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64화 (64/250)
  • 제64화

    제64편

    츠츠츳.

    바깥을 지키는 괴물 특수부대원에게 절차를 받은 뒤 던전 내부로 들어오자 어두침침한 하늘이 반긴다. 주변은 폐허로 변한 것 같은 도시.

    손상된 도로와 깨진 유리창, 녹슨 기계들과 방치되어 아무렇게나 자라 버린 식물들.

    “분위기 한번 살벌하네요.”

    “오늘 모이신 분 중에 이 던전에 와 보신 분이 없다고 했죠?”

    내 말에 모든 파티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좀 불안하긴 하네요.”

    오늘 처음으로 합을 맞춰 보는 파티원 중 하나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원래는 한 명이라도 선발대가 있으면 좋은데.”

    불안해하는 파티원 옆에 있던 근거리 딜러가 중얼거렸다.

    “보통 그러는 편이 훨씬 안전하기는 하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무리하게 사냥을 진행하지는 않을 거니까 말이죠.”

    “하지만 던전 등급에 비해선 파티원 수가 아슬아슬한 것 아시죠?”

    중얼거리던 그가 이번에는 꽤 또렷하게 맞받아친다.

    ‘그렇게 불만이 많으면 애초에 여기 왜 왔냐고. 내가 어린애 보모도 아니고. 하하하.’

    게다가 이미 던전 안까지 들어온 상황 아닌가.

    그저 시작 전에 딴지를 걸어 놓고 싶은 거겠지.

    오늘 상황이 제대로 안 풀리면 D급인 내 탓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리 말을 얹어 놓는 거지.

    은근히 능글거리는 얼굴을 보아하니, 내 피해의식 탓은 아닐 거다. 하지만 화가 날 정도는 아니다.

    이런 것쯤은 이미 10년도 더 당했으니 이골이 났거든.

    게다가 인류 종말을 막아야 하는데 이런 사소한 일이 뭐가 대수겠어.

    “고생하는 대신 다른 파티에서보다 얻어 가는 아이템이 많을 테니까요.”

    사실 우리 고정 파티 멤버들을 제외하곤 이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그런 마음일 거다.

    “그럴 능력이 되는지 궁금하긴 하네.”

    결이가 툭 던진 말에 약간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슬쩍 굳어진다.

    역시 S급의 한마디는 다르긴 다르다. 그래도 더 이상 어색해지면 안 되니까.

    “흠흠, 그럼 시작하죠. 시간은 금이니까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오늘 반드시 결이의 레벨을 10까지 만들 거니까.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이다.

    게다가 이 던전은 출몰하는 몬스터의 수가 많고 개체마다 꽤 강하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의 인원수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니까.

    “선발대가 없어도 괜찮아요. 이미 던전에 관해서 충분히 공부를 해 뒀으니까. 오늘은 제 지시에 따라서 움직여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은근슬쩍 나에게 비아냥거렸던 근거리 딜러가 뭔가 더 말을 보태려다가 결이 눈치를 보더니 입을 다문다.

    * * *

    지이잉. 위이이잉!

    텅 비어 버린 빌딩 사이에서 레이저가 쏟아져 나온다.

    빗발치는 레이저 뒤로 기계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머리가 없고 네 개의 다리로 움직이는 마치 기계 짐승과도 같은 모양을 가진 블랙독.

    그리고 탱크의 바퀴 위에 납작한 원통의 본체가 얹어진 형태의 커다란 전투 기계 캐터필러.

    바로 이 던전의 메인 몬스터. 드로이드들이다.

    “탱커들 방벽 부탁합니다!”

    내 지시에 따라 파티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푸근한 이미지의 40대 남성이 앞으로 튀어 나가더니 곧장 스킬을 발동한다.

    “단단해지기! 시끄럽게!”

    남자의 몸이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피부가 순식간에 돌처럼 변했다.

    마치 환상적인 넷에 나오는 돌 인간처럼.

    그러더니 드로이드들의 공격이 남자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훌륭한 탱킹이네.”

    돌 남자가 어그로를 끌어 주는 사이에 다른 탱커 포지션 헌터들과 뒤쪽에 있던 딜러 라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장 쏟아지는 공격.

    헌터들의 화려한 공격이 쏟아지는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건 결이다.

    파칫, 파치치칙!!

    꽈과과광!!

    금빛의 창처럼 꽂히는 뇌격은 다수의 드로이드들을 단번에 전투 불능으로 만든다.

    “햐…… 장난 아니다.”

    “역시 S급은 다르구나.”

    “오늘 완전 씹어 먹겠는데.”

    “다행이긴 하다. 좀 걱정됐었는데.”

    내 앞에 서 있던 헌터 두 명이 결이의 공격을 보고는 혀를 내두른다.

    ‘암, 우리 결이가 얼마나 강한데. 지금 잘 봐 두라고. 이후에는 얼마나 더 강해질지 모르니까 말이야.’

    뿌듯한 마음으로 나와 결이를 이어 주는 소울메이트 스킬의 희끗한 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 하나 연결된 선. 그 끝에는 인화 선배가 있다.

    연보랏빛 비눗방울 사이를 누비며 드로이드들에게 공격을 퍼붓고 있다. 게다가 버블들로 장벽을 만들어 팀원들을 보호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꼼꼼하고 전투 센스가 좋다.

    ‘역시 어지간한 S급들보다 훨씬 강하다니까. 선배는.’

    앞쪽에서 탱커들과 딜러들의 전투는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휙, 카가가각!

    새벽의 검이 검은 궤도를 만들어 낸다. 두 개의 검날이 딱딱한 외피를 가진 기계 몬스터들을 베어 낸다.

    결이처럼 한 방 컷은 아니지만, 소울 포인트로 성장해 둔 민첩을 활용해 빠른 연속 공격을 시전.

    한 대도 맞지 않고 몬스터들을 녹여 버릴 수 있었다.

    ‘제대로 된 무기 하나 드는 게 이렇게 다르구나.’

    C급이긴 하지만 꽤 빡센 축에 드는 던전에서도 꽤 타격감이 좋다.

    무엇보다 이전에는 제대로 공격다운 공격을 못 한 것에 비하면 딜이 들어가는 것 자체가 재밌달까.

    하지만 내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 포지션은 서포터.

    “크읏! 포위당했어.”

    팀원 하나가 의도치 않게 고립되어 버린 것을 발견한다.

    “억압의 손길!”

    차르르륵! 희뿌연 내 사슬이 팀원을 둘러싼 몬스터들을 묶어 속도를 떨어트린다.

    그 틈을 타 팀원은 적진 한가운데에서 빠르게 벗어난다.

    “헉, 하준 씨 고마워요! 나이스 타이밍!”

    “뭘요. 서폿이 할 일인데요.”

    씩 웃어 보이자 팀원의 얼굴이 밝아진다.

    “든든하네요.”

    그래, 서포트의 역할을 수행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공격력이 높아지고 킬 수를 많이 따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본래 포지션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헤르메스의 신발.’

    발꿈치 날개 무늬에 빛이 들어오며 나는 높이 솟아올랐다.

    공중을 밟고 한 번 더.

    거리가 한눈에 보일 만큼 올라간 뒤 주변을 살핀다.

    “동쪽에서 드로이드 부대가 하나 더 접근 중! 공격에 대비하세요!”

    내 외침에 전방의 공격에만 집중하던 팀원들이 동쪽도 주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몰려드는 새로운 무리의 드로이드들을 상대해 낸다.

    ‘대규모 전투에서 그나마 주위를 살펴볼 수 있는 게 바로 서포터지.’

    사실 서포트 계열의 헌터는 무시당하는 편이 일반적이다. 아무래도 탱커보다도 딜러들이 화려하고 대단해 보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이건 밴드에서 드럼이나 베이스보다 보컬이나 기타가 더 돋보이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들이 눈에 더 띈다고 해서 다른 파트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닌 것처럼 서포터의 역할도 그러하다.

    특히나 난전이 벌어지고 규모가 큰 전투일수록 전투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던전이 어떻게 공략되고 있는지. 변수가 있는지.

    그러면서 다른 헌터들이 더 잘 싸울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게 서포터다.

    서포터가 얼마나 실력이 좋은가에 따라 전투가 쉽게 끝나기도 하고 지옥처럼 길고 고통스러워지기도 한다.

    ‘오랜만이네, 이 감각.’

    한창 잘나가기 시작했을 때의 전투들이 떠오른다.

    피가 확 도는 느낌.

    부우우웅.

    공중에서 드로이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차 웨이브다. 공중전에 대비해요!”

    차르르륵! 사슬을 소환해 비행 드로이드 하나를 묶어 위로 올라탔다. 드로이드가 방향을 조절하는 부위를 엮어 방향을 마음대로 조종한다.

    “좋아, 지금 아래 상황이 꽤 괜찮으니까. 주위 정찰을 가볍게 돌까.”

    부우우웅. 삐빅, 삐비비빅.

    드로이드가 반항해 보지만, 능숙한 솜씨로 놈을 이끌어 빌딩 사이를 비행한다.

    “미안하지만, 이미 난 너를 이렇게 써먹은 적이 여러 번이라고.”

    드로이드 몬스터가 이해할 리도 없는데도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내 빌딩으로 가려진 구석진 곳에 있는 전파 타워를 발견한다.

    “옳지.”

    저건 그냥 전파 타워가 아니다.

    드로이드들을 훨씬 더 강력하게 만들어 주고 서로 소통하기 편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제 풀어 줄게.”

    나는 사슬을 해제하며 새벽의 검으로 세차게 드로이드의 머리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을 내리쳤다. 그리고 녀석에게서 뛰어내린다.

    파직! 파지직!

    순간 제어 기능을 잃어버린 드로이드가 전파 타워를 향해 곧장 돌진한다.

    퍼어어엉! 둘은 충돌하고 폭발을 일으킨다.

    “좋아, 이걸로 훨씬 전투가 수월해지겠군.”

    곧장 전장으로 복귀하니 모두 놀란 얼굴이다.

    “갑자기 이 녀석들 약해졌어.”

    “놈들에게 버프를 넣어 주는 전파 타워 하나를 부쉈거든요.”

    “그, 그걸 언제 찾았대요?”

    아까 초장에 나를 살살 긁던 근거리 딜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투가 거셌던 모양, 상당히 지쳐 보인다.

    “뭐, 서포터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민철 씨한테 힐 좀 받으세요.”

    그가 뒤로 빠지도록 권유하고 빈 그의 자리엔 내가 들어간다.

    민첩도 체력도 회귀 전 나 같은 수치가 아니니 잠깐 선방에 나서는 것도 무리가 없다.

    “……세상에. D급이 맞는 거야? 아니 무엇보다 전투 센스가 너무.”

    근거리 딜러가 중얼거렸지만, 딱히 대꾸하지는 않는다.

    오랜만에 대규모 전투라 신이 났으니까. 전투에 집중하는 게 훨씬 재밌다.

    츳, 츠팟!

    두 번째 웨이브인 공중전.

    역시 점멸 이동기인 구름의 아들 스킬을 가진 결이의 전투가 돋보일 수밖에 없다.

    이건 사방뿐 아니라 공중까지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진짜 좋은 스킬이니까.

    “마력이나 체력은?”

    “괜찮아. 너야말로 완전히 날아다니던데, 관리 잘되고 있어?”

    “물론이지. 망량이가 있으니까.”

    “무와앙!”

    전투 내내 내 곁에 잘 붙어 있던 망량이가 힘껏 소리쳤다.

    결이는 나를 향해 씩 웃어 보이더니 2차 웨이브의 가장 핵심 몬스터인 빅 대디를 향해 전격을 내리꽂는다.

    파츠츠츳!!

    “구우우우!”

    어쩌면 인간형이라고 볼 수 있는 거대 로봇 빅 대디의 팔다리에서 스파크가 요란하게 튄다. 곧 거대한 몸을 지지하는 두 다리가 꺾여 쓰러진다.

    파바바바박!

    아래에 깔려 있던 인화 선배의 버블이 폭발을 일으키고 빅 대디는 완전히 주저앉아 버렸다.

    “낙화권!”

    염태규의 불덩이가 빅 대디를 삼킨다.

    “오, 염태규. 레벨 좀 올랐나 봐? 화염 범위가 눈에 띄게 커졌는데?”

    “아, 형 덕분이에요. 지금 들어와서 레벨 5나 올렸습니다.”

    “오오! 대단한데.”

    염태규의 광대가 솟구쳐 올랐다. 받아쓰기 100점 맞은 아이처럼 기뻐하기는.

    띠링.

    내 귓가에도 레벨 업을 알리는 시스템의 알림 소리가 들려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