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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59화 (59/250)
  • 제59화

    제59편

    “세희 씨가 여기 어쩐 일이래.”

    손예원이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가 아무렇지 않게 뒤를 돌아 남자를 마주했다.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지만, 남자의 등장이 못마땅해 죽겠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녀는 셔츠 옷깃에 걸어 놨던 알이 분홍색인 선글라스를 다시 쓰고는 팔짱을 껴 버렸다.

    팔 밑으로 보이는 그녀의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까딱거리며 약간의 긴장감이나 불쾌함을 내비쳤다.

    ‘손예원이 얌전해졌다.’

    갑자기 변한 상황에 침이 꼴깍 넘어간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어서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방해받은 건 우리인데도 공간을 장악하는 능력은 저 두 사람이 월등하달까.

    게다가 어쩐지 남자의 얼굴이 낯익은 것 같다.

    “당신 데리러 왔다니까요. 해령 길드장이 이런 곳에서 개인 행동을 해도 됩니까.”

    “그건 내 자유지. 그래서 결국 당신도 개인행동 중인 거 아냐? 한세희 씨.”

    “그것도 내 자유죠.”

    “하.”

    “게다가 개인행동이 아닙니다. 당신은 오늘 나랑 미팅 약속을 잡아 놨었잖아요. 나뿐만이 아니지. 오늘은 다섯 개 길드장이 한자리에 모이기로 했었죠.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당신을 데리러 왔다고요.”

    “아차차. 그랬던가.”

    손예원은 짝다리를 짚은 채로 두 손을 들어 올리곤 어깨를 으쓱거렸다.

    “손수 데리러 왔으니 그쯤 하고 함께 갑시다. 저도 그렇게 시간이 많은 사람은 아니라서.”

    손예원을 바라보고 있던 아주 연한 갈색의 눈과 마주친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서 잊고 있었던 기억 한 자락이 피어오른다.

    한세희.

    대한민국에서 사상 첫 번째로 각성한 S급.

    ‘맙소사, 이 자리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를 동시에 보게 될 줄이야.’

    심장이 벌렁거렸다.

    한세희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한 번도 그와 대면한 적이 없었다. 그를 본 건 뉴스나 기사에서뿐이었다.

    물론 결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S급이 그랬다.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결이 역시 대한민국에 몇 없는 S급으로서 그들과 몇 번 만나기는 했지만, 거기에 관해서는 늘 별말이 없었다.

    그저 이상하고 귀찮고 꼬였고 음침하고 뒤가 구린 녀석들뿐이라는 말뿐이었지. 절대로 엮이면 안 된다고 하면서.

    한세희가 자신 외에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걸 깨달은 손예원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야, 사실은 세희 씨도 새로운 S급이 궁금해서 온 것 아니야? 내 핑계를 대고 말이야.”

    손예원이 나이가 좀 더 많은 걸까. 둘이 비슷하게 30대 정도로 보이는데 줄곧 반말이다.

    하지만 사실 온통 새하얀 남자의 나이를 가늠하는 건 어려움이 좀 있었다. 그래, 확실히 손예원보다 어려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줄곧 마주치던 노랗게 보일 정도로 연한 갈색 눈동자가 미소를 머금는다.

    “뭐……. 하나도 안 궁금하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민폐만 끼칠 뿐이라고요. 저 쪽에게 당신 첫 이미지가 얼마나 별로겠어요.”

    “참 나. 민폐라니. 그럴 만한 짓을 저지르진 않았어. 아직. 게다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내기를 했을 뿐이라고. 나도 굳이 이런 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고?”

    “알아요. 그랬겠죠. 그 상대는 또 펌블의 재민 씨겠군요.”

    “……그렇지.”

    “재민 씨는 이미 미팅 자리에 도착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예원 씨가 미팅을 깜빡했다는 건…….”

    이제 한세희는 손예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인제 그만 갈 시간이에요.”

    “흥……. 하여간에 얼굴만 이뻐서는 사람 눈치 주는 건 일등이라니까.”

    “칭찬 고마워요.”

    손예원은 툴툴거리면서 한세희를 향해 걸어갔다.

    한세희는 장갑을 낀 손을 건네 손예원을 이끌어 검은색 세단에 태우고는 우리를 돌아보았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시다시피 예원 씨가 좀 독특하잖아요? 혹시라도 피해 보상을 원하시면 우리 서광 길드로 찾아오세요. 지금은 우리가 좀 바빠서요.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는 결이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없이 서 있었다. 하지만 결이는 절대로 대답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입을 연다.

    “알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한세희는 내 말을 듣고도 결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S급만 상대하겠다는 거야?’

    황당해하며 스킬을 발동한다.

    ‘그래, 당신 영혼도 얼마나 잘나셨는지 보자고.’

    스스슷…….

    손예원의 정보를 보고 마음만 더 상했지만, 이번에 또 그럴 확률은 낮지 않겠어?

    ‘어?’

    순간 뭔가 탁 하고 걸리는 느낌이 든다. 뭐랄까. 급성으로 역류성 식도염에 걸린 느낌이랄까.

    띠링.

    [상대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시스템 알림 문구와 동시에 결이만 바라보고 있던 한세희가 내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뭐야, 설마. 내가 스킬을 쓴 걸 들켰나?’

    파악할 수 없다는 건 뭘까. 영혼 분별사 스킬은 쓸 수 있을 때마다 항상 써 왔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처음이다.

    파악할 수 없다니?

    안사홍의 경우에도 분석이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지금과는 달랐다. 지금의 알림은 애초에 분석 시도조차 되지 않는다는 느낌.

    ‘애초에 이런 스킬에 당하지 않도록 다른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건가? 매번? 패시브 스킬의 일종일 수도.’

    식은땀이 삐질 흐른다.

    하지만 한세희는 나를 한참 바라보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차에 올라탔다.

    “대, 대체 뭐야…….”

    김민철은 검은 세단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모두 유명한 S급들이잖아?”

    인화 선배 역시 얼떨떨하게 서 있다가 깜짝 놀라며 결이를 살폈다.

    “결아, 괜찮아?”

    “괜찮아요.”

    “그 기세 싸움이라는 거. 처음 당해 봐서 너무 당황해 버렸어.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 하는 건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함부로 입을 열었다가 손예원한테 무슨 짓을 당했을지 모르니까.”

    내 말에 결이와 인화 선배의 표정이 단숨에 굳어진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손예원을 못 당하니까.

    그렇다고 비굴해질 필요는 없다. 강해지면 되니까.

    “그 사람. 또 찾아올까?”

    “글쎄요.”

    변덕스러운 그녀의 진심은 알 수 없지만, 결이에 관한 관심은 확실하다.

    게다가 결이가 S급인 이상 어떤 수로든 다시 마주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다음번에도 막무가내로 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도 한세희가 도와주지는 못할 테니까.

    ‘……도와준다라.’

    조금 전 있었던 묘한 기류를 떠올리니 등줄기가 싸늘해진다.

    ‘한세희……. 그는 얼마나 강한 걸까.’

    대한민국 최초의 S급 각성자.

    하지만 그는 마지막 퀘스트에 이곳에 없었다. 한국에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마지막 퀘스트가 일어나기 이미 몇 년 전에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만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견제하는 다른 국가의 암살자들에 의해 제거된 것이라 말했다. 그도 그럴 게 우리나라는 나라 면적과 인구수가 적은 편에 비해 S급 각성자의 수가 꽤 많았으니까.

    미국이나 중국에 비교해도 그 수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을 아니꼽게 보는 나라가 많았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분명 한세희가 정치적인 이유로 살해당했으리라 생각했다.

    세계 랭크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각성자가 하루아침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는 게 말이 되질 않았으니까.

    한동안 한국은 완전히 패닉에 빠졌었다.

    ‘살아 있는 한세희.’

    만약 그가 존재했다면 그날의 판도가 바뀌지 않았을까?

    그는 왜 자취를 감춘 걸까.

    쉽게 분석당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그가.

    “형.”

    “응?”

    염태규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다.

    “괜찮아요?”

    “응, 물론 괜찮지. 너는?”

    “저도 괜찮아요.”

    그러고 보니 태규 이 녀석도 S급의 기세에 노출된 건 이번이 처음일 거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았어도 결이는 기세로 누르려고 한 적이 없으니.

    어리기도 어린데 많이 놀랐을 터.

    그런데 염태규의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A급도 레벨을 많이 올리면 S급만큼 강해질 수 있을까요?”

    “응? 그건…….”

    솔직히 말하자면 힘들지. 괜히 등급이 나뉘어 있는 게 아니니까. 갖고 태어나길 차원이 다른 금수저들이랄까.

    분명 S등급들에게도 레벨이 낮은 시절이 존재하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는 S급들은 없으니까.

    “형도 형 랭크보다 훨씬 강하잖아요.”

    “아. 그건…….”

    “그러니까 저도 강해질래요. 저 S급들보다 더.”

    왤까. 왠지 가슴이 찡해진다.

    회귀 전에는 누구보다 등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녀석이었는데.

    매번 나에게 D급이니 떨어지니 짐이 되느니 했던 놈인데.

    그런 염태규가 나를 보며 랭크 같은 건 상관없이 더 강해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왜 감동적이지? 크흠흠.’

    염태규가 의지를 다지자 손예원이나 한세희 때문에 굳어졌던 분위기가 한층 풀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S급만큼 강해지는 건 좀…….”

    “그래! 태규 넌 강해질 수 있어. S급보다 더.”

    김민철이 초를 치는 말을 꺼냈지만, 나는 그의 말을 끊어 버리고 염태규의 어깨를 팡팡 쳤다.

    “맞아, 맞아! 우리 모두 열심히 강해지자구! 다음번엔 S급들이 쳐들어와도 우릴 무시하지 못하게 말이야.”

    인화 선배까지 거들자 김민철은 꼬리를 내리고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나는 가만히 결이를 바라보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S급으로 만들어 줄게.’

    * * *

    “그래서 보니까 어떤 것 같아?”

    손예원의 말에 한세희는 묵묵부답으로 앞만 보고 있다. 운전은 기사가 하고 있으니 굳이 그가 전방을 주시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명백하게 대화를 회피한다는 뜻이었지만, 손예원은 입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왜 까칠하게 굴어. 내 덕에 그 비밀에 감싸인 S급을 만날 수 있었잖아?”

    “군에서 껄끄러워하는 일을 굳이 하는 이유가 뭡니까.”

    “어머. 세희 씨 생각보다 정부에 협조적이네?”

    “비협조적일 이유가 없죠?”

    옅은 갈색 눈이 차창에 비쳤다가 미끄러지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재미없긴.’

    손예원은 그가 좀 더 대화를 나눠 주길 바랐지만, 한세희는 영 그럴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하여간 사람 눈치 보이게 한다니까.’

    사실 생각해 보면 이상할 일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S급들은 어지간하면 정부와 군의 손을 먼저 타니까. 사실 S급뿐만이 아니다. 어지간한 A급과 B급들까지, 게다가 낮은 등급이라도 스킬이 쓸 만하면 언제나 군에서 가장 먼저 손을 뻗쳤다.

    언론을 통제해 가며 비밀스럽게 진행하는 이번 경우는 조금 독특하긴 했지만.

    ‘세컨드 오픈으로 혼란한 대중들을 안심시킬 카드가 될 수도 있는데 아직 숨겨 두는 게 이상하단 말이야.’

    어차피 새로운 S급 한결에 대한 정보는 길드장들 사이에서는 비밀도 아니었다.

    다만 군에서 공문을 보내와 한결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다른 길드 모두 눈치만 보는 상황이긴 했지만.

    한세희 역시 일부러 이곳에 온 게 분명하다고 손예원은 생각했다. 그 사실도 놀랍긴 했다.

    자신을 데리러 왔다는 건 구실일 뿐. 한세희가 이곳까지 행차할 만큼 한결이라는 S급에게 뭔가 있을까?

    왜 그 S급만 특별할까? 직접 눈으로 보니 더욱 의문이 깊어졌다.

    ‘기간에 비해 레벨이 빨리 오른 편이긴 한 것 같지만, S급들 중에서 특출난 정도는 아니고.’

    손예원이 머리를 굴리는 동안에도 한세희는 그저 창밖을 보고 있을 뿐이다.

    ‘껄끄럽단 말이지.’

    당연히 편할 상대가 아니긴 했다. 경쟁 상대인 다른 길드의 길드장인 데다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처음 S급으로 각성한 남자.

    게다가 겉으로는 예의 바르지만 언제나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아마 처음 그와 마주친 날, 기세 싸움에서 밀렸기 때문이리라.

    ‘그때 첫 단추를 잘못 끼웠어. 지금은 내가 훨씬 강할 텐데 말이야.’

    손예원이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눈을 빛냈다. 불편해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였으니까.

    “그래서 어떠냐니까?”

    “뭐, 평범하던데요.”

    “어머, 그럼 별로 탐나지 않으신다?”

    “그럴 리가요. S급인데요. S급 하나면 평범한 각성자 100명보다 큰 가치가 있는걸요. 그래서 지금 군에서도 애지중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길드에게 뺏기지 않으려고요.”

    “흐응. 역시 그렇지? 정말 간만의 S급이니까 말이야. 일단 나는 얼굴이 마음에 들어. 성격은 까칠해서 별로지만.”

    “어련하시겠어요.”

    한세희가 고개를 저었지만 손예원은 진심이었다. 그녀의 그런 점을 한세희가 싫어한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지만, 손예원은 누군가가 싫은 내색을 하는 걸 지켜보는 게 좋았다.

    잘생긴 얼굴이 짜증을 내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길드장끼리 내기할까? 누가 데려갈 수 있을지.”

    “오늘 한 행동을 봐서는 절대로 예원 씨가 이길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정말~ 그런 식으로 계속 초를 칠 거야?”

    “초를 치는 게 아니라……. 됐습니다. 백 번을 말해도 당신은 당신 말이 옳잖아요.”

    “고마워, 그렇게 존중해 주다니. 후후후. 앞으로가 정말 기대되는걸.”

    * * *

    “아니~! 왜 안 되는데!”

    류환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현관을 울렸다.

    “이렇게 연락도 없이 갑자기 집에 찾아오고 그러지 말지.”

    내 말에 인형 같은 이목구비가 극렬하게 분노를 표현한다.

    “미리 연락하면 도망가니까 그렇지! 왜 안 되는데! 우리도 길드 만들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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