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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50화 (50/250)
  • 제50화

    제50편

    내 몸이 긴 포물선을 그리면서 한강 위로 비행한다.

    “그러어어어……!!”

    그런 나를 잡아채기 위해 오거 역시 힘껏 도약한다.

    너덜너덜해진 결이에겐 이제 관심을 잃은 것인지 미련 없이 집어 던지고선 말이다.

    머리 위로 보이는 검은 한강의 수면 아래로 무엇인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밤이 어두워 물이 너무 검어서일까.

    아이에게 너무 집중한 탓일까.

    높이 점프한 오거는 지금 자신이 한강 위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 상관없어하려나?

    오거의 손이 내게 뻗어 왔다.

    이 자식은 멀리뛰기도 잘하네. 정말 무서운 놈이다.

    구르르륵…… 콰르르르륵…….

    귀에 한강의 수면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 모든 게 한순간에, 아주 찰나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무척이나 느리게 느껴졌다.

    이러다가 주마등이라도 펼쳐지는 것 아닌지 걱정이 될 따름이다.

    몸은 천천히 수면을 향해 하강하고 있다.

    오거는 나를 보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어쭈. 이 새끼 봐라?’

    촤아아악!!

    그 순간 수면 아래에서 거대한 아가리가 치솟는다.

    거대 어룡.

    내가 원하던 그 크기다. 한 번에 오거를 찢어발길 수 있을 날카로운 송곳니가 가득한 입이 펼쳐진다.

    솔직히 어지간한 유람선보다 입이 더 크니 소름이 쭉 끼쳤다.

    그리고 나는 오거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그어?”

    놈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너는 웃어 놓고 나는 못 웃냐?

    아니면 너나 나나 지금 어룡한테 당하게 생겼는데 실실 쪼개는 걸 보니 내가 죽기 전에 실성이라도 한 것 같냐?

    아쉽지만 모두 틀렸다.

    키잉.

    내 신발에 새겨진 날개 문양이 빛났다.

    “이동기 쿨 타임 다 찼다.”

    도저히 힘을 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이젠 정말 젖 먹던 힘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공중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투우웅!

    활짝 벌어진 어룡의 아가리를 벗어나며.

    어떻게든 나를 잡아 보려는 오거의 손아귀를 벗어나며.

    투웅! 투우웅!

    검은 한강의 수면 위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무심한 별이 빛나는 하늘 위를 뛰었다.

    6.

    5.

    4…….

    오거의 몸통을 꽉 깨문 어룡의 모습이 보인다.

    오거 녀석은 발버둥을 치는 것 같지만, 물린 것과 동시에 어룡의 몸이 검은 수면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어어어……!!”

    첨벙!

    커다란 물보라가 일면서 어룡과 오거의 모습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3.

    2.

    1.

    헤르메스의 신발 능력의 지속 시간이 끝났다. 다행히 물가를 완전히 벗어났다.

    터억.

    다시 땅에 딛는 다리는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휘청, 데구르르르!!

    최대한 몸을 둥글게 말며 바닥을 굴렀다.

    띠링. 시스템 알림이 울린 것도 같았으나 순간 의식이 끊어져 버렸다.

    * * *

    깜빡, 깜빡…….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밝고 새하얀 것이, 또 병실이군.

    “아, 일어났군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류창희다.

    “아이는요?”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뭐야, 설마 아니지?!

    “하준 씨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요.”

    류창희의 목소리가 조금 촉촉하게 들렸다.

    “아이는 무사해요. 부모님도 찾았고요. 급성 게이트 발생 사건 때문에 대피하던 도중 부모가 다쳤대요. 하필이면 부모가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되는 바람에 아이가 인파 속에서 혼자 남게 된 거고요.”

    “아아……. 아이가 무사하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후우.”

    모두 다급하게 대피하는 동안 정신이 없었던 건가. 아무리 그래도 어린애 혼자서 그 밤에.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깊은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류창희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의 등 뒤로 보이는 창문으로 따사로운 햇볕이 들어오고 흰 커튼이 바람에 흔들렸다.

    ‘날씨 좋네.’

    어제의 위험천만하고 끔찍했던 오거와의 전투는 마치 없던 일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하늘이 보였다.

    아, 어제는 맞나?

    “제가 얼마나 정신을 잃었던 거죠?”

    “후후.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는 몇 시간밖에 안 됐으니까.”

    “끄응. 다행이네요.”

    “맞아요. 이렇게 하준 씨가 의식을 되찾은 걸 보니 저도 고맙네요.”

    슬픈 듯한 류창희의 얼굴을 보고 아차 싶었다.

    남산.

    “그, 드래곤은 어떻게 됐나요?”

    “……해가 다시 뜨기 전에 겨우 쓰러트렸어요. 서울의 모든 전력이 거기에 집중됐으니까요. 참, 사실 회진을 계속 돌아야 해요. 여기도 잠깐 들른 거거든요.”

    더 물어볼 것도 없다. 이때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정확하지는 않아도 기억하고 있으니까.

    목숨을 잃은 건 일반인은 물론이고 각성자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러니 힐러인 류창희는 단 한숨도 못 잤을 거다. 몰랐는데 지금 보니 그의 얼굴이 푸석하다.

    “그럼 쉬고 계세요. 한결 씨는 잠깐 뭘 사러 갔으니 곧 올 겁니다.”

    류창희는 희미하게 웃어 보이고는 병실을 나섰다.

    ‘후우. 내가 실려 온 거…… 성 대위한테도 보고가 들어갔을까? 또 뭐라고 하려나. 그쪽 입장에선 내가 류창희한테 가까이 있는 것도 신경 쓰일 테지? 참 나, 제가 먼저 소개해 줘 놓고선.’

    그때도 소개라고 부르긴 어려운 상황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소식 정도는 신경 쓸 때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엉망진창일지 예상이 가니까.

    ‘얼른 더 강해져야 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성장에 힘쓰고 있는데도 아직 기가스 오거도 상대할 수 없는 지경이네.’

    후우.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푹푹 나왔다.

    휴대폰을 찾아 검색해 보니 어젯밤 남산에 관한 기사가 잔뜩이다.

    너튜브에는 남산을 촬영한 영상이 차고 넘쳤다.

    ‘미친 거 아냐? 이건 너무 가까이서 찍힌 것 같은데. 죽으려고 환장했군.’

    위험천만한 영상이 가득했다. 개중에는 헌터가 고프로 같은 액션 카메라를 달고 찍은 것 같은 것도 있었다.

    그조차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 상황에 영상을 찍을 정신이 있는 건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있는데.

    달칵.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기에 결이가 돌아온 것이라 생각하고 고개를 돌리니 열린 문 앞에 아무도 없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었다.

    천천히 시선을 내리니 한 소녀가 문에 매달려 얼굴을 반쪽만 빼꼼 내밀고 나를 보고 있었다.

    “응?”

    “…….”

    “안녕~?”

    “…….”

    아이의 차림을 보면 환자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물방울무늬가 그려진 하늘색 원피스에 머리에도 같은 색의 리본 머리띠를 했고 구두도 아주 귀여운 걸 신고 있었다.

    굉장히 인형같이 귀여운 아이였다.

    어제 구해 줬던 아이와 또래가 아닐까. 아니, 그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누구야? 길을 잃었어?”

    도리도리. 고개만 저을 뿐 아이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휙 돌아 나가 버리거나 안으로 더 들어오지도 않았다.

    “으음…… 우리 꼬맹이 친구가 뭘 하고 싶은 걸까.”

    지금 병원 내부도 무척 번잡스러울 텐데 저렇게 아이 혼자 다니면 또 미아가 발생할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탁자 위에 사탕이 있었다.

    ‘아, 진보라 씨가 준 거네. 다 부서졌으려나.’

    슬쩍 몸을 일으키니 약간의 통증이 남아 있었지만 움직이는 데 문제는 없었다. 천천히 일어서서 협탁 위에 있던 포장지를 집어 드니, 꼬마 아이가 약간 움츠러들었다가 목을 길게 빼 나를 관찰했다.

    “꼬맹아, 먹을래?”

    “아빠가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 받지 말라고 했는데요.”

    드디어 입을 연 귀여운 목소리가 생각보다 또랑또랑해서 웃음이 픽 나왔다.

    “아이고. 잘 배우셨네. 모르는 사람 병실에 불쑥불쑥 들어오고 그러면 큰일 나!”

    “……아저씨 나쁜 사람이에요?”

    똘망똘망하게 큰 눈이 데굴거린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건 맞지만 내 손에 들린 게 무척 궁금한 모양이었다.

    투명한 포장지 안으로 알록달록한 갖가지 사탕이 보이고, 분홍색 리본으로 입구를 봉해 놓아서 어린애가 보기에는 보물 꾸러미처럼 보이겠지.

    “너 진짜 나쁜 사람들도 자기는 나쁜 사람 아니라고 하는 거야. 나쁜 사람이니까 거짓말도 마음대로 할걸?”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아저씨는 안 나쁜 사람인 것 같은데.”

    “진짜로 나쁜 사람이어서 나쁜 사람처럼 안 보이려고 이러는 거면?”

    찐빵 같은 볼이 부풀어 오른다.

    어릴 땐 안 그랬는데 나이가 드니까 아이들이 너무 귀엽더라고. 하지만 조금만 더 놀리면 울음이 터질 것 같으니 적당히 하고 원무과에 데려가야겠다.

    “꼬맹이. 아저씨가 사탕 줄 테니까 같이 부모님 찾으러 가자. 알겠지?”

    “내 이름 보리예요. 차보리. 꼬맹이 아니고요.”

    “어허. 낯선 사람한테 이름도 함부로 알려 주지 말고.”

    다가가자 아이가 고사리같이 여린 두 손을 쭉 내민다. 속절없이 웃음이 터졌다.

    “자.”

    “고맙습니다.”

    배꼽 인사를 하며 받아 든 사탕을 곧바로 까 입 안에 쏙 넣더니 배시시 웃어 보인다.

    “사과 맛이네. 저 사과 맛 좋아해요.”

    “자, 이제 사탕 먹었으니까 아저씨랑 가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오가는 사람이 참 많았다. 게다가 죄다 심각한 얼굴들뿐이다. 어제 사건 때문이겠지.

    ‘얘 부모님은 무사한 거겠지?’

    착잡한 마음으로 아이를 돌아보는데 작은 손이 덥석 내 검지를 붙잡았다.

    “낯선 사람 손을 이렇게 막 잡으면 어떡해. 꼬맹이.”

    “아저씨 잃어버릴까 봐요. 그리고 저 보리라니까요. 꼬맹이 아니고.”

    꼬맹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게 대견하고 귀여웠다.

    “그래, 그런 이유면 좋은 생각이네. 보리 되게 똑똑한가 보다.”

    “물론이죠. 아빠가 내가 최고라고 했어요.”

    “오, 그래? 그럼 똑똑한 거 말고 보리가 또 잘하는 게 뭐랑 뭐 있는데?”

    “일단은요. 저 그림도 되게 잘 그리고요. 노래도 되게 잘 부르고요. 아, 저 수영도 잘해요.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요. 반장 할 거예요.”

    그사이에 내가 편해진 것인지 꼬맹이가 조잘대기 시작했다.

    녀석의 말을 듣고 있자니 자질구레한 걱정들이 날아가 버려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원무과는 내 병실에서 꽤 멀었고 덕분에 꼬맹이의 손에 사탕을 두 개 더 쥐여 주어야 했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원무과 근처가 조금 소란스럽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음? 싸움이라도 났나?”

    주변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키가 큰 남자가 핏대를 세우며 원무과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니! 아이가 없어졌다니까요!! 이 큰 병원에서!!”

    “하아. 보호자님. 알겠는데요. 지금 저희 직원들이 찾고 있어요.”

    직원의 말에 남자는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세상에. 원무과 직원은 물론이고 나도, 그리고 주위에서 지켜보던 모두가 경악했다.

    애초에 남자의 키가 일반인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컸고 그에 어울리는 아주 건강한 구릿빛 피부에, 옷을 입었어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도드라진 근육이 운동선수처럼 보였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테스토스테론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달까.

    심지어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어깨를 한없이 늘어트리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게 아닌가.

    “아, 아니…… 보호자님 왜 울고 그러세요. 이러셔도 저희가 당장 해 드릴 수 있는 게…….”

    “압니다. 아는데…… 너무 걱정되어서 그럽니다. 걔가요. 제 엄마 닮아서 몸이 약합니다. 어디 외진 곳에서 쓰러졌을까 봐…….”

    누가 봐도 지금 내가 데려온 꼬맹이의 보호자다.

    내 손가락을 잡은 채 사탕을 만지작거리던 꼬맹이가 목소리를 알아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꼭 쥐고 있던 내 손을 놓고…… 아니, 놓지 않고 끌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빠아아~!”

    “보, 보리야……!!”

    터질 것처럼 붉어진 얼굴의 남자가 딸을 보고는 오열하려다가 뒤따라오는 나를 보며 표정이 굳어졌다.

    한데 그 굳어지는 얼굴이 굉장히 낯익다.

    ‘어라. 저 사람은…….’

    내가 어떻게 만나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바로 그 사람이다.

    바로 ‘그 길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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