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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76화 (76/250)
  • 제76화

    제76편

    “푸하하하하!”

    “어?”

    “으응?”

    결이와 나, 환희의 눈이 댕그래졌다.

    “당신들 정말 날 자꾸 울게 만드는군요.”

    그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맺혔지만, 이번에는 평범한 눈물처럼 흘러 바닥에 떨어져 부서졌다.

    “그 애는 나의 아들이랍니다.”

    입이 떡 벌어진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그렇게 달콤한 편지를 쓸 수 있단 말인가.

    이걸 문화적 차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그렇긴 할 테지만.

    “내 뒤를 이어 마을을 수호할 기둥이었답니다.”

    “……그렇군요. 명복을 빕니다.”

    그가 왜 그렇게 슬퍼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슬픔은 어디에도 비교할 바 없이 크고 깊다고 하지 않는가.

    부모를 잃는 것보다 자식을 잃는 것이 더욱 아프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 애와 연락이 닿지 않은 지도 벌써…… 3천 년 정도 흘렀군요. 뭔가 일이 생긴 것이라 예상하기는 했습니다. 애써 모른 척하기도 했고요. 슬픈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지만…….”

    내게는 너무 아득한 시간이다. 엘라알하임은 이전에 보였던 눈물과는 다르게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투로 말했다.

    3천 년.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나무가 자라 엔트가 될 정도의 시간이라는 것인가. 어쩌면 그 아래 묻힌 칼다르마헬의 마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부족을 지키는 신관은 혈연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마을이 위험해질 일은 없지요.”

    엘라알하임이 어두워진 내 표정을 눈짓으로 살피며 말했다. 이런 와중에도 나와 친구들의 상태를 살피다니, 그가 얼마나 다정한 인품을 가진 엘프인지 절절히 느껴진다.

    하지만 왜일까.

    그 모습이 더욱 서글프게 느껴졌다.

    “아뇨. 우리가 걱정하는 건 당신이에요. 엘라알하임.”

    가족을 잃는다는 것은 아무리 영생하다시피 한다는 엘프라도 견디기 힘든 슬픔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건, 그 얼굴이 점점 흐려지는 건,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 건.

    그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니까.

    “나도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어요. 물론 그런 경험이 있어야지만 당신에게 공감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요. 금방 괜찮지 않아도 돼요.”

    엘라알하임의 눈이 커진다.

    “물론 당신은 오래 살았고 마을을 대표하고 있고 지키고 있고……. 신관인 대단한 존재지만. 약해져도 괜찮아요.”

    왜 이런 말이 튀어나온 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가 슬픔을 이기려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손을 붙잡아 주고 싶어진다. 잠깐만이라도 앉아서 쉬게 하고 싶다.

    조금은 응석을 부려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러니까…….”

    “당신의 말은 잘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정말 상냥한 분이시로군요.”

    “흠흠, 뭘요.”

    내가 말해 놓고 어쩐지 민망해져서 입이 말랐다.

    “크흠, 그, 갑자기 이런 이야기는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요. 엘라알하임, 내가 아까부터 말하던 시스템이란 거에 의하면 칼다르마헬의 비석에 쓰인 내용이 수수께끼를 품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아. 시스템……. 수수께끼라고요……. 글쎄요. 뭐가 있는 걸까요. 내가 보기에는 그저 내게 전할 말을 쓴 것뿐인데요.”

    “그럼 이걸 보고 당신을 찾으라는 건 무슨 뜻일까요?”

    “나를 찾으라고 했다고요?”

    “정확히 말하자면 내게는 수수께끼를 풀 때 도움이 되는 스킬이 있어요. 스킬이 힌트를 줬어요. 엘라알하임을 찾아라.”

    “……흐음.”

    엘라알하임은 생각에 잠겼다.

    “나를 찾았는데도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았다면, 아마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그것?”

    “수수께끼가 말하는 것 말입니다. 알 것 같아요.”

    “대체 뭐죠?!”

    “바로 이곳입니다.”

    “네?”

    “엘라알하임이라는 이름은 내 본이름이 아닙니다. 신관이 되면서 자연스레 얻게 되는 명칭이랄까. 우리는 공통 이름이라고 부릅니다. 이 마을에서 관리자의 직책을 맡게 되면 얻을 수 있죠. 엘라알하임의 본뜻은…… 우리 부족의 거주지를 뜻합니다.”

    “어엇, 그렇다면…….”

    “호오…… 그렇구나.”

    옆에서 듣고 있던 환희가 눈을 빛냈다.

    “수수께끼의 의미는 나를 찾으라는 게 아니라 우리의 거주지를 찾으라는 걸 겁니다.”

    “확실히 그럴지도요. 하지만 이 거주지도 찾은 셈이지 않습니까?”

    결이가 대꾸하자 엘라알하임이 빙긋 웃는다.

    “멋진 걸 보여 드리죠.”

    그가 걸음을 옮기더니 천장에 달린 기다랗고 두툼한 줄을 끄집어 당긴다.

    끼이이익. 육중한 소리와 함께 다락으로 이어지는 듯한 통로가 열리고 조립식 계단이 천천히 내려온다.

    “이리로.”

    모두 그를 따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뭐지? 생각보다 계단이 많은 것 같은데?’

    처음 이 건물에 들어왔을 때 어림잡아 짐작했던 높이보다 훨씬 높이 올라온 것 같은데도 엘라알하임은 거침없이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약간의 불안함과 의구심을 가진 채 얼마나 올라갔을까.

    후우웅!

    앞쪽에서 거친 바람이 불어왔다.

    펄럭, 펄럭!

    흩날리는 엘라알하임의 옷자락이 스르륵 사라지더니, 계단의 끝에 밝은 하늘이 드러난다.

    그 끝으로 올라서자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운 숲의 경관이 드러났다.

    마치 한 마리의 매가 되어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한눈에 보이는 숲과 마을.

    “이건…….”

    “이곳이 엘라알하임입니다.”

    문샤인 엘프의 은신처, 안식처, 집.

    이곳에서는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여기는 외지인에게 절대로 공개되지 않는 곳입니다. 신관의 허락이 없다면 같은 문샤인 엘프라도 들어올 수 없지요. 법칙으로만 금지된 게 아니라 마법이 걸려 있어 절대로 침입할 수 없습니다.”

    과연.

    비밀스러운 장소라는 말이 납득이 됐다. 이곳은 문샤인 엘프들의 마을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마을의 입구가 어디고 출구가 어디며 중요 기관들은 어디에 있는지.

    엘프들의 행동 양식은 어떤지 한눈에 알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얼마간의 시간만 보낸다면 문샤인 마을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터.

    만약 이곳을 적이 알게 된다면?

    엘라알하임은 속수무책으로 공격당할 것이고 무참히 침략당할 것이다.

    내가 침략자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침략을 하기에는 마을이 너무나 아름답다.

    띠링.

    시스템 알림이 울린다.

    [366번째 수수께끼를 푼 자.]

    업적이 추가된다.

    “픠이이이익!”

    커다란 매 한 마리가 나타나 우리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어! 업적이다.”

    환희 역시 이 문장이 보이는지 탄성을 내질렀다.

    “세상에! 나 업적 처음이야!”

    “환희 너도 지금 업적을 얻은 거지?”

    확인차 묻자 환희의 눈이 동그래진다.

    “너도? 그럼 오빠도 업적 얻어진 거야? 중복 업적이라고? 그런 경우는 보고된 적이 없는데.”

    “그러게.”

    원래 다른 수수께끼들은 함께 풀었다고 하더라도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데 기여도가 높은 사람이 받게 된다.

    이전 센터 사람들과 함께 받은 것도 수수께끼 업적 자체는 나만 받았으니까.

    이번 생은 두 번째면서도 처음 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 혼란스럽다.

    [업적 보상을 선택하세요.]

    보상 1. 바람의 재킷

    보상 2. 무한의 렌즈 연마제

    “어엇…….”

    아이템 설명을 읽어 보는데 바로 옆에서 환희의 탄성이 흐른다. 이유는 뻔하다.

    첫 번째 보상인 바람의 재킷. 기본 능력치 대폭 상승에 특히 체력과 힘은 더 크게 상승시켜 주며 적은 양이지만 받은 대미지의 일정 부분을 내 체력으로 회복시켜 주는 아이템.

    게다가 이동 속도 버프가 있어서 필드에서 자주 움직여야 하는 내가 가지면 딱 좋을 아이템이다.

    ‘강화 기능까지 붙어 있네. 그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이 아이템으로 쭉 쓸 수 있겠군.’

    그리고 두 번째 아이템은 무한의 렌즈 연마제. 이름만 보고서는 뭔가 싶지만, 이건 연구 스킬을 가진 각성자에게 특화된 아이템이다.

    연구 스킬의 속도가 올라가고 깊이 있는 결괏값을 얻을 수 있도록 확률이 올라간다. 연구 중 공격으로 방해받을 확률도 줄어들고.

    또 사용하는 것만으로 연구 스킬 경험치가 30% 상승한다.

    확실히 연구 계열 각성자에게는 사기 같은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무한’이 붙는다. 비슷한 능력의 아이템들이 있긴 한데, 엄청나게 비싼 일회용품이기 때문.

    그래서 그런지 이 아이템에는 보란 듯이 레어란 말이 붙어 있다.

    “보상 아이템이 어때? 이번에 네가 가질 만한 뭔가가 나왔어? 이제 슬슬 너도 보상 아이템으로 괜찮은 걸 얻어야지.”

    한결이가 보채는 소리에 환희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왜? 둘 다 표정이 왜 그래? 아이템이 별로야?”

    “……음.”

    “그게…….”

    한데 의외다. 류환희가 눈치를 보다니. 나는 어찌 됐건 무한의 렌즈 연마제를 선택하겠다고 난리를 칠 줄 알았는데 말이다.

    내 눈빛을 읽었는지 류환희가 눈을 흘기며 툴툴댄다.

    “나도 양심이라는 게 있지. 오늘 여기까지 오는 데 하준 오빠 네가 제일 고생한 거 모를 거 같아? 게다가 전에 푼 수수께끼 땐 한결 아이템 나왔었다면서.”

    “류환희. 뭔진 모르겠지만 또 반말하지.”

    “한결 넌 좀 조용히 해.”

    환희는 아주 큰 결심을 내린 것인지 목을 가다듬는다.

    “내가 그 정도로 양심 없는 사람은 아냐. 게다가 오빠 덕분에 내 연구가 아주 도움을 많이 받았고, 더 받을 거고. 그러려면 오빠가 강해지는 것도 필요하니까. 돈이야 뭐…… 열심히 벌어서 충당하면 되는 거고.”

    “흐음. 그래?”

    “그래. 대체 불가능한 아이템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일회용 아이템과 달리 업적 보상 아이템은 여러 가지 부가 기능이 붙어 있다. 이 부가 기능들을 합치면 레어 아이템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좋아진다.

    지금 업적 보상으로 놓인 아이템 두 개 다 그렇지만…….

    툭.

    “어?”

    내 손가락이 꾹 하고 누른 지점을 보던 환희의 눈이 거의 튀어나올 것 같다.

    “아니, 왜…….”

    “왜라니. 우리 연구원님이 얼마나 중요한 분이신데요.”

    솔직히 강해질 수 있다는데 누가 욕심이 나지 않으랴. 하지만 류환희가 벌어들일 돈을 생각해 봐라. 또 류환희가 무기 개발을 일찍 해내어 인류가 더 강해지는 것을 생각해 봐라.

    ‘시간을 더 벌 수 있다는 거다. 인류가 좀 더 준비한다면, 멸망에 맞서서 함께 이겨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이때에 모두가 강해질 선택을 하는 거다.

    ‘게다가 나 하나 정도라면 알아서 키울 능력도 되고.’

    멍한 환희의 눈동자를 쳐다보다가 앞에서 손가락을 딱딱 튕겼다.

    “어이. 정신 차려. 귀여워서 이걸 선택한 거 아니니까. 앞으로 더 열심히 연구해. 던전의 비밀을 밝혀 보라고.”

    함께 인류 멸망을 막자.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말만큼은 꾹 삼킨다.

    스스슷.

    내 손 위로 환희를 위한 아이템이 소환된다.

    “우와아아…….”

    금장식이 달려 입구가 봉해진 플라스크 안에 오묘한 빛깔의 액체가 담겨 있다.

    이것이 바로 마르지 않는 윤활제.

    “오빠…… 정말 고마워……. 나는…….”

    환희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내 손에서 아이템을 받아 간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품에 꼭 안았다.

    “나, 진짜 뭔가 보여 줄게. 알지? 나?”

    “알지, 알지.”

    “하준아…….”

    이제야 어떤 상황이었는지 눈치챈 결이가 다가왔다.

    “에이 오빠가 동생한테 한 번 양보할 수도 있지.”

    “하지만 네 차례였는걸.”

    “그때 환희는 있지도 않았는데?”

    “하지만…….”

    “됐어. 내 기억으로는 내 레어 아이템은 한결이가 돈으로 사 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 그건 그렇지만.”

    “설마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건 아니지?!”

    “아냐!”

    피식 웃으며 시선을 돌리는데 아직도 시스템 창이 떠올라 있다.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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