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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42화 (42/250)
  • 제42화

    제42편

    “그으으…… 으으으으어어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질적인 소리와 함께 온 정글이 진동하고 빽빽한 나무가 미친 듯이 뒤흔들렸다.

    저 멀리서 형태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엇인가가 정글을 가로질러 곧장 이리로 향하고 있었다.

    “뭔가 온다!”

    “다들 전투준비!”

    10팀 팀원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세를 다잡았다.

    “방벽!”

    인화 선배와 몇몇 탱킹이 가능한 각성자들이 앞으로 나서며 여러 가지 속성의 실드가 생성됐다.

    “이럴 수가, 이런…… 이런 적은 10년 동안 한 번도…….”

    윤지한의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이유가 환희인지 두려움인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전방을 주시하는 그때.

    “그아아아아……!! 가아아아아!!”

    바로 아래. 발밑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그 소리가 남아 있는 유적의 건물을 죄다 뒤흔들었고 진보라는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윽!”

    “크아악!”

    “으윽…… 귀가……!!”

    끔찍한 고통이 귀를 때렸다. 그리고 눈앞에 시스템의 알림이 떠올랐다.

    [!상태 이상!]

    청력 손상. 청력과 관련된 모든 스텟이 하락합니다.

    ‘쳇.’

    상황이 좋지 않다. 청력은 민첩 스텟에 영향을 준다. 믿을 거라곤 민첩 스텟밖에 없는데 곤란하군.

    그나저나 내가 청력 상태 이상에 걸렸다면, 10팀 팀원 대부분이 그럴 거다.

    시선을 돌려 보니 대부분 허공을 보며 충격에 빠져 있다.

    ‘결이까지?’

    소울메이트로 연결되어 있으니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알 수 있었다.

    ‘S급인 결이마저 한 번에 상태 이상에 걸리게 만들다니……. 사실 이 등급의 던전에서 큰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위험할 수도 있겠어.’

    끔찍한 소리가 들려온 근원을 알아내야 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우리가 올라왔던 유적의 하층부는 대부분 붕괴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아래, 깊은 구덩이에 무엇인가가 있었다.

    거대한 입이었다.

    그러니까 그걸 입이라고 칭할 수 있는 건 인간의 것을 닮은 치아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전체적인 모습은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유적 아래에 파묻힌 부분이 훨씬 많았으니까.

    ‘위험해 보이는걸?’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먼 곳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벌써 코앞이다.

    ‘갑자기 청력을 상실한 상태로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힐러 계열의 각성자가 있었다면 상태 이상을 해제하는 스킬을 써 달라고 하면 되겠지만, 지금 10팀 팀원 중에는 그런 스킬을 가진 사람이 없어.’

    마법사나 서포트 계열 몇이 약간의 체력 회복이나 버프 등을 가지고 있었지만, 상태 이상을 해제하는 것은 상당히 고난도의 힐러 스킬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류창희가 있었다면 아주 손쉽게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을 테지만.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붙잡았다.

    인화 선배였다. 그녀는 일일이 팀원들을 쳐서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있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와중에 최선을 다해 몸짓으로 팀원들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 ……!!”

    들리지 않음에도 전력을 다해 외치고 있었다.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역시 인화 선배다.

    그녀가 전방을 향해 손을 뻗는다.

    부글부글.

    묘한 빛을 띠는 비누 거품 모습의 에너지체가 흩날린다. 에너지체는 적당히 공중으로 떠올라 멈췄다. 어쩌면 아름답고 낭만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저건 인화 선배의 독특한 공격 스킬이었다.

    버블붐. 공중에 떠 있는 지뢰라고 할까?

    저 에너지체는 선배가 스킬을 거두지 않는 한 지정한 공간에 대기하다가 적이 가까이 다가와 접촉하는 순간 커다란 폭발을 일으킨다.

    파직, 파지직!

    내 앞을 가로막는 한결이 역시 언제든지 전격을 뿜어낼 수 있도록 머리가 바짝 서 있다.

    다른 팀원들도 허둥대는 와중에 각자가 할 수 있는 공격이나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래. 다들 잘 따라와 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가산점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이 중에 가장 당황하고 있는 것이 윤지한인 것 같았다.

    ‘안 되겠군.’

    카가가가가!!

    눈앞에 있던 정글 숲이 파헤쳐지고 나무들이 뽑혀 나가는 것과 함께 거대한 무엇인가가 솟아올랐다.

    “그으어아아아아……!!”

    포효하며 솟아오른 그것은 얼핏 인간의 형태를 닮아 있었다. 두 다리로 서 있었고 길쭉한 몸체 옆으로 팔이 달려 있었다.

    팔이 네 개라는 점이 인간 같지는 않지만.

    붉은색의 거대한 흙으로 만든 인간. 기하학적인 문양이 몸에 잔뜩 그려진 점토 인형 같기도 했지만, 인형 같은 것보다 훨씬 사납고 강하고 원시적이고 두려움이 느껴지는 외모였다.

    거인의 얼굴은 아무리 잘 봐줘도 인간을 닮았다고 하기 어려웠다.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부위에는 거대한 입만이 존재했다. 비유하자면 칠성장어의 주둥이 같달까.

    그 위로는 머리카락인지 가죽인지 알 수 없는, 어쩌면 촉수처럼 보이는 것들이 잔뜩 엉켜 있었다.

    왼쪽 뺨 아래에서 도깨비불이 잔뜩 겁을 먹고 부대끼는 것이 느껴졌다.

    “후우욱…… 후우우욱…….”

    거인이 씨근거렸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뜨거운 김과 진동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인은 온몸을 들썩거리고 있었는데 놈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이까짓 유적은 단번에 부서질 것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

    ‘이런 말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 엄청나게 화난 것 같은데. 아니, 잠깐.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저 녀석 지금 선배의 버블붐 바로 앞에서 멈춘 건가?’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그 순간에 거인의 오른쪽 두 팔이 허공을 갈랐다.

    퍼벙! 퍼버버버벅!!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선배의 버블붐이 폭발을 일으켰다.

    “케에에엑!!”

    거인이 내뱉는 비명이 피부를 저릿저릿하게 만들 정도였다. 놈은 잠깐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건 놀라서였지 큰 대미지를 받아서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폭발이 한차례 덮쳤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몸체에는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다.

    ‘버블붐을 완전히 파악했던 건 아닌 것 같군. 어느 정도 기운을 읽는 것 같기는 하지만. 다음 공격이 오기 전에 모두 피해야 해. 레벨이 낮아도 A급인 선배의 공격이 이 정도라면 놈은 던전 등급과 맞는 레벨이 아니다.’

    의아했다. 아무리 수수께끼를 풀었다고는 하지만 이 등급에서 이런 몬스터가 나와도 되는 건가?

    더욱 심하게 들러붙는 도깨비불을 살짝 떼어 내며 윤지한의 얼굴을 살피니 정말 가관이다. 너무나 당황한 얼굴. 그러니까 저놈은 원래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도 아니라는 거다.

    나는 한결이에게 눈짓했다.

    ‘일단 놈의 패턴을 읽어야 해. 하지만 퇴로 역시 확보해야 하고. 네가 시간을 끌어 줘야겠어.’

    눈빛을 읽은 한결이가 곧장 튀어 올랐다.

    츠팟! 팟!!

    훨씬 정돈된 움직임의 ‘구름의 아들’ 스킬. 결이가 번개처럼 단숨에 거인의 머리 위로 이동한다.

    스윽.

    결이가 검을 뽑자 전격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직, 파지짓!

    콰아아앙!!

    재빠르고 강력하게, 결이의 검이 거인의 머리를 내리쳤다.

    카아아아앙!!

    분명 그런 소리가 났을 거다. 서걱, 같은 시원한 소리가 아닌 맹렬한 파찰음이 들렸을 거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결이의 검이 그 어떤 대미지도 입히지 못했다는 것처럼 거인의 손에 가로막혔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있나?

    이런 레벨의 몬스터가 갑자기 등장했다고? 고작해야 E급 던전이다. 이런 곳에서 결이의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고?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시스템이야 늘 엉망진창에 제멋대로지만, 이건…….

    전혀 파악할 수 없다는 생각에 순간 뒷덜미가 오싹했다.

    회귀 전 나를 죽게 만든 그 몬스터가 떠올랐다.

    이 수수께끼는 풀지 말아야 했던 걸까? 풀어선 안 되는 수수께끼가 존재하는 걸까? 눈앞의 상황은 재난보다 더 끔찍하다.

    내 감정을 읽은 것일까. 도깨비불이 끈질기게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가…… 아아아…… 그아아……!”

    후웅.

    거인은 마치 파리를 쫓아 버리듯 결이를 내동댕이쳤다.

    “결아!!”

    퍼어억! 결이의 모습이 정글의 수풀 사이로 사라진다. 흩날리는 나뭇잎과 흙먼지만이 그곳에 결이가 있을 거라는 걸 예상하게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모두가 경악했다.

    ‘괜찮아. 소울메이트가 끊어지지 않았으니까. 크게 다치지는…….’

    애써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해 보려 하지만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그 범죄자 놈들에게 죽을 뻔했을 때도 이렇게 무섭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 아마 그때 한결이도 지금 내가 느끼는 것처럼 공포에 질렸겠지.

    인화 선배는 이미 팀원들을 향해 피하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처 피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로 거인의 손이 10팀 팀원들의 위로 쏟아져 내렸다.

    * * *

    빌어먹을.

    그 희멀겋고 비리비리한 놈의 말을 들은 탓에 이렇게 됐다.

    고작 D급 주제에 친구만 믿고 까부는 녀석.

    세상 물정은 하나도 모르는 놈.

    어려운 일이라고는 겪어 본 적 없을 것 같은 곱상한 놈.

    모두 그놈 때문에 이런 허접한 던전에서 죽는 거다.

    드디어 각성자가 됐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염태규는 분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데.

    차라리 동생만이라도 왔던 길을 되돌아 포털 밖으로 나가게 해야 했었다는 후회가 몰아쳤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다 끝났다.

    눈앞에, 머리 위로, 곧장 떨어지는 거인의 주먹을 보았다.

    하필이면 또 바로 머리 위라니. 조금이라도 비껴갔다면. 어쩌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들어왔던 포털까지 달려가서 단번에 포털을 통과했을 거다.

    그런데 이렇게 운이 없다니.

    염태규는 어릴 적부터 운이 나빴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에, 집을 나간 어머니. 사실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가족이라는 건 원래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러니 ‘보통’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돈이 없어 준비물을 못 챙긴다거나 도저히 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겠다거나 하는 일은 당연하게 일어났다.

    얄궂게도 염태규는 운이 나빠서 불쌍히 여겨 주는 사람도 없었다. 성실한 삶으로 이끌어 주는 어른도 만나지 못했다.

    보통 사람들 곁에서 염태규는 항상 겉돌 수밖에 없었다.

    엿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는 것이 그밖에 없으니 삶은 흘러가는 대로, 마치 포장이 안 된 비탈길에서 굴러떨어지는 수레처럼 그렇게 아무렇게나 살았다.

    세상은 염태규에게 무관심했다. 그래서 염태규도 세상에 무관심해지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세컨드 오픈이 일어났다.

    빌어먹을 세상에 이질적인 기운이 가득 찬 날, 운이 좋게도 염태규는 각성자가 됐다.

    그의 동생까지! 게다가 등급도 A급이었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았다.

    그런데 결국 끝은 이거다.

    죽음.

    절대로 죽을 리 없다는 하급 던전에서, 실습 중에.

    정말 거지 같게도 염태규는 운이 없다.

    깊은 속에서부터 한탄이 올라왔지만, 마지막이 그런 감정이라니. 비참했다.

    매일 화만 내면서 살아왔다.

    지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통증이 느껴지던 온몸에서 특히나 목 주위를 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도 느껴지는 게 있다고? 죽을 거면 한 방에 죽지. 운도 지지리 없게…….’

    충격으로 인해 멍해졌던 감각들이 천천히 돌아왔다.

    아직 숨이 붙어 있다면 끔찍한 통증에 사로잡히겠지. 각오를 다지는데 생각보다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뭐지.’

    눈앞이 어두웠던 건 죽어서가 아니라 흙먼지 때문이었다.

    먼지가 천천히 걷힐 때쯤, 염태규는 왜 유독 목이 당기는지 알아냈다.

    누군가 자기 목덜미를 붙들고 있었다.

    “누가…….”

    염태규는 깜짝 놀랐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인 희멀건 놈이었다.

    놈의 등에는 동생인 염진혁이 업혀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D급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청력이 손상되어 웅웅거렸다.

    하지만 염태규는 느릿하게 말하는 D급의 입 모양을 읽었다.

    “야. 너네, 살 좀 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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