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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68화 (68/250)
  • 제68화

    제68편

    “그래, 이런 거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

    아주 낡은 장난감이다. 요즘도 이런 장난감이 있나 싶을 정도로 구식이다.

    그것도 쓰레기 더미에 파묻힌 버려진 장난감이라니.

    “무앙!”

    “그러니까 이거에 뭔가가 있다는 거지?”

    “망! 망!”

    조심스레 로봇 장난감을 집어 올린다.

    “조심해.”

    결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따라붙지만, 장난감에서는 아무런 기색이 없다.

    “응? 여기에 뭔가 적혀 있네.”

    로봇의 발바닥에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 새긴 것 같은 글자가 있었다.

    심지어 그건 영어로 쓰여 있었다.

    “토냐의 영원한 친구.”

    이름을 소리 내서 입에 담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는 분명 던전 안이고 인간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곳인데 토냐의 영원한 친구라니.

    마치 사람이 살았던 곳 같잖아.

    생각해 보면 이곳의 빌딩과 도시들은 지구의 문명과 흡사했다. 분명 완전히 멸망해 버린 도시의 형태지만, 도시는 도시니까.

    그러니까 던전 안에서도 사람이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응?”

    로봇 장난감 다리 옆 부분에 조그만 버튼이 있다.

    ‘눌러 봐도 괜찮겠지.’

    달칵.

    로봇 장난감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부정확한 발음이지만, 분명히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로 녹음되어 있었다.

    로봇의 이름은 스노우퀸이고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로봇이고 토냐와는 영원한 우정을 맹세한 사이라고.

    흔히 아이들이 애착 장난감에 할 법한 귀엽고 로맨틱한 음성이 녹음되어 있었다.

    ‘수수께끼가 아닌 것 같은데.’

    업적을 살핀다. 이게 수수께끼라면 분명 힌트를 줄 테니까. 하지만 역시 업적 창도 잠잠하다.

    ‘수수께끼가 아니라면 이걸 봐야 하는 이유가 있나?’

    망량이를 보지만 해맑은 얼굴을 해 보일 뿐이다.

    ‘괜히 기분만 이상해졌잖아.’

    장난감을 내려놓으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쉽게 놓이지 않는다.

    “가지고 가게? 수수께끼는 맞아?”

    “아닌 것 같아. 아무런 단서가 없는걸.”

    “흠.”

    “이상하지 않아? 영어잖아.”

    “……네 말이 맞아. 이곳은 던전 안인데 말이야.”

    “왜 이 장난감이 던전 안에 있는 걸까. 그때 거신들을 상대했던 때와는 또 달라. 수수께끼 두 번의 한글과는 다른 느낌이야.”

    “이건 수수께끼도 아니라며.”

    “끄으응……. 하지만 이유를 알아내기는 현재로선 불가능하겠지.”

    어깨를 으쓱이며 허리에 차고 있던 가방에 장난감을 슬쩍 넣었다.

    어쩌면 류환희의 분석 스킬로 뭔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뭔가 찾았나요?”

    “아무래도 허탕인 것 같아요.”

    결이까지는 괜찮겠지만, 다른 파티원들에게 쉽게 로봇과 음성을 들려줘선 안 되겠지. 확실히 믿을 만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내용이다.

    정부에 알리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조사해 줄까?

    류환희가 한 말이 떠오른다.

    정부가 제대로 던전에 관한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것 역시 류환희의 말일 뿐이다.

    어쨌든…….

    “그래요? 뭐 충분히 쉴 수 있으면 좋죠. 오늘 생각보다 더 빨리 공략이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괜찮아요.”

    “맞아요. 하준 씨도 좀 쉬어야죠.”

    다행히도 파티원들은 지금 쉬어 가게 된 것에 큰 불만이 없는 듯했다.

    “전 괜찮습니다. 보다시피 이 녀석이 있어서 회복이 빠르거든요.”

    “무왕왕!”

    “하긴. 펫이 있다니 정말 부러워요.”

    파티원들은 망량이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망량이는 마치 작은 동물처럼 쪼르르 그들에게 다가가 주위를 넘실거리며 움직인다.

    “사실 펫을 얻는 건 천운이라고 하잖아요.”

    “맞아. 보통 헌터들은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죠.”

    “S급이라도 마음대로 가지지 못한다고 하던데.”

    “하준 씨 정말 부러워요.”

    이런 반응들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회귀 전에는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할 일 같은 건 없었으니까.

    한결이 친구여서 좋겠다 정도?

    “감사합니다. 하하하. 저도 제가 운이 참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하준 씨도 열심히 하고 뭔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것 같아요.”

    “오오, 맞아요. 여기 던전에 처음 오는 거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조사하시고. 심지어 실력도 대단하시던데. 전혀 D급으로 안 느껴진다고요.”

    “맞아! 레벨이 몇이라고요? 인생 1회 차 맞아요? 난 이런 사람들 너무 신기하더라.”

    파티원들은 손뼉을 쳐가며 자기들끼리 조잘거렸다.

    어쩐지 민망하다. 주제를 바꿔 봐야지.

    “여러분은 던전에 저보다 더 자주 다니셨으니까. 저보다 보신 게 많으실 거 같아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사실 여기 있는 누구보다 내가 더 던전 경험이 많을 테지만.

    혹시라도 누군가 방금 발견한 로봇처럼 이상한 낌새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혹시 던전이 현실이랑 비슷하다는 생각 못 해 보셨어요?”

    “응? 현실이랑?”

    “사실 이 빌딩들은 너무 우리 세계랑 비슷하잖아요.”

    “아, 맞아요. 그렇긴 하죠.”

    파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우리 현실에서는 이런 미친 전투 기계들은 없지만 말이에요. 아닌가? 있나?”

    “적어도 이렇게 생긴 녀석들은 없을걸요. 하하하.”

    “음, 예전에 뉴스에서 봤어요. 정부에서도 이 던전은 꼼꼼하게 수색하고 연구하고 뭐 그랬다는 거 같아요.”

    진보라가 오래된 기억을 더듬는 듯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뭐, 찾아낸 건 없죠. 여기 던전에서 밝힐 수 있는 건 다 밝혀졌다고 들었어요.”

    물론 그렇겠지. 물론…… 그럴 거다.

    그러니 내가 회귀하기 전까지도 별다른 이야기가 돌지 않았던 거겠지.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누구라도 이 장난감 로봇을 발견했다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아무도 이걸 발견하지 못했다고…….’

    우리는 던전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이 빌어먹을 괴현상에 진 것일지도 모르는데.

    솔직히 갑자기 인류 멸망 퀘스트라니. 너무 황당하잖아.

    ‘나 혼자라면 불가능하겠지만 류환희와 함께라면 뭔가 밝혀낼 수 있을지도.’

    어쩌면 오늘 발견한 이 로봇 장난감이 큰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단은 류환희에게 제일 먼저 스킬을 사용하게 해 보고 그녀가 알아내지 못한다면 한시라도 빨리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겠지.

    “그럼 계속 가 볼까요.”

    “좋죠.”

    “갑시다.”

    * * *

    “허억, 헉. 이제 웨이브가 완전히 종료된 거 같아요.”

    한차례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아 낸 팀원들이 주위를 살핀다.

    이미 거대한 건물 내부 깊숙이 들어왔다. 주변은 점점 더 기계들과 우거진 나무들이 스산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한때 최고로 발달했던 문명이 무너져 내린 마치 무덤 같은 공간.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것인지 통로마다 각종 기계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다.

    “후우, 이번에 제가 좋은 아이템을 얻었는데요.”

    파티원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츠츠츳.

    그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소환하자 투박한 모양의 건틀릿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음, 보호구처럼 생긴 무기네요? 그런데 저도 이런 형태의 무기는 사용하지 않아서.”

    “우리 중에 건틀릿을 사용하시는 분?”

    “사용하기는 하는데 방어구로 쓰죠, 대부분.”

    “흐음……. 아이템 특성을 좀 볼까요.”

    “응? 원소 속성 능력 강화라는 게 붙어 있네요.”

    “호오…….”

    “엄청나게 나쁜 아이템은 아니지만.”

    헌터 자격증 4기 팀원들을 제외하고는 이미 장비를 제대로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욕심을 내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에는 습득한 사람이 가져가 상점에 팔아 본인이 가지거나 판매한 돈을 팀원끼리 나누기도 했다.

    “흐음…….”

    “태규가 한번 써 볼래?”

    “네?”

    내 말에 염태규는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었다.

    “원소 계열 능력자인 데다가 제대로 된 무기가 없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오! 좋네요. 그럼 태규 씨가 쓰면 되겠네. 심지어 딜러잖아요. 딜러는 괜찮은 무기 하나씩은 맞춰야지.”

    “인화 씨 경우에는 공격 스타일하고 잘 안 맞을 것 같고요.”

    “그런 것 같네요. 저도 저 대신에 태규가 쓰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파티원들의 반응에 염태규의 얼굴이 점점 더 붉어졌다.

    “일단 착용이라도 해 봐.”

    나는 아이템을 집어 들어 염태규에게 건넸다.

    “가, 감사합니다.”

    염태규는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아이템을 착용했다.

    “음? 어떻게 쓰는…….”

    후와악!!

    염태규가 착용한 건틀릿을 감싸는 불꽃.

    “어어어!”

    “오, 저런 식으로 원소 속성이 강화된다는 거구나.”

    “멋진데!”

    “불길을 조절할 수 있겠어?”

    건틀릿에 붙은 불에 당황하던 염태규가 숨을 크게 들이켜고는 미간을 찌푸리자 건틀릿에서 솟았던 불길이 잠잠해졌다.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화르륵! 스슷. 화르륵! 스슷.

    그런 행동을 두어 번 해 보더니 비로소 염태규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걸렸다.

    “좋네.”

    “잘됐다.”

    “태규 좋겠네.”

    염태규는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푸웅!

    건틀릿에서 작은 불길이 솟았다가 사그라든다.

    ‘원래 염태규가 사용하던 무기랑 좀 다르긴 하지만 저걸로 초반 성장하는 데 꽤 도움이 될 거다. 잘됐어. 안 그래도 무기를 마련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염태규 역시 회귀 전이랑 다른 방법으로 성장하게 될 테니까. 사용하는 무기라든지 전투 포지션 등도 뭐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다들 저길 봐요!”

    인화 선배가 가리킨 곳에는 커다란 문이 있었다.

    주위로 얽힌 나무 사이로 키패드 같은 것이 보이기도 하고 주변에는 감시 카메라처럼 보이는 것들이 다닥다닥 붙은 것이 최신식 자동문처럼 보인다.

    “탱크도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문이네요.”

    “의미심장한데, 아마 보스 룸이겠죠?”

    “글쎄, 열어 봐야 하지 않겠어요? 뭐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좋아요.”

    “슬슬 보스 룸이면 더 좋고요.”

    “이미 공략된 적 많은 보스니까. 하준 씨는 이미 알고 계시겠죠?”

    “물론요.”

    이 너머에 보스가 있다.

    던전의 테마와 같이 보스 역시 기계 몬스터다.

    아니, 기계들을 관장하는 인공지능이라고 해야 하나? 녀석의 관리 시스템을 파괴하면 던전은 공략된다.

    “일단 문을 열려면 키패드에 알맞은 숫자를 입력해야 하는데 사실 키패드를 망가트리기만 해도 문이 열리기는 해요.”

    나는 제대로 설명해 주기 위해 문 옆에 달린 키패드로 이동했다.

    키패드는 한국에서 흔한 전자 도어락처럼 생기기도 했는데 특별한 부분은 없다.

    “응?”

    분명 없다고 생각했는데 키패드 윗부분에 작은 마크가 새겨져 있다.

    “눈송이.”

    큰 의미는 없겠지만, 그냥 이 건물이나 로봇을 만든 회사의 마크가 아닐까 정도 생각되는 문양이지만 어쩐지 시선이 확 끌리는 기분이 들었다.

    “눈…….”

    지금, 이 순간 허리춤에 찬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로봇 장난감이 생각나는 건 우연일까?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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