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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51화 (51/250)
  • 제51화

    제51편

    내가 찾아야 하던 그 사람. 그 길드장.

    “아빠! 어디 있었어!”

    “아빠 화장실 잠깐 다녀온다고 했지. 그동안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기로 했었잖아, 보리야.”

    남자는 굳었던 얼굴을 바로 풀고는 다시 눈을 그렁그렁하며 꼬맹이에게 울먹였다.

    “그랬나?”

    “그랬지. 아빠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어?”

    “왜 걱정을 하고 그래. 보리 이제 다 컸는데.”

    꼬맹이의 앞에서 남자는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저렇게 큰 남자의 무력한 모습이라니, 웬만한 구경 저리 가라다.

    “이렇게 도와줄 아저씨도 내가 찾았어. 그러니까 아빠 찾아왔지. 안 그래?”

    꼬맹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어도 저보다 키가 훨씬 큰 남자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나름의 논리적인 언변을 늘어놓았다.

    “뚝. 아빠 뚝 그쳐야지.”

    슬슬 민망하고 뻘쭘해진다. 하지만 보리가 내 손가락을 놓지 않아서 몰래 돌아가기도 어려운 상황.

    “자. 사탕 줄게. 울지 마.”

    꼬맹이는 내게서 받아 낸 사탕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는 작은 손에 들린 사탕을 내려다보더니 입을 ‘아’ 하고 벌렸다.

    “아이 참.”

    뽀시락, 뽀시락.

    야무진 손가락이 사탕을 까서 남자의 입에 넣어 준다.

    그제야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탈탈 털었다. 그러고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변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선생님께서 제 딸을 데려와 주신 겁니까?”

    저기요. 지금 이렇게 다시 심각한 얼굴을 해도 방금까지 봐 버린 게 있다고요.

    하지만 그의 이두와 삼각근을 보니 그저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 네. 뭐, 그……. 길을 잃은 것 같길래요. 저기 원무과에라도 데려다 주려고 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차대호입니다. 정말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아뇨. 어른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이렇게 금방 부모님을 찾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네요.”

    차대호의 시선은 내가 들고 있던 사탕 꾸러미에 닿아 있었다.

    저기요! 절대로 제가 이 사탕으로 따님을 꼬여낸 게 아니라고요! 물론 아닌 게 아니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가 요청한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사탕 꾸러미를 꼬맹이에게 건네고 있었다.

    “보리야, 이제는 혼자 막 돌아다니고 그러면 안 된다. 알겠지?”

    “네, 착한 아저씨.”

    꼬맹이는 신이 나서 함박웃음을 지어 보인다. 차대호의 성격이 예상외였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눈물을 뚝뚝 흘린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아, 혹시…… 각성자세요?”

    “예?”

    내 뜬금없는 질문에 차대호가 의아한 얼굴을 한다.

    정말 갑작스러운 질문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차대호와 이렇게 그냥 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놓치면 이 사람을 또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아뇨. 전 각성자가 아닌데요.”

    “네?”

    이번에는 내가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하고 말았다.

    ‘각성자가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기억하는 차대호는 분명 류환희가 속한 길드장이었다. 각성자였다고! 게다가 이 덩치와 외모.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아저씨는 각성자예요?”

    꼬맹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통통한 볼에 장난기가 가득 묻어 있었다.

    “어, 어어. 아저씨는 각성자야.”

    “와아! 멋있다! 아저씨는 그럼 어떤 능력자예요? 불을 막 뿜어요? 아니면 손에서 물이 막 나와요?”

    꼬맹이는 신이 난 것 같았지만, 차대호가 각성자가 아니라고 하니 무슨 대화를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도 어제 남산 전투에 투입되셨겠군요.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각성자분들에겐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껜 빚이 많네요.”

    차대호가 내 환자복을 보며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행히도 이제 나를 향한 의심과 경계는 누그러든 것 같았다.

    “아저씨! 능력 보여 주세요!”

    “보리야. 그런 부탁은 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지금 선생님께서 몸이 안 좋으신 거 같으니까 쉬게 해 드리자. 여기까지 데려와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하고.”

    차대호는 이 만남을 이제 정리하려는 것 같았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아, 이제 거의 회복해서요. 꼬맹…… 아니, 보리가 보고 싶으면 보여 줄 수 있는데.”

    “꺄아! 아저씨 최고! 멋져요!”

    “보리야……!”

    “저 여기는 실내라서 좀 그러니까 정원으로 좀 나갈까요?”

    “……선생님 무리하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아녜요, 아녜요. 보리가 너무 귀여워서요.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니고요.”

    “아저씨 최고!”

    꼬맹이는 차대호의 한쪽 팔에 안긴 채 주먹을 마구 흔들어 댔다. 신이 나기는 정말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여러 매체에서 각성자의 이미지를 좋게 표현하고 있으니까 애들에게 인기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려나.

    나는 세상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병원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 처제가 이곳 간호사인데, 새벽부터 호출이 와서는 정신없이 일하고 집으로 돌아올 힘도 없이 쓰러져 잠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도시락을 좀 싸 왔습니다.”

    “맞아요. 어제 남산 사건 때문에 정말 서울이 엉망진창이 됐더라고요. 여기도 정말 난리겠어요. 저는 전투 중에 기절했다가 오늘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여기더라고요. 그나저나 요리를 잘하시나 봐요. 도시락을 직접 싸시고.”

    지금의 나는 MBTI 유형 중 E모드를 발동해서 한순간도 어색하지 않도록 스몰토크를 이어 나갔다.

    “여기가 괜찮겠네요.”

    사람이 적고 한적한 뒤뜰에 도착한 뒤 슬쩍 차대호의 눈치를 봤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차대호 역시 약간 기대하는 눈치였다.

    “자, 그럼 살짝 물러나시고……. 아. 그런데 제가 서포터 전문이라서요. 크게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위험하지는 않아요.”

    결이의 전격에 비하면 완전 얌전한 기술이니까.

    “억압의 손길!”

    차르르륵.

    땅에서부터 반투명한 사슬이 생겨나 내 허리를 휘감았다.

    “우와!!”

    꼬맹이는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고는 작은 두 손으로 오동통한 뺨을 찰싹거렸다.

    “우와……! 진짜 대단하다! 저 이런 거 처음 봐요! 아저씨 진짜 멋있다! 아빠 그렇지?! 진짜 멋있지?!”

    “그래, 그래. 멋있네.”

    차대호의 눈이 살짝 빛났다.

    “아저씨 저 그거 만져 봐도 돼요?”

    “음……. 그래. 한번 만져 봐.”

    “아빠, 나 만져 봐도 돼?”

    “그래.”

    “아버님도 한번 만져 보세요.”

    “그래도 됩니까?”

    “아무렴요. 뭐 닳는 것도 아닌데.”

    엄연히 말하자면 닳는 게 맞긴 하다. 내 마력이 말이야.

    꼬맹이가 차대호의 품에서 내려와 냉큼 달려들었다. 아까 병실 문에서 수줍음을 타던 꼬마는 어디에 갔는지 모르겠다.

    “우와아!! 딱딱하다!”

    차대호 역시 신기한 눈으로 사슬에 손을 얹었다.

    “이런 걸 스킬이라고 하죠? 이건 어떻게 쓰는 겁니까?”

    “디버프형이라고 보시면 돼요. 이게 속박 스킬이거든요.”

    “오오, 그럼 세기나 그런 걸 조절할 수 있나요?”

    “네. 개수나 움직임을 제어할 수도 있고요.”

    “정말 신기하네요.”

    차대호는 약간 고민하는 듯하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혹시 이걸로 저를 묶어 보실 수 있겠어요?”

    “네?”

    “아니, 이상한 의미는 아니고요. 제가 운동을 하는데, 어느 정도로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해서요.”

    “우와! 무슨 운동을 하시는데요?”

    “이것저것 합니다. 지금은 헬스장을 운영하고 있고 취미로는 복싱이나 합기도, 축구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거든요.”

    눈앞에 비치는 몸이 차대호의 말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각성자가 아닌데도 몸이 저렇게……. 아니, 사실 외관은 각성자의 능력과 크게 상관이 없는 거긴 하지만 말이야.’

    물리적으로 설명되는 일이 아니니, 아주 마른 사람이라도 각성자의 힘을 얻으면 산도 들어 올릴 수 있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이라도 가볍게 공중에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제가 힘을 조절해서 사용해 볼게요. 제 스킬이 안전한 종류라고는 해도 일반인에게 함부로 사용하는 건……. 그리고 사실 지금은 협의가 된 상황이긴 하지만, 일반인을 상대로 스킬을 사용하는 건 불법이거든요.”

    “아! 그런가요? 제가 선생님을 곤란하게 했군요.”

    차대호는 깜짝 놀라며 무척 미안한 얼굴로 머리를 긁었다. 머리를 긁을 뿐인데도 그의 조각 같은 어깨와 팔근육이 돋보였다.

    “뭐, 여긴 CCTV도 없고요. 합의했으니까 잠깐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주위를 슥 둘러본 후 차대호에게 말하자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밝아졌다.

    운동하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도전 정신 같은 게 있나 보다.

    “자, 그럼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옙!! 갑니다!”

    촤르륵!! 세기를 조절한 얇은 사슬이 솟아올라 차대호의 손목과 허리에 감겼다.

    “오오!”

    “아프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예!”

    차대호는 심호흡을 하더니 사슬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흐아아아!!”

    “아빠! 힘내!”

    꼬맹이는 차대호의 곁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응원 노래를 불렀다.

    “흐으으읍!!”

    안 그래도 존재감이 엄청났던 그의 근육이 마치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일반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대단한 근육이다.

    기긱……. 기기긱…….

    ‘응? 뭐야? 진짜 일반인 맞아? 무슨 힘이…….’

    애초에 공격 스킬이 아닌 데다가 지금은 강도를 가장 약하게 해 놓았지만, 그래도 일반인이 끊어 낼 수 있는 스킬이 아니다.

    그런데 미묘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혹시 끊어 내는 거 아냐?

    “흐어어!!”

    “아빠! 조금만 더!!”

    정말 끊으면 어떡하지 싶은 마음에 눈이 가늘게 떠지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순간 차대호가 힘을 놓고 숨을 몰아쉬었다.

    “후아!!”

    “앗! 아빠 실패했다!”

    “후, 후아, 후, 후아.”

    “괜찮으세요?”

    나는 재빨리 사슬을 해제해 그를 풀어 주었다. 그러자 그가 뒤뜰에 깔린 블록 위로 벌러덩 누워 버렸다.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한참이나 헐떡이더니, 어느새 땀범벅이 된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히 안 되리라 생각하기는 했습니다만, 정말 대단하네요. 각성자들은 정말 강하구나.”

    “당연하지. 아빠! 각성자들은 막 하늘도 날아다니고 불도 뿜고 막 그런다고!”

    꼬맹이가 웃음을 터트리며 쪼르르 달려가 차대호의 배 위로 슬라이딩했다.

    “어이쿠!”

    “꺄하하!”

    그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었는데, 지금 보니 사이가 참 좋은 부녀였다. 괜히 내 마음도 훈훈해진다.

    나는 차대호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웠다.

    “선생님 덕분에 참 좋은 경험을 해 봅니다. 각성자 중에 아는 사람은 전혀 없어서요. 평생 안고 오던 궁금증 하나 해결했네요. 하하하.”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제 딸아이도 잘 보호해 주시고, 다음에 밥이라도 대접해야겠습니다.”

    “아, 정말요? 저 그런 거 거절 안 하는 타입인데.”

    “하하하! 물론입니다. 운동하는 거 좋아하시면 제가 운영하는 센터에도 한번 오시죠.”

    차대호가 호쾌하게 웃으며 더러워진 옷을 털었다.

    그리고 나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아, 생각보다 일이 굉장히 잘 풀린다. 저 꼬맹이 녀석 덕이 크다.

    “보리야, 아저씨가 신기한 거 하나 더 보여 줄까?”

    “뭔데요?”

    포옹.

    작고 푸른 불꽃이 공중에서 생겨났다.

    “우와!!”

    “안녕 해 봐. 내 친구 망량이야.”

    “우와, 우와! 안녕 망량아!!”

    “무왕!”

    “꺄악! 너무, 너무 귀엽다! 망량아! 만져 볼래요!”

    “얘는 사실 나 말고는 만질 수가 없거든. 그래도 가까이에서 볼 순 있지.”

    “무와앙! 뫙!”

    나는 손에 망량이를 얹은 뒤 꼬맹이에게 내밀었다.

    “우와, 손을 갖다 대도 하나도 안 뜨겁네.”

    차대호 역시 신기하다는 듯 망량이를 찔러 보았다.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모든 게 완벽하다. 이대로 차대호와 친분을 쌓는 건 어렵지 않아 보였다.

    다만 내가 하나 잊고 있었던 게 있었는데, 바로 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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