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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77화 (77/250)
  • 제77화

    제77편

    “이미 보상은 선택했는데?”

    “응?”

    아이템을 받아 들고 정신없이 둘러보던 환희도 고개를 들어 시스템을 본다.

    “어라?”

    이미 선택한 보상 2번의 불이 희미하게 꺼져 있을 뿐.

    시스템 창은 변하지 않고 떠 있었다.

    툭.

    꺼 보려 손가락을 움직여도 소용없다. 그렇다고 남은 보상을 선택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설마…….”

    환희가 손을 들어 올린다.

    툭.

    즈즈즈즈…….

    아이템이 소환된다.

    “뭐라고?”

    “보상 아이템이 두 개라고?”

    “선택하라며! 한 명당 하나씩 주는 거였어?”

    우리가 번갈아 소리를 지르자 중간에 선 결이만 어리둥절해한다.

    츠츳.

    우리 셋은 환희 손에 소환된 바람의 재킷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 자아.”

    환희는 내게 아이템을 건넨다.

    “어? 어. 나 주는 거냐? 너 해도 될 텐데.”

    “난 이거 받았으니까.”

    “고맙다.”

    아이템을 얻어서 좋긴 한데 뭐가 이러냐? 어쩐지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다.

    “아니, 우리 좋은 상황 아닌가? 다들 내가 아이템 얻은 게 싫은 거야?”

    “……어, 어어. 아니 괜히 아까 너무 고마워한 것 같아서. 에헴. 헴. 나 지금 쌤쌤이 친 거다?”

    환희의 얼굴이 제법 새빨갛다.

    별로 속내를 말하는 데 스스럼이 없는 줄 알았더니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네.

    “그래, 그래. 그렇다고 하자. 그래도 연구 게을리하는 건 안 된다?”

    “에이! 당연하지. 그건 게을리하라고 해도 안 해.”

    그제야 시스템 창은 평소와 같이 스르륵 하고 사라진다.

    “그런데 참 웃기다. 어차피 둘 다 받는 거였네.”

    “잘됐어.”

    “그래도 레어템 사 주기로 한 거 안 물러 준다? 난 너한테 꼭 받을 거야. 레어템.”

    “아, 당연하지! 이건 업적작인데.”

    한결이가 미간을 찌푸린다.

    멀리서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엘라알하임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이게 당신이 말한 시스템이란 건가요? 마법 같아 보입니다. 갑자기 물건을 소환해 내다니.”

    “아, 갑자기 저희끼리 이야기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보는 나도 신기했어요. 이런 건 처음 봤답니다. 마법이지만, 마법이 아닌 거죠? 뭔가 마력이 흐르는 궤도랄까, 움직임이 달랐습니다.”

    “처음……. 역시 시스템에 관해서 모르시나 보네요.”

    “내가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나요.”

    그는 내가 들고 있던 바람의 재킷을 달라는 듯 손을 벌렸다.

    “음?”

    나는 천천히 재킷을 넘겨주었고, 그는 아이템을 받아 들더니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좋은 물건이로군요.”

    “네. 이건 업적 보상이라는 건데…….”

    “당신은 앞으로 이런 물건을 무척이나 많이 얻게 될 거고요.”

    “네? 아, 물론…… 그러면 좋긴 한데요. 하하.”

    “이렇게 커다란 물건을 들고 다니려면 힘들 텐데. 혹 지닌 것만으로도 그 필요성을 다한다면.”

    “네?”

    엘라알하임이 싱긋 웃는다.

    설마.

    들은 적이 있다. 엘프 공예사의 이야기를.

    기본적으로 아이템은 원래 형태대로 착용해야 사용할 수 있다. 옷이라면 몸에 걸쳐야 하고 무기라면 방법에 맞게 들어야 하고 장신구는 그 모양에 맞게 끼워야 하는 것이다.

    팔찌라면 팔에, 반지라면 손가락에, 목걸이라면 목에 말이다.

    하지만 엘프 공예사에 관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사실 회귀 전에 지구의 각성자 중 하나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지만, 엘프 공예사를 두 번 다시 찾지 못했기에 전설처럼 이야기만 남았다) 그들은 아이템의 본래 능력을 훼손하지 않고도 모양을 변형시킬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망토를 작은 브로치로 만든다든가. 갑옷을 하나의 반지로 만든다든가.

    이게 왜 좋냐면 이렇게 변형된 아이템을 가지면 원래 그 아이템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이템을 하나 더 착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지 아이템이야 손가락이 열 개니 열 가지를 가질 수 있지만, 갑옷의 경우는 다르지 않은가.

    ‘한마디로 갑옷을 두 개 입을 수 있는 거랄까.’

    엘라알하임과 눈이 마주쳤고, 대화 없이도 의견을 주고받는 느낌이 들었다.

    엘라알하임이 바람의 재킷을 그렇게 만들어 준다면 나는 고마울 따름이지.

    츠츠츳. 지이잉.

    재킷은 빛나는 점토처럼 말랑하게 뭉쳐졌다가 부피가 훅 줄어들었다.

    스으으으.

    그리고 빛이 줄어들며 반지 형태의 링이 하나 남았다.

    “자.”

    후욱!

    엘라알하임이 손가락을 튕기자 링이 날아들어 팔찌에 연결되었다.

    “오.”

    “가볍죠?”

    “정말 가벼워요. 뭐가 추가된 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아이템의 능력은 확실하게 남아 있을 겁니다.”

    재빨리 시스템 창을 열어 확인한다.

    “정말이에요.”

    모든 수치가 완벽하게 올라가 있다.

    “또 그 시스템이라는 걸 보고 있겠군요. 우리도 아이템을 사용하지만, 사실 수치로 완벽하게 알 수는 없어요. 참 신기하군요. 당신들은 어떻게 그런 혜택을 받은 겁니까?”

    “혜택이라…….”

    “축복이죠. 그 힘이라면 동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

    그의 말에 잠깐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귀한 장소에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게다가 이렇게 귀한 선물을 주시다니.”

    “후후후. 역시 그대는 내 예상대로군요.”

    엘라알하임은 소년처럼 웃으며 눈을 빛냈다.

    “네?”

    “그대는 영악하고자 하지만 본질은 순하고 어수룩해요.”

    “네? 그거…… 욕인가요? 칭찬이겠죠?”

    “직설적이지만 숨기고 있는 게 많고.”

    그의 표정에는 재밌는 것을 발견한 것처럼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대는 선합니다.”

    “……뭐. 그렇게 봐 주시면 감사하긴 한데요.”

    머리를 긁으려던 내 손을 엘라알하임이 살며시 잡았다.

    순간 결이가 움찔거렸지만, 엘라알하임의 손길은 깃털처럼 부드럽다.

    “당신을 향한 확실하고 강력한 사랑이 존재합니다. 그걸 꼭 말해 주고 싶었어요.”

    “네?”

    “우리 엘프들의 비밀이 하나 더 있지요. 우리는 영적 세계의 기운도 읽을 수 있죠. 그리고 그대 곁엔 분명 사랑이 있어요.”

    “사, 사랑이라니…….”

    “인간들은 사랑의 단어를 너무 편협하게 볼 때가 많아요. 하지만 사랑은 신묘하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어쩐지 여기까지 들으니까 길거리에서 포교를 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궁금증이 솟아오른다.

    어떤 이의 사랑일까? 확실하고 강력한.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얼굴들이.

    만약 정말로 무엇인가가 남아 내 곁을 지키고 있다면…….

    “그러니 분명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그, 너무 감사한데요. 거참.”

    솔직히 점쟁이 같다는 말은 차마 내뱉을 수가 없었다.

    “이제 그대들이 돌아갈 시간이군요.”

    엘라알하임의 지시에 따라 계단을 다시 내려갔다. 문을 열자 바깥은 마을이 아니라 숲 한가운데였다.

    “아. 이제 아마도 다시는 엘라알하임 당신을 만날 수 없겠죠?”

    “그럴 겁니다. 일평생 문샤인 엘프를 만난 것만으로도 우주의 모든 행운이 주목했다고 볼 수 있거든요.”

    “……아쉽네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당신은 더 다양한 자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는 동안 엘라알하임은 다시 문 쪽으로 돌아갔다.

    “그대들에게는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그 애의 소식을 들었으니까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당신들을 기억하며 행운을 빌겠습니다.”

    그의 인사는 마지막까지 뭔가 기인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물론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엘프니까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타악.

    문이 닫히고 분명 문과 건물이었던 것은 아주 커다란 고목으로 변해 있었다.

    “문샤인 엘프의 마법인가 봐.”

    “멋진데……. 환희야. 너는 좀 아쉽겠다. 문샤인 엘프를 조사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환희의 연구 스킬의 방법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평화롭게 진행되긴 어려웠을 테지만 말이다.

    “아, 그래서 물건 몇 개를 슬쩍했거든.”

    “세상에.”

    “너 우리 집 물건도 손댄 거 아냐?”

    “조사 차원이 아니면 절대로 안 이러거든? 누가 도둑놈인 줄 알아? 게다가 하준 오빠랑 결이 오빠네는 훔쳐 갈 물건도 없었어.”

    “……흠.”

    결이가 맞받아치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우리 이 던전은 마저 공략해야 하나?”

    엘프들과 대화를 한참 나눈 후여서 그런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하준이 말대로 오늘은 그냥 돌아갈까. 이미 시간도 많이 지났고.”

    “……으음. 그래. 나도 연구할 게 많아.”

    “기분이 안 난다.”

    * * *

    “축하해요!”

    “와아~! 정말 고생했어요!”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나와 환희, 그리고 인화 선배 부부의 손에 작은 폭죽과 선물이 들려 있다.

    그리고 우리의 축하를 받으며 중앙에서 쑥스러운 얼굴을 한 건 대호 형이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드디어 형님도 헌터 자격증이 생기셨네요.”

    염태규가 거의 자기 키만 한 케이크를 들고 앞으로 나오며 씩 웃었다.

    “이게 다 모두들 덕분이야. 나 혼자였다면 지금쯤 각성자 전용 교도소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에이, 애들 다 있는 데서 무슨 소리예요~!”

    나는 형을 나무랐지만, 다행히 우리가 모인 이곳은 새로 이사한 우리 집이었고 아이들은 장난감 방으로 신경을 빼앗긴 지 오래였다.

    “하여튼,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대호 삼촌이 갚을 차례네, 그렇죠~?”

    익살맞은 표정으로 환희가 불쑥 튀어나온다.

    “어? 어어. 그렇지.”

    “우리 같이 진중하게 길드 설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보자고요.”

    드디어!

    나도 기다리고 있던 바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여기 있는 각성자들 모두 초기 멤버로 받아 줄 용의가 있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해? 괜히 거절하고 후회하지 말고.”

    “후회해 보고 싶네.”

    “응, 결이 오빠는 그냥 필수 참가라서 후회고 나발이고~”

    “그런 게 어디 있냐. 정당하게 해야지.”

    “흠? 하준 오빠랑은 같이 가기로 이야기 끝났는데? 그럼 뭐, 결이 오빠는 오지 마. 어차피 대호 삼촌 있어서 S급 최소 인원은 맞췄고.”

    “뭐? 아니, 농담인데 뭘 또 그렇게 진지하게…….”

    “흥!”

    환희는 콧방귀를 뀌더니 가방에서 서류를 잔뜩 꺼냈다.

    “삼촌, 일단 이거 쭉 읽어 보고…….”

    “흐응. 환희~! 오늘은 일단 대호 씨 축하하는 시간으로 보내야지. 그건 케이크 먹고 나서 해도 되고.”

    인화 선배의 말에 환희가 혀를 빼꼼 내밀며 서류를 등 뒤로 감춘다.

    “일단 다들 앉아요!”

    잽싸게 대호 형 옆자리에 앉으며 말을 붙인다.

    “형, 어땠어요?”

    “뭐. 할 만했어. 힘들다고 하면 너희 볼 면목도 없고.”

    “에이. 면목은 무슨. 같은 기수 사람들이랑은 이제 못 봐서 아쉬우시겠어요.”

    그 말에 대호 형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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