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제55편
타아앗!
거리가 좁혀지는 건 순식간이다.
애초에 김민철과의 거리를 벌리지 않은 것도 이 때문.
딜러들이 최전방에서 활약하는 동안, 이런 것들은 나 같은 포지션 담당이지.
회귀 전에는 못 하던 걸 지금은 가뿐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이, 너희 상대는 나라고.”
김민철이 공격 스킬을 사용하기도 전이다.
쉭, 쉬익!!
두 개의 검은 검이 순식간에 구울의 등을 삼등분한다. 그리고 다시 아래로 숙인 후 다른 놈의 아킬레스건을 베어 버린다.
촤아악!!
두 놈이 새카만 피를 뿜었지만, 내게는 단 한 방울도 튀지 않는다. 튀기 전에 이미 마지막 한 놈의 심장에 칼을 꽂아 넣은 상태다.
‘베기에 적합한 형태의 검이지만, 너무나 날카로운 나머지 깊이 박히는군.’
구울은 딱딱한 껍질이나 비늘을 가지지 않은 몬스터이기에 더욱 손쉽게 베어지는 듯했다. 꽂힌 검에 힘을 주고 옆으로 제친다.
지지직! 빠드득!
촤아악!
구울의 몸통 살과 뼈를 가르고 공기와 다시 닿은 검에는 시커먼 구울의 핏물이 뚝뚝 떨어진다.
“끄르르극…….”
심장을 찔린 데다가 몸의 절반이 그대로 찢어발겨진 구울이 피거품을 뿜으며 쓰러진다.
“헉, 허억…….”
놀란 김민철이 숨을 헐떡이며 얼어붙어 있었다.
“빠, 빠르시네요.”
“제가 좀 빠르긴 하죠.”
“도저히 D급으로는 안 보이는데…….”
김민철을 말을 뱉고도 조금 미안한지 입을 쭈그러트렸다.
“아이템에 민첩 보정 효과가 있어서요.”
내 말에 그의 눈이 빛난다.
“그거 엄청 좋은 아이템인가 보네요.”
“네. 운이 좋았죠.”
“던전에서 얻은 건가요?”
내가 돈이 썩어나는 갑부 헌터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네. 각성자 자격증 딸 때 실습에서 얻은 겁니다.”
“우와!!”
김민철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소리를 지르다시피 해서 귀가 울릴 정도였다. 순식간에 그의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와……. 운이 진짜 좋으신가 보네요. 센터 실습에서는 E급 던전에만 가지 않나요? E급이나 F급 던전을 돈다고 알고 있었는데.”
“맞아요. 그때도 E급이었죠.”
“와 씨……. 대박인데. 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허어.”
감탄이 이제는 거의 혼잣말로 바뀌었다. 1절만 했으면 모르겠는데 김민철은 5절 6절을 해 가며 혼자 중얼거렸다.
“흠흠. 아직 사냥 안 끝났으니까 긴장 놓지 말자고요.”
“아, 네. 아니 그런데 너무 신기해서. 저 S급 분이 쓰시는 검도 뭔가 엄청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일단 X나 멋지잖아요. 간지가 막 철철……. 저것도 던전에서 얻은 거예요?”
“맞아요.”
“와 진짜 운이 엄청나게 좋은가 보네……. 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와 부럽다…….”
물론 한결이 아이템은 센터 실습 던전에서 얻은 건 아니지만 말이다.
뭐 아무렴 어때. 김민철은 아무것도 모를 텐데.
파직, 파지직!!
한결이의 검이 그어질 때마다 약한 스파크가 일었다. 그래서 자욱한 안개 속에서도 움직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구울은 그 수가 많아서 그렇지, C급 던전치고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은 아니었다.
‘아니면 우리가 너무 강해진 걸까.’
원래라면 인화 선배도 염태규도 지금 레벨보다 훨씬 낮아야 맞을 거다. 하지만 내가 첫 실습에서 벌인 일 덕분에 적어도 레벨이 6~7 정도는 올랐다.
덕분에 이제 갓 취득한 따끈따끈한 자격증을 가지고도 이렇게 선전할 수 있는 거다.
그게 아니었다면 애초에 이 인원수로 C급 던전 공략에 나서지도 않았을 거다.
“와, 다들 이제 막 자격증 땄다면서…… 실력들이 장난 아닌데요? 진짜 이상하다……. 저한테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에이, 그런 걸로 거짓말을 왜 합니까. 누구 좋으라고요.”
“아니 그런데 진짜로요. 이제 갓 헌터가 됐다면서 레벨도 높으신 거 같고. 특히나 하준 님이요. 다른 분들이야 랭크가 워낙에 금수저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아무리 봐도 D급이라고 볼 수 없는 게 사실이긴 하다.
왜냐하면 D급의 스텟이 아니니까.
‘영혼석과 소울 포인트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되기 힘들겠지.’
쉭, 휘익!
김민철의 뒤로 빠르게 다가오는 구울을 베어 버리며 피식 웃는다.
“방심하지 말래도요.”
“와……. 진짜 빠르다니까요. 이게 D급이면 상위 랭크 다 뒈져야 한다니까.”
“칭찬은 고마운데요.”
“딜러들도 봐요. 지금 힐을 해 줄 필요가 없는데. 전투에 너무 뛰어나요.”
“지금은 초반이라서 더 그럴 겁니다. 원래 구울 자체가 상위 랭크 몬스터는 아니잖아요. 앞으로는 점점 더 어려워질 테니 집중 부탁드릴게요.”
“아, 네넵.”
김민철은 민망하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그렇게 그의 곁을 지키면서 해치운 구울만 30여 마리.
“후, 진짜 많았다.”
김민철은 거의 서 있기만 했는데도 땀을 닦으며 실실 웃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진 않더라. 솔직히 우리끼리 바로 C급으로 간다고 해서 엄청 걱정했거든.”
구울을 모두 쓸어버리고 돌아온 인화 선배가 입을 동그랗게 만들어 숨을 뱉고는 말했다.
“사실 여기는 C급 중에서도 최하 난이도로 꼽혀요.”
“오오, 그래? 하준이는 정말 모르는 게 하나도 없구나!”
“뭐, 제일 최하급은 아니고. 내가 아는 데가 두어 군데 더 있긴 하지.”
김민철이 슬쩍 말을 얹었다. 그러고는 인화 선배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피는 눈치였다.
‘아이고 이 양반아.’
하지만 이런 시시콜콜한 일까지 내가 신경 써 줄 필요는 없지.
“뭔가 실전이라고 생각하니까 더 떨리고…… 이상한 기분이네요.”
염태규가 상기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미 센터에서 질릴 만큼 실습한 주제에 지금 와서 뭐가 떨린다는 걸까.
아마 어려서 그렇겠지. 지금은 뭘 해도 재밌을 나이니까.
청춘이 부럽다.
“무앙! 무와앙!”
망량이가 알아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다음 몬스터가 나올 스폿을 찾는 동안 김민철의 수다를 견뎌야 했지만.
“아까 말하려고 했는데요. 나는 D급 중에서 펫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도 처음…….”
이제는 김민철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이 없다.
‘이쯤에서 그게 나왔던 것 같은데.’
여전히 던전 가득 차오른 안개 속에서 n번째 시야 스킬을 발동한다.
즈으으으…….
적외선 카메라처럼 변하던 암시야와는 달리 눈앞은 스킬을 사용하기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신 눈앞에 있는 동료들의 몸 주위로 묘한 색의 아우라가 둘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결이는 푸른빛, 인화 선배는 초록빛, 염태규는 노란빛이다.
‘푸른색? 결이 오늘 기분이 별로인가.’
푸른빛은 저조, 초록빛은 양호, 노란빛은 혼란.
낮은 레벨의 에스퍼 시야는 이렇듯 전반적인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
염태규의 혼란은 이해가 갔다. 지금 신이 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묘한 상태라는 거다.
‘어째 오늘 말이 없다고 했어.’
슬쩍 돌아보니 김민철 역시 노란빛. 다들 딱히 걱정할 상태는 아니다.
게다가 이 스킬을 사용한 이유는 따로 있다.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안개로 뿌옇고 먼 곳을 응시하기를 반복.
드디어 저 먼 너머에 보랏빛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멈춰요!”
“응?”
“무왕!”
망량이마저 왜? 라는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모든 던전의 길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굴어 놓고서는 이번에는 캐치가 늦다니.
왠지 망량이 녀석보다 빨리 알아챘다는 사실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저 보랏빛은 늘 몬스터의 기운이다.
“조금 있으면 몬스터가 나타날 거예요. 기운이 느껴지거든요.”
“기운?”
결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응, 전에 기가스 오거 상대하고 나서 레벨이 오른 탓에 스킬 레벨이 올랐거든.”
“오오.”
인화 선배가 부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웃는다.
“난 겨우 레벨이 3 정도 올라서 별다른 변화가 없었는데, 부럽다!”
“누나 랭크에 3레벨 업이면 선전한 거죠.”
“물론 그렇기야 하는데.”
“어쨌든 쉿……. 다들 소리를 좀 낮춰요. 어느 정도 다가온 다음에 바로 대비할 거니까.”
내 지시에 따라 다들 숨을 죽인다.
“누나, 할 수 있으면 보호막 스킬 이용해서 민철 씨 좀 보호해 주세요. 그거 정신계 방벽도 되죠?”
“음, 공격 특성별로 방어도가 달라서. 정신계 방벽도 있긴 한데 그렇게 크진 않아. 심지어 이건 확률로 정해지네.”
“그래도 극악까지는 아니네요.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나으니 부탁해요.”
“그래.”
쉬우웁!
보랏빛이 나는 반투명한 보호막이 마치 버블 껌처럼 김민철을 덮는다.
‘일부러 이 몬스터 때문에 마법사 계열은 데려오지 않았어. 우리 팀 딜러들은 모두 근접전이 가능하니까.’
먼 곳에 있던 보랏빛은 마치 둥둥 떠 있는 것처럼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형, 전 뭘 할까요.”
“태규 너는…… 음, 그냥 열심히 싸워.”
“네?”
내가 기억하기로 염태규는 정신력 스텟이 월등히 높은 녀석이었다. 성질이 더러워서 매번 팀원과의 다툼이 문제였지.
그래, 랭크와 스텟만 생각하면 정말 훌륭한 헌터였다.
결이와 눈이 마주쳤고 녀석도 내 지시를 기다린다는 걸 깨달았다. 결이에게도 사실 크게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사실 할 말은 너무 많았지만, 너무 길어서 할 수 없달까.
“팔찌 잘 챙겨.”
“응?”
결이는 내 말에 손목에 있는 팔찌를 내려다본다.
솔직히 말하면 결이를 위해 이 던전에 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금 과격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우우우웅…….
보랏빛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미묘한 소음이 공기를 울렸다.
“다들, 되도록 스킬 말고 근접전으로 가요.”
우우우웅……!!
보랏빛이 코앞까지 왔다. 하지만 다른 모두는 몬스터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에스퍼 시야가 없었다면 팀원들과 같은 처지였을 것이다.
이 녀석을 상대하려면 뛰어난 감지 마법이 있어야 한다. 특히 에스퍼 계열 감지 마법. 다른 부류의 감지 스킬도 도움이 되긴 하지만 녀석을 상대하려면 정해진 몇몇 마법 계열 스킬이 최고다.
문제는 이놈의 특징적인 공격이 정신 계열이 예민한 마법사나 힐러 등 주술 계열이 상대하기에 상성이 너무 좋지 않다는 거다.
그게 뭐냐면…….
“어, 어어……!”
김민철이 놀라는 소리와 함께.
우우웅!! 후와아아악!!
거칠게 안개가 걷히면서 드디어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눈알.
마치 인간의 것처럼 맑은, 그러나 끔찍하고 공격적으로 보이는 안구 그 자체의 모습.
주위로는 사자의 갈기처럼 붉은 털이 잔뜩 나 있다.
녀석의 붉은 털은 공중을 헤엄치고 있는 것처럼 느릿하게 일렁이고 있다.
조금 전까지는 기척도 모습도 전혀 감지할 수 없었던 놈의 정체는 ‘매드 크리피 아이볼’.
“감히!!”
몬스터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정말로 바로 코앞의 외침이라 온몸이 저릿저릿할 정도다. 이 외침은 그냥 외침이 아니다. 몬스터의 스킬.
곧장 피해를 체크한다.
우선 김민철.
인화 선배가 만들어 준 보호막 안에 쓰러져 있다.
‘쳇. 스킬이 제대로 먹혔나 보네.’
그리고 결이.
결이의 눈은 한껏 커다랗게 떠져 있다.
‘젠장, 정신력 보정을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뚫려 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