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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70화 (70/250)
  • 제70화

    제70편

    ‘움직여 볼까.’

    휙! 휘익!

    헤르메스의 신발을 이용해 훨씬 큰 움직임으로 이동했다. 그랬더니 카메라들이 나를 쫓아온다.

    ‘내가 맞잖아?! 왜?!’

    그렇다고 내게 공격이 집중된 건 아닌데 말이다.

    ‘흐음, 그럼 이렇게 하면 어쩔 테냐.’

    카메라 하나 앞으로 훌쩍 다가갔다. 렌즈는 놀란 기색도 없이 똑바로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스노우퀸.”

    그 순간 공간에 있던 모든 기계 몬스터의 움직임이 멈췄다.

    “어?”

    “뭐, 뭐야?”

    “얘네 왜 이래?”

    파티원들이 놀라 주위를 살핀다.

    나는 기세에 눌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토냐는 어떻게 됐지?”

    위이이잉.

    거대한 공간의 천장이 열린다. 그리고 마치 샹들리에가 내려오는 것처럼 거대한 기계체가 하강한다.

    그건 원기둥 같은 형태의 기계 덩어리다.

    지이이잉…….

    기계는 곧장 내 머리 위까지 내려온다.

    철컥.

    “은하준!”

    결이가 외치는 것과 동시에 기계에 삼켜졌다.

    * * *

    삼켜졌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원기둥이 분해되더니 그 안의 공간에 빨려 들어갔다. 그러고는 온통 어둠이다.

    하지만 신체가 불편하다거나 고통이 수반되지는 않는다.

    「너는 누구지?」

    중성적인 목소리가 들린다.

    한 번에 이해할 수 있게 한국어로 들린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놀랐다.

    물론 기계에 삼켜지기 전에 나온 방송 같은 것도 한국어로 들리긴 했지만, 그건 입력된 언어처럼 느껴졌기에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너는 누군데?”

    「내가 먼저 물었다.」

    뭔가 유치한 대화다. 하지만 상대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전혀 없어서 약간 소름이 끼친다.

    “나는 은하준.”

    「네 이름을 묻는 게 아니야. 토냐에 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물은 거다.」

    “사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토냐가 대체 누구지? 너와는 무슨 관련이 있는 거야. 왜 네가 토냐의 이름에 반응하는 거지?”

    「네가 아는 게 없다면 더는 대화가 무의미하군. 너를 제거하겠다.」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웠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결정하고 곧 이행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젠장, 이대로 죽을 수는 없으니 뭐라도 내뱉어야지.

    “잠깐! 그만! 네가 스노우퀸인가? 토냐의 영원한 친구?”

    「……대체 뭘 알고 있기에 그런 결론을 내린 거지.」

    “여기 들어오는 입구의 비밀번호가 토냐의 생일이잖아.”

    「…….」

    목소리는 대답이 없었다.

    스스로 허를 찔렸다는 듯한 침묵. 이런 반응은 무척이나 인간적이다. 인간일 리 없는데도.

    그리고 주위가 천천히 밝아졌다.

    기계 캡슐의 안이라는 게 확실하게 인지된다. 공간 자체는 꽤 넓어 갑갑하진 않다. 하지만 신체를 완전히 자유롭게 움직이기는 힘든 정도. 거의 누운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사방에서 여러 가지 불빛이 반짝이고 시선 정면에는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있는데 알 수 없는 그래프들이 요동치고 있다.

    「내 시험 버전 이름이 스노우퀸이다. 현재는 SQ.42591123이다.」

    “……토냐의 친구가 맞고?”

    「토냐는 나를 창조한, 나의 설계자다. 나는 인류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나는 이 행성에서 가장 뛰어난 연산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컴퓨터이다.」

    무미건조한 목소리는 마치 처마 밑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차분하게 들려왔다.

    인류.

    목소리가 말하는 인류란 것은 무엇일까?

    나와 같은 모습을 한 인간들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에 존재했던 인간과 같은 어떤 생명체를 뜻하는 단어일 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당장 이곳이 지구인지, 인류라고 말하는 존재들은 어떻게 된 것인지 묻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이 녀석은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을 것 같다.

    “토냐는 어떻게 됐지?”

    「그게 왜 궁금하지. 나는 왜 너의 질문에 대답해야 하지.」

    맞는 말이다. 이 모든 게 어떻게 됐건, 스노우퀸에게는 불필요한 일일 거다.

    하지만 내게는 중요했다.

    뭐라도 단서를 더 얻어 내야지만 던전의 비밀을 알 수 있다.

    “그래야 토냐를 기억하는 사람이 생기지.”

    「…….」

    목소리는 대답이 없다. 과연 스노우퀸은 뭐라고 답할까?

    행성 최고의 연산 장치라는 것치고는 꽤 긴 정적이 흘렀다.

    「토냐는 자연사했다. 나는 은퇴 후 그녀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아무런 행사도 하지 않았다.」

    건조한 목소리. 그렇다면 왜 이 인공지능은 왜 토냐라는 이름에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걸까.

    심지어 이 던전을 공략할 때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다.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걸까.

    다행히 이 녀석은 토냐에 관해서 말하기를 거부하지 않는 눈치다.

    “정확히 토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토냐는…….」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SQ는 다시 뜸을 들였다.

    「토냐는 나의 프로토타입을 만든 뒤 내가 정상 운영되기 전에 스칼락토사에서 퇴사했다. 그녀가 사내 경쟁에서 밀려, 나에 관한 소유권을 모두 잃었기에 나는 이후 온전히 스칼락토사의 소유로 남았다.」

    「그녀가 퇴사한 이유는 사내 정치 싸움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함에 빠져 스칼락토사에게 많은 배상금까지 물어야 했다. 한 번도 게으르게 산 적이 없었지만, 그녀는 말년을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마감해야 했다. 내가 아는 그녀의 정보는 여기까지다.」

    “정말 이게 끝이야?”

    「물론이다. 그녀에게는 연구 외에 다른 특별한 삶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남편도 자식도 없었다.」

    “……내가 그렇게만 기억하면 되는 건가?”

    스노우퀸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쩐지 이 기계가 측은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분명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스노우퀸은 토냐에게 어떤 감정이 있는 게 분명했다.

    기계가 감정을 가질 수 있다면 말이다.

    “너는 인류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그 인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인류는 보완되었다.」

    “응? 하지만…….”

    「그들의 종말이 필요한 보완의 최선이다. 그들은 더 종을 유지할 가치가 없다. 그들이 헛되이 소모하는 에너지와 평생 감내할 고통은 너무나 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SF 영화에서 나오는 악당 인공지능이 할 법한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영화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기계는 서로 미워하지 않는다. 약한 존재를 깔보거나 서로 속이지 않는다. 모두가 각자의 맡은 몫에 최선을 다하며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서로 속이고 배반하고 밀어 넘어뜨리고 약한 자들을 짓밟고 서로의 것을 강탈하고 싸우고 분란을 만들고 파괴하고 소모한다. 합리적이지 않다.」

    인터넷을 통해 도덕적 기준 없이 모든 정보를 학습한 AI는 다 이렇게 되는 걸까?

    X벤저스에 나오는 X트론처럼.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이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AI는 현실에서 겪어 보지도 못하고 죽는다고.

    물론 얼마나 오래 살아야 그런 AI를 만나게 될진 모르지만.

    “뭐, 이미 여기선 벌어진 일이니까. 내가 왈가왈부할 수 없지.”

    나는 허리에 차고 있던 가방을 뒤적거려 로봇 장난감을 꺼냈다.

    “이건 글쎄. 아무 의미 없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연구를 위해 던전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야 하는데, 왜인지 지금, 이 순간 스노우퀸을 위해 건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감상적인 걸까.

    하지만 이걸로 스노우퀸에게 뭔가 더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건.」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캡슐 아래에서 뭔가 찰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슬쩍 시선을 내려 보니 로봇 팔이다. 병원에서 수술할 때 쓰는 것처럼 생긴 거 말이다.

    지이잉.

    찰칵.

    로봇 팔은 천천히 내 손에 들린 장난감을 쥐어 올렸다.

    “갖고 싶다면 선물로 줄게.”

    「내가 왜 이 물건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지?」

    “그게 중요한가?”

    「…….」

    로봇 팔이 천천히 움직이며 장난감을 뒤집어 본다. 그리고 이내 발바닥에 쓰인 글을 발견한다. 한 번 들어 봤던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외에는 아주 조용하다. 스노우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실패한 걸까? 그렇다면 애초에 받아들지 않았을 테지.’

    어린 토냐의 녹음이 끝나고 캡슐 안의 불빛들만 깜빡이기를 잠시. 드디어 스노우퀸이 음성을 들려주었다.

    「네가 이 행성의 인류가 아니라는 건 안다. 너희들은 항상 그렇지. 이토록 반복되는 허무에 질리지도 않고. 그만 돌아가는 것도 좋겠지.」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다.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지금 우리를 풀어 주겠다고 말하고 있는 건가?

    시스템상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다.

    도대체 던전은 무엇이고 시스템은 뭐길래. 지금 분명한 건 스노우퀸이 이런 제안을 할 만큼 토냐에게 깊은 감정이 있다는 것뿐이다.

    「선물에 대한 보답치고는 크지. 하지만 의문을 가지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 너에게 좋을 테지. 지금 당장이라도 널 죽일 수 있으니까.」

    확실히 스노우퀸의 말은 맞다. 나는 지금 방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태니까. 물론 스노우퀸이 대화가 가능한 상대가 아니었다면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았을 테지만.

    “묻고 싶은 게 있어.”

    「욕심이 많군.」

    “난 알아야겠어. 이 던전이 대체 뭔지. 넌 뭔가 알고 있지? 계속 반복된다느니. 항상 그렇다느니. 던전 공략을 위해 우리가 온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보스 몬스터인데도 이렇게 대화가 가능하고.”

    「그만둬. 시스템을 이길 수 없을 거다.」

    “그 말 역시 방금 내가 한 말을 뒷받침해 주는 것 같군.”

    「쉿.」

    순간 스노우퀸의 쉿 하는 소리가 모든 공간을 울렸다. 캡슐 내부에서만 울린 게 아니었다. 뭐랄까. 더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귀를 거치지 않고 뇌를 그대로 때리는 소리라고 할까.

    「내가 이 정도의 발언이 가능한 건 행성 관리자급 AI이기 때문이다. 우회로를 뚫어서……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시스템을 완전히 거역할 수 없기 때문이지. 내가 알려 줄 수 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다. 시스템을 조사하려거든 아주 비밀리에 시도하라는 것이다.」

    팟, 파츳.

    스파크가 튄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캡슐이 강제적으로 열린다.

    「네 친구는 널 죽이려는 모양이군.」

    뜨거운 열기와 함께 눈앞에 보이는 건 한결이다.

    “은하준! 괜찮아?!”

    “난 괜찮아! 그렇지만……!”

    「나 역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 본체는 캡슐도 아니고 너희가 몬스터라고 부르는 그 기계들도 아니지. 너희처럼 육신으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스노우퀸의 웅웅대는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하긴 한 행성을 멸망으로 이끌 정도의 AI가 이 정도 공격에 부서지는 건 안 될 말이지.

    그럼 그간 보스 몬스터로서 쓰러진 건 뭐였을까.

    「너는 다시는 날 만날 수 없을 거다. 이미 시스템이 눈……치를……. 치지직…….」

    거친 노이즈가 뒤섞이더니, 한결이 뒤로 신비로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포털!”

    “아, 아니?! 우리 아직 공략 끝나지 않았잖아요?”

    “어떻게?”

    팀원들이 당황하는 사이에 우리 모두 포털에 빨려 들어갔다.

    포털에 삼켜지면서 마지막으로 살펴본 던전 내부에는 움직이는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슈우으으으!

    털퍽!

    “으아아!”

    “이게…… 뭐죠?”

    거의 포털이 뱉은 침처럼 바닥으로 내팽개쳐진 팀원들이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띠링. 띠링.

    던전을 클리어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에 관한 알림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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