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74화 (74/250)
  • 제74화

    제74편

    “캠핑하러 온 것 같다.”

    환희가 모닥불에 손을 쬐며 씩 웃는다.

    “연구 때문에 던전에 와 본 적 많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괴물 특수부대랑 같이 대규모로 움직일 때 이야기고. 그런 게 캠핑 같을 리 없잖아. 완전 싫었다고. 아니, 연구 자체는 좋았지만. 별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도 없었고.”

    불빛에 노랗게 반짝이는 환희의 얼굴이 쓸쓸해 보인다.

    처음에는 괴팍한 비뚤어진 천재처럼 보이는 부담스러운 녀석이었지만, 지금의 환희는 그냥 평범한 여동생 같다.

    “강한 사람이 많았을 텐데.”

    결이 역시 비슷한 마음인지 표정이 부드럽다.

    “참 나, 강한 사람이랑만 친해지고 싶은 건 아니잖아. 높은 랭크 각성자 중에 진짜 미친놈 개 많은 거 알지?”

    “예를 들어 류환희 같은?”

    “아~! 진짜!”

    “무아앙!!”

    “그래, 그래. 망량아. 저 나쁜 대화들은 듣지 말자~”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고 있자니 던전 안이라는 감각이 멀어진다.

    너무 태연하게 투닥거리는 결이와 환희 탓일까?

    “응?”

    내 목소리에 투닥거리던 두 사람의 시선이 옮겨붙는다.

    “전에 왔을 때랑 똑같은 길로 오지 않았나?”

    “그렇지.”

    결이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럼 저건 뭐지?”

    시선 끝에 있는 건 쉽게 말하자면 비석이다. 움푹 들어간 흙바닥 밑에서 일부가 드러나 있었다.

    “이건…….”

    “무왕!!”

    망량이가 마치 강아지처럼 쪼르르 달려가 비석의 주위를 맴돈다.

    “엔트가 일어난 자리야.”

    “우리가 전에 왔을 땐 엔트를 깨우지 않았으니까.”

    “어머, 그럼 나 덕분이네. 저게 뭔진 몰라도 말이야. 그렇지, 오빠들?”

    휘익!

    움푹 팬 구덩이 밑으로 단숨에 이동한다.

    “수수께끼다.”

    띠링.

    시스템이 발동되어 힌트가 떠올랐다.

    [힌트: 밤의 요정을 찾아라.]

    “밤의 요정……?”

    “오빠들! 뭐 있어? 나도 내려가야 해?”

    구덩이 위에서 한희가 묻는다.

    츠팟!

    한결이가 스킬을 이용해서 단숨에 류환희에게 다가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뭐, 무슨!”

    츠츳!

    그러고는 다시 스킬을 이용해 밑으로 내려온다. 품에서 내려놓기 무섭게 환희가 소리를 빽 질렀다.

    “아니! 여기 내려오는 정도는 나도 혼자서 할 수 있다고!”

    “아. 그래? 버릇이 들어서.”

    “뭐어~?”

    환희는 괜히 나를 노려본다.

    “왜 날 봐?”

    물론 결이가 항상 날 들고 다녔으니 버릇이 될 만하지만……. 응? 그런데 회귀한 후로는 나도 이동 스킬이 생겨서 그렇게까지 의존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 한글로 쓰여 있네?”

    빽빽거리던 환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비석에 눈을 빛내고 있다.

    “환희 너는 이런 거 본 적 없어?”

    “응? 아, 이야기는 많이 들었었지. 이미 해결된 수수께끼들에 관해서 말이야. 이렇게 따끈따끈한 건 처음이야. 기대된다! 이거 풀기 전에 내가 조사 좀 해도 괜찮지?”

    “응, 당연하지.”

    환희는 스킬을 발동시키더니 비석을 훑기 시작했다.

    “내가 찾아봤는데 원래 던전 수수께끼는 찾기 정말 힘들대. 전 세계적으로 수수께끼를 푼 각성자는 몇 없다고 들었어.”

    “흐응. 그렇지.”

    “그런데 우리는 벌써 이게 세 번째인가? 이상하지 않아?”

    “두 번째지만……. 아무래도 그렇지.”

    결이 눈치를 슥 본다.

    확실히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 하지만 애초에 나부터가 말이 안 되는 존재거든. 죽다가 회귀라니.

    뭔가 시간의 선 같은 게 꼬이면서 내 주위의 뭔가가 비틀어진 걸지도. 만화나 소설에 보면……. 뭐, 이게 중요하겠냐마는.

    “내 생각엔 망량이 덕분인 거 같아.”

    “망량이?”

    “무왕!”

    망량이가 놀라 펄쩍 뛴다.

    “이 녀석, 던전의 길도 구석구석 잘 알고 첫 번째 수수께끼도 얘가 찾아냈었잖아.”

    “그렇네.”

    결이가 망량이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망량이는 낑낑거리며 슬쩍 내 뒤로 숨어 버린다.

    “이건 좋은 거겠지?”

    “응?”

    “이상해. 각성 전까지는 우리한테 좋은 일이라고는 생기지 않았으니까. 익숙하지 않달까.”

    “……그럴 만하지. 하지만 분명 좋은 일일 거야. 수수께끼 덕분에 넌 죽여주는 검을 얻었잖아? 이번엔 내가 엄청난 걸 얻을지도 모르지.”

    “그건 좋네.”

    결이 얼굴이 얼떨떨하다. 녀석이라면 그럴 만하다.

    각성 전의 우리에게 세상은 정말 너무할 정도로 가혹했으니까. 그나마 헌터가 된 이후로는 일이 잘 풀린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분명 거기까지 닿는 동안 고생은 하겠지만.

    “흐음, 별로 얻을 만한 건 없네. 이 비석에 마력이 엄청나게 느껴져. 하지만 추출할 수도 없고. 이건…… 수수께끼를 발동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 이 녀석이 본래부터 품고 있던 건 아닌 것 같고.”

    “그러니까 시스템의 개입이라는 뜻인가?”

    “응, 물론 마력을 가진 모든 것들이 시스템의 개입이겠지만……. 좀 더 인위적인 마력을 가지고 있으니 오빠가 표현한 대로 시스템의 후개입이라고 볼 수 있겠지.”

    한희는 비석을 쓸어 보다가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수수께끼를 풀어 보자.”

    셋이서 비석에 쓰인 글을 읽어 내려간다. 이전과 같이 모호하고 한 번에 알기 어려운 말이 쓰여 있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두 개의 별빛을 인도하라. 이게 무슨 말일까?”

    결이는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애초에 달이라는 건 태양의 빛을 반사해 내는 거잖아? 그런 원리와 비슷한 일을 하는 물건 두 개를 찾는 걸까?”

    “오, 환희 좀 하는데?”

    “이게 맞나?!”

    “흐음, 글쎄.”

    환희의 말도 일리가 있다. 달과 비슷한 것. 그리고 내가 얻은 힌트인 밤의 요정. 달과 밤과 요정.

    “이 던전에 문샤인 엘프가 있던가?”

    문샤인 엘프.

    수많은 엘프 종 중 하나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문샤인 엘프가 던전 안에서 발견된 경우는 몇 없다.

    게다가 매번 같은 몬스터 종족이 리젠되는 던전 안에서 몇 번 등장했다가도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 문샤인 엘프 자체가 딱히 엄청나게 강하거나 상대하기 어려운 몬스터는 아니지만, 던전 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희귀종이라는 거다.

    “아? 오…… 오호. 문샤인 엘프라. 그럼 말이 약간 맞아 들어가네? 문샤인 엘프의 특징이 바로 그거잖아. 달빛처럼 빛나는 눈.”

    문샤인 엘프는 예사 다른 엘프들에 비해서 독특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게 특징이다.

    어두운 피부, 어두운 머리색. 엘프들의 평균보다 훨씬 길어서 마치 뿔처럼 보이는 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건 빛나는 두 눈동자였다.

    우수에 차 반짝인다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눈은 마치 달빛처럼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데 어두운 숲속에서 보면 마치 반딧불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그 빛이 문샤인 엘프 개체마다 조금씩 다른 빛을 해 그냥 보기에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희소성이 있는 것이다.

    이쯤 설명하면 누구나 눈치를 채겠지만, 그래서 문샤인 엘프는 지구의 변태스러운 부자 수집가들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다.

    정확히는 문샤인 엘프의 ‘눈’만이지만.

    “그다음은…… 별빛을 부르는 주문, 이건 엘프어로 되어 있네.”

    “엘프어? 그림인 줄 알았어.”

    “그림이라니 누가 봐도 엘프어잖아.”

    환희는 결이에게 쏘아붙인 뒤 능숙하게 엘프어를 읽어 내려갔다.

    “엘라알하임. 음 데온 케사크라 아하크힘. 소하나케…….”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이야?”

    “어…….”

    어째 녀석의 표정이 어색하다.

    “그러니까, 이건…… 연애편지인가?”

    “응?”

    “아니면 유서일지도.”

    “그렇다면 여긴 무덤인 건가? 문샤인 엘프들 취향하고는.”

    누구의 무덤이 엔트의 엉덩이 밑이란 말인가.

    “수목장일지도.”

    “아.”

    그런 것도 있었지. 나만 이상한 생각을 한 거구나.

    “그래서 내용이 어떤데?”

    “흠,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남기는 유서라고 볼 수 있어. 엘라알하임이라는 엘프에게……. 내용은 절절한 사랑의……. 이걸 우정이라고 볼 수 있나?”

    “그냥 직역해 주면 안 되나?”

    “엘프어는 직역하기가 어려워. 뭐랄까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럼 해석은 어떻게 하는 건데?”

    “그냥 느낌상 해석인 거지.”

    “그럼 그거라도 해 줘.”

    「엘라알하임, 땅과 하늘과 그 너머까지도, 또 세상의 시작과 끝과 그 전과 후까지도 영원할 너와의 우정을 그리며.

    네가 궁금해하던 끝없는 호수를 보고 왔어. 우리가 알던 호수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호수는 너의 눈물 맛이 났고 너를 떠올리면 늘 그렇듯 나를 갈증 나게 했어. 아무리 마셔도 그리운 기분이 들 뿐이었지.

    선조에게 선물받은 우리의 힘으로 호수의 물을 정화할 수 있었지만, 하지만 난 곧 그 호수를 사랑하게 됐어. 마실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억지로 정화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

    눈물 속에도 많은 생명이 있었어.」

    환희가 비석의 내용을 원문과 해석으로 한 문장씩 번갈아 읽어 내려가는 동안 결이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더니 낯간지러운 내용을 참을 수 없는지 등을 홱 돌려 버렸다.

    확실히 비석의 내용은 얼굴이 화끈해질 만큼 낭만적이었다.

    그렇게 표현하는 게 최선이었다.

    결국 결론은 바다 여행을 간 자가 그곳에서 지내다가 병을 얻어 친구에게로 돌아오지 못하고 땅에 묻힌 뒤 그 위에 누군가 나무를 심어 줬다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이 엄청나게 비유적이고 달콤하고 서정적으로 쓰여 있었다.

    “진짜 그렇게 쓰여 있는 거야?”

    “뭐, 대충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렇지. 말했다시피 엘프어는 완벽하게 번역할 수가 없어서. 그래도 엘프어를 이만큼 읽을 수 있는 건 국내에 몇 안 된다고!”

    “너를 탓하는 건 아니야. 환희 너는 아주 잘했어. 다만 수수께끼라면 풀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이 내용으로 풀 수 있을지…….”

    솔직히 말하면 비석에 쓰인 달콤한 유서는 수수께끼와 크게 연관이 없어 보였다.

    “엘라알하임이라는 엘프를 데려오라는 건가? 하지만…….”

    무덤 위에 심어진 나무가 엔트가 될 정도면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심지어 그 엔트는 우리가 해치워 버린 바람에 물어볼 수도 없다.

    보통 나무가 몬스터가 될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엘라알하임이라는 문샤인 엘프를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시간도 시간이며, 문샤인 엘프 자체가 쉽게 만날 수 없는 존재들 아닌가.

    ‘수수께끼 난이도 극악이네. 심지어 엘프어를 못하면 해석을 못하는 거잖아? 아니면……. 그래, 굳이 이 유서는 관계가 없기에 엘프어로 쓰인 걸지도.’

    세 사람이 머리를 한데 모았다.

    그래도 좀처럼 수수께끼를 풀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류환희. 천재라더니, 어떻게 안 되냐?”

    “흐음, 이런 종류의 수수께끼는 나도 풀기 어려운걸.”

    결이의 물음에 환희는 약간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샤인 엘프에 관한 정보는 더 없나? 그들을 불러내는 방법이라든가.”

    “그런 게 있었다면 이미 문샤인 엘프들은 멸종되지 않았을까? 던전 최초로 멸종된 몬스터. 뭐 그런 걸로 유명해졌을 것 같은데.”

    “환희, 네 말도 일리가 있다. 하아, 답답하네.”

    이다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무오옹~”

    “음? 망량아?”

    “무오오~ 으모오~”

    내내 가만히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망량이가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짐승들이 내는 하울링이라고 하던가. 울음소리와 노래가 뒤섞인 외침은 전혀 성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졌다.

    노래까지 할 수 있다니, 엄청난 펫이라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던전의 깜깜한 밤중에 이렇게 울면 몬스터가 꼬이는 거 아닐까? 라는 걱정이 생겼다.

    던전 밖에서도 이런 경우에는 동물한테 습격당하기 쉬우니까.

    그런 자질구레한 생각을 하는 사이에 파슷. 저 멀리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