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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58화 (58/250)
  • 제58화

    제58편

    “나를 못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신기하네. 어지간해서는 스킬을 쓰지 않아도 다들 알아보더라고. 해령은 몰라도 손예원은 알던데. 아하하!”

    길드 해령.

    금성 길드와 더불어 현재 대한민국 최강의 길드 중 하나.

    손예원은 해령의 길드장이었다.

    ‘저 사람이 왜…….’

    갑자기 나타나서 기세 공격이라니. 무례하기 짝이 없지만, 그녀의 행동 자체에 놀란 건 아니었다.

    손예원은 회귀 전에도 성격 파탄자라며 유명했으니까.

    왜 그런 무시무시한 별명을 얻게 됐냐 하면 이야기가 무척 긴데…….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여기서 해.”

    결이가 냉랭한 말투로 쏘아붙였다. 아이고, 결아. 물론 손예원이 잘못한 거긴 하지만 아무래도 자극하지 않는 게……라고 말하고 싶지만 손예원을 가까이에서 본 충격으로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렇게 금방 만나리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까.

    “너 내가 몇 살인 줄 알고 반말이야?”

    “당신이 먼저 무례하게 굴었으니까.”

    “하, 참 나. 맹랑하네?”

    입에서 나온 말과는 달리 손예원은 활짝 웃고 있었다. 분홍색 입술 사이로 보이는 송곳니가 다른 사람들보다 뾰족해 보인다.

    “이래서 S급들은 안 된다니까. S급 무서운 줄을 몰라.”

    그녀는 혼자 킬킬대다가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통통 튀는 전화 연결음이 들린 뒤, 곧 장난기 가득한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어어. 누나. 성공했어?]

    “그래, 이 자식아. 자아. 인증!”

    손예원이 휴대폰 화면을 톡톡 두들기고는 팔을 쭉 뻗자 휴대폰에서 비명이 쏟아졌다.

    [와~! 쟤가 한결이구나! 잘생겼잖아?!]

    “그래, 요즘 애들이 딱 좋아할 것 같은 얼굴이지?”

    “……? 지금 뭐 하는…….”

    “응, 영상통화 중.”

    “누구 마음대로.”

    결이가 손예원의 휴대폰을 낚아채려 했지만,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열받은 결이의 미간이 구겨진다.

    “자 충분하게 인증됐지?”

    [어~ 손예원이 다 움직이고. 누나 잘했어요!]

    “다음에 내가 이기면 각오하는 게 좋을걸. 진짜 골 때리는 걸 시킬 테니까.”

    [아이 참, 누나도 궁금했으면서!]

    “흥.”

    손예원이 통화를 끊고 휴대폰을 핸드백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거리를 좁혀 결이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흐응. 키가 조금 아쉽긴 한데. 아직 성장기려나?”

    상당히 높은 굽의 힐을 신고 있긴 했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손예원은 한결이보다 훨씬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결이의 머리 위로 손바닥을 올려 키를 가늠해 보고는 씩 웃었다.

    “별건 아니고. 내기를 좀 했거든.”

    “내기라고?”

    “응, 내 친구가 한결 네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군에서 그렇게 눈독을 들이고 있는지 한번 봐 달라고 하더라고. 굳이 내가 이런 곳까지 직접 와야 하나 싶지만 내기는 내기니까. 하여간 그 녀석은 장난을 좋아해서.”

    그녀의 대답에 나까지 욱한다.

    S급이 대단하긴 하지. 게다가 결이는 꽤 오랜만에 대한민국에 등장한 S급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동물원 원숭이는 아니지 않은가.

    구경이라니. 내기라니. 도대체 뭔 생각인 거야?

    “게다가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궁금하긴 했어. 언론까지 통제하면서 눈에 안 띄게 만들 가치가 어디 있는지 궁금했거든.”

    손예원의 말에 퍼뜩 상황이 파악된다.

    ‘아아, 그런 건가.’

    생각해 보니 헌터 자격증을 수료하고 나서도 주위가 잠잠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회귀 전에는 결이가 센터에 등록하자마자 취재진이나 길드 직원들에게 계속 시달렸는데 말이다.

    이런저런 사고가 터져서 나라가 혼란한 와중에도 S급 헌터의 등장은 뉴스 메인에 오를 만큼 대단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접촉해 오는 길드 중에서 한 곳을 정해 계약을 맺었었다.

    심지어 무조건 나와 함께 계약하겠다고 해서 조건도 낮춰서 들어갔었지.

    ‘군에서 주시하고 있다고 듣기는 했지만.’

    성 대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윗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고. 주목하고 있다고. 어지간히도 입대시키고 싶구나 싶다. 언론 통제까지 했다고? 그래 봤자 절대로 안 들어갈 거지만.

    ‘그래도 열받네?’

    손예원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스킬을 사용한다.

    스슷.

    영혼 분별사.

    [손예원]

    영혼 등급: A

    영혼 상태: 안정

    싱크로율: 65%

    ‘켁. 저 사람이 A등급이라고?’

    심지어 상태도 안정 상태다. 싱크로율도 생각보다 높다.

    분명 수치가 별로이리라 생각했는데 예상이 완전히 틀렸다.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한결이보다 나은 점은 찾아볼 수도 없는데!’

    손예원의 얼굴을 노려보아도 별 방법은 없다.

    “뭐, 시시하긴 해도 직접 눈으로 볼만하네.”

    그녀의 눈이 길게 휘어진다.

    “예쁘게 생겼어.”

    “쿨럭!”

    조용히 있던 김민철이 기침을 하더니 놀라 어깨를 떨었다. 손예원은 김민철을 흘겨보았다가 어느새 결이의 뒤로 가 섰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결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새하얀 손가락이 결이의 목을 훑는다.

    “우리 길드에 들어오지 않을래?”

    깜짝 놀란 결이가 그녀와의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집요하게 결이에게 따라붙었다.

    “싫어!”

    “응? 해령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해령에서 스카우트를 직접 해 가는 각성자는 거의 없다고? 정말로 생각 없어?”

    “생각 없어!”

    “왜?”

    손예원은 급기야 자신을 뿌리치려는 결이의 팔을 두 손으로 낚아챘다.

    “놔!”

    “왜 싫냐고.”

    그녀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사라진 상태였다. 온도가 전혀 없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것 같은 표정.

    다시 기세를 뿜어낸 것도 아닌데 등골이 오싹해지는 얼굴이어서 소름이 끼쳤다.

    “그야 당신 인상이 최악이니까.”

    불이 붙은 것 같은 목소리와 함께 결이의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이런. 꼭지 돌았다!’

    파지지지직!!

    순식간에 결이 주변으로 요란하게 스파크가 튀었다.

    다행히 결이의 낌새를 빨리 알아차린 은영 선배의 보호막이 찰나의 순간에 우릴 감쌌다.

    파츳, 파츠츠츠!!

    순간적인 빛이 사그라들고 다시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어…….”

    결이는 여전히 손 하나를 붙잡힌 상태였다.

    “후우. 찌릿찌릿하네.”

    손예원이 결이를 놓은 손 한쪽이 따가운 듯 탈탈 털어 내며 입김을 후후 불어 댔다.

    ‘강하다.’

    순간적으로 욱하긴 했어도 결이는 주변에 우리가 있는 걸 알기에 최대 출력의 전기를 뿜어내지 않았다. 하지만 결이에게 바짝 붙어 있는 손예원에게는 꽤 타격이 들어갔을 터.

    그런데도 저 정도의 반응뿐이라니. 그녀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났다.

    ‘완전히 어린애를 상대하는 것 같잖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 손예원’이었으니까.

    퍼스트 오픈이 시작된 이후 국내에서 두 번째 발생한 S급 각성자였다. 그만큼 쌓은 레벨이 높다는 거다. 대한민국에서 감히 그녀를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녀의 존재감이 무척이나 크게 다가왔다. 마치 거인 앞에 선 것처럼 위압감이 느껴진다.

    손예원과의 첫 만남이 이런 식으로 꼬이다니.

    운이 나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죄송하지만 그만둬 주세요.”

    “응?”

    하지만 이대로 지켜만 볼 수도 없다.

    “방금 던전 공략을 끝내고 나온 참입니다. 괴롭히는 건 적당히 하시죠. 그리고 방금 그거 성추행이거든요.”

    손예원은 붙잡고 있던 결이의 손을 탁 내려놓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넌 누군데?”

    그리고 천천히 내게 다가온다. 모델처럼 꼿꼿한 움직임. 눈으로 좇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면서 일부러 느릿하게 움직이는 걸음이 위협적이다.

    파앗. 내 앞을 결이가 막아섰다.

    “얼씨구.”

    그녀는 작게 웃음을 흘렸지만,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겠어서 무섭긴 하다.

    “아, 둘이 친구? 그래. 들었어. 꼭 붙어 다니는 애가 하나 있댔지. 그런데 내가 듣기로 친구는 별 볼 일 없다고 들었는데.”

    “말조심해.”

    결이가 날을 세웠고 으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손예원은 전혀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사실인데 어떡해.”

    “제발 그 정도만 하라니까요.”

    “안 그만두면?”

    등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속도를 끌어 올려 순식간에 내 뒤로 간 거겠지. 목덜미에 소름이 쭉 끼치지만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다.

    “안 그만두면 어쩌실 겁니까? 우릴 죽이기라도 하게요?”

    “응?”

    솔직히 손예원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애초에 첫 각성 후 폭주해 지역 하나를 지워 버린 사람이다. 이후로 군과 각성자 센터에서 수많은 훈련을 거친 후 겨우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됐다고 들었다.

    커트라인을 아슬아슬하게 넘겼다고 했지. 어쩔 수 없이 S급의 힘이 필요해서 풀어 줬다는 말도 있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후로 그녀가 저지른 일들이 조금씩 기억나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왜 손예원이냐고.

    ‘그래도 우리도 믿는 구석이 있다고.’

    괴물 특수부대. 언론을 통제할 정도로 결이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면 손예원 역시 군과 관련해 일이 커지는 건 피할 테니까.

    ‘……피하겠지? 피해야 하는데.’

    솔직히 회귀 전에는 그녀와 직접 접촉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약간 불안하긴 하지만 말이다. 정말 소문으로 들었던 것만큼 이상한 여자다.

    “우리가 죽으면 곤란해질걸요. 게다가 전 여기서 죽기 싫고요. 죽는 건 질색이라고요.”

    표정이 전혀 없던 손예원의 눈이 점점 동그랗게 떠지더니 입술이 씰룩거린다.

    “풋! 푸하하하!!”

    손예원을 제외한 모두는 심각하고 황당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친구 쪽이 훨씬 유머 감각이 좋네?”

    저기요. 유머가 아니거든요. 이미 한 번 죽어서 정말로 다시 죽기 싫다고요. 대체 어느 부분이 웃긴 건지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내가 굳이 죽는다는 이야길 반복한 건 이유가 있어서였다.

    황천에서 돌아온 업적의 효과로 상대방의 영혼을 흔들기.

    분명 이전에 효과가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지금 반응은 역시 업적의 효과가 적용된 거 아닐까.

    “나도 정말로 죽일 생각은 없었지. 그런데 너희들이 자꾸 열받게 하니까 약간 흥분했네.”

    누가 뭘 어떻게 열받게 했다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 본인이 제일 많이 도발하신 것 같은데요. 물론 그렇게 반문하지는 못하겠지만.

    “오늘은 정말로 얼굴만 보러 온 거였어. 어떤 사람인가 알아보기도 하고. 게다가 마음에 든 것도 거짓말 아냐. 그런데 대화를 해 보니까 친구 쪽이 나랑 더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네.”

    손예원은 깔끔하게 손질된 손톱으로 자신의 볼을 쿡쿡 찔렀다.

    “친구도 해령 길드에 들어올래? 쥐뿔도 없으면서 건방진 게 좀 귀엽네.”

    “아, 아뇨. 저흰 아직…… 길드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서요.”

    “왜?”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려고요.”

    “뭐? 크하하핫!”

    웃기려고 한 건 아닌데……. 그래도 웃는 게 차라리 나으려나 싶다.

    “그래, 그래. 어련하시겠어. 그런데 정말로 말해 두는데. 해령이 대한민국 최고야.”

    그녀의 표정에서 자부심이 흘러넘쳤다.

    “내가 길드장으로 있으니까. 최고가 아닐 리 없잖아.”

    “그런가?”

    낯선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했던 손예원의 표정이 심드렁하게 바뀐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린다.

    “가는 길에 좀 태워 가려고.”

    거기에는 큰 키의 남자가 서 있었다.

    노인의 것처럼 새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머리카락뿐만이 아니었다. 피부와 눈썹, 게다가 속눈썹까지 모두 흰색인 남자는 폐허처럼 보이는 주변 환경과 동떨어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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