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47화 (47/250)

제47화

제47편

“그런 의미에서 다들 길드를 결정하는 건 잘 따져 보셔야 해요.”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계약하기 전에 하준 씨한테 여쭤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보라 씨.”

“나도 그래야겠어.”

좋다. 인화 선배까지 이렇게 말했으니 선배가 회귀 전의 길드에 들어가는 걸 막을 수 있을 거다.

기왕이면 선배도 함께 류환희가 있는 길드에 가는 게 좋은데, 아직 길드가 만들어지지도 않았으니…….

“그런데 하준 씨, 혹시 단 거 많이 좋아하세요?”

“네?”

나는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진보라를 내려다보았다.

“단 거? 글쎄요. 막 엄청 좋아하지는 않는데.”

“아…… 전에 보니까 사탕 같은 걸 계속 드시던 거 같아서요.”

“아.”

영혼석이다.

이걸 소울 포인트로 바꾸려면 소환해 직접 먹어 치워야 한다.

잠깐 아껴 두느라 일부러 먹지 않고 지냈는데 첫 현장 실습 이후로 한 번에 40개나 얻어 버리는 바람에 먹어 치워야 할 영혼석이 확 늘어났다.

영혼석의 맛은 평범하게 별사탕 맛이어서 꽤 달았기 때문에 무턱대고 먹기가 좀 그랬다.

어차피 이후로는 평범한 실습이 이어질 터라 굳이 한꺼번에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생각이 날 때마다 하나씩 섭취했다.

그래서 지금 나의 상태는.

[은하준]

혼백의 인도자(Lv. 26)

*힘: 61

*민첩: 117

*지구력: 18

이거면 더는 D급의 스텟이 아니다.

‘그나저나 내가 너무 아무 데서나 먹었나?’

약간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물론 지금 몸뚱어리는 20대 초반의 팔팔하고 앳된 것이지만, 속에 든 건 30대 중반이니 사탕을 입에 달고 있는 게 민망했다.

“아하하, 당 떨어질 때마다 조금씩 먹는 정도예요.”

“그러시구나. 사실 간식을 좋아하시는 줄 알고 이걸 준비했거든요.”

진보라가 건네는 건 작은 사탕 꾸러미였다.

“와, 고마워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골랐어요. 분명 맛있을 거예요.”

나는 사탕 꾸러미를 받아 들곤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진보라가 이런 걸 잘 챙기는 타입이라는 건 알았지만, 여자애에게 이런 걸 받아 본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나도 먹을래.”

“네?”

한결이가 뒤에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커다란 손이 내가 쥔 사탕 꾸러미를 스스럼없이 쥐었다.

“어! 내가 받은 건데!”

“안 돼?”

“어…… 아니, 그게…….”

진보라가 쩔쩔매는 사이에 한결이는 벌써 사탕을 하나 까서 입 안에 넣었다.

이 자식…… 설마 질투하는 건가.

하기야 둘 사이에 약간이나마 썸이 있었으니까. 약간 위기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결이한테 견제를 다 받아 보다니.

그런 날이 오리라곤 생각 못 했다.

‘인기도 많은 놈이 웃기네. 하긴 보라 씨도 결국 결이 입에 들어갈 걸 생각해서 이렇게 많이 준 거겠지.’

나는 예의상 결이 손에서 사탕을 뺏어 들고 진보라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편하게 연락해 줘요. 최대한 협조할 테니까.”

인류 멸망을 막아야 해서 바쁘지만, 영문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청춘을 완전히 앗아 갈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 * *

‘한결 이 개X끼.’

진보라는 속에서 솟구치는 분노를 참으려고 혀를 깨물어야 했다.

‘내세울 거라고는 얼굴밖에 없는 놈.’

그렇게 생각했지만, 한결은 사실 성격 빼고는 모든 게 뛰어나다는 걸 알았다. 순식간에 기분이 우울해졌다. 하지만 진보라는 눈앞에 있는 순한 댕댕이 같은 남자의 약간 발그레한 뺨을 보면서 다시 기분이 떠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은하준.

키도 크고 연예인 뺨치는 미남인 한결 옆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진보라가 한결에게 빠져 있을 때는 솔직히 정말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결의 성격을 파악하고 콩깍지가 떨어졌을 무렵에는 어떻게 지금껏 이렇게 귀엽고 자상하고 지적이면서도 센스 있는 남자를 몰라봤을까 충격을 받았다.

첫 던전 실습에서 자신을 챙겨 주던 그 모습.

경멸을 담아 쌀쌀맞은 말만 하는 한결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자신을 믿어 주고 응원해 줬다.

그런 상냥한 모습은 반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진보라 스스로 자기가 엄청난 금사빠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은하준이 이렇게 귀여운 얼굴로 윙크를 하는데.

‘뭐야, 뭐야. 편하게 연락을 달라고? 드디어 내 마음이 통한 건가?’

은하준은 친절하기는 하지만 어쩐지 항상 겉돈다고 해야 할까. 유들유들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한결보다도 더 대하기 어려운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용기를 낸 보람이 있었어……!’

윙크라니, 이건 확실한 그린라이트가 아닌가!

그러다 은하준의 어깨 위에 턱을 올려놓은 한결과 눈이 마주쳤다.

‘윽.’

따가운 눈총.

‘제가 뭔데 X랄이야. 하준이 주려고 챙겨 온 사탕을 제가 왜 먹어?’

둘 사이로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튀었다.

* * *

“그럼 이제 회식 갈 수 있는 사람들은 모입시다!”

인화 선배의 말에 10팀 팀원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그중에는 염태규 무리도 있었다.

‘녀석들 그날 이후로는 아주 착실하게 수업에 참여했지.’

염태규와 염진혁을 구해 주고 감사 인사를 받은 다음부터 녀석들은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더는 소란스럽게 팀 분위기를 망치지도 않았고 시비를 걸거나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제대로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했다. 10팀의 분위기가 더 좋아질 수 있었던 건 염태규 무리의 협조 덕분도 컸다.

“와아! 수고했어요! 다들 앞으로 멋진 헌터가 되어서 던전에서 만나자고!”

근처 고깃집에서 간단한 회식을 마치고 나오니 어느덧 거리는 깜깜해져 있었다.

잠깐 화장실을 간 결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나지막하게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저…….”

“어? 너는…….”

염태규였다.

사실 염태규가 수업에 협조적이라고 해서 딱히 교류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쪽에서 어색하게 굴어서 나도 따로 터치하지는 않았던 것.

그래서 마지막 회식이라고는 하지만 염태규가 말을 걸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방금 대답할 때 좀 삑사리가 났었나? 큼큼.

“그게…….”

염태규는 차마 할 말을 입에 올리지 못하겠는지 입술을 씰룩거렸다.

“왜? 할 말 있으면 오늘 놓치지 마라. 지금은 옆에 S급도 없으니 한 대 치려면 타이밍 좋네.”

내 말에 염태규의 얼굴이 당황스러움으로 얼룩졌다. 심지어는 두 손을 뻗어 마구 흔들었다.

“때리다뇨. 그런 짓은……!”

“음? 그럼?”

언제부터 존댓말이야? 약간 당황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날 이후로 애매하게 반존대를 썼던 것 같기도 하다.

반존대라기보다 존대도 아닌 것이 반말도 아닌 것이 확실하지 않고 끝을 흐리듯이. 별로 신경을 안 써서 지나쳤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지난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저,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엉?”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어 버린지라 조금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 그랬더니 가게 앞으로 나와 마지막 수다를 떨던 10팀 팀원 몇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그러니까, 그때는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목숨을 빚졌으니까요.”

“에이. 뭔 빚까지야…….”

애초에 염태규랑 이러쿵저러쿵 깊이 연관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니 생색을 내고 싶지도 않았다.

“신경 쓸 것 없어. 그 상황에서 안 구하는 게 이상한 거지. 뭘 그런 걸 지금까지 담아 두고 그래.”

“아니요……. 당연히 담아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응? 녀석의 말투가 한층 더 깍듯해졌다. 이러니까 기분이 정말 이상한데. 오늘 정말 낯선 기분을 많이 느끼게 되잖아?

“저는…… 누가 도와줬던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곤란하고, 매우 어색하고 부끄러워 죽겠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염태규를 보고 나는 약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한 번도 누가 도와준 적 없다니.

그런 기분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뭐, 형이라고 부르든가.”

“……!!”

그래, 그렇게 부르는 정도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니까.

그 정도는 허락해 줄 수 있지.

“감사합니다! 형, 건강하게 지내세요. 저 꼭 형처럼 좋은 사람이 될게요.”

염태규는 정말로 기쁜 얼굴로 꾸벅 인사하더니 골목 저 멀리로 달려갔다.

“…….”

정말 기분이 이상해졌다.

나처럼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염태규 네가?

그렇게도 나를 괴롭혔으면서. 미워했으면서.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녀석의 미래를 떠올렸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아서 그런 사람이 된 거라면. 그렇다면 누군가 도와준다면 관심을 둔다면 염태규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스킬을 써 볼까.’

어떻게 활용할지 몰라서 묵혀 두고 있던 스킬이다.

영혼 분별사.

즈즈즈.

스킬이 발동되자 염태규의 등 뒤로 시스템의 정보가 떠오른다.

[염태규]

영혼 등급: C+

영혼 상태: 불안정

싱크로율: 55%

‘흐음, 소울메이트를 사용하기는 어렵겠군.’

그걸 쓴다면 뭐, 혹시나 할 때 도와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뭐야, 저 자식이 또 뭐라고 시비 걸었어?”

가게에서 나오던 한결이가 내 시선 끝에 있는 염태규를 발견하곤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냐. 그냥…… 고맙다던데.”

“뭐? 갑자기?”

“응, 전에 구해 준 게 고맙대. 한 번도 누가 도와준 적이 없었는데…… 그래서 고맙대.”

“…….”

“옛날 생각난다. 우리도 누가 도와주길 엄청 바랐던 적이 있잖아.”

“우린 누가 안 도와줬어도 저런 양아치 짓은 안 했어.”

“너 싸움 엄청나게 하고 다녔던 거 기억 안 나?”

“그건 양아치 짓이 아니라……. 하여튼 네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했잖아.”

“글쎄.”

피식 웃어 보였지만, 한결이는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날파리들이 너무 꼬이네.”

“응? 뭐라고?”

“아니야.”

결이의 시선이 진보라 쪽으로 움직였다가 내게 돌아왔다.

“또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다 챙기려고 하지 말고.”

“내가 언제 그랬어.”

“늘 그렇잖아.”

“참 나.”

회식과 마지막 안부 인사까지 모두 마친 10팀 팀원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준 씨, 그럼 다음에 또 뵈어요.”

진보라가 다가와 꾸벅 인사를 하더니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한결이를 보더니 샐쭉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하며 돌아섰다.

슬쩍 눈치를 보니 한결이 표정이 말이 아니다. 그러더니 곧 나를 노려본다.

‘얼씨구, 이것들 지금 밀당하는 거야 뭐야. 보라 씨도 참, 나를 이용해서 질투 작전을 벌이는 모양인데. 뭐, 이용당해 줄 순 있지만…….’

젊은 애들은 기력이 넘친다고 해야 할까. 기력에 치인다고 해야 하나.

젊다, 젊어!

‘염태규의 경우도 뭐, 아직 뭘 부탁해 오거나 내가 하는 일에 방해되는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여하튼 지금 내 최대 관심사는 이거란 말이지.’

나는 손에 들린 헌터증을 내려다보았다.

‘그간 센터 훈련에선 새벽의 검도 사용해 보지 못했다. 벤 상대의 기력을 흡수한다는 특성이 어떤 건지 엄청 궁금해.’

진화한 망량이의 능력은 딱히 뭔가 엄청나게 변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자, 그럼 우리도 갈까?”

인화 선배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동안 미뤄 왔던 말을 꺼냈다.

“누나, 길드 가입 바로 안 하시고 프리랜서로 먼저 활동하실 거면 저희랑 같이 던전 뛰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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