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39화 (39/250)

제39화

제39편

진보라의 손 위에 떠 있는 빛의 나침반.

나침반의 바늘 끝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울창한 나무에 가려 존재를 알 수 없었던 거대한 사원이었다.

“우와…… 엄청 크다.”

10팀 팀원들 모두 선뜻 앞으로 나서질 못하고 있었다.

사원은 돌을 깎아 그것을 쌓아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형식이 무척이나 투박하면서도 원시적으로 보였다.

양식이 너무나 낯선 바람에 공포감이 몰려올 지경.

게다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감히 예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건물 외관에서부터 풍기는 아우라가 대단했다.

켜켜이 쌓인 이끼와 흙먼지. 넝쿨 식물이 잔뜩 지배해 버린 거대한 벽.

아득하게 높은 건물의 꼭대기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설마 보스 룸을 클리어하려면 저 높이까지 올라가야 한단 말인가?”

“이럴 수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온 것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릴 거야.”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물러날 순 없잖아요? 우린 해낼 수 있어요. 지금까지 아주 잘해 왔고요. 심각한 부상자도 없어요.”

인화 선배가 활짝 웃었다. 그녀의 말대로 10팀의 컨디션은 아주 좋았다. 이대로 보스 룸까지 단번에 클리어할 수 있을 거라 나 역시 장담했다. 단지 처음이기에 엄두가 나지 않을 뿐.

“던전 안에서는 속임수가 많아요. 저 높은 층수 역시 그럴지도 모르죠.”

“앗, 그럼 제가 스킬을 사용해 볼게요!”

늘 뒤로 빠져 있던 서포터 계열 팀원이 앞으로 나섰다.

“저한테 속임수 간파하기 스킬이 있거든요!”

“좋았어요. 딱 필요한 스킬인 것 같네요.”

인화 선배가 손짓하자, 팀원이 앞으로 나와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명한 눈!”

그가 외치자 드높은 사원의 건물에 노이즈가 끼는 것처럼 지지직거리는 잔상이 생겨났다.

칙, 치직, 지지직!

그러더니 높은 사원의 모습이 서서히 지워지고 10층 정도 되는 높이의 본래 모습이 드러났다.

“오! 오오~!”

“대단하다! 속임수라는 게 이런 거구나.”

“이야, 속임수 간파 스킬이 없었다면 초장부터 기가 꺾였을 거야.”

팀원들이 기뻐하며 스킬을 사용한 팀원을 북돋아 주었다.

나는 슬쩍 염태규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나 염태규는 이미 나를 보고 있었던 듯 시선이 딱 마주쳤다.

좀 전의 대화로 아직도 화가 난 모양이다. 아주 그냥 눈이 이글이글한 게 바싹 탈 지경이네.

“무앙!”

도깨비불이 갑자기 내 시야 앞을 가로막았다.

“그래, 그래. 알겠어. 여기까지 네가 안내한 거랑 딱 맞아.”

“뭉! 뭉!”

“아이 착하다.”

제대로 안내했으니 칭찬을 해 달라는 거였다.

나는 도깨비불을 마구 쓰다듬어 줬다. 도깨비불은 조심스럽게 만지는 것보다 좀 우악스럽게 쓰다듬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한데, 정말 신기하긴 하다. 도깨비불이 말했던 거랑 같아.’

도깨비불과 구체적인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 항상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마치 진보라의 마법 나침반처럼 말이다.

그리고 진보라가 방향을 바꾸기 전에 항상 도깨비불이 먼저 방향을 바꿨다.

‘이 녀석이 던전의 길을 알고 있어. 외우는 건지, 마나를 읽을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낮은 단계의 던전 두 개뿐이었지만, 이게 모든 던전에서 통하는 거라면 정말 엄청난 일일 수밖에 없다.

길 안내를 할 수 있는 헌터나 아이템, 펫이 있다면 던전을 헤매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렇다면 헤매는 쪽보다 같은 시간이면 훨씬 많은 던전을 돌 수 있게 되는 거다.

길 안내를 시킬 때 따로 내 마력이 닳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이템이나 스킬보다 도깨비불의 가성비가 뛰어났다.

‘진짜 복덩어리네.’

새삼 감동하고 있는 동안 10팀의 준비가 모두 끝난 모양이었다.

“좋아, 들어갑시다!”

“경계를 늦추지는 말아요, 다들!”

“보스 룸이니까 더욱 정신 차리고 끝까지 잘해 봅시다!”

인화 선배와 강민혁이 팀원들을 응원하며 먼저 앞장섰고 이번에는 한결이가 가장 뒤쪽을 맡았다.

화르륵. 문으로 입장하자마자 깊고 조용한 사원 안에 등불이 켜졌다.

“우와…… 솔직히 살면서 이런 곳을 와 볼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어요.”

팀원들이 속닥거렸다.

던전을 처음 경험해 본 사람들에게 정글도 정글이었지만, 이 고대의 것으로 보이는 사원 안은 놀이동산 안의 테마파크처럼 느껴질 터였다.

“그래도 사원 안은 시원하네요. 바깥은 너무 더웠어요.”

“맞아요. 어라?”

“왜요?”

“여기…… 글자가.”

나와 잡담을 나누던 진보라가 멈춰 섰다.

정글을 도는 내내 나침반 스킬을 사용하며 마나를 많이 사용한 진보라 역시 선두에서 뒤쪽으로 빠져 마나를 천천히 회복하고 있었던 것.

“팀장님 잠시만요! 진보라 씨가 뭔가 발견했어요.”

인화 선배에게 상황을 전달한 뒤, 진보라가 읽어 내려가고 있는 문자 쪽으로 다시 다가갔다.

“한글이네요.”

“네, 이럴 수가 있는 건가요?”

던전 안의 한글을 처음 본 진보라는 충격에 빠진 듯 보였지만, 나는 이로써 두 번째였다.

결이와 둘이 갔던 미발견 던전. 보스 룸 옆 비밀 공간의 사당의 수수께끼.

‘설마 이것도 수수께끼인가? 그렇다면 또 업적을 얻을 수 있는 거 아냐?’

나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벽에 새겨진 글자를 읽었다.

[강과숲, 나무와습지가 태어나 던 날에 그들을 지 키는 연인이 있었다. 오른쪽과 왼쪽은 서 로를 사랑하여 한 몸이 되었으니,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우러 러보았더 라. 깊은 숲은 모두를사랑하여 아 름다웠다. 하나 아름다운 것에는시기와 질투 가 따라다니는 법. 연 인을 시샘한 하늘과 땅이 둘을갈 라놓 기위해 모략을 세 우니 그것이 절 망의 시작이 라.]

“이야기……?”

이전에 보았던 수수께끼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요?”

“일단은 기억해 두도록 합시다. 써먹을 데가 있지 않을까요?”

‘연인과 오른쪽, 왼쪽이라. 이곳 보스 룸도 두 방향으로 나누어져 있지. 뭔가 비유인 것 같은데.’

의미심장한 단어들이 엿보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는 딱히 연상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진보라는 종이를 꺼내 벽에 새겨진 글을 받아썼다.

그러는 사이에 인화 선배가 선두에서 우리가 있는 뒤쪽까지 왔다.

“뭔가 알아냈어?”

“아니요. 그런데 이런 글이 있어서요.”

“흠, 그렇구나.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굳이 한글로 쓰여 우리가 알아볼 수 있도록 해 놨다는 점에서…… 아무 이유가 없진 않은 것 같아서요.”

내 말에 인화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팀원들에게도 다 전달할게. 혹시나 비슷한 걸 발견하게 되면 말하라고 말이야.”

“네, 감사합니다.”

인화 선배는 다시 앞쪽으로 돌아가며 팀원들에게 주변을 더 자세히 살피고 한글이 있다면 곧바로 보고할 것을 요청했다.

“생각보다 훨씬 재밌는 것 같아요.”

필기를 마친 진보라가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눈앞의 문장이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 같았다.

“다행이네요.”

“재미라니. 그런 마음으로 돌아다니다간 목숨을 잃을 거다.”

불쑥 치고 들어온 결이의 목소리에 진보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던전은 재밌는 게 아니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첫 던전행에 그렇게까지 말해야 하나 싶긴 하다.

진보라는 가엾게도 종이를 두 손으로 꽉 쥔 채 부들거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다.

그도 그럴 게 진보라는 결이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단 말이지.

그간의 수료 과정 내내 결이만 보면 얼굴에 생기가 돌았으니까. 사실 몇 번이나 말을 걸려고도 하는 것 같았고.

그녀는 결이와 동갑에 약간 설치류 계열의 귀염상이랄까. 결이랑 그림체가 비슷하달까. 꽤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결이 취향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결이 녀석 인기가 엄청 많은 걸로 아는데 한 번도 여자 친구를 사귀는 꼴을 못 봤지. 이상형을 물어봐도 없다고만 하고.’

결이가 워낙 낯가림이 심해서 초반의 이런 냉랭한 반응에 나가떨어지는 것 같았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 뭐……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재미를 느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마주 보고 있는 결이와 진보라 사이에 슬쩍 몸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되겠지만 말이에요.”

씩 웃어 보이자 터질 것같이 새빨개졌던 진보라의 얼굴이 그나마 풀어진다.

“방심…… 안 해요.”

“좋아요. 잘하고 있어요. 슬슬 앞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네요. 따라가죠.”

“흥.”

결아, 굳이 또 그렇게 큰 소리로 눈치를 줄 건 없잖니.

* * *

“그럼 이게 이제까지 찾은 글귀의 전문인가?”

“네, 맞아요.”

상기된 얼굴의 진보라가 서인화를 향해 외쳤다.

“이 글들은 전부 이어지고 있었어요. 하나하나가 이야기의 한 부분이었던 거죠.”

진보라는 12장이나 되는 종이를 바닥에 펼쳐 놓았다.

“분명 보스 룸으로 우리를 이끄는 주문일 거예요.”

“으음…… 그건 아닐 겁니다.”

윤지한이 나서며 말했다. 그의 얼굴 위로 의아함이 가득 떠올랐다.

“이 주문서가 없었어도 지금껏 보스 룸 공략에 문제가 없었는걸요.”

“하긴…… 강사님께서는 이 주문에 관하여서 아는 게 없다고 하셨죠. 이전에도 이 글귀가 던전 안에 새겨져 있었던 건 맞나요?”

“그게…….”

서인화의 질문에 윤지한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난처함을 드러냈다.

‘하필이면 10팀에서 이걸 발견할 줄이야.’

사실 윤지한은 한글로 쓰인 글귀에 관하여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결론만 따지고 보자면 저건 보스 룸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

이 던전은 이미 몇 년 전에 특수 괴물 부대의 조사가 끝난 곳.

‘뭔가 일어나려야 일어날 수가 없는 곳이지.’

그가 아무 말도 보태지 않은 이유는 그저 10팀이 헤매는 것을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4기 10팀은 이제껏 윤지한이 교육한 다른 각성자 팀에 비교해서 가장 빠른 속도로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지 궁금한 건 교육자로서 당연한 반응이랄까. 그래서 아주 잘 나가던 10팀이 한글로 쓰인 글귀 같은 의미 없는 함정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는 걸 보는 게 꽤 즐거웠다.

한데 이것도 너무 길어지고 있으니 슬슬 공략하게 시키고 다음 팀을 준비하고자 하는 마음이 피어오른 것이다.

“지금 와서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벽에 새겨져 있던 글귀에 관해서는 지금껏 그렇다 할 보고 사항이 없어요.”

“그렇다는 건…….”

“네. 그냥 쓰인 글귀라는 거죠. 뭐 분위기 조성이라거나 그런 의미에서 말이에요. 물론 던전 안에서 그 어떤 게 명확하겠습니까만.”

윤지한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서인화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절대로 일부러 헛발질을 구경했다는 티를 내선 안 됐다. 그녀는 언제나 지한의 유머에 웃지 않았고 자신의 실수에도 유들유들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으니까.

‘내색하진 않았지만, 10팀에는 거슬리는 게 너무 많다니까. 성격 괴팍한 S급도 그렇고 양아치 놈들에, 아주 똑똑하신 은하준 선생님까지 계시고 말이야.’

그는 아무도 눈치채지 않게 살짝 입술을 삐죽거렸다. 특히 은하준. 하고 곱씹었다.

어쩐지 은하준만 보면 꺼림칙했다. 초보 각성자 주제에 너무 노련하다. 꼬리 아홉 달린 여우 같다고 해야 할까. 뱃속에 능구렁이가 들어앉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근거는 많지 않지만, 느낌이 그랬다.

그리고 윤지한은 스스로 촉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특수 괴물 부대의 조사가 이미 끝난 던전이란 말입니다. 그 글귀 없이도 보스 몬스터는 충분히 공략할 수 있고요. 여러분들이 너무 헤매니까 제가 말해 드리는 겁니다. 사실 이 정도는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가야 하죠.”

윤지한은 일부러 점수를 체크하는 서류를 흔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으음.”

“저기, 그런데요. 이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서인화가 고민하는 사이에 치고 들어온 건 은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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