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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75화 (75/250)
  • 제75화

    제75편

    “음?”

    결이 역시 느낀 것인지 단번에 구덩이 위로 튀어 올라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우리의 눈에 보인 것은 수많은 반딧불.

    와중에도 망량이의 노래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어라?”

    “이건…… 혹시?”

    반딧불이라면 응당 아무런 규칙 없이 공중을 떠다녀야 하겠지. 하지만 이 작은 불빛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우리를 관찰하는 것처럼, 우리를 노려보는 것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불빛은 깜빡이기도 했다.

    그 모습이 가히 압도적이었다.

    “문샤인 엘프?”

    스슷. 스스슷.

    대답이라도 하는 듯 나무가 흔들렸다. 바람은 한 점 불지 않는데. 분위기가 기묘해진다.

    “인간.”

    약간 어눌한 발음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트렸다.

    “엘프의 노래를 어떻게 알지?”

    “아, 그건…….”

    “그건 우리 고대 선조의…….”

    “무앙!”

    때마침 구덩이 밑에서 노래를 부르던 망량이가 위로 올라왔다.

    망량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어둠 속에서 지켜보던 불빛들이 흠칫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경계의 사도.”

    이번에는 아무런 소리나 기척 없이 홀연히 엘프 하나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역시 문샤인 엘프였다.

    문샤인 특유의 특징적인 외향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처억.

    그가 망량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슨…….”

    “무아앙!”

    망량이는 당연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문샤인 엘프의 머리에 가까이 갔다. 그리고 그의 정수리에서 잠깐 머물더니 곧 내 어깨 위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고 여전히 숲 그림자 밑에 숨어 있던 다른 문샤인 엘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낸 기척은 일부러였구나. 우리가 알아차리라고.’

    그들이 움직이는 데에는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마치 공기가 흐르는 듯한 움직임. 바람보다 가벼운 움직임이다.

    “경계의 사도라는 게 무슨 말이야.”

    “무왕앙!”

    망량이에게 물어도 녀석의 대답은 평소와 비슷했다.

    무릎 꿇었던 문샤인 엘프는 어느새 일어나 고개를 갸웃거린다.

    “경계의 사도. 왜 인간과 있지.”

    그건 망량이에게 묻는 게 아니라 내게 묻는 거였다.

    “펫이니까?”

    “아아. 그렇군. 경계의 사도가 키우는 것.”

    “응? 아니, 그 반대인데.”

    뭔가 의미 전달이 잘못된 것 같은데 문샤인 엘프는 더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혼자 이해를 완료해 버렸다.

    “사도라면 노래를 안다. 사도는 우리의 손님. 그러니 너희도 초대받을 이유가 된다.”

    뭐어, 그게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뭐야?”

    웅성거림에 뒤늦게 구덩이 위로 올라온 환희의 눈이 땡그래진다.

    “문샤인 엘프!!”

    * * *

    그러니까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어렴풋하게만 알겠는데.

    어쨌든 우리는 문샤인 엘프의 마을에 초대를 받았다.

    던전 안에서 이런 일을 겪다니.

    애초에 문샤인 엘프 역시 우리가 상대하는 다른 몬스터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는데 말이다.

    “우와……. 이 새로운 문명을 좀 봐.”

    환희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들의 마을은 숲 깊은 곳에 있었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헷갈리는 동안 어느새 마을 안에 도착한 후였다.

    거대한 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집과 목재와 넝쿨, 나뭇잎을 이용해 만든 집도 있었다. 돌과 흙으로 만든 집도 있었는데 투박하고 뒤처진 문명의 것이 아니라 높은 기술과 미적 감각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충분히 자연과 동화된 설계.

    신비로운 엘프의 마을을 통과하면서 도착한 곳은 문샤인 엘프의 리더가 있는 곳이었다.

    ‘엘프들과 대화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솔직히 원했지만,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망량이 이 녀석 덕분인가?’

    경계의 사도니 뭐니, 단순하게 문샤인 엘프가 착각한 것은 아닐 거다.

    ‘망량아, 넌 대체 뭐냐? 이 복덩아. 너랑도 말이 통하면 좋을 텐데.’

    조용하게 이글거리는 망량이를 쓰다듬는다. 불꽃이 아니라 그냥 소동물의 부드러운 털 같다.

    “경계 사도. 손님. 환영한다.”

    엘프 리더는 우리를 이끈 엘프보다는 어눌한 발음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만은 이 자리의 누구보다 굳셌다.

    “이유는.”

    지금 우리가 여기 왜 왔는지를 묻고 있는 건가.

    환희가 눈을 굴려 내 눈치를 본다. 하지만 나는 둘러갈 생각이 없다.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

    내 대답에 엘프들의 얼굴이 굳어진다.

    “던전?”

    “숲은 던전이 아니다.”

    이런. 아쉽게도 엘프들은 던전에 관해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시스템에 관해 아는 건?”

    “시스템? 어떤 시스템?”

    곤란하다. 하지만 분명 이런 때도 있겠지. 모든 몬스터가 스노우퀸처럼 시스템에 관해 파악하고 있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일이 매번 반복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을까?

    “외부인의 침입이 계속되고 있잖아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외부인들은 늘 숲을 위협한다.”

    “그 외부인들은 항상 우리 같은 모습입니까? 마법…… 같은 기술을 쓰고?”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다.”

    리더는 왜 그런 것을 묻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생각해 보면 판타지 영화나 소설에서…… 엘프들은 늘 자연을 지키고 인간은 자연을 훼손하는 외부인들로 나오니 저런 대답이라도 완전히 내 생각과 같은지는 알 수 없겠네.’

    리더는 잠깐 침묵하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그대가 찾은 것.”

    “아.”

    수수께끼 이야기다. 수수께끼를 먼저 풀어 보는 것도 좋겠지. 기회를 봐서 던전이나 시스템에 관한 질문을 더 해 볼 수도 있을 거다.

    “엘라알하임을 찾고 있습니다.”

    “내가 엘라알하임이다.”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우리 셋은 고개를 확 돌렸다.

    거기에는 다른 문샤인 엘프들에 비해 확연히 더 어두운 피부를 가진 엘프 하나가 서 있었다.

    거의 완벽한 검은색으로 보일 만큼 깊고 진한 피부는 은은하게 반짝거리고 있다.

    그가 가까이 오자 반짝거림은 그의 피부 겉에 난 작은 비늘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은 비늘이 마치 자개처럼 빛나고 있다.

    “나를 찾는 이유는 무엇이지.”

    그의 목소리는 사뭇 앳되다고 느껴질 정도로 쾌활했다. 젊음이 여전히 그를 떠나지 않을 것처럼.

    비석이 새겨졌을 시기를 생각하면 문샤인 엘프 종족 역시 판타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처럼 청년기가 긴 모양이었다.

    좀 심하긴 한 것 같지만.

    “당신을 향한 편지를 발견했는데요.”

    “나를?”

    “환희야.”

    환희가 필사한 종이를 그에게 건넸다.

    “엔트가 일어난 자리 밑에 비석이 있었고 거기 쓰인 내용입니다. 시간이 무척 흘렀으리라고 생각해요. 아마 시체는…….”

    더 말을 잇기 전에 엘라알하임이 휘청였다.

    “엘라알하임 님!”

    “너희들!”

    엘프들이 우리 셋을 노려보았지만, 엘라알하임이 급히 저지했다.

    그가 엘프어로 뭐라고 말했는데 아마도 우리에게 손을 대지 말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순식간에 우리를 둘러싸 포위하던 엘프들이 한 걸음 물러났다.

    “내 친구의 묘를 어떻게 찾은 거지.”

    “……그게, 던전을 공략하다가.”

    아쉽게도 엘라알하임 역시 던전이라는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의 밤하늘처럼 새카만 눈에는 의아함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곧 그 눈에는 그리움이 젖어 들었다.

    “칼다르마헬은 바깥으로 나가는 걸 두려워하는 아이였지.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척 좋아했다. 해서 내가 아는 모든 이야기와 책에서 읽은 모든 지식과 허구들. 그리고 전해 오는 소문까지도 그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그 아이는 죄다 들으려고 했고.”

    그의 눈가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이내 구슬처럼 뚝뚝 하고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결국 바다를 보았구나.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던 바다를.”

    비석에 새겨진 글들이 떠올랐다.

    칼다르마헬이 호수라고 부르던 바다. 엘라알하임의 말을 듣고 있자니 칼다르마헬이 왜 굳이 바다를 호수라고 표현했는지 궁금해졌다.

    “그가 바다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나요?”

    “물론. 자기 두 번째 이름을 바다라고 지으려고 했는걸.”

    그렇게 대답하는 와중에도 엘라알하임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마치 수도꼭지가 고장 난 것처럼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뚝, 뚜욱.

    결국 턱선을 따라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팅! 티잉! 탕!

    눈물은 바닥을 적시지 않았다.

    작은 눈물방울은 턱에서 떨어져 바닥에 닿기 전에 단단하게 변해 해체되기를 거부하듯 쏟아졌다.

    ‘반짝거려.’

    인어의 눈물이 진주가 된다고 그랬던가.

    데구르르 굴러가는 엘라알하임의 눈물을 주위에 서 있던 다른 엘프들이 하나씩 줍기 시작했다.

    “이것은 문샤인 엘프의 신관에게서만 생성되는 진귀한 보물입니다.”

    엘라알하임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설명했다.

    “뭐, 그래 봤자 제게는 눈물일 뿐이지만요.”

    “신관. 눈물에 마력. 강하다.”

    가만히 모든 것을 지켜보던 리더가 말을 덧붙였다.

    “따라오시겠어요?”

    “엘라알하임!”

    리더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듯 강경한 어조로 말했지만 엘라알하임이 무표정한 얼굴로 잠깐 바라보자 이내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당신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게 있군요. 어쩌면 당신들이 찾는 것에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뭔데요?”

    “모든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엘라알하임은 말을 마치고는 천천히 문을 나섰다. 마치 따라오지 않더라도 상관없다는 듯이 가볍고 부드러운 발걸음이었다.

    문샤인 엘프 리더는 못마땅하게 우리를 노려보았지만 서둘러 엘라알하임을 따라 나섰다.

    ‘대체 수수께끼의 정답은 뭐란 말인가. 힌트로 주어진 엘라알하임을 찾는 건 이미 해내지 않았나?’

    어느새 점점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그제야 밤을 꼬박 새웠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사실 각성자에게 하룻밤 새우는 것쯤이야 큰 무리는 아니었다. 하품이 나오기는 하지만.

    “여깁니다.”

    조그만 건물 안에는 온갖 물건이 가득 차 있었다.

    ‘약간 안사홍의 사무실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그중에 단연 돋보이는 건 엄청나게 많은 책과 두루마리들이었다.

    “그 애가 참 좋아하던 곳이었어요.”

    “저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불쑥 말을 꺼낸 건 환희였다.

    세 사람 모두의 시선이 환희에게 쏠리자 그녀가 약간 쑥스러운 듯 입을 오물거렸다.

    “그러니까 엘라알하일 님 당신과 칼다르마헬은 연인 관계였나요?”

    “응?”

    물론 나도 그게 살짝 궁금하고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리고 둘은 당연히 연인이리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보다니.

    역시 환희는 환희다.

    “연인…….”

    나는 조용하게 읊조리는 엘라알하임을 걱정스럽게 살펴보았다. 그가 또 눈물을 흘린다면 이번에는 내가 그 눈물 보석을 주워야 할까.

    그런데 엘라알하임의 반응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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