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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60화 (60/250)
  • 제60화

    제60편

    ‘누구는 길드를 만들기 싫어서 안 만드는 줄 아나.’

    류환희의 길드 신설을 바라는 사람 중 가장 간절한 건 은하준일 터였다.

    ‘차대호가 각성이 안 되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원래라면 지금은 류환희가 류창희와 화해도 못 했을 때고, 또 차대호와도 만나지 못했을 타이밍이니 그녀 역시 지지부진하게 세월을 보내고 있을 터였다. 내가 회귀하기 전이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해결되어 버려 류환희는 자신의 다음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안달이 난 것이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 나는 회귀자고 이미 마음이 아주 급했었다고. 조바심에는 내가 선배라 이 말씀이야!

    선배 입장에서 조언하자면, 서두른다고 다 능사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까 일단은 진정하고. 길드를 그렇게 빨리 만들어야 할 이유는 없잖아. 이런저런 문제점들도 다 짚어 보고.”

    “이유가 없다니? 게다가 준비는 다 끝내 놨거든? 이름만 빌려주면 되는 건데! 하준 오빠는 참 이상하단 말이야? 시간이 많으세요? 그럼 좀 아껴 써.”

    “명의 같은 거 함부로 빌려주는 거 아니야. 그거 위험해. 그리고 인생을 좀 즐겨 환희야. 넌 좀 즐기면서 살아도 돼. 쬐그만 게 매일 일 타령만 하고.”

    사실 즐길 여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강제로 차대호를 각성시킬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차대호가 생각보다 각성이 늦단 말이지.

    “대체 무슨 말이야? 이 오빠 진짜 이상하네? 우리가 지금 그럴 때야? 참 나, 오빤 가끔 우리 오빠보다 더 이상해!”

    “야, 그건 좀 말이 심하잖아.”

    “뭐가 심한데!”

    어쨌든 벌써 몇 주째 이런 상황이다.

    손예원과 한세희가 결이를 보고 갔다는 걸 알게 된 후(이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성 대위를 의심하고 있다) 이렇게 시간만 나면 찾아와서 닦달하는 중이다.

    “내가 이해가 안 되어서 그래. 그렇다고 다른 길드에 가입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랑 길드 만들고 싶어서 그런 거 아냐? 그런데 왜 막상 만들지는 않냐고. 길드장이 버거워? 사실상 내가 길드장이니까 걱정하지 말래도?”

    “하아. 그게…….”

    “지금 나랑 밀당하는 거야? 어이없어. 오빠 연애 한 번도 안 해 봤지.”

    류환희의 말에 휴대폰을 하던 결이가 힐긋 우리를 본다.

    “맞아, 맞아. 나도 환희 너를 참 응원하고……. 길드 만들면 좋지. 너랑 같은 길드 들어가고 싶어. 내가 말했잖아.”

    “그런데 왜 안 하냐고. 우리 오빠는 죽어도 자기 이름으로는 길드를 만들지 않겠대. 오빠가 왜 그러는지는 알아. 그야 성현준 그 자식이 입김을 넣었겠지. 아직도 그놈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것쯤이야 안다고. 그런데 너흰 뭐야?!”

    류환희가 커다란 눈을 똑바르게 뜨곤 손가락으로 삿대질해 댄다.

    이 상황에 나도 성 대위에게 푸시를 받았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성현준과는 약속을 해 버렸다.

    내 이름으로 길드를 만들어 주지 않겠다고. 그러니까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대호 형님. 제발 각성 좀 해 주십시오.’

    간절하게 빌어 보지만, 사실 차대호가 언제 각성할지는 이 세상 누구도 알 수 없다.

    “일단은 그러고 있지 말고 들어와서 앉든지. 음료수라도 한잔 마시고 가. 우리도 좀 있다가 나가 봐야 해.”

    “어딜 가는데! 성현준한테 가?”

    “아니야. 성 대위님이랑 연락한 지 좀 됐어.”

    “그건 잘했어.”

    성 대위랑 연락 안 하는 게 저 때문인 줄도 모르고 아주 사람 속을 박박 긁어 놓는다.

    “그럼 어디 가는데? 또 던전에 가게? 나도 좀 데리고 가. 당장 같이 움직일 수 있는 팀이 없다니까. 맨날 연락도 안 해 주고. 아오 이게 다 성현준 때문이야. 대체 왜 이렇게 날 방해한담.”

    성현준 쪽에서는 보호라는 명목인 것 같더라. 라고 말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오늘은 던전이 아니라 그냥 사적인 만남이야.”

    마침 차대호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오늘은 보리의 생일이었고 인화 선배네 모여서 생일 파티를 열기로 해 뒀다.

    한결이가 좋아하는 갈비찜도 해 놓는다고 했다고.

    “사적인 만남 뭐?”

    “……야 류환희.”

    참다못한 한결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류환희를 노려본다.

    “사생활 침해 좀 그만해. 맨날 찾아오는 것도 모자라 인간관계까지 통제하려고 해? 너 그거 범죄야.”

    “뭐?! 범죄?! 참 나. 친구끼리 물어볼 수도 있지!”

    “우리가 언제 네 친구냐?”

    “아니란 말이야?!”

    이렇게 영양가 없는 다툼을 하는 걸 보고 있자니 얘들이 어린애들이라는 게 다시금 실감이 갔다.

    언제 다 크려나. 이 녀석들……. 얼른 자라서 세상이 망하는 걸 함께 막아 줘야 하는데 말이다.

    “나도 데려가.”

    “뭐?”

    “다 같이 친구 해.”

    “아니, 환희야. 일단 진정 좀 하고…….”

    물론 차대호와 류환희를 서로 연결해야 하긴 한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갑자기는 아니지!

    차대호가 각성하고 어느 정도 기량을 갖췄을 때 소개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류환희가 그를 길드장으로 인정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게 제일 안정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해 뒀다.

    “나 오늘 이렇게 못 가. 안 가!”

    “다음에 소개해 줄게. 진짜로. 약속.”

    “아니? 난 오늘 아니면 안 돼.”

    거의 빌다시피 했지만, 류환희는 기세를 꺾지 않았다. 결이가 또다시 끼어들어 봤지만…….

    “야 류환희 진짜 미쳤냐고. 정신 차려. 네가 애냐?”

    “애 맞거든. 나 아직 고 3이거든?”

    “고 3이면 공부나 해.”

    “한결 너는 고 3 때 공부 되게 열심히 했나 보다?”

    “이게 진짜…….”

    류환희의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드는 말솜씨가 살벌하다. 아니, 살짝 넘고 있는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그만큼 친해졌다고 해야 하나. 마주치면 투덕거리기만 한 것 같은데 류환희만 오면 정신이 없고 나나 한결이 모두 휩쓸려 버린다.

    몇 주 사이에 오빠 동생 하는 사이가 되어 버리고 서로에 관해서도 익숙해졌다. 남들이 보면 왜 저래? 싶을 텐데 정말 말썽꾸러기 여동생이 하나 생긴 것 같은 기분이랄까.

    아마 원인은 류환희의 폭풍 같은 친화력 때문인 것 같다.

    “그만, 그만! 싸우지 마. 뭘 이런 것 가지고……. 하아, 알겠어. 널 전혀 모르는 애의 생일 파티지만. 그래. 가 보자고.”

    그래. 생일 파티일 뿐이다. 별일이야 있겠어?

    * * *

    “우와! 예쁜 언니다!”

    인화 선배의 집에 먼저 도착해 있던 보리가 류환희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안녕하세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저는 하준이 오빠랑 결이 오빠랑 친한 여동생 류환희예요. 안녕 보리야! 오늘 생일이지? 정말 정말 축하해! 언니가 선물도 사 왔지롱!”

    류환희가 아주 뻔뻔한 얼굴로 활짝 웃어 보인다. 잡지에나 나올 듯이 전문가답고 맑은 미소다.

    게다가 생각보다 거짓말을 잘한다.

    이야기를 많이 듣다니? 류환희에게 인화 선배나 차대호의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

    특히나 차대호의 경우는 미래가 틀어질까 봐 조심했다는 말이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역시 류환희를 데려오지 말아야 했나 싶다. 회귀 전 미래랑은 비슷하려야 비슷할 수가 없는 두 사람의 첫 만남이지 않은가.

    ‘이건 자연스러움으로는 안 되겠어. 류환희가 떼를 쓴 탓이니……. 뭐가 됐든 대호 형이 각성하기만 하면 무조건 우겨야지. 형이 길드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야. 그래, 사실 류환희도 당장 길드장을 삼을 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으니까…….’

    두개골 안에서 생각들이 서로 튕기고 있을 때 류환희와 대호 형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아무리 회귀자라고 해도 전부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

    “보리야~! 얼른 선물 뜯어봐!”

    “안 돼! 케이크에 초 불고 나서 같이 뜯어볼 거야!”

    “오~! 보리 너 생일 파티 좀 해 봤구나? 얘가 제대로 즐길 줄 아네?”

    다행히 류환희는 자연스럽게 이 공간에 녹아들고 있었다. 역시 폭풍 같은 친화력이다.

    ‘정말 혼란하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마음을 위로하는 사이에 저 멀리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들이 나타났다.

    “뒤뜰에 천막을 다 쳐 놨어요. 그리고 준비는 다 끝……. 아, 손님들이 마저 오셨네!”

    “안녕하세요~!”

    “손님들 안녕하세요!”

    인화 선배의 남편과 아이들이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 하지만 내겐 영혼의 일부와도 같은 사람들.

    복잡하던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됐다.

    “인화 씨 남편 되는 김지원입니다.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하준 씨랑 한결 씨죠? 인화가 밖에만 다녀오면 두 사람 이야기뿐이라니까요.”

    “아, 아 네. 안녕하세요.”

    “우리 인화 항상 잘 챙겨 줘서 정말 고마워요.”

    악수를 하느라 맞닿은 지원 형의 손이 생경하다.

    인화 선배와 다시 만나 시간을 보내면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니었나 보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정말…… 행복해 보이시네요.”

    “네?”

    내 말에 잠깐 눈을 동그랗게 뜬 지원 형은 자연스럽게 내 손을 놓더니 양팔로 아이들을 꽉 끌어안았다.

    “행복하죠, 물론~! 하늘이도 바다도 행복하지?”

    “네~!”

    “아빠 간지러워요!”

    “어머머, 날 빼놓고 자기들끼리만 행복하기야?”

    “엄마도 와!”

    “보리야! 보리도 와~!”

    “응! 그래! 나도 갈래! 아빠 같이 가자!”

    아이들이 병아리처럼 삐약거린다. 세 명의 부모와 세 명의 아이들이 어느새 강강술래 비슷한 것을 하고 있다.

    “……나, 여기 오길 잘한 거 같아.”

    류환희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도착하기 전까지 억지를 부리던 독기는 어디 가고 그 나이대에 맞는 맑은 표정이다.

    그녀는 꽤 감명받은 것 같았다.

    “그러냐?”

    “응……. 솔직히 억지 부렸다고 생각했는데.”

    본인이 억지를 부렸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다니. 나는 놀란 얼굴로 류환희를 내려다보았다.

    커다란 두 눈이 반짝거리며 행복의 강강술래를 보고 있었다.

    “우리도 하자.”

    “응?”

    “우리도 강강술래 하자!”

    류환희가 손을 잡아끈다.

    “아, 아니! 이건 좀……!”

    당황스럽지만 왠지 류환희의 손을 뿌리칠 수가 없다. 옆을 보니 결이도 잠자코 끌려오고 있다.

    “와아! 하준 아저씨랑 결이 오빠다!”

    “으하하! 우리 뭘 하는 거람!”

    “너 때문이잖아!”

    그렇게 우스꽝스럽게도 모두 모여 강강술래를 하게 됐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싫어하지 않았다. 모두의 얼굴에 행복이 떠올라 있었다.

    이런 일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마치 오늘이 내 생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차보리~ 생일 축하합니다!”

    잔디밭 위에 긴 테이블과 풍선으로 만든 아치. 온갖 맛있는 음식과 새하얀 생크림 과일 케이크. 노란색 왕관을 쓴 보리가 7개의 촛불을 훅하고 분다.

    파방! 팡!

    작은 폭죽이 터지고 선물 개봉식이다.

    “와아! 짱이다! 책가방!”

    “보리 내년이면 입학식이니까!”

    왁자지껄한 개봉식 도중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던 대호 형이 카메라를 내려놓고 살짝 뒤로 빠지는 게 보였다.

    ‘또 아내분 생각이 난 걸까.’

    재빨리 따라붙었는데 어쩐지 대호 형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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