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제56편
“한결! 야, 한결!!”
사나운 목소리가 한결을 불러 세웠다.
“야 이 개X끼야. 너는 위아래가 없냐?”
“…….”
“X발 이 새끼 대답 안 해?”
퍼억!!
매서운 주먹이 날아든다.
8살의 한결은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하! 이 새끼 봐라. 역시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어린 새끼가 진짜 맨날 눈이 돌아서. X발 네가 영도한테 포크 들고 덤볐다며? 진짜 뒈지고 싶냐? 하여튼 자살을 기묘한 방법으로 해요.”
“X같은 게.”
작은 한결의 입에서 상스러운 말이 흘러나온다.
그러고 보면 한결의 얼굴은 상처투성이다. 흰 피부 위로 붉고, 보랏빛이고 오래되어 푸르딩딩하다 못해 녹빛에 새까매진 멍도 가득했다.
“네가 지금 이러는 게 자살이야. X발 놈아.”
한결이 번개같이 바닥에서 튀어 올라 자기보다 머리통 세 개는 더 큰 소년에게 달라붙었다.
방심하고 있던 소년은 기우뚱 넘어지고 작고 매서운 주먹이 넘어진 아이의 얼굴을 가격한다.
퍼억! 퍽!
“야! X발! 누가 말려! 야 저 새끼 떼어 내!”
“X발 떨어져!”
“이 새끼 힘 X나 세!”
“안 떨어져!”
“야, 걍 밟아.”
퍼억, 퍽. 퍽!
열 명 남짓 남자아이들의 발길질이 시작됐다.
“아~! X이파알!!”
무리의 공격 덕분에 한결은 떨어져 나가고 밑에 깔려 얻어맞던 소년이 부축받으며 일어나 소리를 질러 댔다.
“오늘 너 이 새끼 뒈졌다 진짜. 이 사이코패스 새끼.”
소년이 달려들어 무리에 합세하고 고작 8살짜리 한결에게 무정한 폭력이 쏟아진다.
한결이 눈을 떴을 땐 익숙한 작은 사무실이었다.
병원에서 쓸 것 같은 침대가 놓여 있고 희미하게 약품 냄새가 났다.
“너 또 형들이랑 싸웠더구나.”
“…….”
“제발 좀 형들 말 좀 들어. 왜 이렇게 엇나가니? 너 그러다가 범죄자 돼. 감옥 가고 싶어? 어린애라고 봐줄 것 같니? 사회를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보지 말아라.”
어두워져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남자가 말했다.
“에휴, X발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희 같은 악마 새끼들만 있는 건지. 이러다가 애 하나 죽어 나가면 어떻게 책임지라고. 하여튼 짐승 새끼들만……. 어휴.”
“…….”
“너는 애들 평균을 벗어났어. 너한테만 발라 준 연고가 얼마냐. 너 그거 알바해서 갚아, 갚을 수 있는 나이 되면. 진짜 별……. 형들 잘 때 되면 알아서 들어가라.”
한결은 온몸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이제는 질린다는 남자의 피곤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저 멍하니 잘 보이지 않는 천장을 바라보면서 어차피 제대로 약을 발라 준 적도 없었으면서. 라고 생각했다.
은혜와 사랑 보호소.
한결이 태어나서부터 줄곧 살아온 시설이었다.
태어난 후 아주 잠시는 이곳에 없었겠지만, 한결의 의식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이곳에는 은혜와 사랑 같은 건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건지도 몰랐다.
어쨌든 어린 시절의 한결에게는 어둡고 눅눅하고 기분 나쁜 기억뿐이었다.
길거리 개들처럼 싸우고 물어뜯고 서로를 사냥하고.
매일 반복되는 지옥.
‘대체 예배는 왜 드리는 건데. 설교랑 맞는 게 하나도 없는데.’
세상에는 서로 나눌 사랑이 없었고 신이 내린 구원도 없었다. 강대상 아래로 흘러나오는 달콤한 말들은 모두 거짓말뿐이었다.
예배당을 벗어나면 덩치가 큰 아이들이나 상급생들의 구타와 괴롭힘이 시작됐다. 사실 한결 정도면 나은 편이었다.
정말 약한 아이들은 매일 울고 지냈지만, 한결은 소위 싸가지가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형들이 귀찮은 날엔 그냥 지나갔다.
그런데 그날은 형들이 귀찮지 않은 날이었다.
“이 새끼가 진짜 너 또 영도한테 대들었다며? 넌 왜 정신을 못 차리냐.”
“진짜 죽고 싶어서 그래? 하……. 나 천국 가야 해서 살인 못 한다고.”
짐승들끼리 킬킬거렸다.
“야 오늘도 딱 죽지 않을 만큼만 패 주자.”
퍼억! 퍽!
자비 없는 매타작이 시작됐다. 익숙해서 비참한.
“선생님! 여기요! 여기예요!”
둔탁한 타격음 사이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해! 때리지 마!”
맞는 아이들이 울며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선생님!!”
“아, X발 쟤 뭐냐?”
“야 공무원 왔다. 튀어!”
“X같은. 말도 없이!”
들개들이 도망치고 쥐어 터진 눈앞에 작고 하얀 손이 내밀어졌다.
“괜찮아?”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햇살이 너무 눈에 부셔서 내민 손의 주인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하하하, 아이들이 좀 다투기도 하고 그럽니다. 남자애들만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혈기 왕성한 시기라 그런 거겠지요. 늘 충분히 교육은 하고 있습니다. 아뇨, 아뇨. 방치라뇨. 그럴 리가 없지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 아이 흉터도 많고 여기 이 멍은 오래된 것 같은데요.”
시설을 관리하는 공무원 앞에서 시설장은 온갖 아첨을 떨어 댔다.
“이건 지지난 주에 축구를 하다가 다친 거지. 한결아. 응? 여기 선생님이 걱정 안 하시게 설명해 드려.”
“네. 맞아요. 축구를 하다가 다쳤어요.”
한결은 영리하게 대답했다.
몇 번 이런 식으로 외부에 시설의 진상을 고발할 기회를 얻은 아이들은 어떻게 됐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애들은 다시는 그런 말을 못 하게 됐다.
아주 입을 다물어 버리게 된 애도 있었다. 불도 들어오지 않는 1평도 되지 않을 기도 방에서 일주일이 넘게 감금되면 아이들 대부분은 더할 나위 없이 고분고분해지기 때문이었다.
“……센터장님을 믿습니다. 요즘 하도 시설에서 일어나는 사고가 많아요. 안 그래도 외로운 아이들인데 잘 이끌어 주십시오.”
저 말을 믿다니.
솔직히 말해서 모두 한통속이라는 아이들의 말에 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세상은 어차피 원래 다 그런 것이었으니까.
바깥에서 온 애들이 뭣 모르고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모두 허상이고 아이들은 곧 시설에서 자란 이들과 같이 변해 갔다.
어차피 이번에도 그럴 거다.
이 애도.
“이번에 우리 시설에 새로 들어온 은하준이란다. 잘 대해 주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는 아이를 보고서 한결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한결이랑 하준이가 동갑이네. 시설에 동갑은 둘뿐이니까 서로 잘 지내라.”
잘 지내라는 건 어떻게 지내라는 것일까.
어차피 한결은 귀찮을 뿐이었다. 굳이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었다.
한결을 위해 누군가를 불러오고, 일어나라고 손을 내밀어 주고, 괜찮냐고 물어본 사람은 은하준이 처음이었으니까.
“야, 새로 들어왔으면 신고식을 해야지.”
“너 부모님이 사고로 다 죽었다며? 뻔뻔하게 혼자 살아남냐.”
“부모님이 섭섭하시겠네.”
“엄마 아빠 다시 만나게 해 줄게.”
“쫄았냐?”
“이 새끼 지리는 거 아냐?”
“어?”
퍼어억!!
한결의 날아 차기에 서영도가 밀려 쓰러졌다.
“어 뭐야. 너, 너 이 새끼 한결!!”
“뒈질래!!”
은하준을 괴롭히려던 무리가 한결을 향해 악다구니를 쏟아 냈다.
“어?”
“야 저 새끼 눈깔 왜 저래.”
“……뭐야.”
“야 저 새끼 손에…….”
“칼? 저 X발 돌았나.”
그건 평범한 8살짜리의 눈이 아니었다.
인간 이하의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상급생 무리가 순간 움츠러들 정도로 차갑고 기묘한 눈이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고하는 눈빛.
“건드리지 마라.”
“뭐? 이 새끼가…….”
“죽든 말든 겁 안 나.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런데 어쨌거나 몇 놈은 같이 죽는다.”
“……미친.”
아무리 매번 쥐어팼어도 한결이 싸움을 잘한다는 사실을 상급생 무리도 알고 있었다.
한결과 싸움이 있는 날이면 저들도 한둘씩은 며칠 동안 앓을 정도였다. 그러니 지금 하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어린애 같지 않던 묘한 기운과 눈빛이. 정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다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8살 아이가 가지기에는 너무나 차가운 눈빛이었다.
상급생이라고 해 봤자 모두 초등학생인 상황에서 무리는 주춤거렸다.
“에이 씨…….”
“야, 야. 이번엔 그냥 가자.”
“퉤!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무리가 사라지고 정적이 흘렀다.
“저, 고마워……. 난 은하준. 넌?”
“…….”
한결은 은하준의 이름을 단번에 외웠는데 하준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냥 조용히 돌아서려는데 뒤에서 하준이 한결을 잡아당겼다.
“이런 건 들고 다니면 안 돼. 위험해.”
“방금 내가 널 구해 준 건 잊었어?”
“알아! 하지만 안 돼. 앞으로는 그러지 마. 알겠어?”
“……걔들은 또 그럴 거야. 늘 그랬으니까.”
“곤란하네…….”
“그럼 주먹으로 때리는 건 괜찮냐?”
“흐음…… 그래. 맞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죽이는 건 안 돼.”
“왜? 너도 천국에 가고 싶냐?”
“천국? 몰라. 그런 거. 그런데 누가 죽는다는 건 엄청나게 슬픈 일이거든. 엄청나게 아픈 일이거든. 그런데 나 때문에 누가 죽는다고 생각해 봐. 분명 엄청나게 힘들 거야. 고통스러울 거야. 맞는 것보다 훨씬.”
“너 바보냐?”
“그러니까 죽이지는 마. 너도 죽지 말고. 죽는 건 싫으니까.”
“……뭐야.”
한결은 그 말이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쩐지 하준의 말을 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걱정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날 하준과 한결은 함께 과도를 주방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친구가 됐다.
그러니까 이건 아주 예전의 일이었다.
한결과 하준이 만났던 때.
멍청하고 순진한 침입자가 세계를 뒤흔들어 놓고 하지 않아도 될 귀찮은 일들과 맞설 수 있게 됐던 때.
함께 그 아수라장에서 도망갈 힘을 얻은 때.
둥실 떠오르는 기분 속에서 한결은 깨달았다.
지금 이건 현실이 아니다. 왜 이때의 기억이…….
“허억!”
눈이 떠지고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자신은 서인화의 보호막 안에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거대한 눈알 몬스터와 싸우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하준…….”
민첩한 움직임으로 몬스터에게 대미지를 쌓고 있는 하준이 보였다.
하준이 돌아본다.
“어! 깼네! 잘했어!!”
하준이 밝게 웃는다.
* * *
쉬익. 쉭!!
새벽의 검이 매드 크리피 아이볼을 재빠르게 베어 낸다.
눈알치고는 단단한 외피를 가지고 있지만, 이미 많은 대미지를 받아 낸 놈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쏟아 낸 후 아이스크림이 녹는 것처럼 녹아 사라졌다.
“해치웠다!”
이 녀석은 정신력 붕괴 스킬을 사용해 적을 미치게 만든다. 스킬에 당한 대상은 쓰러지거나 몸이 굳어 버린다.
매드 크리피 아이볼이 만든 끔찍한 환상 속에 갇혀 버리는 거다.
패닉 상태에 빠진 적을 손쉽게 해치우는 것. 그게 녀석의 방식이었다.
‘솔직히 나도 버틸 수 있을지 몰랐어.’
아이템의 보정치까지 생각하면 한결이가 나보다 정신력 수치가 높을 터였다.
하지만 놈의 스킬은 인화 선배의 방어막처럼 확률로 운 좋게 피해 갈 수도 있었다.
‘그래도 이놈 한 놈 정도면 인화 선배와 염태규가 처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김민철이 안 쓰러졌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어찌 됐거나 계획이 틀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얻고자 하는 것도 얻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