급 던전 중에서도 상위 던전에 도전할 수 있을 거예요.”

    B급 상위 던전을 떠올리니 그곳이 생각난다. 거기서 얻을 수 있을 좋은 아이템도 있다.

    지금이 딱 적당한 타이밍인 것 같기도 하고.

    길드원들의 초롱초롱한 시선이 내게 박힌다.

    * * *

    츠츠츠츳.

    시야가 뒤바뀌면서 순식간에 새로운 장소에 도착한다.

    콰르르륵!

    깎아지른 돌 절벽과 폭포, 깊고 울창한 숲이다.

    “아우, 여기는 따뜻하네. 표본을 채취할 것도 많고.”

    환희가 기뻐하며 앞장선다.

    “조심해. 아무리 따뜻해도 그 얼음 던전보다 훨씬 어려운 던전이니까.”

    “이전 던전도 공략 실패했는데……. 비슷한 난이도부터 도전해야 했던 거 아닐까요?”

    진보라가 조금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기야 이전 던전에서 길드원 모두가 다치고 기절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나.

    특히나 길드원 전체가 초보인 우리 신선에서는 팀원들 모두 그런 경험이 없기에 더욱 큰 충격이었을 터.

    “그때도 피지컬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 저 사람 때문에 일이 틀어졌을 뿐이고.”

    옆에서 염태규가 끼어들어 툭 던진다. 태규 역시 하케임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미안. 오늘은 내가 도움이 되도록 해 볼게.”

    저를 불편해하는 기색을 내비치든 말든 하케임은 밝게 대답한다. 기억을 다 잃어도 저런 성격이라면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다.

    “자아, 일단은 던전 공략을 위해 집중하자고!”

    “네!”

    대호 형의 선창으로 진지하게 던전 공략이 시작된다.

    “우와, 장난 아니다.”

    태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쉬우우욱, 카츠츠츠츳!!

    우윳빛 궤도를 그리며 거대한 검이 하늘을 가르고 있다. 검이 휘둘릴 때마다 주변의 수목이 김밥처럼 뎅겅 썰려 버린다.

    “거의 자기 몸만 한 검을 사용하잖아? 저렇게 큰 검을 사람이 쓸 수 있는 거야?”

    “저게 검은 맞냐? 창 아냐?”

    “무슨 창이 저렇게……. 이번 턴 끝나고 나면 검인지 창인지 물어보자.”

    “무식하게 큰 주제에 엄청 섬세하게 다루고 있어. 너라면 가능하냐?”

    “너무 멋있다.”

    진보라와 환희까지 태규 옆에 서서 종알종알 정신이 없다.

    솔직히 나도 녀석들과 의견이 같다.

    카시우스 하케임의 검은 성난 황소 같다. 심지어는 왕의 소에 비유할 만큼 고귀한 움직임이다.

    기억을 전부 잃었어도 몸은 기억하고 있는 걸까.

    정말 감탄할 만한 움직임이다. 게다가 처음 하케임을 만났을 때 보았던 그 묘한 푸른빛이 검을 감싸고 있다.

    콰자작!!

    쿠웅!!

    거대한 벌레 몬스터가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쓰러진다.

    “혼자서 일당백이네.”

    “우리가 나설 곳이 없는 거 아닌가?”

    대호 형까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아직 던전 초입인데요, 뭘.”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나도 계속해서 감탄 중이다.

    저번 던전 초입에서 길드원 모두가 힘껏 싸우고 내가 납치까지 당한 걸 생각하면 하케임 혼자서 우리 길드원 모두를 커버할 수 있을 정도다.

    ‘이거 전투력이 엄청나게 높아졌는데? A급 던전 공략을 시도해도 되겠어. 우리 길드원들 레벨이 낮은 것을 하케임이 다 메꿔 주는구나.’

    만약 저번 던전을 공략하기 전에 하케임이 길드에 들어왔다면 대한민국 최단 시간 내에 공략을 완료하고 기사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지 않았을까.

    그걸 원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후우, 정말 징그럽고 귀찮은 녀석들이죠?”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귀환하는 하케임이 상당히 멋있어 보인다. 이 정도로 강한 사람의 전투를 눈앞에서 보는 건 너무 오랜만이다.

    “하, 하케임 씨! 무기가 어떤 종류인 거예요? 이런 건 처음 봐요.”

    “아, 이건 창검 종류의 무기랍니다. 내 전용으로 개량된 겁니다. 내가…… 내가 원래 있던 곳에서 선물로 받았어요! 또 과거의 기억이 돌아왔군요.”

    하케임은 진보라에게 설명하다가 손바닥을 짝! 하고 치며 기뻐한다.

    전용으로 개량된 무기. 하기야 저런 독특한 창검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창검이라는 게 원래 창과 검이 합쳐진 것이고 베기와 찌르기 모두 응용할 수 있는 만능처럼 보이는 무기지만, 사실 다루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게다가 하케임이 사용하는 창검은 창끝의 검 부분이 엄청나게 넓다. 대검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무기 자체도 전체적으로 거인이 쓸 법하게 거대한데 도대체 어떻게 저런 디자인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정말 하케임 본인만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몬스터를 으깨기 위해서 만들어진 무기 같다. 그럴 거면 해머를 사용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물론 엄청나게 멋지긴 해.’

    하케임은 거대한 창검을 어깨에 척하고 올려놓고는 진보라가 묻는 말에 성심성의껏 대답해 준다.

    이 모습을 결이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런. 어떡하나. 결국 진보라의 마음이 저쪽으로 흔들리는 건가. 그래. 사실 진보라와 결이 사이는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않았으니까 당연한 거겠지. 하케임은 결이랑 달리 엄청나게 상냥하니까. 사실 결이도 상냥한데, 겉으로 티가 안 날 뿐이지.’

    진보라는 집중해서 하케임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다. 어쩐지 혼자 화들짝 놀라더니 이쪽으로 후다닥 다가왔다.

    “하, 하하하. 하케임 씨는 정말 강한 것 같아요.”

    “아아, 그렇죠.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레벨이 상당하니까요. 200레벨이 넘었다고 들었어요.”

    “허억! 200레벨이요? 여기 있는 우리 레벨을 다 합친 거랑 비슷하잖아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레벨과 고레벨의 레벨 퀄리티가 달라서 더 강할 겁니다.”

    “세상에. 그러면 하케임 씨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각성자인 것 아녜요?”

    “흐음, 글쎄요. 그건 아닐걸요. 우리나라에도 200레벨이 넘는 각성자가 둘은 된다고 알고 있는데.”

    “그, 그렇구나……. 엄청나네요. 하준 씨는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

    “이 정도로 뭘요.”

    어쩐지 나와 이야기하면서 내 뒤에 서 있는 결이의 눈치를 잔뜩 보고 있다.

    ‘아직 결이에 대한 마음도 남아 있는 건가? 진보라 씨는 욕심이 많네.’

    그렇게 한차례의 전투를 정리하고 있을 때.

    부우우웅.

    저 멀리에서부터 불길한 울림이 다가온다.

    “이런, 무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는군.”

    “아까 하케임 씨가 콘베라의 호르몬 샘을 파괴해서 그럴 거예요.”

    “미안합니다! 사실 이 몬스터는 처음 상대해 보는 것이라……. 하준 씨의 지시를 들었을 땐 이미 늦었어요.”

    대호 형에게 보고하는 환희의 말에 하케임이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콘베라는 방금 하케임이 잡아 쓰러트린 벌레 몬스터로 한 개체당 그 크기가 3미터는 되고 최고 5미터까지 자란다.

    겉모습은 딱정벌레를 닮았으나 위협적인 붉은색이고 날카로운 턱뼈로 인간의 뼈는 물론 각성자들의 강력한 무기들도 두 동강을 낼 수 있다.

    원래는 무리 생활을 하기에 혼자 나타난 것이 의아스럽긴 했다.

    아마도 근처에 무리가 있고 홀로 잠깐 떨어져 나왔던 콘베라와 마주친 모양.

    “괜찮아. 어차피 잡아야 할 녀석들인걸. 전투 난이도가 조금 빡빡해졌으니 다들 힘내 보자고요. 특히 딜러들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흩어지지 말아요! 크게 다칠 수도 있습니다!”

    “네! 하준 씨!”

    붕붕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하늘을 꽉 채우고 귓가를 불길하게 때릴 때까지 전열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모습을 보이기도 전에 팀의 딜러, 대호 형과 결이, 하케임이 먼저 공격을 개시한다.

    “달의 힘!”

    으직, 으지직.

    대호 형의 모습이 순식간에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얼굴 전체가 완전히 늑대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으르르릉!”

    겉모습은 늑대인간 그 자체. 훌쩍 뛰어오른 대호 형이 날아오는 콘베라 무리를 향해 거대한 손톱을 긋는다.

    “잔혹한 발톱.”

    괴수처럼 길게 자란 억센 손톱으로 공중을 긋자 붉은 칼날이 튀어나온다.

    스각, 슥! 퍼어억!!

    여덟 개의 칼날이 거대한 콘베라를 썰어 추락시킨다. 그리고 대호 형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엄청난 운동신경과 동물적 감각으로 거대한 콘베라들의 등을 옮겨 다니며 딱딱한 등껍질을 그대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비행 중인 콘베라의 날개는 강철 검처럼 날카로워져서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그라인더와 같은데, 그 사이를 하나의 상처도 나지 않으면서 종횡무진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퍼억! 푸자악!

    콘베라의 체액이 사방으로 튄다.

    “윽, 벌레는 정말 싫다니까!”

    “세이프티 스페이스!”

    진저리 치는 진보라를 위해 인화 선배가 보호막을 만들어 체액이 튀지 않게 해 준다.

    그 옆에서 결이가 튀어 나간다.

    파츳, 파츠츳!

    평소보다 훨씬 많은 스파크가 결이의 주변에서 튀고 있다.

    “오늘 결이가 컨디션이 좋은 것 같은데.”

    “하케임 씨 때문에 초장에 활약할 기회가 없어서 그렇죠, 뭐. 몸이 달았을 거예요.”

    진보라와 인화 선배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벌레가 꼬여드는 공중을 주시한다. 이 사람들이 갑자기 구경 모드네? 하지만 나 역시 세 명의 딜러가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두근두근하다.

    결이의 경우에는 지금껏 계속해서 봐 왔지만, 그리고 아직 여기에서는 생기지 않은 실력까지 봐 왔지만 볼 때마다 긴장되고 짜릿하다.

    나는 결이의 공격 스타일이 아주 마음에 든다.

    파칫, 파치칫.

    눈으로 보기에도 위협적인 스파크가 결이 주위를 가득 채우고 드디어 결이의 입이 떨어진다.

    “우중 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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