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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87화 (87/250)
  • 제87화

    제87편

    “이건…… 단순한 호위 계약서로 보이는데요. 거래 호위 가드로 5회 참석.”

    “맞습니다.”

    안사홍이 눈이 가늘게 휘어질 때까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가끔 제가 상대하기 어려운 고객님들이 있죠. 위험하기도 하고 호의적이지 않으신 분들도 있거든요. 그런 경우에는 믿을 만한 가드가 필요합니다. 사실 최근에 가드가 상대 쪽에게 포섭을 당하는 일이 있어서요. 새로운 가드가 필요하던 참이랍니다.”

    하긴, 안사홍의 거래 능력을 탐내거나 아니면 거슬려하는 사람이 한둘이겠나.

    아이템 거래를 하는 데에도 목숨을 걸고 해야 하다니.

    던전 공략을 뛰는 헌터만이 위험을 무릅쓰는 게 아니었다.

    “이 가드 일은 몇 개월에 한 번씩 발생하고 한 달 전에는 미리 스케줄을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보수도 넉넉하게 챙겨 드릴 수 있다고 약속드리죠. 자세한 것은 계약이 체결된 후에 알려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본인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데 나를 쓸 테니, 서로 믿고 상부상조하자는 뜻이로구먼.

    “하지만 저로 괜찮습니까?”

    “애초에 혼자서는 불가능한 임무가 될 겁니다. 하준 님께서 믿는 사람들로 멤버를 꾸리십시오. 규모는 일정이 다가오면 알려 드리게 될 텐데 이 점도 유의해 주십시오. 유동성이 많은 업무입니다.”

    결국 나와 계약하면 안사홍은 신선 길드원 대부분을 지원받을 수도 있게 된다는 거다.

    특히나 페어로 다니는 S급의 결이.

    보수를 준다고는 하지만, 사실 S급 각성자를 가드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이 지구에서 몇 없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이 거래는 안사홍이 훨씬 이득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제 비밀을 많이 알고 계신다는 것 정도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은하준 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죠. 저희 가게에는 ‘없는 게 없다’고. 어떤 물건이든 구해 온다고 말입니다. 지금의 거래도 그에 해당하는 일이고요.”

    아아. 안사홍은 그때 내가 금지 물품을 알아본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걸 부인할 생각도 없고.

    오히려 좋다.

    이렇게 깔끔한 관계라면 안사홍을 더욱 믿을 수 있겠지.

    ‘타이밍이 좋았네.’

    어느 모로 보나 이 계약을 거절할 이유는 없다. 안사홍에게 훨씬 좋은 거래라고 해도 나 역시 손해를 보지 않고 이득이니까.

    “긍정적으로 검토하시길 바라면서 상품 안내를 마저 하죠.”

    안사홍은 다시 테이블로 붙었다.

    위조 신분증을 옆으로 밀어 놓고 작은 케이스에 들어간 액세서리를 보여 준다.

    “얼굴 식별 위조 귀걸이입니다. 이 귀걸이를 하시면 착용자의 원래 얼굴을 모르는 사람에게만 다른 얼굴로 비치죠. 얼굴을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착시 마법의 일종입니다. 다만 섬세한 마법이라 양쪽 귀걸이를 반드시 함께 이용하고 24시간 이상 착용해야 발동됩니다.”

    케이스 안의 귀걸이는 아주 단순한 모양이었다. 끝에 동그란 볼이 핀보다 조금 두껍게 붙어 있는 모양일 뿐 별다른 장식이나 모양이 없어 오히려 세련되어 보였다.

    동그란 볼은 보석이나 자연석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는데 하케임의 눈동자 색과 같은 옅은 녹색이었다.

    “어때.”

    “좋아. 예뻐.”

    하케임이 냉큼 손을 뻗어 귀걸이를 만지작거린다.

    “물건이 마음에 드시면 거래를 진행해 드릴까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안사홍과의 거래는 늘 하던 대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신분증과 귀걸이의 가격은 어마어마했지만, 감당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신분증은 각성자 아이템에 비하면 싼 가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때?”

    계산을 마무리하는 동안 하케임은 옆에서 바로 귀걸이를 착용하고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잘 어울리네.”

    “그렇지? 사실 난 안 어울리는 게 없어서. 앗, 그래. 맞아! 나는 안 어울리는 게 없었어.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났다!”

    “황당하군…….”

    결이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콧방귀를 뀐다.

    “24시간 착용 후에 발동이 된다면 지금은 이 얼굴 그대로 비친다는 거겠죠?”

    “예. 24시간 동안 되도록 얼굴을 보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마법에 적용되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요. 아, 게다가 이 아이템이 발동되고 있다는 건 높은 랭크나 레벨의 각성자, 또는 감지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자들에게 인식됩니다. 어떤 종류의 마법인지는 감지되지 않습니다.”

    “흐음, 그 정도는 뭐……. 각성자들은 항상 발동되는 아이템을 가지고 다니니까요.”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하는군. 후우. 얼른 자유를 얻고 싶은데.”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그걸’ 좀 주시겠어요?”

    안사홍의 표정이 미묘하게 찌푸려진다.

    “그런 물건은 아마 일반 가게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어라, 제가 곤란하게 한 건가요?”

    “……좀 그렇습니다. 죄송한 말이지만, ‘그런’ 종류의 물건은 제가 꺼려합니다.”

    “없는 게 없는 단홍 상사인데 의외로군요.”

    “다른 손님들껜 비밀로 해 주시죠.”

    안사홍이 건네는 작은 상자를 받아 들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던전에서 쓸 비기가 이 상자 안에 담겨 있다.

    “오늘은 이만 집으로 가자. 오늘 치 소란은 다 일으킨 것 같으니까.”

    “그래, 그래. 가자.”

    돌아간다는 말에 하케임은 기분이 좋은지 팔다리를 마구 흔들었다. 어째 너무 과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무실에 마구잡이로 진열된 안사홍의 물건들이 아슬아슬해 보인다.

    “아니, 하케임! 그만! 그러다가……!!”

    챙그랑!!

    결국 그 길쭉한 팔다리에 걸린 물건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분명히 망가진 것 같다. 아무래도 그렇지.

    도자기 같은데,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으니까.

    “사홍 님, 죄송합니다. 변상할게요!”

    “……아닙니다. 물건을 함부로 늘어놓은 제 잘못이죠.”

    “하지만 이거 엄청 비싸 보이는데요.”

    “네. 비싼 겁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죠. 다른 차원의 손님께서도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닐 테니 말입니다. 차원을 넘나드시느라 피곤하셨던 모양이지요.”

    어쩐지 안사홍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들렸다. 그런데 내가 하케임에 관해 설명한 적이 있었던가?

    “여, 역시 가격을 치르는 게…….”

    “아닙니다.”

    뭐라고 더 말을 보태면 왠지 화를 낼 것 같은 분위기라 입이 쑥 들어간다.

    “하하하, 손님한테 서비스가 좋은 가게네.”

    하케임은 눈치 없이 히죽거리면서 여전히 조심성 없이 가게를 누볐다.

    “이봐, 그만해.”

    턱. 보다 못한 결이가 하케임을 잡아 저지한다.

    “그만하기 싫으면?”

    하케임의 목소리에도 어쩐지 냉기가 서려 있다. 하케임이 저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왔던 적은 없었다.

    일주일뿐이지만 집에서 지낼 때 한 번도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던 사람이다.

    뭐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나만 모르는 뭔가가 벌어지고 있는 건가?

    “농담이야.”

    하케임이 결이 얼굴에 바짝 다가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저 자식 저거 진짜 미친놈인가.

    정말 이상한 상황이지만, 일단 분위기를 살핀다.

    안사홍의 표정에는 평소처럼 감정이 없는 것 같지만 불쾌감이 어른거린다. 나는 서둘러 하케임을 챙겨 단홍 상사를 벗어나기를 선택했다.

    “미쳤어?!”

    “뭐가.”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왜라니? 실수인데?”

    “하케임!”

    하케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뭔가 저 녀석 기운이 별로였어.”

    “뭐?”

    “기분 나빴다고.”

    “갑자기 무슨 소리야. 자세하게 말해 봐. 왜 뭣 때문에 기분이 나쁜데? 지금 너를 숨기는 데 가장 필요한 아이템을 준비해 준 고마운 분이라고.”

    “상인은 돈을 주면 뭐든 하지.”

    “하.”

    하케임이 이렇게까지 우길 줄은 몰라서 기가 탁 막힌다.

    미운 일곱 살짜리랑 대치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후……. 일단은 길거리에서 이렇게 싸울 게 아니라 집에 가자.”

    “난 은하준이랑 싸우지 않았는데. 싸우기 싫어.”

    “그럼 말을 좀 듣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

    “은하준.”

    택시를 잡으려는 내 손목을 하케임이 확 끌어당긴다.

    “저 사람, 조심해야 해.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기억을 전부 잃어버려서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야! 하케임! 그 손 못 놔?”

    결이가 하케임의 손을 떼어 놓는다. 하케임 녀석이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손목이 얼얼하다.

    대체 뭐냐.

    “그 물건들을 부순 것도 같은 이유에서야. 기분 나쁜 기운을 풍기고 있었지. 그건 분명 위험한 에너지야. 그런 걸 다루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 리 없어.”

    “야, 적당히 해.”

    결이의 눈에서 불꽃이 튄다.

    “네가 뭐든, 얼마나 중요한 놈이든 난 그런 거 상관 안 해. 시스템이고 뭐고 난 그런 거 궁금하지도 않으니까. 다시 한번 하준이한테 이런 식으로 대하면 죽여 버린다.”

    “…….”

    스멀거리며 결이의 기세가 흘러나온다. 기세가 결이의 바로 곁에서만 격하게 일렁거리는 게 느껴진다.

    분명 엄청나게 참고 있는 거다. 여기서 기세를 방출하면 내가 버거워질 테니까.

    기세를 조절하는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군.

    “……하아, 일단 집에 가자.”

    한숨을 푹 내쉬자 결이의 기세가 누그러진다.

    이 난장판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 거지.

    * * *

    “실례를 범해서 죄송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하케임은 다시 온순해졌다. 아까 그 난리를 피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도 싸늘해진 분위기를 어떻게든 풀어놓으려고 무릎을 꿇고 깊이 절을 하고 있다.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위에 놓으며 말이다.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뭔가 익숙하면서도 불쾌한 감각 때문에 예민해져서 그랬다. 내 실수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곤란하게 해서 미안하다.”

    “솔직해서 좋네.”

    “그럼 기분이 풀어진 건가?”

    “안 풀어졌어.”

    “풀어진 것 같은데.”

    “참 나. 아니라고.”

    인상을 확 찡그려 보이자 하케임의 눈썹이 팔자로 처진다.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짓는 게 아까랑은 정말 딴사람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황당하다.

    하케임은 계속해서 변명을 주절거렸다.

    “거시적으로 보면 내 기억을 되찾아야 하는 은하준에게는 도움이 된 사건 같다. 내가 싫어하는 뭔가를 기억해 냈으니까. 물론…… 안타깝게도 그게 뭔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말이다. 하여튼 그건 모두에게 좋지 않은 거니까 조심해야 한다.”

    “어이가 없어서. 기억을 제일 되찾아야 하는 건 당신이고요. 하케임 씨.”

    “그 말도 맞다. 내게 제일 좋은 사건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하지만 기분은 확실히 나빴다!”

    하케임 특유의 이상한 말투에 픽 웃음이 나온다.

    “역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더니. 넌 성격이 좋아서 거저먹는구나.”

    “……!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은 것 같아. 기억이 또 돌아왔군.”

    “정말이지. 못 말린다니까.”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 참을 거야. 난 미리 경고했다. 하케임.”

    결이는 원래 안사홍을 싫어하니까 둘이 부딪치는 일에 별로 신경 쓰지 않을 줄 알았더니. 돌아와서도 내내 기분이 풀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쯤 말했으면 이제 알아들었겠지. 하케임은 어린애도 강아지도 아니니까. 다음부터는 절대로 그러지 않기야.”

    “응! 진짜 알겠어. 멍멍!”

    “장난은 그만하고.”

    “응!!”

    “하…….”

    못마땅해하던 결이는 결국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내일은 길드원들을 만날 텐데 또 이런 식이면 안 돼. 진짜로. 알겠지?”

    “응응, 알았어.”

    하케임이 과장된 움직임으로 고개를 빠르게 끄덕인다. 키도 190이나 되면서 움직임은 왜 이렇게 잽싼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 * *

    “우, 우와…….”

    “어머머…….”

    일주일 만에 한자리에 모인 신선 길드원들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다.

    바로 하케임.

    하지만 모두 그가 자기소개를 끝마칠 때까지 던전에서 마주친 하케임인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기왕이면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나랑 한결이 정도 선에서만 알아 두려고 했다. 어쨌거나 껄끄러운 일이니까.

    하지만 길드원들과는 길드 건물 사용에서부터 던전 공략까지 긴 시간을 보내야 하고 또 하케임이 우리 집에서 생활하는 것 때문에 오픈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정도까지는 괜찮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 반응을 보니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어머, 그러니까 그때 그분이란 말이죠? 어머…… 너무 잘생기셨다. 앗! 아니, 어, 그러니까……! 죄송해요!!”

    “괜찮아요.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진보라는 처음부터 버벅대며 말실수를 하기 일쑤고.

    “피를 뽑아 보게 해 줄 거지?”

    “……조, 조금만이라면.”

    환희는 연구에 눈이 멀어 광기를 드러냈다.

    “몸이 아주 좋군! 이 근육들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물어봐도 될까?! 벌크업만 조금 하면 바로 대회에 나가도 될 정도로 완벽한 몸이야!”

    대호 형은 신이 났다.

    이거 이상한 게 아니라 잘된 건가?

    ‘지금쯤이면 얼굴 인식 마법이 발동된 게 맞는데도…… 그렇게나 잘생겼단 말이야?’

    세상은 불공평하다.

    “자아, 그러니까 다들 진정하고. 앞으로 모두가 하케임 씨를 보호하고 기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걸 명심하자고요.”

    유일하게 침착한 인화 선배가 장내를 정리한다. 역시 우리 선배!

    “자, 이걸 좀 봐요.”

    인화 선배가 프린트된 종이를 테이블 위에 늘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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