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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84화 (84/250)
  • 제84화

    제84편

    눈을 뜨니 앞에 보이는 건 병원 천장이다. 깨끗한 하얀색에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정갈한 천장.

    이게 대체 몇 번째지. 하하하.

    몸을 살짝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니 길드원들이 같은 병실에 누워 있다.

    “어머, 제일 먼저 깨어나셨네요.”

    간호사가 기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그러고는 내 상태를 살핀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시고요? 이쪽은 어떤가요? 의식을 잃으실 때 조금 부딪혔거든요. 괜찮으세요?”

    “네……. 아픈 곳은 딱히 없어요. 제가 왜 쓰러진 거죠? 길드원들은 왜 전부…….”

    “저희도 확실히 알 순 없지만, 던전 안에서 뭔가 새로운 에너지에 노출된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자세한 건 담당의 선생님과 진료 시간에 들으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럼 류창희 선생님은요?”

    내 물음에 간호사의 얼굴이 굳어진다.

    설마……. 아니겠지.

    “아, 아아……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습니다. 각성자들은 강하니까요. 어려운 수술도 잘 버텨 내죠. 같이 실려 오신 분도 수술이 잘 끝났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좀…… 독특한 분이신 것 같던데.”

    “…….”

    독특이라. 그 정도가 아니다. 그는 인간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이곳에서 받은 수술이 도움이 될까 싶다.

    무사히 회복해야 뭐라도 건질 수 있을 텐데.

    “으으……. 하준이 너 괜찮아?”

    마침 깨어난 결이가 겨우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핀다. 안색이 좋아 보이진 않는다.

    하긴 생각해 보면 결이가 우리 중에 제일 틈과 가까이 있었던 것 같은데 틈에서 나온 뭔가에 노출됐다면 제일 많이 노출됐을 거다.

    “난 괜찮은데, 넌 뭐 이상한 거 없고?”

    “괜찮아.”

    “글쎄. 지금은 괜찮아도 나중에 후유증으로 뿔이라도 돋아나는 건 아닌지 몰라.”

    “뭐?”

    “우리가 뭔가 새로운 것에 노출됐다고 하더라고?”

    “그 이상한 틈과 몬스터 말이지. 확실히 엄청나게 이상했어. 평소 던전을 공략하던 것과 전혀 달랐다고.”

    “우리도 그 촉수 몬스터처럼 되면 어떡하지?”

    “그 정도면 양호한 거지. 일단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으으으……. 무슨 그런 끔찍한 이야기를 해. 나는 책임질 자식이 있다고.”

    “앗…… 인화 누나. 깨어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우우, 온몸이 쑤시는 것 같은데. 다들 괜찮아?”

    30여 분 동안 신선 길드원 중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 깨어났다. 다행히 잠깐 기절한 것 외에 다른 부상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류창희의 경우도 수술 후 4시간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그는 개인 병실에서 온갖 커다란 기계 장치를 다 달아 놓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병실이 아니라 실험실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지만, 그래도 큰 고비는 넘긴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마주친 촉수 몬스터 녀석, 예사 몬스터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놈이 뿜어내는 에너지 때문에 스킬을 이용한 치료가 제대로 발동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처치가 어려웠다더라고요. 게다가 지금 저도 스킬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회복이 더뎌요.”

    “그건 안 좋네요. 스킬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이런 건 처음이에요.”

    분위기가 심각해진다.

    회귀 전에도 이런 경우는 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나도 덜컥 겁이 난다.

    시스템의 힘을 잃어버리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으니까.

    “그 틈에서 나온 남자 말입니다.”

    “아, 어떻게 됐나요.”

    류창희는 던전에서 만난 낯선 남자의 처치에 관해 아주 자세하고 전문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본인도 환자로 입원 중이면서 마치 담당의처럼 빠삭하다니. 분명 일중독일 거다.

    “곧 격리 병실로 이동될 겁니다.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환자니까요. 그 후로는 국가에서 그를 조사할 것 같은데…….”

    “그럼 우리에게는 조사할 기회가 없겠군요.”

    “어차피 의식을 찾아야 이송될 테니, 그전에 들러 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고 합니다만 깨어나는 순간을 운 좋게 마주칠 수도 있고요. 생각이 있으시면 병원에 제가 말해 놓겠습니다. 하준 씨.”

    “좋은 생각인 것 같네요. 다시는 못 보게 될지도 모르니까.”

    “나도 같이 갈게, 하준아.”

    결이가 걱정하는 눈으로 바짝 붙는다. 하긴, 이미 남자와 나는 적대적으로 싸움이 붙었었으니까. 의식을 찾는다고 해도 협조해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류창희가 소개한 간호사와 함께 조심스레 남자의 병실을 찾았다. 엄청난 범죄자가 치료받고 있는 것처럼 경비가 삼엄했다. 류창희의 언질이 없었다면 아마 통과하지 못했을 터.

    겨우 병실에 도착해 낯선 남자 앞에 서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아주 평안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일전에 있었던 일들은 마치 꿈인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 하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던전 내부에서 있었던 일이 더욱 실감 났다.

    그의 얼굴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엄청나게 미인이잖아.’

    약간 충격적일 정도로 조각 같은 얼굴이다.

    던전 안에서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몰랐던가. 아니면 그의 얼굴이 먼지와 피범벅이라 몰랐던가.

    먼지와 피가 덕지덕지 붙어도 이 얼굴이 가려질 리가 없다.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

    이런 게 홀린다는 걸까?

    고개를 훼훼 저어 정신을 가다듬는다.

    뭐랄까. 미인이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인이 아니어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금발에 흰 피부를 가지고 있지만, 지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외국인 외형이 아니랄까.

    신비스럽게 생겼다. 인간형이긴 하지만 뭔가 창작물에 나오는 새로운 아름다운 종족 같은 얼굴이다.

    감겨 있는 눈이 떠진다면 너무 충격적이라 쓰러지지 않을까?

    물론 이미 마주친 적 있는 눈이지만, 지금 상상 속에서는 뭐 거의 메두사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여기서 내가 해 볼 수 있는 게 하나 있지.

    영혼 분별사.

    몬스터를 상대로는 사용이 되지 않는 스킬이다. 만약 이 남자에게 스킬이 통하지 않는다면……. 잠깐, 남자는 맞나?

    ‘영혼 분별사.’

    스스슷.

    곧 익숙한 정보 창이 눈앞으로 떠오른다.

    [카시우스 하케임]

    영혼 등급: S

    영혼 상태: 안정

    싱크로율: 89%

    ‘헉, 대박. 영혼 등급이 S급이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일반인들에게도 각성자에게도 시간이 나면 슬쩍 사용해 보곤 했다. 하지만 S급의 영혼 등급은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싱크로율.

    ‘한결이랑보다도 높잖아?’

    한결이가 이 정보 창을 볼 수 없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꾹 감겨 있던 남자의 눈이 번쩍 떠졌다.

    “……!!”

    남자는 놀란 것 같았다. 급하게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의 정체 때문에 이미 보호 장비에 구속되어 있었다. 그것도 각성자용으로 말이다.

    하지만 움직임의 제어는 남자를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철컥, 철컥. 철컹!!

    남자는 사정없이 몸을 흔들었고 침대를 거의 박살 내려고 하고 있었다.

    “이런, 밖에서 들어오겠어! 이야기를 시도할 시간도 없이!!”

    “어떡하지? 기, 기절시킬까?”

    한결이가 주먹을 들어 보인다.

    그건 안 되지, 인마! 방금 의식을 되찾은 환자인데!

    “■!! ■■ ■ ■■■■ ■!!”

    말도 여전히 통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그냥 쫓겨나서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텐데.

    그래선 안 된다.

    이런 독특한 경우라면 분명, 이 남자는 던전에 관해 시스템에 관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거라는 강렬한 직감이 느껴진다.

    “소울메이트!”

    츠츠츳. 내 가슴께에서부터 반투명한 흰 실이 나타나 버둥거리는 남자의 몸에 가 달라붙는다.

    “■■■■!! ■■? ■■■ ■……??”

    곧장 남자의 표정이 분노에서 의아함으로 뒤바뀐다. 아무래도 분노보다는 이게 낫겠지.

    다행히 바깥에서는 이 소동에 관해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놀랐겠지만, 진정 좀 해요. 앞으로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없을 것 같으니까.”

    물론 완전히 알아들을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소울메이트로 연결되면 의도 정도는 정확하게 전해진달까.

    남자는 알 것이다.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내 생각이 들어맞았는지 남자는 서서히 침착해졌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눈을 맞춰 왔다.

    “좀 진정이 돼요?”

    두 손바닥을 들어 보여 주며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걸 적극적으로 내비친다. 슬쩍 고개를 틀어 결이에게도 신호를 보낸다.

    “돕고 싶어서 그래요.”

    “…….”

    남자는 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몇 마디를 하더니, 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차라리 몸짓 언어로 표현하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소울메이트로 연결되어 있는바, 나도 남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때로는 두렵고 커다란 슬픔을 이겨 내는 중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녹색 빛의 눈동자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앙!”

    어느새 망량이가 스스로 나타나 내 머리 위에 올라오더니 불꽃으로 손을 만들어 토닥거린다.

    마음은 편해지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림, 그림은 다른 차원이라도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재빨리 종이와 펜을 찾아 그의 침대로 돌아간다. 그리고 동그라미 세 개를 그렸다.

    “이게 나, 은하준. 이게 얘 한결. 이건 당신.”

    이걸 한 다섯 번쯤 했더니 남자가 입을 열었다.

    “하케임.”

    이미 영혼 분별사 스킬을 이용해서 알고 있던 정보지만, 내가 먼저 말하면 이상한 모양새가 되니까 기다렸던 그의 이름.

    “자, 하케임 씨. 지금 상황이 어떠냐면…….”

    나는 다른 동그라미들을 작게 많이 그렸다. 그리고 조금 사나운 인상으로 만들었다.

    “이제부터 정부에서 당신을 조사할 겁니다. 당신을 데려갈 거고 연구와 실험……까지 하겠어? 설마…….”

    어쨌든 정부 요원들이 와서 하케임을 데려갈 것이다, 를 열심히 설명했다. 다행히 하케임은 어느 정도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봤자 더 깊은 대화는 할 수가 없다. 전해지는 정보는 이 정도뿐이야. 이제 슬슬 이곳에서도 나가야 할 시간이고…….’

    이렇게 보낼 수밖에 없는 건가.

    스윽.

    하케임이 내 쪽으로 내민 건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자신의 팔이었다.

    “미안하지만…… 내가 직접 풀어 줄 수는 없어.”

    그를 풀어 주어서 이후에는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만약 그를 탈출시킨다고 해도…….

    하케임은 가만히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심호흡하며 눈을 감는다.

    ‘받아들이는 건가. 뭔가 미안하기도 하고 걱정되지만……. 하아, 왜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냐.’

    어찌할 방도가 없기에 나는 침대에서 물러났다.

    그때 눈을 감고 있던 하케임의 몸 주변에서 거센 기운이 몰아치는 것이 느껴졌다.

    츠츠츳…….

    병실 안에서 하케임을 중심으로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무슨…….”

    드드드드득.

    그의 금발이 휘날리고 침대가 진동한다. 그리고 곧.

    촤아악!

    그를 구속하고 있던 구속구들이 마치 종잇장처럼 찢겨 버린다.

    “이, 이런…….”

    “하준아!”

    결이가 내 앞을 막아서는 찰나 하케임이 눈을 번쩍 뜬다. 그리고 침대 위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우리를 보았다.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초록색 눈과 마주쳤다.

    오싹.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하케임의 힘이 느껴진다.

    ‘가, 강하다.’

    촉수 괴물을 상대하는 걸 보고 느끼긴 했지만, 지금 이렇게 전해지는 감각은 또 달랐다.

    피부가 저릿저릿하게 울린다. 순식간에 그가 두렵게 느껴진다.

    “은……하준.”

    하케임이 내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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