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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80화 (80/250)
  • 제80화

    제80편

    ‘마나가 다 떨어지면 좀 쉬어 가면 되니까. 아이템도 생각보다 빵빵하게 챙겼고. 다 환희 덕분이지.’

    환희의 상당한 재력이 길드의 물자를 뒷받침해 주고 있으니까. 역시 이래서 길드에 들어가는 건 좋다.

    게다가 던전 공략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바깥에서 기다리는 언론의 기대를 떨어트릴 기회도 되는 것이다.

    ‘지금은 너무 시선이 집중되어 있단 말이야. 워낙에 멤버들이 대단하니까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신무기를 개발해 낼 때까지는 기대치를 낮춰 놓을 필요가 있어. 아니라면 계속 방해받을 테지.’

    쉬이이익!!

    엘리게이웨일이 거대한 입을 쩌억 벌린다. 그 안에서 작은 벌레 같은 것들이 우수수 튀어나왔다.

    쉭! 쉬익! 투둑! 사사사사!

    “다들 조심해요! 이미 사전 브리핑에서 말했다시피 위험한 놈들이니까.”

    저 벌레에 물리면 괴사 상태 이상이 즉시 발동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우리 팀에는 S급 힐러가 있으니 곧장 치료가 가능하겠지만, 상태 이상을 해제해 줄 팀원이 없다면 정말 곤란한 상황이 된다.

    그야말로 신체를 잃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벌레는 또 제가 잘 잡죠.”

    화르르륵!

    염태규의 건틀릿에서 불길이 솟아오른다.

    “낙화권!”

    화아아악~!

    불 주먹이 불로 된 길을 만들어 내며 얼음 위를 쓸어버린다.

    “키에에엑!!”

    “끼이이!”

    성인 팔뚝만 한 벌레들이 불길에 삼켜지고 타닥, 타다닥! 순식간에 바싹 구워져서는 고소한 냄새까지 풍긴다.

    거기에 뜨거운 불길이 바닥의 빙판까지 녹여 벌레가 익사하기도 한다.

    “오~!! 태규! 전보다 스킬이 강해졌는데? 불길 사이즈가 장난 아냐?”

    “열심히 스킬 레벨 업 했습니다!”

    “진짜 대단해! 스킬 레벨 업은 힘들잖아.”

    “어……. 하지만 하준 형은 항상 성장하기 좋은 레벨의 던전에 데려가 주시니까요. 조합이나 그런 것들도 제가 활동하기 편하게끔 짜 주시고. 그래서 수월하게 올린 것 같습니다.”

    염태규 녀석 생각보다 눈치가 좋다.

    뭐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파티를 짤 때 팀원들의 상성을 생각해서 짰고 객원 멤버의 성향이나 레벨, 각성자 타입 등을 계산해서 던전 공략을 갔었다.

    그걸 알아주다니. 생각보다 예리한 녀석이다. 똑똑하고.

    “그렇게 말해 주니까 되게 뿌듯하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가슴이 벅찼다.

    염태규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그 점에서 더욱더 감동적이었다. 평생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요즘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으니까 뭔가 민망한 기분도 들고.

    “네? 당연한 이야기인데요! 형이 항상 모두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매번…… 너무 감사드리는걸요.”

    멍하니 태규를 바라보게 된다.

    회귀 전에 내가 기억하는 얼굴이랑 똑같은데 너무 다르다.

    “……고맙다.”

    태규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보다 아직 남았어!”

    “앗, 네!!”

    취이이익!

    공격해 오는 벌레를 피해 태규와 내가 튀어 올랐다. 강한 반동으로 바닥의 빙판들이 흔들린다.

    아래로는 팀원들이 각자 벌레를 처리하고 있다.

    더럽게 큰 악어 고래 녀석은 계속해서 엄청나게 많은 벌레를 뱉어 내고 있고.

    ‘놈의 약점이 뭐더라?’

    물속에 사는 몬스터인 주제에 온몸을 흰털이 뒤덮고 있는 엘리게이웨일을 살핀다.

    놈은 육지에서도 물속에서도 완벽하게 움직일 수 있고 호흡도 편리하다. 두 위치에서 뛰어난 공격을 할 수 있도록 특화되어 있다.

    일반 몬스터라고 하지만 이 녀석 하나를 사냥하는 것만도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약점이 딱히 없는 타입이라고 할까.

    ‘분명 저 털 사이에 뭔가 있었단 말이지.’

    슬슬 기억이 솟아오른다.

    위치는 랜덤. 저 털에 감춰진 딱딱하게 석회화된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을 찾는다면 나 정도의 공격력을 갖고 있더라도 한 방에 킬을 따낼 수 있다.

    ‘하지만 찾는 게 워낙 고역이라.’

    순식간에 몸을 썩게 만드는 수많은 벌레와 한 방이 강력한 공격인 괴수 몬스터를 상대하며 이를 잡듯 털 사이를 탐색하는 건 별로 효율적이지 못하다.

    차라리 일반적인 전법으로 사냥하는 것이 더…….

    “뭄무오!!”

    “……흠?”

    망량이가 은은하게 불타오르고 있다.

    “무와앙!”

    이렇게 조그만 녀석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리 피부를 헤집고 다녀도 티가 안 나지 않을까?

    “망량아, 저기로 가서 몬스터 몸 좀 훑어봐라.”

    “무앙?!”

    망량이 표정이 가관이다. 마치 변태를 보는 듯한 눈빛……. 남들은 봐도 모르겠지만,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 랜덤 약점을 찾으라는 거잖아.”

    “무모옹?”

    “저 녀석을 덮고 있는 흰털 사이에 보석처럼 박힌 딱딱한 뭔가가 있거든. 크기는…… 너보다 살짝 크니까.”

    “무옹, 무호옹!”

    “물론 저 녀석 자체가 엄청나게 크긴 하지. 그래도 우리가 전투하는 동안 너도 심심하지 않…….”

    “무옹!! 무와아앙!”

    “아냐, 네가 몸을 수색하는 동안은 모두에게 머리를 노리라고 할게. ……아니다. 듣고 보니 너무 위험하긴 하다. 네가 다치는 건 싫으니까.”

    “……무오?”

    “아냐, 진짜 됐어. 하지 말자. 회…… 아니 예전에도 어차피 이 녀석 약점을 찾아서 잡은 건 몇 번 안 되니까. 너무 힘들어. 가성비 떨어져.”

    “무아아?”

    “아니, 망량아 하지 말라니까!”

    쉬우우욱!

    망량이 이 녀석은 분명 전생에 청개구리였을 것이다. 하라고 할 때는 안 된다더니 위험하다고 하지 말라고 하니까 가 버렸다.

    “모두! 지금 저 녀석의 약점을 찾으려고 망량이를 보냈거든요! 그러니까 공격은 머리를 위주로 부탁해요!”

    “알겠어!”

    “오케이!”

    “쳇.”

    한결이만 불만이다. 나 때문에 전격을 사용하기 어려워졌으니까.

    “자 그럼 일단은 벌레를 청소한다!”

    대호 형의 외침에 팀원들이 벌레에게 집중한다. 아직도 처리해야 할 벌레가 엄청나게 남아 있다. 지긋지긋하구먼.

    츠츳!

    돌연 거대한 주사기가 생성되며 날카로운 바늘 끝이 벌레를 겨냥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환희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

    “캬캬캬하! 징그러운 놈들! 원자까지 완전히 빨아내 연구해 줄 테다!”

    쭈우우욱! 쮹!

    기괴한 소리와 함께 한쪽의 벌레들이 사그라든다.

    “버블 밤!”

    보글, 보그르르륵!

    이번에는 인화 선배의 스킬이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팀원들을 크게 둘러 보호하고 그 뒤에서 진보라가 스킬을 외운다.

    “매직 애로우!”

    피융! 피융~!

    유성처럼 아름다운 빛의 궤도를 그리며 마법 화살이 벌레들을 산화시켜 버렸다.

    “오오! 보라 씨 스킬 좋아요! 정확도도 대미지도!”

    “연습한 보람이 있네요. 후후.”

    한껏 흥분했던 팀원들의 텐션이 점점 평소처럼 돌아오고 있다.

    “그르르……. 구으으으.”

    엘리게이웨일은 점점 소탕되는 벌레들을 보며 못마땅한 듯 우는 소리를 냈다.

    ‘놈이 움직인다.’

    입을 닫은 엘리게이웨일이 거대한 팔다리를 움직여 육중한 몸을 일으킨다. 우릴 향해 똑바로 움직일 심산인가 보다.

    기다란 주둥이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송곳니들이 살벌하다.

    한번 물리면 허리가 끊어져 버리겠지.

    “어딜 가나.”

    휘익!

    그 앞으로 번개처럼 나타난 건 대호 형.

    “죽여 주마.”

    크르릉!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형과 놈의 일대일 전투가 시작된다.

    퍼억! 퍼어어억!

    거대하게 강화된 대호 형의 주먹이 두꺼운 엘리게이웨일의 머리통을 가격한다.

    “저런, 너무 계속 가까이 붙어 있게 되면 다른 팀원들이 공격하기 어려워지는데.”

    아직 벌레를 처리하고 있지만, 형이 계속 포인트에서 벗어나지 않을 시에 원거리 공격자들은 몸통을 공격하지도 못하고 멀뚱히 있게 될 터.

    ‘이런, 지금 야수성이 많이 올라온 것 같은데.’

    쩌어억!

    엘리게이웨일이 커다란 입을 다시 쩍 벌린다. 무수히 많은 이빨이 대호 형을 단번에 갈기갈기 찢어 버리기 위해 재빠르게 꺾인다.

    “형! 조심해요! 혀……?”

    터억!

    분명 엘리게이웨일은 단단한 두 턱과 날카로운 이빨로 대호 형을 짓이겨 고기 반죽으로 만들어 버릴 셈이었을 거다.

    “그륵?”

    하지만 대호 형의 굳건한 두 다리와 두 팔이 놈의 턱이 완전히 닫히지 않도록 막아 낸다.

    “미쳤다.”

    이것이 S급의 힘인가.

    놈이 아무리 강해 봤자 B급 던전의 잡몹 아닌가.

    “대호 삼촌은 정말 육체로는 비길 상대가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지금 레벨도 낮잖아.”

    “정말이야. 형 근처에선 항상 조심해야겠는걸.”

    환희와 함께 대호 형의 기행에 놀라는 와중에 눈이 번쩍 뜨인다.

    으직. 으지직.

    어느새 엘리게이웨일의 송곳니를 쥔 대호 형이 놈의 턱을 비틀고 있는 게 아닌가.

    “맙소사.”

    “……헉!”

    나와 환희뿐만 아니라 팀원 모두가 기겁했다.

    “사람 아니네.”

    결이도 마찬가지로 입을 벌리고 대호 형이 하는 일을 바라보았다.

    “가능한가? 저게?”

    태규가 쓸어버린 벌레 사이를 가로질러 두 사람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으직, 으지지지직.

    “그으으으!!”

    엘리게이웨일이 몸부림을 친다. 위기감을 느낀 뒷다리는 슬금슬금 다시 바다로 들어가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태규, 결이! 몬스터 양옆으로 이동해 봐!”

    “네, 형!”

    “응.”

    내 지시에 두 사람이 재빨리 자리를 잡았다.

    “억압의 손길!”

    차르르륵!!

    사슬이 나와 엘리게이웨일의 몸을 휘감고 버티는 쪽은 땅이 아니었다. 태규와 결이에게 감긴다.

    “좋은 생각인데? 하준아 나도!”

    인화 선배도 빈 방향으로 달려갔고 곧장 사슬 하나를 더 연결했다.

    “대호 형이 끌려들어 가지 않게 버텨요!”

    “알겠어!”

    S급 하나에 A급이 둘. 어느 정도 시간은 벌어 줄 터였다.

    “제가 이동 속도 저하 마법도 걸게요!”

    진보라가 스킬 주문을 외우고 곧장 마력을 발사한다.

    ‘망량이한테는 적용이 안 되어야 할 텐데. 그나저나 이거 망량이가 약점을 알아내기도 전에 끝나겠는걸?’

    그리고 상황은 내 예상대로 흘러갔다.

    놈은 돌아가고 싶었던 바다로 가지 못했다. 결이가 억압의 손길을 이용해 아예 놈을 끌어 올려 버렸기 때문.

    쩍, 으즈즈적!

    고통스럽게 버둥거리던 엘리게이웨일의 턱이 결국 두 조각으로 찢어져 버렸다.

    작살낸 턱은 완전히 분리되어 헐떡이는 대호 형의 두 손에 들려 있다.

    촤아악. 피가 차가운 빙판 위에 너무나 선명하게 흩뿌려졌다.

    새하얀 빙판과 시리도록 선명한 붉은 피.

    “허억, 허억.”

    “형!!”

    차르르륵. 사슬을 거두며 모두가 대호 형 쪽으로 갔다.

    “괜찮아요?”

    “어? 응.”

    “뭔가 이성을 잃었다거나 해요? 아무런 지시 없이 행동하셔서 놀랐어요. 대답도 안 하시고.”

    “아, 그게 아니라……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했는데. 그래. 맞아. 팀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내가 실수했네. 뭐랄까 아직 힘을 완전히 제어할 수 없는 것 같아. 약간 멍해진다고 해야 하나.”

    “흐음, 괜찮다가도 약간 흥분하면 이렇게 되는 것 같네요.”

    역시 대호 형은 약간 횡설수설하며 말했다.

    문제는 대호 형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야수성이다.

    센터를 졸업하며 힘을 다루는 것이 많이 자연스러워졌지만, 아직 대호 형의 레벨이 낮은 게 문제였다.

    그래도 최근에는 야수성에 이성이 흐려지게 되는 확률이 줄었었는데 이번 던전 공략에서는 시작하자마자 증상이 시작된 거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아무래도 오늘 공략에서 팀 리더를 계속 맡는 건 무리가 있을 것 같군. 미안하게 됐다.”

    대호 형이 뒷머리를 긁으며 난색을 보였다.

    “괜찮아요, 형. 어차피 다 대비하고 있던 건데요.”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사태를 염려해 미리 가상훈련을 해 두었기 때문에 괜찮다.

    “흠흠. 그럼 지금 이제부터 작전 리더는 하준이가 맡게 된다! 다들 알았지?”

    “예!”

    “네, 알겠습니다!”

    모두에게 상황을 전달한 대호 형이 슬쩍 옆으로 와서 어깨를 두드린다.

    “그래, 네 주도에 따라서 훈련해 두길 정말 잘했다. 이렇게 되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사실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긴 했거든. 아직 자신이 없어서 말이야. 하준이 너 하는 거 보고 배우는 게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어쩌면 리더에 어울리는 성격이 아닐지도 몰라.”

    “처음이라 그렇죠, 뭐. 어쨌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부터는 제가 보조할게요.”

    “보조가 아니지. 네가 리더지.”

    툭툭. 어깨를 두드리는 선배의 손길에서 애정이 느껴진다.

    “아니에요, 형. 저는 형을 확실하게 서포트하고 싶은걸요.”

    “넌 참 예쁜 말만 하더라? 하하하.”

    신뢰를 받는다는 건 가슴이 따뜻해지는 일이다. 힘내서 반드시 오늘의 던전 공략을 완수하겠어.

    “응?”

    시선이 느껴져서 보니 결이가 어쩐지 못마땅한 얼굴로 조금 높이 솟은 빙판 위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격 공격이 막혀서 활약하지 못해서 삐친 모양이지.

    결이를 달래 줄 요량으로 이동하려는데 순간 발밑이 떨리는 것을 감지한다. 그리고 곧장 바다가 솟구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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