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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79화 (79/250)
  • 제79화

    제79편

    “재밌네, 재밌어.”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어떻게 하다니?”

    한세희의 낮아진 목소리에 잠깐 긴장을 늦추었던 이태진은 몸을 움츠렸다.

    A급에 높은 레벨.

    서광 길드에서 인사과 과장이라는 직책까지 도맡아 하는 만능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한세희의 말 한마디에 바람 앞의 촛불처럼 팔랑였다.

    “우리가 깡패야?”

    “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자꾸 이상한 소릴 하는 거지?”

    “죄, 죄송합니다.”

    “이상하네…….”

    한세희는 만년필 반대쪽으로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지?”

    뜻을 알기 어려운 질문에 이태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길드를 만들었다고 한들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경쟁자들이 함부로 손을 못 대도록 만든 것이죠. 우리 길드처럼 다른 길드를 합병할 힘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가능하니 천천히 차대호를…….”

    “그런가……. 자네도 차대호를 보고 있군.”

    “네?”

    “내가 전에 은하준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아, 네?”

    이태진은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은하준에 관해서 조사하기는 했다. D급에 이제 막 각성한 헌터치고는 전투 센스도 좋고 서포터라는 자신의 포지션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본인과 팀원들의 전투 효율을 최대로 끌어낼 줄 알았다. 게다가 가끔 발생하는 문제가 있더라도 기막히게 해결해 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태진은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은하준 이야기를 하셨지만…… 사실 전…… 길드장님께서 왜 그렇게까지 그 헌터에게 관심을 두시는지…….”

    “…….”

    한세희는 조용히 이태진을 바라보다가 손짓했다.

    “나가.”

    “네? 아, 네넵.”

    이태진은 마치 포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한달음에 바깥으로 튀어 나갔다.

    “저러니 내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각성자들을 둘러보고 있는 것 아니야.”

    한세희는 의자에 기댄 채로 중얼거렸다.

    “하아, 그래. 그런가. 아무도 모르는 건가. 은하준이 어떤 힘을 쓰는지.”

    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가 다리를 쭉 펴 책상 위에 얹어 놓았다.

    “그래, 좋네. 아무도 함부로 손을 못 댈 테니 말이야.”

    * * *

    츠파앗-!

    눈앞에 펼쳐진 건 온통 새하얀 세상이었다.

    북극이나 남극을 떠올리게 하듯 거대한 눈밭과 저 멀리 눈에 쌓인 숲, 또 높은 산이 보인다.

    그 외에는 주변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읏! 추워!”

    “보온 마법 걸어 드릴게요!”

    “이 정도로 추워해서야!”

    진보라가 앞으로 나서자 류환희가 염태규를 향해 빈정거렸다.

    “불 타입이라 그런 거거든!”

    “그럼 오히려 추위에 강해야 하는 것 아냐?”

    “태규가 불 타입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민감도가 높아서 그런 걸 거야.”

    각성자는 웬만해서는 계절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몬스터가 뿜어내는 뜨거운 용암에서도 버티는데 약간의 더위나 추위가 타격을 주겠는가.

    “민감도?”

    “각성자의 신체가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몸을 보정하잖아. 그래서 우리가 극한이라도 날씨에는 타격을 입지 않는 거고. 그런데 보정이 되고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예민한 그대로 있는 걸 민감도가 높다고 하는 거야.”

    “그럼 굳이 보온 마법을 걸어 주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뭐, 그걸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구나. 그렇긴 한데.”

    “걸어 주지 않아도 돼요!”

    염태규가 툴툴대며 앞으로 나서고 진보라와 류환희는 어째선지 하이 파이브를 치고 있다. 이상하게 저 두 사람…… 잘 맞는 것 같단 말이야.

    “태규야 너무 떨어지지 마. 여기는 B급 던전이라 방심하는 순간 큰일이 날 거야.”

    “……알겠어요. 형.”

    염태규는 천천히 내 곁에 오더니 심각한 얼굴로 묻는다.

    “그래서…… 민감도가 높으면 약한가요?”

    “약하다니, 무슨 말이야. 지금은 통제하지 못하니까 좀 성가시겠지만, 제대로 통제할 수 있으면 오히려 강해지는 데 도움이 되겠지.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더 높아질 테니까.”

    “정말인가요?”

    “내가 거짓말을 하겠어?”

    “그럴 리가 없죠! 하준 형이 거짓말이라니, 절대로 그럴 리가 없죠!”

    태규의 얼굴이 밝아지더니 초롱초롱한 눈으로 주먹까지 불끈 쥐어 보인다. 이거 뭐 사춘기도 아니고 기분이 널을 뛰는구나.

    그런 우리를 결이가 못마땅한 얼굴로 보고 있다.

    “무앙! 무웅~!”

    망량이가 길을 안내하기 시작하고 가장 선두에 대호 형이, 팀원들의 뒤에는 결이가 섰다.

    아무래도 전투 경험이 결이가 현저하게 많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오늘 나는 류창희가 기대된다. S급 힐러라고……. 같이 전투해 본 적조차 없다고.’

    하지만 그의 엄청난 힐링 스킬을 보려면 팀원들이 그만큼 다쳐야 하니 마음이 완전히 좋지는 않다.

    “무앙!”

    망량이가 멈추어 서자마자 드드드드.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드드드득. 카드드드득.

    퍼어어억!

    그리고 땅이 쪼개지면서, 아니 발밑의 거대한 얼음이 부서지면서 아래에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서 있던 게 빙판 위였나 봐요!”

    “이렇게 큰 빙판이라니……!”

    “저 몬스터는……!”

    거대한 악어와 고래를 합쳐 놓은 것 같은 모습의 몬스터.

    엘리게이웨일.

    “으아아, 저게 보스 몹이 아니라고요?”

    진보라가 기겁하며 내 뒤로 숨는다.

    그렇다. 이제 던전의 랭크가 B다. 하위 던전에서 중간 보스나 보스 몬스터로 나올 것 같은 이 녀석들이 잡몹으로 나오는 곳인 거다.

    그그그그. 콰아아앙!!

    엘리게이웨일은 멈추지 않고 얼음을 부수며 우리 주위를 빙빙 돈다.

    “우릴 완전히 바다 쪽으로 보내 버릴 생각인가 본데.”

    대호 형이 뒤를 돌아보며 신호를 준다.

    “우리도 질 수 없지, 진형 펼치고 바다로 빠지지 않도록 각자 조심해.”

    으적, 으저적.

    살과 뼈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대호 형의 덩치가 불어난다. 그리고 곧장 얼음을 부수고 있는 엘리게이웨일을 향해 달려간다.

    “휘유, 속도 장난 아닌데. 센터 들어가기 전보다 훨씬 빨라졌네.”

    “당연한 거 아냐? S급 길드장님이시라고?”

    감탄하는 환희를 향해 인화 선배가 윙크를 날리고는 대호 형 뒤로 바짝 쫓아간다.

    “결아!”

    “응.”

    츠츠츠츳!!

    반투명한 끈이 나와 결이를 이어 준다. 곧장 멀어지는 인화 선배에게도 연결하려다가 말고 멈칫한다.

    얼마 전에 결이가 이걸 가지고 웃기는 말을 했었지.

    그걸 질투라고 해야 하나 오해라고 해야 하나. 애도 아니고…….

    ‘선배는 벌써 엄청 멀어졌네. 흐음, 그럼 필요할 때 연결하는 걸로 할까.’

    일단은 결이만 연결한 채로 전투를 시작한다.

    “뒤를 잘 부탁해. 녀석이 힘이 빠진 뒤에는 바로 연구 스킬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오케이~! 류환희 대기 중~!”

    “선생님은…….”

    “아, 저도 적당히 쫓아갈 테니까요.”

    “참 나, 류창희! 제대로 힐러로 활약해야지! 네가 잘못하면 여기 있는 사람 다 죽는다고?”

    환희의 닦달에 류창희가 미간을 푹 찌푸린다. 그러곤 우리 뒤를 따라나선다.

    “이 몸도 그냥 대기만 하는 게 아니라고.”

    환희는 진보라 쪽과 붙어 전투태세를 만든다. 그녀의 주위로 여러 개의 주사기가 떠오른다.

    휘익! 퍼어어억!!

    커다란 타격음에 돌아보니 이미 공격이 시작되고 있다.

    선제공격은 역시 대호 형이다. 늑대인간처럼 길게 뻗어 나온 손톱이 엘리게이웨일의 측면을 긁어내리고 있다. 각성자의 힘 덕분에 강화된 대호 형의 신체는 금방이라도 발사될 미사일 같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대한민국 각성자 중에서 대호 형 몸이 제일 좋을 것 같다.

    이미 인간의 수준을 벗어났으니까.

    “얼른 가자!”

    “다들 붙어!”

    푸우!

    풍더엉! 엘리게이웨일이 물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사이 팀원들이 모두 근처로 모여들었다.

    “놈이 바닷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

    “그거라면 내가 전문이지!”

    억압의 손길.

    촤르르륵! 사슬이 엘리게이웨일을 붙잡는다.

    쉬이익! 터억!! 강하게 옭아맸지만, 놈이 물속으로 몸을 당기자 사슬을 고정했던 바닥이 울렁거리며 함께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녀석이 우리를 고립시키기 위해 박살 내 놓은 얼음 조각들이 당기는 힘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이놈 힘이 생각보다 훨씬 센데?”

    “방법이 있지.”

    휙! 튀어 오른 건 결이.

    파직, 파지지직!! 주변으로 순식간에 전기가 튀기 시작한다.

    “어, 어어……!”

    “설마……!!”

    꽈과과광!!

    사라지는 엘리게이웨일의 꼬리를 따라 벼락이 떨어진다.

    푸촤아아아악!

    엄청난 물보라가 일어난다. 바다가 증발하는 수증기.

    “으아아악!”

    “세이프티 플레이스!”

    두웅~! 인화 선배의 버블이 팀원들을 보호한다.

    “대호 형은?”

    촤아아악!!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세이프티 플레이스 위로 쿵! 하는 소리가 난다.

    “대, 대호 형!”

    “수증기를 갈라 버리다니 정상이 아냐.”

    “하지만 수증기 규모가 너무 커서 완전히 다 훑어 내진 못했을 거야. 화상 입으셨을 것 같은데.”

    “S급들이랑 같이 싸우는 거 진짜 무시무시하네. 괴물들이라니까.”

    염태규가 혀를 내둘렀다.

    그것도 잠시.

    촤아아악! 푸화아아악!

    엘리게이웨일이 거대한 몸을 솟구쳐 올렸다.

    “그르르으으으엉!!”

    방금 결이의 공격 때문에 열 받은 게 분명하다. 게다가 그 공격을 받고도 크게 다친 곳 없이 멀쩡하다니. 역시 B급 던전의 몬스터.

    “놈이 바닷물을 끼얹은 덕분에 수증기가 모두 사라졌다! 다시 전투!”

    인화 선배의 버블이 사라지고 팀원들은 다시 흩어져 자기 위치를 찾는다.

    가장 큰 빙판 위로 엘리게이웨일이 몸을 완전히 드러낸다. 놈의 몸통에는 악어의 것과 닮은 다리가 있었는데 그것이 녀석의 지상에서의 공격을 수월하게 해 줄 터였다.

    “그르르르…….”

    놈의 적의는 선명하게 결이를 향해 있었다.

    “자존심 상하네.”

    중얼거리는 소리에 시선을 틀어 보니 몸에서 김을 뿜어내고 있는 대호 형이었다.

    “형……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요?”

    아까 그 수증기에 대미지를 입은 것이다. 그걸 맨몸으로 수 초나 버텼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자가 회복 능력이 높아서 괜찮아.”

    “……왠지 좀 더 화끈해지신 것 같은데요.”

    수염 라인을 따라 체모가 부숭부숭해진 형이 씩 웃는다. 그러고는 대답도 없이 엘리게이웨일을 향해 튀어 나간다.

    “전원 공격!”

    전술이고 뭐고 없이 총공격이다.

    ‘초장부터 힘을 너무 빼면 안 좋은데.’

    하지만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지금 팀원들은 다들 조금씩 흥분해 있다. 조금씩? 아니, 아주 흥분한 상태다.

    다들 움직이는 동선을 보면 안다. 사용하는 스킬도 평소 초반에 사용하는 것들이 아니고 이펙트가 크고 마나를 많이 소모하는 것으로 고르고 있다.

    다들 들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길드를 결성해서 처음으로 다 함께 던전을 공략하러 온 것이니까.

    ‘하지만 이럴 때 조심해야지.’

    큰 사고는 이럴 때 생긴다고.

    하지만 혼자서 나보다 레벨이 높은 모두를 저지할 순 없으니까 상황을 기민하게 살핀다.

    ‘S급 힐러가 있으니까…… 즉사만 아니면……. 흠흠.’

    아마 나도 꽤나 흥분했고 그래서 방심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 인정한다. 나는 방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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