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85화 (85/250)
  • 제85화

    제85편

    “은, 하준.”

    생각도 못 한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뻐끔거리자 시원한 입매가 씩 웃는다.

    “한결.”

    마치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것처럼 곱씹더니 하케임이 등을 돌린다. 그리고 곧장 창문을 향해 뛰쳐나간다. 그리고 예의 그 푸른빛이…….

    퍼어어엉!!

    “무슨 일입니까!”

    바깥을 지키고 있던 경비가 들이닥쳤을 때는 이미 병실이 절반 날아가고 없었다.

    그냥 비유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창문이 있던 쪽 벽이 날아갔고 병실 내부의 물건들은 어지럽게 널려 바닥을 뒹굴었다.

    “은하준 님! 한결 님! 괜찮으십니까?!”

    “……우, 우리는 괜찮.”

    이상하다. 경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처음에는 이 도망의 원인으로 의심을 산 건가 했는데 그의 표정에 의심이 전혀 없다.

    “은하준 님, 피가 납니다! 지금 부상이 심각하신 것 같은…….”

    “아…….”

    그리고 아마 또 기절한 것 같다. 아니, 분명히 기절했다.

    * * *

    ‘정말 쪽팔리네.’

    사실 생각해 보면 하케임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우리끼리만 있는 상황에서 그가 보란 듯이 탈출하면 가장 먼저 의심을 받을 사람은 나와 한결이니까.

    그래서 일부러 약간의 상처를 입힌 거다.

    물론 나는 기절할 만큼의 큰 상처였지만 말이다.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익숙한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분명 그런 거겠지? 통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마지막에 우리 이름도 불러 줬고.’

    그런데 만약 그게 복수할 상대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면 엄청 큰일 난 거겠지.

    다음번엔 기절이 아니라 영원한 죽음의 잠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

    “하준아. 퇴원해도 괜찮겠어?”

    “물론이죠. 힐러분들이 힐해 주셔서 상처는 거의 다 나았어요.”

    모두 돌아가고 마지막으로 남은 인화 선배의 표정이 어둡다.

    “대체 그 사람은 뭐였을까?”

    “그러게요. 궁금한 게 너무 많은데 알아낸 건 하나도 없네요.”

    “그래도 너랑 결이 둘이서만 들어갔던 건 너무 무모한 일이었어. 우리도 전부 의식을 되찾은 다음이었는데.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는 위험인물을…….”

    “정부에서 데려가면 저한테는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요.”

    “물론 그렇겠지만…….”

    선배는 손으로 눈썹을 세게 문지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갈비찜 해 줄까?”

    “밤 많이 넣어 주세요.”

    “그래.”

    인화 선배는 새침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몸 좀 사려. 갈비찜 오래오래 먹으려거든.”

    “아하하. 그러네요. 갈비찜 생각하면 그래야겠어요.”

    “정말이지……. 큰일이 날까 봐 걱정이야. 우리가 하는 일이 위험하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잖아. 제발 너무 혼자서 다 하려고 하지 마. 그러다가 다쳐. 이미 다쳤지만 말이야. 하준아. 걱정되어서 그래.”

    “……누나.”

    혼자서 다 하려고 하지 말라니 기분이 오묘해진다.

    나는 선배한테 이 모든 걸 배웠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선배에게 어깃장 피울 생각은 없다.

    “대신 누나도 그러기예요.”

    “응?”

    “누나도 너무 혼자서 다 하려고 하지 마세요. 알겠죠? 뭔 일 있으면 같이 해결하는 거예요.”

    “응? 어, 으응. 그래.”

    선배가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꼭 지키기예요. 알겠죠.”

    몇 번이나 약속을 받아 내는 건지. 약간 부끄럽지만 어쩔 수가 없다.

    * * *

    그러니까 그런 감동적인 분위기로 퇴원까지 밟고 집에 돌아왔다.

    퇴원이야 끄떡없었다. 그 어떤 심한 부상을 입더라도 실력 좋은 힐러의 스킬만 있다면 흉터 하나 안 남는 게 각성자의 삶이니까.

    그러니까 당일 바로 퇴원할 수 있었고 무사히 귀가했단 말이다.

    “안녕.”

    눈앞에서 웃으며 손을 흔드는 건 금발에 녹색 눈을 가진 초미인.

    그.러.니.까.

    집에 이런 게 있으면 안 된다는 거다.

    “……?!”

    “쉿.”

    어떻게 그가 우리 집에 있는 거지? 심지어 내 방에?

    소리를 지를 뻔했는데 너무 놀라서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대체 왜 있는 거지? 이번에야말로 나를 두 동강 내려고 그러는 건가?

    “고층이라고 창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더군.”

    하케임이 유려한 한국말로 말한다. 그러니까 이게 꿈이 아닌 거 맞지? 나는 내 몸이 아직 병원 침대에 있는 것 같아서 돌연 불안해졌다.

    “어떻게…….”

    “이거.”

    그는 자기의 몸에 연결된 흰 선을 보여 준다.

    아. 그래.

    스킬을 썼었다. 소울메이트.

    이게 하케임이 탈출할 때 일어난 폭발과 내 부상에도 끊어지지 않았던 거다.

    사실 나도 알고는 있었지만, 별생각이 없었다. 이걸로 하케임을 추적하겠다든가 하는 데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았던 거다. 그러니까 정말로 크게 다치기는 했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한국말은 왜 이렇게 잘하는 거고?”

    “지금 그게 궁금해? 은하준은 독특한 사람이구나.”

    하케임은 정말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훑어본다.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이상한 건 당신이거든요. 쏘아붙이고 싶지만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안 나온다. 지금 상황이 정말 말도 안 되는데 동조해 줄 사람이 옆에 아무도 없네.

    결아! 도움!

    그래서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하더라?

    아, 그래. 정체를 물어봐야지.

    대체 누구이며 당신은 어떻게 우리 세계로 넘어온 건지? 어떻게 우리 세계로 넘어왔냐고 물어보면 되는 것인지도.

    그리고 당신이 싸우던 그 촉수 괴물의 정체는 무엇이냐고.

    놈과 싸우면 각성자의 스킬 사용에 문제가 생긴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건지.

    “말을 배우는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 문제는…… 내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거지.”

    “응?”

    잘못 들은 거겠지? 너무 황당해서 약간 목소리가 삐끗했다.

    “들은 그대로야.”

    “그게 무슨 소리…….”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은하준, 그리고 한결이라는 이름과 이곳이 내 세계가 아니라는 것. 그것뿐.”

    하케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가면 갈수록 더 문제가 많아지고 있다.

    “걱정하지 마. 그래서 처신은 잘했으니까. 이곳까지 오는 동안 날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기억엔 없어도 이 스킬을 보고 여기까지 왔고 네 얼굴까지 보니까 네가 은하준이라는 걸 깨달았어.”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실마리 같은 걸 보면 다시 기억을 찾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는 동안 본 사람이 없다는 게 정말일까? 절대로 숨길 수 있는 외모가 아닌데 말이다.

    곧바로 휴대폰을 열어 최신 기사들을 훑어본다.

    “정말로 별 기사가 없긴 한데…….”

    오히려 신선 길드에 관한 악평들로 가득하다.

    S급 집합소 신선 길드, 알고 보니 속 빈 강정.

    실속 없이 허세만 가득한 신선 길드.

    S급이 많아도 약할 수 있다? 초호화급 신선 길드의 실체!

    등의 기사가 포털 사이트의 메인을 장식하고 있다.

    댓글도 가관이다.

    그럴 줄 알았다느니, 이제 S급의 시대는 갔다느니.

    등급은 아무 소용이 없고 레벨과 스킬 트리가 중요한 거라느니.

    거기에 인신공격성 발언도 빠지지 않는다.

    절반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된 것이니 다행이지만, 선을 넘는 폭언과 비난은 누가 썼는지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지네.

    “신기한 기계네. 나도 써 볼래.”

    하케임은 다섯 살 조카처럼 내 스마트폰을 탐냈다. 나는 일단 폰을 쥐여 준 다음 생각에 잠긴다.

    “일단 결이한테 말하고.”

    “오, 한결도 이곳에 있어? 다행이군. 내 편이 가까이에 있어서.”

    “그렇게 생각되었다니 천만다행…… 다행인가? 다행이겠지.”

    그래도 짧은 찰나에 하케임이 나와 결이를 같은 편으로 인식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그 덕에 정부의 뜻에 반하는 일을 저지르고 있지만 말이다.

    ‘일단 정보를 알아낼 당분간만……이라고 하기에는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는 되어야겠군. 게다가 내가 이렇게 정보를 얻어 내는 편이 나중에 정부에도 좋을 거라고. 하케임이 정부에 협조적일지 알 수 없으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기억을 잃은 하케임을 정부에 넘겨줄 수 없지 않은가. 어차피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말이다.

    “내가 내 세계로 돌아가려면 은하준이 필요하다. 아마 한결도. 기억은 없지만 그런 생각이 강력하게 든다. 아마 기억을 잃기 전의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뭔가 감동스럽긴 하지만 하등 쓸모없는 말이다.

    하케임은 어느새 내 폰에 게임을 깔아 즐기고 있다.

    한국말을 반나절 만에 외운 것도 이런 식이었을까. 적응력이 엄청나다. 천재 뭐 그런 거겠지.

    “뭐라고? 이자랑 살아야 한다고? 심지어 숨겨서?”

    결이에게 사실대로 말했더니 기겁을 한다.

    “우리 집에 손님방이 하나 있으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하지만 하케임이 기억을 찾으면 우리한테는 이득이야. 던전이나 시스템에 관해서도 알아낼 수 있고.”

    “정말로 기억을 잃은 게 맞아? 그냥 너한테 접근하려고 그런 말을 지어낸 것 아니냐고.”

    “그렇게까지 해서 은하준에게 접근할 필요가 내게 있나?”

    하케임이 맞는 말을 하긴 했는데 왜 좀 열 받지?

    “너야 아쉬운 쪽이니까. 이쪽에 건너와서 지지 기반이 전혀 없고.”

    “나는 지지 기반이 필요할 정도로 약하지 않아.”

    오. 저런 패기. 어디서 못 보던 자신감이라 놀랍고 쉽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사실이 부럽다.

    솔직히 말해서 하케임이 정말 강하다는 사실은 인정하는 부분이니까.

    “…….”

    결이 역시 하케임의 힘을 인정하는지 말이 없어졌다.

    “내가 기억을 되찾으면, 그리고 되찾는 동안 숨겨 준다면 정말로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 내 힘과 지식을 빌려주겠어. 분명 너희에게 필요한 것들일 거야. 내 본능이 강하게 말하고 있다.”

    확실히 하케임은 시스템에 관해 알았다.

    하케임 역시 시스템의 힘을 사용하는 각성자였기 때문. 그도 스킬을 사용하고 스탯을 이용해 강해졌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하케임이 기억하는 전부.

    “어떻게 기억이 왕창 날아가 버린 상황에서도 이렇게 긍정적일 수가.”

    “이게 기본 아닌가?”

    하케임이 그늘 한 점 없는 얼굴로 활짝 웃는다.

    “글쎄 잘 모르겠네. 어쨌든 결아, 협조해 줄 거지?”

    “……참 나, 누군가에게 들키면 곧장 괴물 특수부대에 잡혀갈걸.”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끌려가지 않도록 내가 돕겠다.”

    “하케임은…… 최대한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걸 거야.”

    “흐음. 그렇군.”

    하케임이 고개를 끄덕인다.

    문제는 하케임이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 집 안에만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뭔가를 겪을수록 기억을 찾아내고 있으니까. 던전에 데려가야 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