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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53화 (53/250)
  • 제53화

    제53편

    즐거운 대화로 기분이 좋아진 인화 선배는 차대호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 앞까지 운전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도로를 달리는 내내 보리와 선배의 대화는 끊어지지 않았다.

    아이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인화 선배네 애들은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미러로 슬쩍 보니 차대호의 표정이 미묘했다.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한 표정.

    “아빠, 나 배고파.”

    뒷좌석 중간 자리에 앉아 있던 꼬맹이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어머! 보리 배고파요? 안 되겠다. 이렇게 된 김에 우리 점심 먹고 헤어집시다. 다들 괜찮죠?”

    인화 선배는 정말 대단하구나. 뒤를 돌아 한결이의 표정을 살폈더니, 역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미안하구나 한결아. 이 자리가 불편한 건 너밖에 없는 것 같다.

    ‘꼬맹이가 생각보다 정말 도움이 많이 되는걸.’

    식사까지 같이한다면 순식간에 친해질 수 있을 거다.

    일이 잘 풀리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보리 뭐 먹고 싶어~?”

    “단백질!”

    “뭐? 아하하! 좋아, 아줌마가 이 근처에 맛있는 소불고깃집 알거든? 거기로 가자!”

    “야호! 좋아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소불고기는 한결이도 좋아하는 메뉴니까 마음이 풀어졌을 거다.

    먹을 생각을 했더니 어느새 내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났다.

    “저도 각성자가 되고 싶어요!”

    “보리가 어른이 되면 각성자가 될 수도 있지?”

    “애들은 각성자 못 되는 거예요?”

    “각성에는 나이가 없다고는 하지만, 10살 이하의 아동에게서는 발현된 사례가 없다고 하더라고.”

    “힝. 그럼 3살이나 더 먹어야 하네요.”

    보리는 풀이 죽어 시트에 털썩 앉아 버렸다. 10살이 되자마자 각성을 하고 싶다니. 꼬맹이 녀석도 꿈이 대단하군.

    ‘내가 14년 전으로 회귀한 거니까. 마지막 퀘스트가 떴을 땐 보리가 21살인 건가.’

    꼬맹이가 현재 내 몸뚱이의 나이가 되면 인류는 멸망한다. 성인이 되자마자.

    힐끔 뒤를 돌아보니 풀이 죽었던 녀석이 다시 쌩쌩해져서는 차대호의 어깨에 매달리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이거 멸망을 막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네.’

    끼익.

    우리는 음식점에 도착했고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보리와 인화 선배의 끝이 없는 수다가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게다가 역시 메뉴의 힘인지 한결이도 맛있게 잘 먹고 있었다.

    “보리는 혼자서도 잘 먹네.”

    “벌써 7살인걸요! 학교 가면 급식도 먹어야 한대요.”

    “그래, 그래. 급식도 잘 먹을 것 같네. 이렇게 보리처럼 밥을 잘 먹어야지 키가 쑥쑥 크는 거야.”

    “저 180cm까지 클 거예요! 아빠가 190cm가 넘거든요!”

    “어머 정말? 대단하네~! 자, 계란말이 좋아한다고 했지? 이거 더 먹어.”

    인화 선배가 계란말이를 반으로 잘라 꼬맹이의 숟가락 위에 올려놓는 순간 드르륵. 차대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화장실 좀.”

    하지만 그가 향하는 건 화장실 쪽이 아니라 식당의 입구였다. 그러고는 10분이 넘도록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아, 저도 화장실 좀.”

    나는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눈으로 차대호를 찾으며 입구 쪽으로 갔다. 그는 식당의 앞마당 구석에 있었다.

    “담배 하세요?”

    “아. 하준이.”

    차대호는 고개를 저었다.

    “운동해서 술 담배 다 안 해.”

    “와, 그러시구나. 대단하시네요.”

    “너는?”

    “전 그냥 안 해요. 뭐에 중독되는 건 싫어서요.”

    “좋네. 그래야 건강하게 살지.”

    그의 얼굴을 보니 약간 상기되어 있었고 어쩐지 눈도 촉촉했다.

    ‘설마 울었나?’

    울진 않았어도 어쩐지 울고 싶어서 나온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차대호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일 줄이야.

    “형, 무슨 일 있으세요?”

    “……티 났나? 나는 감정을 좀 잘 못 숨겨서. 하하.”

    “무슨 일이신데요. 혹시 아까 병원에 계셨던 것도…….”

    “아냐, 아냐. 그건 진짜 처제 때문에 간 게 맞고.”

    차대호는 커다란 손으로 자기 입을 감싸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보리가 저렇게 웃는 게 오랜만이라.”

    “네?”

    “사실 보리 엄마는…… 먼저 갔거든. 하늘나라에.”

    심장이 철렁했다.

    이건 내가 전혀 모르던 정보였다. 류환희의 무기 개발로 그의 길드는 굉장히 유명해지지만, 가족을 위해 사생활에 관한 건 일절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 그러셨군요. 얼마나 된 거예요? 혼자서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형.”

    “그렇지 뭐. 2년 됐어. 애 엄마 보내고 나서부터 보리가 잘 안 웃더라고. 웃긴 웃는데 달랐어. 그런데 오늘은 예전처럼 웃네.”

    “2년이면 얼마 안 됐네요.”

    차대호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빠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애들은 엄마가 필요한가 봐.”

    “형…… 무슨 소리예요. 보리 보면 아무도 그런 사정 몰라요. 애가 얼마나 밝고 예쁜데요. 다 형 덕분이죠. 스스로 마음 추스르기도 힘드실 텐데.”

    “고맙다.”

    사랑하던 사람이 한순간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을 모르지 않는다.

    갑자기 모든 것이 의미를 잃고 도대체 목적지를 알 수가 없는 기분. 망망대해 위에 혼자 떠 있는 기분.

    물에 잠겼다가 다시 떠올랐다가를 반복하는 것 같은 기분 말이다.

    “그래도 네 덕분에 눈물이 쏙 들어가네. 울면 근 손실 나거든.”

    “네? 진짜요?”

    “어. 진짜. 이제 들어가자. 나 때문에 식사 도중에 나오고. 미안하네.”

    “아녜요. 어차피 다 먹었어요.”

    “오늘 참 좋은 동생이 생겼네.”

    근육으로 꽉 찬 그의 팔이 단단하게 어깨를 감싸 왔다.

    “저도 오늘 형이 생겨서 좋아요.”

    “그런데 사실 마흔이면 형이라고 부르라기 좀 그렇지?”

    “에이, 네? 형 마흔이에요?”

    “응. 마흔둘인데.”

    “세상에!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요?”

    “하준이 너 이 짜식. 사회생활 좀 하는구나. 아하하하!”

    우리가 테이블로 돌아가자 꼬맹이와 결이의 표정이 동시에 밝아졌다.

    “아빠다!”

    “아저씨가 찾아왔지.”

    “와~! 아저씨 최고!”

    “언니만 최고 아니고?”

    “언니는 1등 최고고 아저씨는 2등 최고예요.”

    꼬맹이의 말에 인화 선배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녀석을 놀릴 마음으로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그럼 아빠는?”

    “아빠는 0등이야! 우주보다 더 최고거든!”

    “……! 보리야!!”

    “어머? 대호 씨 우, 울어요?”

    인화 선배가 당황해서 휴지를 마구 뽑아 차대호에게 건넸다.

    “크흡……. 나도 우리 딸이 세상에서 제일 최고다.”

    “참 나, 아빠는 당연한 말을 하네!”

    꼬맹이가 저도 휴지를 몇 장 뽑더니 뽀르르 차대호에게 달려와 손을 뻗는다.

    차대호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꼬맹이가 눈물을 닦도록 했다.

    ‘감동적이네.’

    뭔가 마음 깊숙한 곳이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

    가족이라는 건…… 참 따뜻한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다가 한결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래, 내게도 가족이 있어. 지켜야 할 소중한.’

    차대호와의 조우는 계획도 없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지만 나는 원하던 바를 달성하고도 충분했다.

    결이 뿐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아주 소중한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아니, 소중한 사람들이 맞다.

    * * *

    늦은 점심 식사가 끝나고 인화 선배는 드디어 대호 형과 보리를 집 앞에 내려 주었다.

    “종종 같이 식사해요~!”

    “그러면 저야 좋죠. 보리도 참 좋아하고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뭘요. 우리 집은 아들만 둘이라, 보리가 너무 예뻐요. 보리야, 아줌마랑 또 놀아 줄 거지?”

    “네! 내일 만나요!”

    보리의 천진난만한 대답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우리는 가 볼게요.”

    “다음에 봅시다.”

    “형 들어가세요!”

    “안녕 아저씨~!”

    그렇게 헤어진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이 는 것 같아서 좋다.”

    “응?”

    한결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분명 결이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우리 강해지자.”

    그러고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오…….”

    눈앞에 떠 있는 시스템 창을 확인한다.

    병원에서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이제야 확인하게 된 것.

    [선구자의 방벽-Lv. 1]

    소울계 디버프 완전 면역.

    [영혼 분별사-Lv. 1]

    소울메이트를 사용할 수 있는 대상을 확인할 수 있다.

    영혼의 질과 등급을 볼 수 있다.

    [소울메이트-Lv. 2]

    영혼 분별사 감정 싱크로율 70% 이상인 대상에게 사용 가능.

    스킬로 연결된 대상에게

    스텟 0.6% 상승

    스킬 0.6% 상승

    모든 특수 효과(면역, 이득) 0.6% 상승.

    [억압의 손길-Lv. 4]

    영혼을 묶는 사슬을 소환한다. (+10)

    [도깨비불]

    당신이 걸어갈 길을 안내하는 등불 친구입니다.

    [n번째 시야-Lv. 2]

    -암시야

    -에스퍼 감지

    “좋아, n번째 시야의 레벨이 올랐잖아!”

    스킬 레벨을 올리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크나큰 발전이다.

    게다가 레벨도 28이 됐다.

    ‘본 레벨도 2만 더 올리면 새로운 스킬을 얻겠군.’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본다.

    초반 전투에 불리한 스킬들만 가지고도 여기까지 잘 왔다. 앞으로는 좀 더 나아질 것이다.

    ‘내가 레벨 2 오를 정도면 한결이도 레벨이 하나 오르지 않았을까. 물론 S급은 훨씬 레벨 올리기가 힘들지만 말이야.’

    회귀 전을 생각하면 감히 비교도 되지 않을 성장.

    ‘이대로만 하면 된다. 이대로만.’

    n번째 시야 스킬 레벨이 2가 된 만큼 새로운 기능이 붙었다. 에스퍼 시야. 말하자면 기운, 영적 존재 감지가 된다는 건데.

    사실 에스퍼 시야를 얻고 나서도 처음에는 기분이나 성질의 분석이 가능하고 숙련도가 올라야 영적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사실 영적 존재라고는 해도 진짜 귀신을 본다는 게 아니라 에스퍼나 고스트 타입 몬스터가 선명하게 보이는 거랄까.

    그런 부류의 몬스터들을 상대하기가 편해진다거나 그런 거였다.

    ‘그럼 그 던전에 가 볼까. 이제 헌터 자격증도 있으니까 출입하려고 한다면 가능할 거야.’

    문제라면 셋만 들어가기에는 좀 곤란할 것 같은 단계의 던전이라는 것.

    ‘기가스 오거를 해치우고 얻은 영혼석이 18개. 이번 소울 포인트도 체력에 투자해 볼까. 으흐흠……. 그렇다고 해도 사람을 좀 모아야겠는데?’

    아드득, 아득.

    손 위로 소환해 낸 영혼석이 달콤하다.

    * * *

    “안녕하십니까~!”

    김민철은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밝게 인사했다.

    그는 3년 차 경력의 C급 헌터였고 용역 사무소를 통해서 던전 공략 파티를 구했다.

    오늘 함께 던전을 공략할 사람들과는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놔야 하루가 편할 터였다.

    요즘 들어 세컨드 오픈이니 남산 사건이니 해서 전국이 떠들썩하다마는 그는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안전하게 밥벌이만 하면 된다는 주의였다.

    사실 남산 전소 사건에도 나가지 않았다. 큰 길드와 정부가 해결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드래곤이라니, C급인 자신이 가 봤자 뭘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길드에 가입하지 않고 혼자서 활동하는 것도 위험한 임무를 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었다.

    ‘와, 모델 아냐? 개 잘생겼네.’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건 차갑게 생긴 남성이었다. 그래 봤자 이제 막 20살이 넘은 것처럼 어려 보이는데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아우라 같은 게 있달까. 딱 봐도 싸가지도 없을 것 같고.

    아이돌 지망생? 뭐 그런 거일 거라고 김민철은 예상했다.

    ‘저런 친구들은 던전 안에서 험한 일을 하기 꺼리는데…….’

    어쩐지 탐탁지 않은 기분이 들었지만, 김민철은 내색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이도 훨씬 많은 자신에게 형 대접은 해 주겠지 싶었다.

    “안녕하세요. 김민철 님이시죠? 반가워요. 오늘 파티를 모집한 은하준입니다.”

    김민철은 자기 앞으로 쑥 들어온 은하준을 보고 어색함을 숨기며 미소를 지었다.

    ‘뭐야, 이 희멀건 녀석은.’

    슬쩍 다른 구성원들을 훑으니 비슷한 나이 또래의 시뻘건 머리를 가진 남자애랑 나이가 좀 있는 여성 하나뿐이었다.

    그나마 홍일점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김민철은 생각했다.

    ‘아……. 오늘 던전 공략 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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