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40화 (40/250)

제40화

제40편

“뭡니까?”

“아무래도 이 글귀에 뭔가 담겨 있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은하준은 태연한 얼굴로 눈을 깜빡거렸다. 윤지한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뭔가 담겨 있다니…… 그런 건 없다니까…….”

“보라 씨. 혹시 이 종이를 투명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 그런 마법은 없는데요.”

은하준의 말에 종이 더미를 쥔 진보라가 놀라 몸을 움츠렸다.

“혹시 10팀 팀원 중에 이 종이 12장을 겹쳐 볼 수 있을 만한 마법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요?”

팀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으나 아무도 은하준이 찾는 마법을 할 수 있는 자가 없는 듯했다.

“아, 종이를 투명하게 할 순 없지만……! 겹쳐 보는 거라면 가능해요!”

진보라가 다시 앞에 섰다. 그녀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종이에 쓰인 문구들이 마치 살아 있는 작은 개미 떼처럼 스멀스멀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피, 매직 프로젝션!”

진보라의 외침과 함께 종이 위에서 꿈틀거리던 글자들이 열을 맞추어 떠올랐다.

마치 보이지 않는 판본을 뜨는 것처럼 종이 위의 글자를 남겨 둔 채 복사된 문자만이.

공중으로 떠오른 반투명의 글자들 아래에서 은하준이 눈을 빛냈다.

“아주 우연히 발견한 거예요. 보라 씨가 아까 종이를 떨어트렸을 때 말이에요.”

윤지한은 인상을 찡그렸다.

'발견하면 무엇을 발견한단 말이야. 대충 마무리하고 갔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윤지한의 바람과는 달리 은하준은 재밌다는 얼굴로 떠오른 글자들을 바라보았다.

10팀 팀원들 역시 모두 은하준에게 집중했다.

“보니까 이 글자, 띄어쓰기가 이상하더라고요.”

“어, 엇. 맞아요.”

진보라는 자신이 베껴 써 놓고도 그 사실을 잊어버린 듯 눈을 크게 떴다.

“보라 씨, 여기 12장을 모두 겹쳐 보겠어요?”

“네!”

그녀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둥실 떠올라 있던 12장의 글자들이 은하준의 머리 위에서 나란하게 겹쳤다.

차르르륵.

“어?”

꼬투리를 잡으려고 글자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윤지한의 짜증 섞인 얼굴이 점점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글자가…… 보인다?”

12장이나 겹쳐 새카맣게 보이는 글자들 사이에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단어들이 보였다.

“……다시 우……리를 하나…… 되게 하라?”

윤지한이 웅얼거렸다. 그러자 순간 유적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쿠구구구구구…….

“꺄아!”

“헉!! 무, 무슨……!”

“세이프티 플레이스!”

높이 들어 올린 서인화의 손에서부터 오로라 같은 녹색의 빛이 10팀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둥그런 돔의 형태가 확장된다.

단단한 에너지 보호막.

그녀의 스킬이 높은 천장과 벽에서 떨어지는 돌들을 막아 냈다.

구구궁……! 쿠웅! 쿵!

“허, 허억. 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10팀 팀원들을 몸으로 보호하던 강민혁이 외쳤다.

지진이 사그라드는 듯하더니.

촤르르르륵.

천장에서 거대한 샹들리에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꺄악!”

“허억!!”

다들 당황했지만, 샹들리에는 어느 정도 하강한 뒤 멈추어 흔들거렸다.

그 모양이 무척이나 투박했다.

샹들리에라는 이름이 민망할 정도로 얼기설기 뼈와 흙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테두리에는 반쯤 녹아내린 초들이 빼곡하게 올려져 있었다.

샹들리에의 하강과 유적의 진동이 완전히 멈췄다는 것을 깨달은 10팀 팀원들이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직 수수께끼가 좀 남은 것 같네요.”

은하준은 조금 흐릿해진 진보라의 마법 잔상을 보며 말했다.

윤지한은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괴물 특수부대에서도 알아내지 못한 사실이, 던전의 새로운 비밀이 지금 풀리려고 하는 와중이었으니까.

* * *

솔직히 갑자기 샹들리에 같은 게 등장해서 엄청 놀랐다.

그도 그럴 게 회귀 전에 비슷하게 생긴 놈한테 죽었단 말이야.

물론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기 미안할 정도로 다른 모습이지만.

어찌 됐거나 역시.

내 생각이 맞을 수밖에 없다.

왜냐고? 업적이 다 가르쳐 줬으니까.

나는 눈앞에 떠 있는 시스템 창을 보았다.

[‘299번째 수수께끼를 푼 자’ 발동 중]

난 이 업적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12장을 다 모으기 전까진 아무런 액션이 없어서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지. 혹시나 수수께끼가 아니면 어쩌나 했는데 말이야.’

수수께끼 업적을 믿고 글자를 모으는 일을 멈추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윤지한이 글자에 관해 아는 게 없다는 건 처음부터 눈치챘으니까.

‘하기야 그 뻔한 표정을 보고도 모르면 바보지. 그나저나 류환희 말대로 던전 조사가 엉망진창인 모양이야. 결이랑 둘이 공략한 던전도 그랬고. 내겐 이득이긴 하지만.’

지이잉, 지잉.

무미건조하게 떠 있는 시스템을 바라본다.

[힌트. 로맨티시스트가 되어 보자.]

약하게 깜빡거리고 있는 업적의 능력.

‘이번 힌트는 왜 이따위냐.’

12장을 겹치는 방법을 알아채게 해 준 ‘힘을 합치면 길이 보인다.’처럼 좀 더 구체적인 힌트를 주면 좋겠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건 너무 장난스러워 보인다.

“끄응…….”

“뭔가 더 알아낸 게 있습니까? 은하준 씨?”

윤지한은 믿기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물어 왔다.

“이건 완전…… 대단한 발견이라고요. 이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하아. 하필이면 왜 내가 여기에 있을 때……. 아, 아닌가. 진급할 수 있으려나?”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는 걸까. 사실 이미 반쯤 넋이 나가 보였다.

“하준아. 정말 대단해!”

인화 선배가 눈을 빛냈다.

“강사님 말대로야. 엄청나게 대단한 발견이라고! 그간 그 누구도 알아내지 못한 거잖아. 그러니까 10년이 넘도록 발견되지 않은 비밀이라고!”

“뭐, 던전이 가진 비밀은 워낙 많잖아요. 지금까지 알려진 게 거의 없기도 하고.”

호기심에 들떴던 선배의 얼굴에 걱정이 드리웠다.

“팀원들이 겁을 먹을까 그게 걱정이네.”

선배의 염려대로 뒤쪽에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던전의 비밀?”

“그거 위험한 거 아냐?”

“에이…… 설마. 여긴 초짜 헌터도 올 수 있는 제일 후진 던전 아냐?”

“무, 무섭다…….”

“방금 죽을 뻔했잖아.”

“얼른 나가고 싶어.”

대체로 D급 이하의 교육생들이었고 C급 교육생들의 얼굴도 편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선…… 아니 누나. 일단 팀원들을 안정시켜 주세요. 그동안 세 사람과 수수께끼를 풀어 볼게요.”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하준아.”

선배는 곧장 사람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는 틈에 윤지한이 내 옆으로 바짝 붙었지만, 나는 진보라와 한결이에게 손짓했다.

“다들, 이 문장이 뭘 숨기고 있을지 생각해 보자고요.”

던전에서 수수께끼를 풀어 본 전적이 있으니 잘 알아듣겠지. 라고 생각하며 바라보자 결이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지. 역시 척 하면 척이라니까.

“다시 우리를 하나 되게 하라……. 전혀 모르겠어요.”

진보라가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자기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음, 뭔가 심오한 기운이 느껴지네요. 아주…… 어둡고…… 음산한. 분명 해결한다면 진급은 떼 놓은 당상인…….”

“12장에 적혀 있던 이야기랑은 관계가 없을까?”

나는 윤지한의 헛소리를 무시했다. 로맨티시스트가 되어 보자. 확실히 12장에 걸쳐 쓰인 신화의 내용은 꽤 사랑 이야기라고 볼 수 있었다.

“관계……. 헤어진 신들에 관한 이야기랑?”

결이가 내 이야기에 턱을 괴고 고민에 빠졌다.

“정확히는 연인 신들 이야기죠.”

“연인이라고?”

“여기 사랑하여 한 몸이 되었다는 문장이 있잖아요? 제일 처음 찾은 장에 말이에요. 그리고 여기에도 사랑하여 그리워한. 이런 문장도. 12장 곳곳에 있어요. 사랑이라는 단어가! 그러니 연인 신이지 않겠어요?”

“그런…….”

진보라의 말에 결이는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만약 이 신화와 이어지는 문제라면…….”

“그래. 맞아. 그렇구나.”

거기까지 들으니 뭔가 머릿속에 빛이 들어온 것 같았다.

“뭐, 뭔가요? 하준 씨?”

결이를 향해 열심히 의견을 늘어놓던 진보라가 깜짝 놀라며 내 쪽을 돌아보았다.

“보라 씨가 말한 대로예요. 이 이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사랑이죠.”

“어, 어…… 그렇긴 하죠?”

“봐요.”

나는 첫 번째 장을 들었다.

“사랑하여. 뒤에요.”

“한 몸이?”

“네. 그리고 다음 장, 여기는 어떤가요?”

“어…… 사랑하므로 팔 일 뒤에…….”

내가 씩 웃자 진보라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온 다음에는 항상…… 숫자가 있어요. 이다음, 이다음에도요!”

“맞아요.”

“이럴 수가! 하준 씨?! 어떻게 그런 생각을?! 이렇게 빨리요!! 전, 전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요!”

진보라는 거의 펄쩍 뛰다시피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뭐야, 뭐야.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나도 끼워 줘요! 뭐 어떻게 결론이 난 겁니까?!”

윤지한은 잠시 멍을 때린 건지 갑자기 끼어들었다. 눈썹을 들썩이는 사이에 친절한 진보라가 천천히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로맨티시스트가 되라는 게 이딴……. 별로 로맨틱하지도 않은데?’

솔직히 이걸 힌트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의문이 생기지만 아무래도 좋다.

이걸로 8개의 숫자를 찾아냈으니까.

“이제 이걸 어디에 사용하는지 알아내는 게 문제군.”

결이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나를 믿는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산 넘어 산이네요. 순서도 확실하지 않으니까요. 이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던전이 1장부터 차례대로 길을 제시할 것 같지도 않고요.”

“……우리가 놓친 게 있을까?”

지나쳐 온 길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모두 외길이었다.

내부의 열리지 않던 수많은 문들. 그걸 다시 다 되짚어야 할까?

‘아니야. 분명 수수께끼를 푼 다음 유적은 진동했다. 그러니까 분명 변화한 것 중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유적처럼 으스스하고 투박한 모양의 샹들리에였다.

‘샹들리에가 8개. 이건 분명.’

새로 발견한 이 숫자와 샹들리에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 X발!! 놓으라고!!”

느닷없는 고성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잔뜩 화가 난 얼굴의 염태규가 보인다.

“태규 씨. 단독 행동은…….”

“아! 진짜 보스 룸 코앞에 두고 뭐 하는 거냐고. 이 거지 같은 던전 빨리 나가고 싶지 않냐고 다들.”

인화 선배가 진정시키려 하지만, 염태규 곁에 선 염색모 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아까 강사님도 말했잖아. 저런 거 안 해도 보스 몹 공략할 수 있다고!!”

“그, 그건 맞는 말이지만…….”

윤지한은 또 그걸 어수룩하게 받아치고 있다.

“아마 이 문제를 푼다면 추가적인 경험치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혹시 모르죠. 굉장한 레어 아이템이라도 나올지도요.”

내 말에 한결이는 눈을 빛냈지만, 염태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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