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제52편
“결아! 좀 진정하고!”
서인화가 다급하게 한결의 뒤를 따르며 외쳤다.
“잠깐 화장실 간 걸 수도 있잖아!”
“화장실 다 찾아봤어요.”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는 것은 크나큰 발전이었다. 아마 그것은 금룡의 힘줄 아이템 덕분일지도 몰랐다.
[어허, 진정하래도 그러네.]
금룡의 목소리가 한결의 뇌를 울렸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그저 은하준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또 이렇게 됐어. 또.’
같은 말을 자꾸 되뇌면서 병실이란 병실은 죄다 훑고 있었다. 지금은 소울메이트로 연결된 것도 아니니까 사라진 하준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심지어 이곳이 어디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는 한국대 병원 아닌가.
그렇다고 각성자의 빠른 속도로 헤집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곳은 엄연히 환자들이 휴식과 회복을 해야 하는 공간이었으니까.
한결은 엄청난 인내심을 가지고서 은하준을 찾는 것이다.
“이럴 게 아니라 그냥 병실에서 기다리는 게 나을 수도 있어. 벌써 돌아와서 누워 있을 수도 있다니까?”
“그럼 누나는 병실로 돌아가세요. 하준이 오면 연락해 주시고.”
한결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른 속도로 서인화에게서 멀어졌다.
“참 나, 우리 애들 처음 유치원 보냈을 때랑 똑같네. 어떻게 저렇게 한시도 안 떨어져 있으려고 그러지.”
그녀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한결에게 지금 이 상황은 절대로 웃음이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지켜 주기로 했는데, 떨어지지 않겠다고 했는데.’
물론 큰일이 벌어졌을 확률이 낮다는 건 알았다.
대낮인 데다 지금은 던전이나 사건 현장이 아니라 수많은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는 병원이다. 게다가 어제 급성 게이트 발생 사건 때문에 많은 각성자가 병원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더 불안한 것일까. 한결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불안해하지 마. 불안해하지 말자. 답답해서 바람 쐬러 잠깐 나갔을 수도 있지.’
한결 스스로도 자신이 이해되질 않았다. 하준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왜 이렇게 초조한 걸까.
[너는 은하준이 관련된 일에만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구나. 그럴 땐 거리를 좀 두는 것도 좋을 터인데.]
한결이 대답하지 않아도 금룡은 혼자 주절대기 시작했다.
[이 몸의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내 능력으로 정신력이 이만큼이나 고양되었는데 그 은하준만 엮이면 전혀 효과가 없으니. 그 아이가 쓰는 스킬 탓일 수도 있다.]
[뭐라더라, 소울메이트? 그래. 거기에 엮이니까 시전자에게 묘한 유대가 쌓여서 그렇다고 생각하느니라.]
[아이야. 네가 강해지기 위해서 꼭 그 아이가 필요한 것도 아니니…….]
한결은 금룡의 힘줄 아이템인 팔찌를 쑥 빼 버렸다. 그러자 금룡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차라리 이렇게 조용한 편이 정신력 고양이니, 안정이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저기, 혹시 은하준 환자 퇴원 수속 밟은 건 아니죠?”
하준이 아무 말도 없이 퇴원해 버렸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원무과가 보이자마자 한결은 다급하게 물었다.
“잠시만요. 은하준…… 은하준 님. 아직 퇴원 안 하셨는데요?”
“알겠습니다. 후우…….”
이제 병원 내부는 전부 뒤졌다.
‘길이 엇갈린 걸까? 아니면 정원에서 산책이라도…….’
그때 한결의 앞에 있던 자동문이 열리고 어쩐지 왁자지껄한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중에 하나는 한결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사람이었다.
은하준.
하준은 한결이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병원 건물로 다시 들어오는 중이었다.
“어. 결아.”
밝게 웃고 있던 하준이 한결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네가 여기 왜 있어? 뭐 하고 있었어?”
“너, 몸은 괜찮아?”
“어. 말짱해! 한결아 이쪽은 보리랑 차대호 님라고 보리 아버님이셔.”
한결은 하준이 소개하는 남자를 슬쩍 보고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했다. 그러고는 하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어, 어?”
“가야지. 너 환자야.”
“아니 괜찮은데.”
“쉬어야 해.”
“어? 어어……. 그, 대호 형님 그럼 연락드릴게요! 보리야, 안녕~! 다음에 보자!”
하준은 한결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며 재빨리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이 사라진 붐비는 복도를 보며 차보리는 끝까지 손을 흔들었다.
“아빠. 그런데 저 오빠는 왜 저렇게 화가 난 거야? 하준 아저씨가 길을 잃어버린 줄 아는 걸까? 나처럼?”
“음…….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네.”
* * *
손목을 쥔 결이의 손이 우악스러웠다.
‘왜, 왜 화가 난 거지? 지금 화내고 있는 거 맞지?’
약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결이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아서 입을 꾹 다물려고 했다. 아니, 그러니까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이런 정적이 너무 불편해서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저 아까 봤던 보리라는 애가 길을 잃어서 내 병실로 들어왔더라고.”
“…….”
“그래서 원무과에 데려다주는데 마침 대호 형님이 거기 계신 거지. 딱 마주쳐서.”
“…….”
아니,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따지자면 착한 일을 했는데 결이가 왜 이렇게 삐쳤을까.
물론 환자인 내가 갑자기 사라졌으니 놀랄 만도 하지.
그런데 이렇게 아프게 잡을 것까지야.
S급이 힘을 주면 당연히 아프잖아! 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이번엔 참았다. 하지만 역시 억울하다.
내가 차대호를 찾아냈다고! 결아! 내가 지금 너랑 돈방석에 앉을 루트를 제대로 뚫고 있잖아! 이건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소리니 참을 수밖에 없고.
안 그래도 원무과랑 내가 있던 병실은 먼데 이 숨 막히는 분위기 때문에 더욱 멀게 느껴진다.
“결아 나 손목 아파.”
엄살이 아니라 진짜였다. 약간 우는 목소리로 말했더니 결이가 화들짝 떨며 내 손을 탁 놓았다.
“미안.”
스스로도 굉장히 놀란 얼굴이었다.
“결이 너 괜찮아?”
“…….”
“……갑자기 병실에서 나가서 걱정 많이 했어? 아니, 사실 나는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 못 했어. 그러니까…….”
시선이 결이의 손목에 닿았다.
“응? 너 팔찌는?”
“아…….”
결이가 주머니를 뒤지더니 재빨리 팔찌를 다시 차더니 만지작거렸다.
“그거 왜 빼고 있었어?”
“……시끄러워서.”
“응?”
“아냐. 끌고 오다시피 해서 미안해. 난 걱정이 되어서…….”
결이가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금룡의 힘줄 아이템은 평소에도, 정신계 공격에 당했을 때도 평정심을 유지하게 해 주는 것이지만, 그걸 유지하는 대신 착용을 해제했을 때 일시적으로 감정 기복이 생길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결이를 놀라게 해 버린 거다.
“그 팔찌. 꼈다 뺐다 하면 안 좋아. 잠시긴 해도 아이템 능력이 사라졌을 때 감정이 불안정해지거든.”
“그렇구나……. 미안하다.”
“아냐, 괜찮아. 너도 어제 일 때문에 힘들었을 테니까.”
“어머! 얘들아!”
나를 보고 있는 결이의 등 뒤로 인화 선배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휴! 드디어 찾았구나? 역시 한결이는 대단하네~! 하준! 너 어디 갔었어. 결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인화 선배가 평소보다 훨씬 호들갑스럽게 말해 준 덕분에 어색했던 공기가 단번에 깨졌다.
“너어는 정말! 어딜 가면 간다고 말을 해 놓고 가야지! 걱정하게 말이야. 이번에도 며칠이나 깨어나지 못할까 봐 얼마나 걱정했다고.”
“죄송해요, 누나. 그게 갑자기 미아 찾기 퀘스트가 뜨는 바람에. 하하.”
“퀘스트? 진짜?”
“아뇨. 진짜 퀘스트는 아니고요.”
“뭐야~? 무슨 일인데?”
나는 일어났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인화 선배는 이야기에 크게 호응해 줬다.
“어머, 어머. 하준이가 좋은 일 했네? 자기 몸도 멀쩡하지 않은데.”
“아녜요. 많이 좋아진 거 같아요. 약간 쓰라린 것 정도 말고는 뭐.”
병실에 다시 도착하는 동안 한결이의 표정도 많이 풀어졌다.
풀썩. 병원 침대에 궁둥이를 붙이는 순간 한결이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럼 그 애 아빠는 왜 형님이라고 부르는 건데?”
“아아, 그건 말이지.”
설명을 마치자 인화 선배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준이 너, 정말 친화력이 좋다니까? 원래 애를 좋아하니? 나중에 네 자식 낳으면 애들한테 정말 잘하겠다 얘.”
“정말요? 애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게다가 10년이 지나도 결혼 같은 건 못 하고 말이다.
자식이라, 그런 걸 생각해 보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지.
이번에도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 같지만.
“결이랑 누나는 다 몸이 괜찮고요?”
“뭐 우리야 너 데리고 직접 병원까지 왔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
“그럼 정말 다행이고요. 사실 저도 그만 퇴원해도 될 것 같거든요. 여기 병실도 모자랄 텐데 괜찮은 사람은 빨리 자리를 비워 줘야죠.”
인화 선배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끄덕였다.
“어젯밤 사건은 정말……. 우리가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맞아요.”
기가스 오거와의 전투.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전투였다.
병실에서 눈을 뜰 수 있었던 게 정말 다행이지.
두 번을 사는 건데도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그렇긴 해도 기절할 정도면 좀 더 쉬어야 하지 않아? 여기 입원한 것도 벌써 두 번째인걸.”
“그렇긴 한데 시스템으로 보면 제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있으니까요. 괜찮아요. 퇴원해도.”
“그것도 그렇네. 그럼 가자. 누나가 태워 줄게.”
“그러면 저희는 고맙죠.”
결이가 보관해 두었던 내 옷을 내밀었다.
* * *
차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과 바람이 좋았다.
어제 있었던 참사는 꿈이라고 느껴질 만큼.
“병원에 사람 진짜 많았다, 그렇지? 정말……. 어휴, 다들 얼른 회복해야 할 텐데. 정말 걱정이야.”
“그러게요. 도심 한복판에 드래곤이라니.”
“전국이 완전 긴장 상태였대. 지역에 있는 각성자들은 언제 거기에도 급성 게이트가 발생할지 모르니까 지원을 올 수도 없고 말이야. 이 사건이 수습되기까지는 또 얼마나 걸릴까. 한시도 마음 편히 살 수 없는 기분이야.”
어쩔 수 없다. 앞으로는 이 모든 일에 전 국민이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어느 정도 안정화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거다.
그렇게 겨우 안정화되더라도 결국엔…….
내리막길의 끝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어, 대호 형이다.”
“응?”
인화 선배가 속도를 늦췄다.
“음?”
차대호가 기척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보리 안녕~! 형 이제 집으로 돌아가시나 봐요?”
“어, 그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머 네가 보리구나! 아유 예뻐라. 괜찮으시면 태워 드릴까요?”
“앗,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지하철역까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제가 조수석으로 갈게요.”
나는 냉큼 뒤에서 내려 자리를 옮겼다.
‘역시 인화 선배의 친화력은 언제든지 도움이 된다니까. 이렇게 두 사람과도 안면을 터놓으면 좋지!’
타악. 문이 닫히고 선배의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리 정말 예쁘네? 몇 살이에요~? 아줌마 자식들도 딱 보리만 하거든?”
“7살이요! 내년에 학교 가요!”
“어머, 정말?! 너무 축하해!”
“그런데 아줌마 안 같아요. 언니 같아요.”
“어머머! 뭐어? 보리가 아줌마 기분 좋아지라고 말을 예쁘게 하네?”
“아닌데! 진짠데요!”
“뭐야, 꼬맹이. 누나랑 나랑 얼마나 차이 난다고.”
차 안은 금방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