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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86화 (86/250)
  • 제86화

    제86편

    “오, 이건 뭐지?”

    삑.

    지이이잉.

    전자레인지가 돌아간다.

    “오오오! 대단한데. 이것도 시스템의 능력인가?”

    “아니…….”

    “뭣! 그렇다면 이건 그 과학이라는 너희 세계의 마법이란 말이야?”

    “일단 그게 마법은 아니라니까.”

    “내게는 마법처럼 느껴지니까 어쩔 수 없다.”

    하케임은 삑삑거리는 전자레인지를 열더니 내부를 심각하게 구경했다.

    “아무 의미 없이 전자레인지 돌리지 말고.”

    핫바를 하나 건네 전자레인지에 넣어 준다.

    “향이 아주 강한 음식이군. 케챱. 케챱이라는 걸 뿌려 먹고 싶다. 은하준 네가 전에 감자튀김이라는 거에 뿌려 줬던 거!”

    “그래, 알겠어.”

    “미요네저도!”

    “마요네즈.”

    “두 번 뿌리겠다.”

    “그러시든가요.”

    삑삑. 지이이잉…….

    “그나저나 오늘은 밖에 나갈 거야.”

    “응!”

    하케임과 마주친 지 벌써 일주일.

    신선 길드는 잠깐 동안 자숙하기로 결정해서 집에만 있었다. 대외적인 이유는 뜨겁게 불타는 여론의 뭇매가 사그라들 때까지 좀 조용히 있자는 거였다. 사실 하케임 때문이 70%지만 말이다.

    일주일 동안 하케임이 기억해 낸 것은 많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심지어 집 안에서만의 생활은 하케임이 이전에 경험했던 그 무엇과도 비슷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삐이-. 삐이-. 삐이-.

    “다 됐다!”

    하케임이 전자레인지에서 핫바를 꺼낸다. 두 배 용량 마늘 핫바다. 거의 키 190의 금발 외국인(타차원인이지만)이 저걸 들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아무래도 이대로 있는 건 안 되겠어.”

    “우웅, 마무 그렇게 생가케.”

    “다 씹고 말하도록.”

    “우움.”

    그간 정부에서도 한 차례 연락을 해 왔었단 말이지. 우릴 불러서 간단한 인터뷰를 하고 갔지만, 수색이라든가 심층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하면 다행이지만……. 정부에서 하케임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네. 어쨌든 우리는 조심해야겠지…….’

    하케임을 찾는 조사를 포기한 걸까? 당연히 그럴 리는 없겠지. 아마 끝까지 하케임을 찾을 거다.

    “일단 오늘은 밖에 나가 볼까 하는데.”

    “오?! 이제 나가도 되는 건가? 정부? 라고 하는 건 이제 나를 쫓지 않는 건가?”

    “아니. 아마 잡힐 때까지 하케임 널 쫓을 거야.”

    진한 금색 눈썹이 팔자를 그린다.

    “하지만 일단 잡혀 들어가기 전에 네 기억을 모두 찾아 둬야지. 그래야 조사에 응하기도 쉬울 테고.”

    “내가 100% 잡힌다고 상정하고 있군.”

    “……외국으로 뜨지 않는 이상 도망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경찰 검거율이 높대. 요즘은 공조 수사도 많이 하고.”

    “……내가 범죄자도 아닌데.”

    “범죄자 맞지. 병원을 부쉈잖아.”

    하케임이 인상을 찌푸린다.

    “한국이라는 곳 뭐든 다 잘한다고만 하고. 나도 잘한다!”

    “내가 그랬나? 여하튼 나갈 거니까 옷 좀…….”

    결이 방 쪽을 보니 방문에 반쯤 걸쳐져서 쳐다보고 있다.

    “보고 있었으면 옷 좀 준비해 줄래?”

    “……그래.”

    “한결은 왜 삐친 건가.”

    “삐치지 않았어. 네가 내 물건을 계속 쓰니까 짜증 날 뿐이야.”

    “아유, 결아 왜 그래. 오늘 나가서 하케임 옷 사 오면 되잖아. 맞는 게 네 옷뿐인걸.”

    그러고 보면 결이가 부쩍 자랐다. 약간 박시하게 입는 스타일이라 190을 살짝 넘는 하케임에게는 딱 맞는 핏이 되지만 어쨌든 맞는다는 게 중요했다.

    내 옷은 턱도 없었으니까.

    ‘180 넘은 거 같은데. 185쯤 되나? 그러고 보니 우리 길드 남자들 죄다 너무 크잖아? 이거…… 열 받네.’

    대호 형이 하케임이랑 키가 비슷하면서 육체미가 쩔어 주고 결이가 살짝 작고 그다음이 류창희…… 모델같이 쭉쭉 뻗은 팔다리가 멋있지.

    그리고 그다음이 염태규랑 내가 비슷비슷……. 회귀한 내가 기억하기로 염태규가 나보다 3센티 정도 더 커지니까…….

    생각하면 할수록 열 받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키가 커지는 아이템 같은 걸 찾아봐야겠다. 이번 생 운수로는 분명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집 안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걸 알았으니 어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해야겠어. 던전도 돌고 말이야. 순조롭게 일이 풀리면 하케임이랑은 미발견 던전을 돌아야 해.”

    결이는 줄곧 못마땅한 얼굴이다.

    “그건 너랑 나만 아는 비밀인데.”

    “무슨 소리. 이제 환희도 알잖냐.”

    “…….”

    꽁해진 결이가 가져온 옷을 하케임의 얼굴에 냅다 던져 버린다. 하지만 하케임은 날렵하게 옷을 받아 내곤 씩 웃는다. 그러곤 일부러 들으라는 듯 내 귀에 속삭인다.

    “한결은 아직 어리군.”

    “뭣……!”

    “그리고 기억났다. 나의 나이는 지구 기준으로 327세다!”

    하케임이 와하하 웃음을 터트린다.

    * * *

    키가 일정 이상 크면 아무리 후드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한다고 해도 눈에 띌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대호 형의 경우야 신경 쓸 일이 없었으니까 몰랐지.

    한데 지금 하케임은 누가 봐도 연예인이다. 심지어 옆에는 키로도 얼굴로도 지지 않는 결이가 있다.

    “우와, 저 사람 스타일 엄청 좋다~!”

    스타일 좋기는, 세일할 때 산 만 원짜리 후드 티라고.

    “잘생겼을 것 같아. 염색했나 본데? 머리카락이 반짝거려!”

    “아이돌 아냐?”

    “아이돌치고는 키가 너무 큰데?”

    “모델인가.”

    “옆에 있는 사람은 좀 아이돌 같다.”

    “어? 저 사람…… S급 헌터 한결 아냐?”

    “어라? 정말이다!”

    거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하케임과 결이를 잡아당기며 달리고 있었다.

    “후우, 후우. 후……. 하아. 각성자라서 다행이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이 없는 곳이 없는 서울인지라 따라붙는 무리를 따돌리면 또 새로운 사람들이 쫓아오고의 연속이었다.

    “오늘따라 귀찮네.”

    “원래 바깥은 이런 건가.”

    두 사람은 헐떡이는 기색도 없다. 이거 자꾸 분하네. 다리가 길어서 그런 거니?

    “그래도 거의 다 왔으니까 한시름 놓인다.”

    “그런데 단홍 상사에 간다고 하더라도 뭐 뾰족한 수가 있어? 이 자식 자체가 너무 튄다고. 지금 이 소란으로 벌써 정부에 보고가 올라갔을 수도 있어.”

    결이의 말이 맞다. 그러니까 더욱 안사홍에게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이미 전화로 물어보긴 했거든. 아마 쓸 만한 아이템이 있을 거라고 방문해 달라고 해서 온 거야.”

    “참 나. 아무리 그 사람이 만능이라도 이 상황을 어떻게, 아니 그보다 이 녀석의 정체를 보여도 괜찮은 거냐고.”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결이는 미간을 구겼다. 내 천(川) 자가 깊게 새겨진 미간을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펴 준다.

    나 역시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그때 인화 선배가 떠올랐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깨달은 한 가지가 다시 떠올랐다.

    사람을 믿어 보자.

    솔직히 회귀한 후에는 대충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기 때문에 쉽게 그들을 믿고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안사홍은 정말로 내가 잘 모르는 미지의 사람.

    알고 지낸 기간은 너무나 짧지만, 그리고 상대에 관해 모든 걸 알지 못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저 숨기고 가만히 있기만 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모험에 뛰어들 때도 있어야 하는 거야. 뭐, 이 일로 하케임을 정부에 뺏긴다고 해도…… 우리가 엄청나게 손해 볼 일은 없을 테고.”

    사실 나도 완전히 믿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단홍 상사에 왔다 갔다 할 때, 안사홍이 실수로 잘못 꺼낸 아이템이 정부에서 거래 금지한 것이었거든.

    그는 내가 거래 금지 아이템까지 빠삭하다는 걸 모르겠지. 뭐, 알아도 이미 내가 봐 버린 걸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러니 정말로 뒤통수를 치려 한다면 그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을 생각인데…….

    “뺏기지 말아 주세요. 부탁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케임이 공손한 말투로 고개를 꾸벅 숙인다.

    “흥. 마음대로 해. 그래, 들켜서 뺏기면 난 오히려 속이 시원하겠어.”

    결이가 툴툴거리는 걸 듣고는 하케임이 또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자, 저기야. 정말 다 왔다.”

    단홍 상사.

    낡은 명패가 붙은, 겉모습은 초라한 상점 건물이다.

    끼이익. 딸랑.

    문을 열자 풍경이 울리고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은하준 님.”

    단홍 상사의 주인 안사홍이다.

    그는 언제나처럼 깔끔한 정장 차림에 고급스러운 면장갑을 끼고 우리를 맞이했다.

    “처음 뵙는 분도 계시네요. 요즘은 신규 손님을 잘 받지 않고 있습니다만, 은하준 님의 일행이니까요.”

    “정말 고마워요.”

    “자,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안사홍은 단정한 발걸음으로 앞장선다.

    “이제 마스크랑 후드 벗어도 돼.”

    “어후, 갑갑했어.”

    “그래그래, 고생했어.”

    안쪽으로 들어가자 안사홍의 거대하고 멋진 서재가 나온다. 그러자 하케임이 중얼거렸다.

    “어, 왕실 도서관 생각난다.”

    “뭔가 생각났구나.”

    “어…… 으응. 왕실이란 게 있었던 거 같은데.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었어.”

    아무래도 하케임이 건너온 세상은 시대물 판타지 세상이었나 보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현대 판타지인가?

    “여기 말로 하면 왕이랑 귀족들이 있었어. 민주주의가 아니었네.”

    “진짜 이상한 대화다, 이거.”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케임이 픽 웃는다.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린다는 건 어떤 걸까. 나라면 저렇게 해맑게 웃을 수 있을까. 그러다가 다시 조금씩 기억을 되찾는다면.

    기억을 잃어버린 후의 내가 상상한 것과 전혀 다른 기억이 되돌아온다면 나는 어떡할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기 전에 안사홍이 테이블 앞으로 나를 인도했다.

    “자아, 원하신다던 아이템을 모두 구했습니다. 일단 제일 먼저가 위조 신분증.”

    스윽.

    그는 아주 덤덤하게 위조된 신분증을 건넸다. 그러고는 하케임을 흘긋 쳐다보았다.

    누가 사용할지 이미 짐작한 것.

    “사정은 묻지 않으시네요.”

    “물으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내 질문에 안사홍은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배려가 느껴지는 대답.

    하지만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안사홍]

    영혼 등급: 아직 알 수 없음

    영혼 상태: 불안정

    싱크로율: 0%

    안사홍의 영혼 분석.

    솔직히 사람을 믿어 보자고 마음먹었지만, 좀처럼 믿기 힘든 내용 아닌가.

    게다가 싱크로율이 0%.

    물론 이 싱크로율이 성격만을 뜻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껄끄럽지.

    “무엇을 걱정하고 계신지, 알 것 같군요. 하지만 아마 저밖에 없을 겁니다.”

    안사홍은 속을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슬쩍 테이블에서 떨어져 나왔다.

    “손님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상인으로서 좋은 자세가 아니지요. 아직 은하준 님께 신뢰와 믿음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마 사안이 사안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손을 펼치자 허공에서 종이가 생성된다. 마치 마술을 부린 것처럼.

    “가장 믿을 만한 것은 거래로 묶인 관계지요. 제가 은하준 님이 원하시는 완벽한 위조 신분을 만들어 드리는 대신, 저도 의뢰할 일이 있답니다. 어떠신가요?”

    “의뢰라고요?”

    “은하준 님이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니 제가 은하준 님을 곤란하게 만들 일도 없겠죠.”

    안사홍의 손 위에 떠오른 종이에 보이지 않던 글자가 서서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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