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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81화 (81/250)
  • 제81화

    제81편

    “결아!”

    그래, 여기는 던전 안이고 이제 막 몬스터 한 마리를 잡았을 뿐이다. 그런데 너무 방심하고 있었다.

    팀원 모두가 말이다. 하지만 나는 방심해서는 안 됐다. 이미 한 번 살아 본 인생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좀 더 확실하게 대비를 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본능적으로 헤르메스의 신발을 이용한다.

    억압의 손길로 결이를 끌어 내리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그냥 내가 가는 게 훨씬 빠르다.

    그래서 움직였던 건데.

    “그르르르!”

    물 밑에서 모습을 드러낸 또 다른 엘리게이웨일이 입을 쩌억 벌리고는 삼켰다.

    그러니까 나를 삼켰다.

    * * *

    ‘어두워.’

    순식간에 괴수의 배 속으로 굴러떨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놈의 크기가 워낙에 커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팔다리가 구겨져 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녀석의 위장이 쾌적한 것은 아니었다.

    뜨겁고 축축하고 끈적거리면서 미끄덩한 것으로 가득하다.

    ‘손이 찌릿찌릿해. 암시야 발동.’

    n번째 시야 스킬 중 첫 번째 암시야를 발동하니 적외선 카메라를 켠 것처럼 시야가 확보된다.

    ‘피부가 녹는다.’

    화학 용액을 맨손으로 만졌을 때처럼 피부 껍질이 벗겨지고 있었다.

    ‘위액이군. 계속 갇혀 있다간 소화되어 버리겠는데?’

    몸을 일으켜 위액이 적은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옷도 서서히 부식되고 있는 것 같다. 깨끗한 물이 없으니 씻어 낼 방법도 없다.

    “에잇.”

    주변을 살피니 적나라한 위벽이 보인다.

    거기에 녹아 가는 작은 몬스터 사체들. 물고기처럼 보이지만 낯선 녀석들도 있다.

    “어떻게 탈출한다.”

    혼자서 엘리게이웨일을 때려잡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위벽을 찢어 도망치는 것쯤은 할 수 있을 거다. ……아마도.

    하지만 지금 이렇게 고요한 걸 보면 이 녀석은 바다 깊은 곳으로 잠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대로 뭍에 있었다면 공격이 쏟아져서 정신없이 흔들렸을 거다. 내가 얼마나 기절했던 걸까. 얼마나 깊이 잠수한 거지?’

    일단은 기압에 의해 신체가 변형되는 느낌은 없다. 하지만 이것 역시 내가 각성자이기에 일반인들보다 훨씬 늦게 반응이 오는 것이다. 믿을 만한 지표가 되어 주지 못한다는 뜻.

    ‘엘리게이웨일이 어류는 아니기 때문에 숨을 쉬러 위로 올라가야 하긴 하지. 하지만 놈은 며칠이나 숨을 참고 잠수할 수 있어. 그사이에 나는 다섯 번도 더 녹을 테고.’

    밖의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배를 뚫고 밖으로 나가자니, 알 수 없는 던전 내부 바다의 수심과 주변이 모두 얼어 빙산과 빙판이 널려 있는 수온이 걱정되었다.

    ‘물에 젖지 않았을 때는 뭐 쌀쌀한 정도였지만……. 수온은 또 얼마나 더 차가울지. 후우. 이거 큰일이네.’

    눈앞에 희뿌연 실 같은 것이 아른거린다.

    결이와 연결된 소울메이트 스킬이다.

    ‘아. 이거라도 있는 게 엄청 도움 되네. 정서적으로.’

    망량이까지 없는 완벽한 고독은 너무 오랜만이다. 게다가 이 막막한 기분을 가지고선.

    ‘생각이 안 나…….’

    무릎을 모으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 * *

    “하준아!!”

    “잠깐! 한결아, 멈춰!”

    첨벙!

    한결은 곧장 바다로 뛰어들었다. 심장이 멎을 만큼 물은 차가웠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숨을 크게 들이켜고는 그대로 잠수했다.

    저 멀리 엘리게이웨일이 바다 밑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젠장!!’

    한결은 놈을 따라잡으려고 했다.

    “그르르르…….”

    “그으으우웅…….”

    하지만 바닷속에 엘리게이웨일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큭!’

    슈우우우욱!

    빠르게 접근한 엘리게이웨일 한 마리가 한결의 팔을 물고 물속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는 사이에 은하준을 삼킨 엘리게이웨일은 저 멀리 어두운 바다 밑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꺼져!!’

    한결의 주위로 스파크가 일더니 퍼엉! 하고 폭발이 일었다. 그리고 한결을 둘러쌌던 엘리게이웨일들이 바다 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고 한결의 전격 공격에 당해 기절한 것이었다.

    한결은 물속에서 하준을 삼킨 엘리게이웨일의 흔적을 쫓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쩌…… 앗. 이건, 소울메이트 스킬.’

    한결은 자신과 연결된 하얗고 가느다란 줄이 바다 밑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바닷물이 지구의 것과 같이 짠데 눈이 시린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리고 그대로 잠수하려고 했다.

    ‘큭.’

    하지만 숨이 터질 것 같았다. 이미 각성자인 덕분에 일반인보다 훨씬 오래 잠수하고 있었다.

    뿌드득. 한결의 악문 턱에서 소리가 났다.

    이대로 수면 위로 올라간다면 하준을 삼킨 엘리게이웨일은 더욱더 깊이 잠수할 거다.

    위로 올라가서 숨을 들이마신다면 다음번에는 놈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녀석이 어디까지 잠수할 줄 알고?

    분노가 치밀었다.

    왜 녀석이 하준을 삼킬 때에 막지 못했을까.

    단번에 검을 꺼내 놈을 반토막 냈다면 지금쯤 하준은 자신과 함께 물 밖에 있었을 거다. 하지만 분노와 후회를 계속하기에는 한결의 숨이 부족했다.

    한결은 어쩔 수 없이 빛이 있는 수면 위로 헤엄쳤다.

    “푸하아!!”

    “한결아!”

    얼음 사이로 떠오른 한결을 잡아 끌어 올린 건 차대호였다.

    “어떻게 된 거냐?!”

    “하준이를 삼킨 놈이…… 그대로 사라졌어요. 바다 밑으로 깊숙이 잠수해서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이런…….”

    차대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하준이는 아직 살아 있어요. 크게 다치지도 않았고요.”

    “그걸 네가 어떻게…….”

    “하준이랑 소울메이트로 연결되어 있거든요.”

    “소울메이트? 스킬 아니냐? 그걸로 어떻게…….”

    차대호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류환희가 끼어들었다.

    “그 스킬로 연결되면……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눈으로 직접 선 같은 게 보인대요! 그런데 한쪽이라도 다치면 선이 연해지고, 목숨을 잃기라도 하면 사라진다나 뭐라나. 결이 오빠 반응 보니까 지금은 아주 선명한가 봐요!”

    “맞아요. 오늘은 아니지만, 저도 연결되어 봐서 알아요.”

    서인화가 거들자 차대호의 표정이 그나마 풀어졌다. 나머지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오, 그나마 다행이구나.”

    “하지만 빨리 구해 와야 해요! 형을 어떻게 구해 오죠? 우리 중에 저 바다 깊이 잠수할 스킬을 가진 사람은 없어요.”

    염태규가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거의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이럴 수가……. 어떡하죠?”

    “잠수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깊이가 아냐. 결이도 못한 일을 이 중 누가 할 수 있겠어.”

    “혼자 들어간들 놈과 싸워 하준이를 구해 내야 하는데…….”

    팀원들 모두 우울한 분위기가 됐다.

    “이런……. 첫날부터 길드원을 잃다니.”

    “아직 잃지 않았어! 하준이는 아직……!!”

    류창희의 말에 한결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하준은 아직 버티고 있지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무오앙?”

    축 처진 한결의 어깨 옆으로 푸른 불꽃이 쫓아왔다.

    “무웅? 무오잉?”

    “망량…….”

    파란 도깨비불은 마치 자기 주인이 어디에 있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던 한결의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빛나는 듯하더니 커다란 두 손이 망량이를 감쌌다.

    “망량아. 너는 물에 닿아서 꺼지는 불도 아니고 인간처럼 공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지. 그러니까 넌 이 바닷속으로 잠수해 들어갈 수 있지 않겠어?!”

    “무옹?”

    “하준이가 바다 밑으로 끌려갔어. 아직은 숨이 붙어 있는데,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길은……. 망량이 너한테는 이거 보이지?”

    한결이가 가리킨 희뿌연 줄을 본 도깨비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불덩이 자체인 몸을 아래위로 흔든 것이지만.

    “이걸 따라가면 돼!”

    * * *

    ‘산소가 점점 부족해지고 있어.’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는 그저 위장일 뿐이니까. 손에 쥐고 있던 새벽의 검을 내려놓았다.

    ‘뱃가죽 더럽게 질기네.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니. 좀 충격이다.’

    사나운 몬스터들을 통째로 삼키는 놈이기 때문에 특히나 위장 벽이 겉가죽만큼 질기고 강한 것 같았다.

    ‘와, 진짜 어이없네. 이렇게 죽는다고?! 진짜로? 몬스터 배 속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회귀를 해 놓고.’

    산소는 부족하고 혼자 어두운 곳에 있자니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진다. 탈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거부할 수 없이 그저 뇌로 내리꽂히는 것 같은 잡생각들이다.

    ‘안 돼. 진정해. 벌써 무너질 수 없어.’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정말 아무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곳을 탈출할 아이템도 스킬도 나만 알고 있던 어떤 방법 같은 것도 없다.

    이렇게 무력한 기분은 너무 오랜만이라 눈물도 나지 않는 것이다.

    “싫어…….”

    회귀하기 전보다 끔찍한 죽음이다. 그때는 친구 품에 안겨 있기라도 했다.

    지금은 이런 소름 끼치는 냄새를 풍기는 몬스터 배 속에서 혼자 죽고 싶지 않다. 소설 같은 데서 보면 회귀 후엔 승승장구를 잘만 하던데.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정말 이렇게 끝이라고?

    숨이 가빠 온다.

    끝이야?

    “무앙.”

    대답하듯 들려오는 귀여운 목소리의 정체는 망량이다.

    “마, 망량이?!”

    “무아옹!”

    “네가 어떻게 여기에?”

    망량이는 하나도 젖지 않은 뽀송한 상태였다.

    “내가 있는 곳에 텔레포트 같은 게 되는 건가?”

    “뭉무앙!”

    망량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러고 보니…… 소환 해제했다가 다시 소환하면 이쪽으로 바로 소환됐을지도?”

    “뭉뭉뭉!”

    이번에는 망량이가 신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웃음을 터트리며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 여기서 탈출할 방법이 없어. 망량아…….”

    “무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어. 칼은 들지도 않고.”

    “뫙?!”

    “너라도 탈출해……. 돌아가.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왔던 방법으로 되돌아가. 내가 죽고 나면…… 결이의 펫이 되도록 해.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야.”

    간절하게 말하는데 망량이는 내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천천히 주위를 돌아본다.

    “내가 다 찾아봤단 말이야. 방법이 없어.”

    “무오요?”

    “진짜라니까.”

    “무무아!”

    “……뭐?”

    “무아아악!”

    “뭐야 그건……. 구역질?”

    “무앙앙! 망망!”

    망량이는 그대로 하늘하늘 날아올라 높은 곳으로 향했다.

    녀석의 푸른빛이 위장의 천장을 비추는데 쭈글쭈글한 입구 같은 것이 보인다.

    “식도랑 연결되는 부분인가?”

    “무앙앙!”

    “여길 자극하면…… 토하려나?”

    왜 이 방법이 떠오르지 않은 걸까?

    이 폐쇄된 공간에 갇혀서 생각보다 훨씬 당황했기 때문일까?

    방법을 알아내고 나니 어쩐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느껴진다.

    ‘아직 성공한 건 아니지만…… 어쩐지 될 것 같아.’

    하지만 녀석이 토하기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망량. 너는 아니겠지만, 나는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수압에 짓눌려 죽을지도 몰라. 각성자의 몸이 그걸 버텨 준다면……. 그래도 위로 올라갈 때까지 숨을 참을 수 없을 거야.”

    “무오오…….”

    망량이 녀석이 힘이 빠진 듯 흐느적 옆으로 다가온다. 그래. 너도 알겠지? 나는 여기서 죽을 거…….

    쇼오오오옵!

    뭐라고 더 덧붙이기도 전에 이번에는 망량이가 나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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