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제65편
“오, 나도 레벨 올랐다.”
“와! 축하드립니다. 형!”
“너는 어째 점점 더 힘이 들어가냐?”
“네?”
“편하게 말해도 돼. 편하게.”
“아, 그, 그렇지만…….”
“알아서 해.”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헌터들 역시 절반이 넘게 레벨 업을 한 모양이다. 모두 시스템 창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이렇게 빠르게 레벨이 오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보라 씨도 많이 올랐어요?”
“네! 덕분이에요. 저도 자주 불러 주세요.”
연보라의 말에 시스템 창을 살피던 헌터들이 우리 쪽을 기웃거린다. 그러더니 하나둘씩 멋쩍은 얼굴로 다가왔다.
“흠, 흐음. 은하준 씨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덕분에 전투가 매끄럽게 진행된 것 같아요. 위험할 때마다 보조도 잘해 주시고. 아까 저 당할 뻔했을 때 몬스터 속박 걸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잘못했으면 쓰러졌을 거예요.”
“힐러도 아니신데 힐러 한 명이 더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덕분에 정말 체력 많이 아낀 것 같아요.”
“이렇게 많이 움직이는 서포터 계열 헌터는 처음 만나 봐요. 다들 뒤에서 그냥 보조 스킬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니면 딜러처럼 전방 전투에 집중만 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러면 진짜 난감하거든요. 동선에 방해도 되고, 괜히 자기가 더 많이 킬을 내고 싶어서 설치면…….”
모두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래, 이럴 때 정말 뿌듯하다니까. 그래도 내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다들 눈치를 챌 만큼의 실력은 되는군.
이 정도면 전투 경험이 꽤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말해 주시니까 감사합니다. 열심히 돌아다닌 보람이 있네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중후반의 전투는 더욱 잘 풀릴 것 같다.
“그럼 조금 휴식 가진 뒤에 다시 출발해 봅시다.”
“좋아요!”
* * *
“하준 씨 정말 멋져요. 몇 주 만에 훨씬 더 강해진 것 같고.”
“매일 발전해야죠.”
진보라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도 그럴 게 사실 헌터 자격증 과정에서는 다른 팀원들이 훨씬 실습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몸을 사렸기 때문에 본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
“하준 씨한테는 정말 배울 점이 많아요.”
“에이, 또 뭘 그렇게까지야.”
“아녜요! 정말……. 저도 분발하게 된다고 할까요. 항상 열심히 하시잖아요. 저도 강해질 거예요!”
그녀는 마치 웅변학원에 온 거라도 되는 양 결의를 다졌다.
‘오늘은 결이한테 전혀 말을 안 거네. 그건가. 밀당…….’
두 사람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약간 걱정스럽긴 하지만, 어련히 저들끼리 잘하겠지 싶다.
누구보다 연애에 젬병인 건 나니까.
“그러고 보니 레벨이 올랐다던데, 새로운 스킬이라도 열렸나요?”
“오! 맞아요. 아까 확인해 보니까 새로운 공격 스킬이더라고요. 지금까지 갖고 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해요.”
“정말 잘됐네요! 다음 전투 때 사용해 봐요. 자세히 봐 드릴게요.”
진보라가 놀란 듯한 얼굴로 눈을 깜빡거린다.
“하준 씨는…… 참 그런 걸 잘하시는 거 같아요.”
“응? 뭘요?”
“뭔가 상대방을 분석한다고 해야 하나? 나쁜 뜻이 아니라요. 그 사람 특성에 맞게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돕는 걸 잘하시는 것 같아요.”
“하하, 별말씀을요. 평생 하다 보니 그렇죠.”
“평생?”
아차차.
사람이라는 게 참 아무리 신경을 써도 이런 사소한 대화에서 티가 날 수밖에 없다니까.
이럴 땐 분위기를 확 트는 수밖에.
“그러니까 뭐 이것저것 눈치를 많이 보고 살아서 그렇죠.”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진보라는 파드득 놀라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앗, 제가 분위기를 망쳤네요.”
“아녜요! 아녜요! 그나저나 하준 씨는 새로 생긴 스킬 있어요?”
“아, 저도 방금 레벨 업을 해서 얻은 게 있어요.”
“우와! 어떤 건데요? 공격 스킬?”
“공격 스킬이긴 한데, 약간 미묘한 거예요.”
“어떤 거길래요?”
스킬 말뚝박기.
억압의 손길로 불러내는 사슬과 비슷한 톤으로 거대한 말뚝이 생성된다. 그리고 그것이 박힌 상대는 MP, 그러니까 마력이 깎인다.
“오……. 음, 그런 거군요.”
내게 대충 설명을 들은 진보라 역시 약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대체로 공격 스킬은 상대의 HP, 체력을 깎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회귀 전엔 이것 역시 쓸모없는 스킬이라고 생각해서 제대로 사용하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지. 하지만 이번에는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잘 알고 있다고.’
첫 각성 후 3년 정도는 사용하지 않고 무시했던 스킬이었다.
쓸모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세상에 쓸모없는 스킬이 어디 있겠는가.
그때는 생각이 짧았다.
그리고 지금 딱 이 스킬을 얻기 좋은 타이밍이다.
“저도 레벨 업 했어요. 형.”
염태규가 다가와 레벨이 얼마나 올랐는지, 스킬은 어느 것이 생겼는지 이야기하기에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지를 간단하게 조언해 주었다.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데 염태규는 무척 기뻐 보였다.
‘대충 살펴보니 이번에 레벨 업을 못 한 사람은 한결이뿐인 것 같네.’
원래 S급은 레벨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강한 게 바로 S급인 거다.
‘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레벨이 10이 될 거야.’
나는 인벤토리 창을 열었다. 결이가 레벨 10이 되기만 하면 사용할 아이템이 들어 있다.
지금보다, 회귀 전보다 강하게 해 줄 아이템.
“자, 다들 충분히 쉬었으면 다시 이동해 볼까요?”
“좋아요!”
“이대로 쭉 공략에 성공해 보자고요!”
팀원들의 분위기도 좋고. 이번 던전은 느낌이 좋다.
“전방에 적입니다!”
“아까처럼 대열을 짜 보죠!”
보스 룸까지 가는 길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지만, 망량이가 있는 덕분에 돌아가지 않고 길을 찾았고 곧 다음 몬스터들과 조우했다.
“이 녀석들도 마찬가지로 로봇 계열인 것 같네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회로와 마나 핵이 있는 부분이 급소입니다.”
“알겠어요, 하준 씨! 준비를 많이 해 오신 덕분에 수월하게 갑니다!”
다시 시작된 전투는 금방 열기가 뜨거워졌다.
츳, 츠팟!
이번에도 결이는 흐트러짐 없는 동작으로 선전하고 있다.
다른 헌터들이 자잘한 몬스터들을 정리할 때, 홀로 중간 보스 격인 인간형 거대 로봇을 상대하고 있다.
말이 인간형이지 그 모양이 시시각각 전투에 유리하게 변화하고 있다. 놈을 구성하고 있는 금속 자체가 지구의 것이 아닌 것처럼, 아니면 수만 개의 나노 로봇이 하나로 뭉쳤다가 분리되었다가를 반복하는 것.
그러면서도 완전히 합쳐져 있을 때는 결이의 검도 함부로 대미지를 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해진다.
동물 같은 모습으로 변화했다가 이내 곧 연체동물처럼 유연한 몸을 구사했다가 다시 인간형의 모습이 되었다가 한다.
거대한 물고기 떼 같은 움직임마저 소름이 끼치도록 매끄러워 마치 마법처럼 보인다.
지금의 지구에서는 감히 따라갈 수도 없는 기술.
SF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놈의 체력이 중반쯤 닳았을 때 사용하는 위험한 스킬이 있다.’
중간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며 타이밍을 재고 있다.
아직 주변을 정리하고 중간 보스 몬스터에게 모든 팀원이 집중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터.
“결아, 너무 힘 빼지 말고 어그로만 끌어!”
“알고 있어!”
그런 것치고는 너무 적극적인 공격이라 걱정이 되지만, 나 역시 모든 팀원의 전투까지 보조하고 있자니 잔소리할 여력이 없다.
우우웅…….
중간 보스 몬스터의 좌우 어깨가 있는 곳에서 기묘한 빛이 어리기 시작한다.
‘지금이다!’
새로운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마력이 온몸으로 퍼진다.
“말뚝박기!”
스스승!
곧장 중간 보스 몬스터의 위로 거대하고 반투명한 말뚝 모양의 상이 생겼다.
쉬이이익! 퍼억! 퍽! 퍼억!
4개의 상 중 3개가 중간 보스 몬스터의 몸에 박혔다.
「지우웅-!」
중간 보스가 당황한다. 분명 대미지가 들어왔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의아하겠지.
하지만 곧 놈은 알아챈다. 조금 전 시전하려고 했던 스킬이 취소가 됐다는 걸.
「이웅, 이이잉-!」
놈이 화가 난 듯 몸을 털어 낸다.
바로 다시 스킬을 사용하고 싶겠지. 그래야 눈앞에서 신경 쓰이게 하는 결이를 반쯤 태워 버릴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안 될 거다.
갑자기 마력이 절반값 이하로 떨어졌을 테니까.
‘좋아! 완전히 계획대로 됐다.’
내가 기억하는 것과 같이 중간 보스 몬스터의 필살기는 마력을 굉장히 많이 필요로 하는 스킬이다.
그렇기에 갑자기 MP, 즉 마나와 마력을 갑자기 잃게 되면 스킬을 쓰기 곤란해지는 거다. 다시 회복하기 전까지는 스킬 시전이 아예 불가능한 것.
결이 역시 뭔가 눈치챈 것인지 내 쪽을 돌아본다.
“야야! 방심하지 마!”
“……!”
투두다다다다.
필살기 스킬을 사용하지 못해 분이 난 중간 보스 몬스터가 일반 평타 공격을 쏟아 낸다. 그것도 내 쪽으로.
중간 보스급이니만큼 내가 시전한 스킬이라는 걸 알아차린 거다. 게다가 저 평타도 만만하지 않다.
내가 제대로 맞으면 온몸이 너덜너덜해지겠지.
츠팟!
갑자기 나타난 결이의 뒷모습이 눈앞을 가린다.
튕, 튕, 튀뒹!
번개 그 자체인 검이 사정없이 쏟아지는 중간 보스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 낸다.
‘우와, 언제 이렇게까지 검술 실력이 좋아진 거지?’
솔직히 말해서 무협이나 판타지에 나올 것 같은 기술이다. 아무리 우리가 초능력을 사용하는 각성자이긴 하지만 아직 어린 결이가 이런 기술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놀랄 수밖에 없다.
“방심한 건 너겠지.”
공격을 받아 내며 대화를 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게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실력 많이 늘었는데?”
“너 모르게 엄청 연습하고 있거든.”
“뭐?!”
거의 24시간 붙어 지내는데 따로 검술 훈련을 하고 있는 줄 몰랐다.
‘그냥 자동으로 체화되는 게 아니었구나.’
나 같은 경우는 새벽의 검을 쥔 것만으로도 검술 실력이 버프가 되어서 결이도 그냥 그런 줄 알았건만, 따로 연습하다니.
역시 S급인데도 나태하지 않은 우리 결이 멋있다!
“하준아, 이쪽은 많이 정리됐어!”
“이제 저놈을 잡는 데 화력을 모을까요?”
인화 선배와 염태규가 옆으로 바짝 붙는다.
“좋아요, 모두 집중포화 하죠!”
내 신호에 맞춰 조금 흩어져 있던 팀원들이 모여든다.
쉽게 부서지지 않을 단단한 대열로 맞춰 선 뒤, 모두의 스킬이 쏟아진다.
쉬이익, 퍼엉! 퍼버벙! 화르륵! 콰앙!
여러 빛깔의, 여러 형태의 스킬들이 쏟아진다. 영롱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장관인데.’
회귀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전투를 떠올릴 만큼 모두 힘을 합친 한타(打)는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집중 폭격을 당한 중간 보스 몬스터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 공격을 받아 내고 있었다.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감히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다. 그리고 곧.
퍼어어엉!!
중간 보스 몬스터가 폭음을 내며 쓰러진다. 파편이 주위로 튀고 불길과 연기가 치솟는다.
“해냈다!”
띠링.
[축하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시스템의 알림 소리를 들으며 결이와 눈이 마주친다.
눈빛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결이도 레벨이 올랐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