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제66편
“레벨이 올랐어.”
결이는 곧장 내게로 달려왔다.
“잘했어!! 역시 우리 결이 최고다!”
어깨를 팡팡 두들겨 준다. 이때를 얼마나 기다렸는가.
“새 스킬이 생겼어!”
그래, 나도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말이야.
결이는 한동안 스킬 창을 훑는지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흰 이가 다 드러날 정도로 기쁜 얼굴로 미소 지었다.
“괜찮은 공격 스킬인 것 같은데.”
괜찮은? 그 정도가 아니다. 방금 얻은 건 끝내주는 스킬이라 이 말이지! 결이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중에서도 아주 강력하게 업그레이드되는 스킬이다.
“스킬 이름이 뭔데?”
“우중격침.”
크으. 역시 이거지.
결이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달까. 결이가 사용하는 스킬 중에 나는 이게 제일 멋지다고 생각한다.
하늘에 만들어지는 거대한 번개의 검이 마치 소나기가 내리듯 전장에 꽂히는 폭발적인 파괴력을 지닌 스킬!
“자, 모두 레벨도 오르시고 정비할 게 좀 있죠?”
내 말에 팀원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보다 합이 훨씬 잘 맞아서 금방 끝난 것처럼 느껴져도 첫 전투보다 훨씬 많은 수의 드로이드를 상대했고 중간 보스 녀석까지 처치했다.
체력도 마력도 조금씩 회복시킬 필요가 있는 거다.
어차피 이 던전은 빨리 깰 수 없는 곳이니까. 침착하게 여유를 가지고 공략해야 한다.
‘생각보다 결이가 빨리 레벨 업을 해 주었어.’
팀원들이 하나둘씩 모여 쉴 자리를 만들고 있는 사이에 나는 결이에게 몰래 손짓했다.
“줄 게 있어.”
“응?”
결이는 놀란 눈으로 얌전히 내 뒤를 쫓아왔다.
“놀라지 말라고.”
나는 인벤토리 창을 조작해 아이템을 소환했다.
츠츠츳.
소환이 끝나자 결이의 얼굴이 조금 굳어진다.
“……이게 뭐야?”
“매드 크리피 아이볼의 외안근!”
“아니, 그건 알겠는데. 이걸 왜 나한테…….”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아니, 정확히는 왠지 알 것 같은데 그 실체를 알아차리고 싶지 않은 얼굴이랄까.
자신의 운명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걸 먹어야 해.”
“뭐라고?!”
결이는 거의 기겁하다시피 하며 내 곁에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이걸 어떻게 먹어.”
“왜 못 먹어. 몬스터 중에 식용 가능한 것들도 있다는 거 몰라?”
“알지. 아는데……. 이걸 지금, 여기서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결이의 표정은 점점 사색이 되어 간다.
그도 그럴 것이 매드 크리피 아이볼의 외안근은 마치 끔찍한 저주에 걸린 고깃덩어리처럼 생겼으니까.
검붉은 살코기 위로 녹색의 끈적한 막이 있고 겉으로 드러난 핏줄 역시 불길하게 검다.
“형한테 다 방법이 있지.”
“……꼭 먹어야 해?”
목소리에 어린 걱정. 미안하지만 결아, 꼭 먹어야 한단다.
우중격침 스킬을 얻고 난 뒤에 이 매드 크리피 아이볼을 먹게 되면 스킬에 특성이 하나 더 붙는다.
이걸 알아낸 건 정말 우연한 기회였다.
회귀 전 매드 크리피 아이볼의 외안근을 얻으려 얼마 전 방문한 던전보다 훨씬 상위 던전에 갔을 때였다.
거기서는 완전 하급 몬스터로서 매드 크리피 아이볼이 등장했는데 외안근을 얻은 채로 공략을 진행하던 도중 식량이 떨어진 거다.
‘그때 진짜 몬스터 때문이 아니라 굶어서 죽을 뻔했지.’
던전은 지금까지와 같이 하루 만에, 아니면 단 며칠 만에 공략 가능한 것들이 있지만 몇 달이 걸리는 던전도 존재한다.
하필이면 그때 던전이 공략에 3개월 이상 걸리던 곳이었다. 식량을 충분히 챙긴다고 생각했는데 보스 몹을 앞두고 식량이 떨어져 버린 것.
‘그때 팀원 중에 진짜 미친놈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하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
이미 던전 깊숙한 곳에 들어왔기에 되돌아 나갈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때 한 팀원이 제안한 거다.
우리 그냥 몬스터 고기 먹읍시다.
사실 몬스터 고기는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독과 불순물 제거가 까다로워 현장에서 바로 취식용으로 쓰기에는 불가했는데 팀원은 자신 있게 우리를 설득했다.
‘뭐랬더라, 자기가 각성 전에는 20년 경력의 주방장이라고 했던가. 아, 그래. 헌터 일을 하면서도 요리업을 계속하고 있다고도 했지.’
팀원은 곧장 식용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은 몬스터 부위를 선별하고 밑 작업을 시작했다.
‘그걸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상관없어.’
결이의 미덥지 않은 표정을 뒤로하고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몇 개를 더 꺼낸다.
“그건…… 슬라임이야?”
“응, 그때 같은 던전에서 얻었지.”
“슬라임도 먹어야 하는 거야?”
“아니, 이건 아이볼의 외안근 겉 부분에 있는 불순물을 처리해 줄 거야.”
“욱…….”
첨벙.
슬라임 덩어리가 담긴 냄비에 외안근을 담근다.
취이이……. 슬라임의 용해력을 이용해 겉면의 기름과 불순물을 제거하는 거다.
“인벤토리에 냄비까지 챙겨 오다니.”
“앞으로는 이거저거 많이 챙겨야 해. 날이 갈수록 당일치기 던전의 수는 줄어들 거니까.”
“……공략에 몇 개월씩 걸리는 던전이 있다는 걸 듣긴 했지만.”
“이러니까 뭔가 여행 온 것 같고 좋지 않냐? 아주 어릴 때 가족들이랑 캠핑 갔던 기억이 나네.”
내 말에 결이가 픽 웃더니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별로 배고프지 않은데.”
“너 배 채우라고 하는 게 아냐.”
“그럼?”
“……여기저기에서 시장조사를 했다는 말씀. 전격계 각성자에게 매드 크리피 아이볼의 외안근이 보양식이래.”
“우와……. 진짜 싫다.”
“특히나 레벨 10 때가 적정기라는 모양이야. 그러니까 꼭 먹어야 한다?”
“보양식…….”
결이는 슬라임 속에서 거품을 내는 아이볼 외안근을 보면서 중얼거린다.
“서포터 타입한테 보양식은 뭔데?”
“응?”
느닷없는 질문에 약간 멍해진다. 그런 게 있나? 그런 걸 먹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잘 모르겠는데.”
“내 건 알면서 네 건 모른다고?”
“없는 것 같은데.”
“찾아보긴 했고?”
그 많은 종류의 몬스터 고기를 다 먹어 보진 못했으니까…….
애초에 결이한테 이 아이템이 필요하다는 것도 아주 우연히 발견하게 된 거니까.
그때 그 요리사 팀원 덕분에 결이는 아이볼 외안근으로 만든 고기볶음을 먹었고 스킬에 특성을 얻었다.
그런 우연한 기회는 두 번 일어나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네 건 내가 찾아봐야겠다.”
결이의 말에 약간 미간이 찌푸려진다. 나도 몬스터 고기 싫어하는데…….
“자, 이제 슬슬 걷어 내고.”
냄비를 기울여 바닥으로 슬라임 액을 쏟는다. 핵이 없는 몸체 부분이니 아무렇게나 버려도 우리를 공격할 일은 없다.
던전 내부의 환경에 좋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 고기를 씻는 게 성수야?”
“어, 금방 알아봤네?”
“당연하지. 이거 센터에서 실습할 때 던전에서 얻은 거잖아. 어떻게 쓸지 몰라서 나도 그냥 인벤토리에 처박아 뒀는데.”
“아, 그럼 부족하면 네 것도 쓰면 되겠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
“그럼?”
“성수 아이템을 고기 씻는 물로 쓰다니.”
“참 나, 언제는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썼나. 성수면 더 좋지 뭐.”
맑고 투명한 성수로 외안근을 깨끗이 씻어 낸다.
사실 이게 부위가 외안근이긴 하지만 크기가 꽤 되기 때문에 소나 돼지의 기름기가 거의 없는 살코기 부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정도 처리를 거치면 독성은 거의 제거가 된다고 생각하면 되고.’
다음은 요리가 되기 위해 맛을 내야 할 때.
특히 결이는 좀 어린애 입맛이라 달고 짠 것을 좋아하니까 특별히 준비해 온 것이 있지.
츠츠츳.
인벤토리에서 소환된 것은 이 요리의 양념 소스.
이미 집에서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넣고 발효까지 시켜 소스를 만들어 왔다는 말씀.
“이런 걸 언제 다 준비한 거야?”
“너 검술 연습할 때 준비했지.”
“뭐?”
“실력 많이 늘었더라.”
“으흠흠.”
결이의 얼굴이 살짝 상기된다. 갑작스러운 칭찬이 나쁘지 않은 모양.
도마를 꺼내 육질이 연해진 고기를 쑹덩 썰어 낸다.
“지금 네 전투 무기로 그걸 썬 거야?”
“걱정하지 마. 아까 성수로 깨끗하게 씻었어.”
“……아무리 그래도.”
회귀 전에는 더 심한 상태의 칼로 손질한 요리를 먹게 됐었단다. 라고 말해 주고 싶지만, 이번 결이에게는 이미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걱정하지 마. 배탈 안 난대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결이의 표정을 무시한 채 인벤토리에서 꺼낸 건 무쇠 팬.
그래도 결이한테 최대한 맛있게 먹이려고 얼마나 노력했다고.
심지어 그 귀찮은 무쇠 팬 길들이기까지 했다고!
뭔가 너무 생색내는 것 같아서 굳이 설명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망량아. 화력 좀 만들어 봐라.”
“무오앙!”
준비해 온 장작을 건네자 망량이가 그것을 껴안고 바닥으로 착지했다.
화르륵!
장작을 삼킨 망량이가 거세게 타오른다.
“뭐야. 이 녀석 진짜로 불 효과도 낼 수 있는 거야?”
“어, 사실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
이것저것 재료를 다 챙겨 가기가 뭐해서 시켜 봤는데 진짜로 가능할 줄은 몰랐다. 하여튼 망량이 이 녀석은 못 하는 게 없다니까. 아주 만능 펫이다.
‘고기도 이쯤이면 완벽해. 그때 너무 신기해서 자세히 본 게 이렇게 도움이 된다니.’
대충 팬이 달궈졌을 때 버터를 한 조각 얹고 썰어 낸 고깃덩이를 툭 올려놓는다.
치이이익!
듣기만 해도 맛있는 소리를 내며 무쇠 팬이 고기를 구워 낸다.
“망량아 더 거세게 불타라!”
“무아앙!!”
화르르륵!
망량이의 불길이 거의 팬을 집어삼킬 정도다.
“자, 이렇게 강한 불에서 빠르게 앞뒤를 구워 주는 거다.”
사실 무쇠 팬 길들이는 작업을 하면서 조금 요리 실력이 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적당한 타이밍에 고기를 뒤집는 내 손기술을 보면서 결이 역시 감동한 것인지 말을 잃고 넋을 놓은 채 팬만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 채소.”
애호박과 양파, 피망에 마늘. 거기에 양송이버섯과 아스파라거스까지 재빨리 손질해 털어 넣는다.
분명 피망이 들어갈 때 결이의 미간이 움찔거리는 것을 봤지만, 이렇게 고기를 먹일 때 채소를 같이 많이 먹여야 한다.
‘솔직히 여기서 소금 간만 해서 먹어도 최고인데…….’
아쉬운 마음으로 준비해 온 소스를 본다.
‘후, 그래. 그래도 소스도 열심히 준비해 왔으니까.’
그냥 스테이크 소스가 아니다.
원래의 스테이크 소스에 굴 소스. 케첩과 올리고당에 발사믹 식초를 섞고 다진 마늘에 후추까지 쳤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결이가 이 달콤한 소스 맛을 싫어할 리가 없다.
휘익!
손목 스냅을 이용해 팬 위의 고기와 채소를 공중으로 띄운다.
사사사삭!
새벽의 검을 휘둘러 고기를 한입 크기로 썰어 버렸다.
그다음엔 소스.
촤아악~!
치이이이!
소스를 붓자 한층 더 맛있어진 소리와 향기가 터져 나온다.
때깔도 죽여준다.
‘와, 나 이거 팔아도 되겠는데.’
결이도 팬에 든 것이 몬스터 고기라는 걸 잊은 듯 눈을 빛내며 침을 꼴깍 삼킨다.
“자, 완성이다.”
처억.
어느새 접시에 담긴 매드 크리피 아이볼 촙스테이크.
“먹어도 돼?”
결이는 완전히 고분고분하게 변해 있다.
“물론이지. 너 먹으라고 만든 건데.”
“감동이야, 은하준.”
내민 포크를 가지고 푹. 고기를 집어 든다.
그리고 이내 결이의 입 안으로 사라지는 고기.
“……헉!”
결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