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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71화 (71/250)
  • 제71화

    제71편

    “던전이 클리어된 건가?”

    “한결 씨의 막타가 보스를 무찔렀나 봐요.”

    “생각보다 보스 몬스터가 그리 까다롭진 않았네요.”

    “뭐, 그래 봤자 등급이 그렇게 높은 곳은 아니니까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팀원들은 각자의 결론을 도출해 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훨씬 말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결이와 나는 알고 있다.

    “……어떻게 된 거지?”

    “글쎄. 네가 본 그대로인데.”

    결이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그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너무 이상한 상황이었다.

    던전의 보스 몬스터와 대화를 하는 상황. 게다가 나는 아무런 곳도 다치지 않았다. 결이가 캡슐을 파괴했는데도 스노우퀸이 위협적인 행동도 일절 하지 않았고 말이다.

    한결이는 눈치가 빠르니까 그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하다는 걸 알았을 거다.

    “일단은 성과가 그리 나쁘지 않으니까. 다시 와 보자.”

    성과가 나쁘지 않은가?

    스노우퀸과 대화를 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대단한 단서를 얻지는 못했다.

    ‘던전 보스 역시 시스템을 이길 수 없다.’

    단순한 던전 보스가 아니다.

    행성의 인류를 말살해 버린 대단한 AI조차도 이길 수 없다는 시스템.

    ‘거역할 수 없다. 라고 했어. 그렇다는 건 명령에 따르고 있다는 건가. 던전의 보스 몬스터 역할을 해내는 게 명령일까?’

    던전 안의 존재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던전의 콘셉트들은 실존하는 차원이라는 뜻인가. 게임 같은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무엇인가가 아니라?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번 던전에서 태규 아이템도 얻었으니까. 완전 아쉽지만은 않고. 물론 그 장난감은 스노우퀸에게 줘 버렸지만.”

    “그걸 줬어? 류환희에게 가져가기로 했잖아.”

    “하지만 녀석과 대화를 하려면 어쩔 수 없었어.”

    “흐음……. 집에 가서 녀석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자세히 말해야 할 거야.”

    “뭘 또 그렇게 비장하게.”

    “여기는 리젠이 일주일이라고 했던가.”

    “응 맞아.”

    “다시 와 보면 알겠지.”

    결이의 얼굴이 나보다 더 심각하다. 확실히 그 장난감을 줘 버린 건 조금 아쉽지만, 아마 스노우퀸에게 사용하는 것이 제일 효과가 좋았을 거다.

    아직도 던전에 관해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스노우퀸의 조언을 얻었으니까.

    ‘시스템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라라.’

    * * *

    “뭐~어!”

    놀란 류환희의 얼굴이 볼만하다.

    “그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그런 말을 했다고?”

    “너만 알려 주는 거야. 그러니까…….”

    “당연히 나만 알지! 누구한테 알려 주겠어?! 이걸로 뭔갈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류환희가 작은 주먹으로 가슴을 텅텅 쳐 댄다.

    “이상한 일이야. 정말 이해가 안 돼. 보스 몬스터와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니. 그런 건 보고된 적이 없어. 간혹 대화가 가능한 몬스터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대사’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궁금해하는 점을 알려 준 적은 없어.”

    “그 AI 역시 지금까지는 그랬지.”

    “어쨌든. 그 장난감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덕분에 그런 대화를 했으니 오히려 건진 게 많아. 하아!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는데. 왜 난 안 부른 건데?!”

    “그야…… 넌 아직 미성년자잖아.”

    “장난쳐어?! 나 생일 지났어!”

    “응, 생일 지났으면 정확히 19세인 거지. 아직 미성년자 맞고요.”

    “아 진짜 짜증 나. 만 나이! 개 복잡해!”

    “말투가 그게 뭐냐.”

    류환희는 툴툴거리더니 휴대폰을 열심히 두드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군에서는 내가 미성년자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고.”

    아. 그렇구나. 아직 각성자들의 인권이 그다지 챙겨지지 않았지. 지금도 우리 몸에는 생체 칩이 하나씩 박혀 있으니까 말이다.

    던전 연구에 푹 빠진 류환희라고 하지만 분명 던전은 미성년자에게 너무 위험한 곳이다.

    “류환…….”

    “아아! 어쨌든, 너무너무 기대된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나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휴대폰을 두드리는 환희의 손가락이 더욱 빨라진다.

    이래서야 시스템에게 들키지 말라던 스노우퀸의 당부는 지켜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환희의 협조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니까. 게다가 곧 우리 길드가 완성될 것 같고.’

    우리 길드.

    울림이 아주 좋다.

    예상했던 대로 대호 형은 굉장한 성적을 내면서 헌터 자격증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대로 과정을 깔끔하게 끝내고 류환희와 우리를 위해 길드를 만들어 준다면 정말 완벽하다. 다만 문제라면 형에게 너무 많이 꼬이는 언론사와 길드들이랄까.

    대호 형의 시달림이 거세질수록 왜 우리 때는 그렇게 조용했나 싶다.

    아니, 싶‘었’다라고 할까.

    “죄송하지만, 생각 없습니다. 끊을게요.”

    결이가 통화를 마무리하며 방에서 나왔다.

    “또 길드에서 연락 온 거야?”

    “응, 이제 모르는 번호를 안 받으려고.”

    “흠, 그래도 잘했어. 저번처럼 성질내지 않고 통화 잘했네.”

    “그거 칭찬이냐, 욕이냐.”

    “당연히 칭찬이지. 내가 너 욕하는 거 본 적 있어?”

    “……참 나.”

    어느 기점으로부터 결이 역시 여기저기에서 시달리게 됐다.

    이걸 좋은 현상이라고 봐야 할까?

    군에서 결이와 나에 대한 간섭을 줄였다는 말이 되는 건데…….

    간섭을 줄였다는 게 꼭 감시가 줄었다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류환희와 계속 어울리는 것 때문에 성 대위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도 사실이겠지만.

    이 정도라면 아마 더 윗선의 지시일 터.

    결이는 민망한지 머리를 벅벅 긁으며 환희의 휴대폰을 슬쩍 들여다본다.

    “뭐 하냐?”

    “별거 아냐. 오빠는 봐도 이해 못 해. 다음에는 나도 꼭 가. 알겠지?”

    “이게…….”

    “알겠지, 하준 오빠?!”

    환희가 결이를 무시한 채 내게 눈을 빛냈다. 솔직히 성 대위한테 들키면 제대로 미운털이 박힐 것 같지만.

    “대신 연구 열심히 하는 거다.”

    “아이 참, 그건 네가 말 안 해도 당연한 거고.”

    “너 어째 말이 점점 짧아진다?”

    “응? 내가? 무슨 소리야 오빠~!”

    환희가 꺄르르 웃는다. 곧 오빠라고 불리던 시간은 끝인가 보다.

    “그나저나 너는 또 왜 여기 있는 거냐?”

    내가 질문을 던진 상대는 염태규다.

    “아, 그게 아니라……. 형 덕분에 무기 얻은 것도 감사하고 그래서요.”

    “……아니, 감사한 건 감사한 건데. 네가 우리 집에 와서 설거지나 청소까지 할 일은 아닌데.”

    “저 이런 거 잘해요.”

    “아니 그러니까 네가 잘하는 게 요점이 아니고.”

    염태규의 손에 끼워진 분홍색 고무장갑을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염태규가 우리 집 설거지를 하고 있다니!

    회귀 전의 염태규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거품을 물고 쓰러지지 않을까 싶다.

    “고마운데……. 거참, 고맙긴 한데.”

    “그래. 솔직히 이 좁은 집에서 곤란하거든. 이렇게 북적이는 건.”

    잠잠하던 결이가 염태규를 노려보며 말한다. 하지만 염태규는 결이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회귀 전에도 결이는 염태규를 싫어하긴 했지만, 염태규는 결이를 무척 좋아했었는데 말이야.

    “어……. 맞다. 형들 이사하신다고 안 하셨어요? 이사하실 때 저 부르세요. 제가 짐 날라 드릴게요.”

    “아니 포장 이사 하면 돼. 태규야……. 그리고 우리는 지금 사는 데가 풀 옵션이어서 이사 가면 다 새로 사니까 짐도 별로 없고.”

    “그래도…….”

    그래도는 뭐가 그래도야 싶은데 다 큰 놈이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꼴을 못 본 척하기가 어렵다. 그래 도와주겠다는데, 이사 때 손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지.

    그런데 강아지 눈은 이제 그만해 줬으면 좋겠다.

    남자가 강아지 눈을 하고 치대는 건 결이만으로 충분하니까.

    “아. 그런데 그러고 보니 이사가 며칠 안 남았네.”

    스노우퀸을 만난 던전을 다시 갈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날짜가 겹친다.

    ‘으음, 급하게 잡은 이사라. 날짜도 못 미루는데. 어쩔 수 없네. 던전 방문은 예약해 뒀으니까. 하루 늦는다고 뭔 일이 생기겠어.’

    이사 날짜 변경보다 던전 사용 날짜 변경이 더 쉽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눈 깜빡할 사이에 이사 날이 다가왔다.

    “와, 이 아파트야? 진짜 좋다!”

    인화 선배가 활짝 웃으며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심지어 우리 집이랑 가까워졌네. 너무 좋다!”

    “우와……. 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분명 우린 같은 기수잖아요! 언제 이렇게……. 사실은 금수저였던 거죠?!”

    진보라 역시 잔뜩 부러운 눈을 빛냈다.

    그 외에 염태규며 대호 형과 보리까지.

    원래 집들이는 이사가 끝난 후에 하는 것 아닌가? 이 사람들은 대체 왜 이사 당일 아침 일찍부터 여기에 있는 것일까.

    시작은 염태규였다.

    염태규가 일손을 돕겠답시고 이사 날 방문하기로 했고 그 소식은 인화 선배나 진보라에게까지 흘러 들어갔다. 그러니 대호 형은 말할 것도 없다.

    모두 명분은 이사를 돕기 위함이다. 하지만 누가 봐도 집 구경.

    가구가 들어오기도 전에 집들이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

    그래도 뭔가 우리의 성공을 기뻐하고 축하해 주는 사람이 많다는 건 기분이 좋은 일이다.

    “어머머. 여긴 벽이 대리석……!”

    “잠깐, 둘이 사는데 집이 이렇게 클 필요가 있어? 청소하기 힘들겠는데.”

    “에이, 그렇게 넓지는……. 그렇죠. 남자 둘이 사는데 50평은 좀 그렇죠?”

    인화 선배는 틀린 말을 하는 적이 없다. 하지만 허구한 날 찾아와 대는 류환희와 염태규가 쉴 방이 필요했고 또 이렇게 모두가 모일, 넓고 쾌적한 공간이 필요했다.

    매번 인화 선배네에서 신세를 지는 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정말 두 분 대단해요.”

    지원이 형도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우리 인화도 나 이렇게 멋진 집에서 살게 해 주는 거야?”

    “어머, 이 아저씨가 제정신이야? 이게 얼마짜린데.”

    인화 선배가 지원이 형 어깨를 찰싹 때린다.

    “커억.”

    지원이 형이 옆으로 고꾸라진다.

    “어머!”

    “인화 누나는 이상하게 지원이 형한테만 힘 조절을 못하더라?”

    “무슨 말이야~! 정말! 아니야~!”

    선배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지원이 형을 일으킨다. 하여간에 금슬이 너무 좋다니까.

    “우와아~! 궁궐 같다!”

    “최고다~! 아빠! 우리 맨날 놀러 오자!”

    보리와 하늘이, 바다는 거실을 뛰어다니느라 얼굴이 빨개지고 있다.

    “이렇게 애들까지 와서 미안하네.”

    대호 형이 머쓱한 얼굴로 볼을 긁는다. 대호 형네는 인화 선배네가 아니면 딱히 아이를 맡길 곳이 없기에 형이 오면 보리는 언제나 함께다.

    “어차피 방 하나는 게스트 룸이라서요. 거긴 천천히 짐 넣을 거니까 본격적으로 이사 시작되면 애들은 거기 있으면 돼요. 정말 곤란하면 제가 오케이 했을 리가 없잖아요.”

    사실 오늘이 이사 날이라고는 해도 짐이 정말 없다.

    각성자가 되기 전까지 한결이와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고아였기 때문에, 게다가 엄청나게 가난했기 때문에 딱히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었다.

    집에는 꼭 필요한 것만 있었다.

    물건을 새로 살 땐 항상 머릿속에서 되뇌던 말은 ‘이게 없으면 죽나?’였으니까.

    오늘도 이 새집에 들어올 거라곤 내 것만 하면 패딩 하나에 청바지 두 개, 여름 티셔츠 몇 장. 그 외에는 속옷이나…… 자질구레한 것 몇 개가 전부다.

    그 외의 물건은 전부 들어올 때부터 있던 옵션이고 휴대폰이야 주머니에 넣으면 다다.

    그래서 사실 포장 이사를 할 필요도 없었다. 인화 선배가 차로 한 번에 실어다 줄 수 있는 정도.

    이렇게 다시 곱씹어 보니까 정말 짐이 없다.

    나에 비교해 집이 너무 큰 것 같다.

    “그렇지. 하준이 너는 정말 딱 부러지니까. 그런데 집 진짜 좋다. 대단해.”

    “하긴 그렇죠. 여긴 화장실도 예전 집 거실만 하다니까요.”

    시선 끝에 결이가 보인다.

    결이는 천천히 집을 둘러보며 하나하나 손으로 쓸어 보고 있었다. 분명 계약할 때 같이 와서 이미 다 본 것들인데도 마치 처음 여기에 왔을 때처럼, 아니 그보다 더 벅차 보인다.

    “걱정하지 마세요, 형. 제가 와서 청소 싹 해 드릴 거니까.”

    염태규가 옆으로 붙으며 엄지손가락을 척 올렸다.

    “괜찮아, 태규야. 주기적으로 방문할 청소 업체 계약할 거야…….”

    박스 몇 개 옮기고 함께 자장면이나 먹고 웃고 떠들다가 헤어져야지. 분명 즐거울 거다.

    그러니까 분명 요 하루 이틀 정도는 아주 행복하여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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