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37화 (37/250)

제37화

제37편

“둘이 친구라며?”

“헉, 친구가 S급이면 좀 그렇겠다.”

“쉿.”

지나다닐 때마다 이런 수군거림이 따라붙는 것이다.

‘뭐, 어느 쪽이든 난 별로다만.’

벌써 2주가 흘렀고 이제 곧 헌터 자격증을 발급받을 수 있으니까 아무렴 어떤가. 어차피 저런 말은 회귀 전에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하준아!”

“아, 누나. 왔어요?”

“짜잔.”

인화 선배가 커다란 가방을 번쩍 들어 보였다.

그간 우리는 꽤 친해졌다. 게다가 역시 선배한테 계속 존댓말을 듣는 건 너무 어색해서 얼른 이 정도는 편해지기를 바랐다.

선배는 내게도 말을 놓으라 했지만, 영 불편해서 누나라고 부르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응? 뭐예요?”

“오늘 드디어 던전에 가는 날이잖아. 아 물론 두 사람은 처음이 아니지만.”

인화 선배가 아주 커다란 비밀을 말하듯 조심스레 속삭였다.

“와, 이게 다 도시락이라고요? 엄청 많은데.”

“맛있겠지. 오늘 5시부터 내가 직접 싼 거야. 던전에 들어가려면 든든하게 먹어야지. 특히 결이가 먹성이 좋잖아. 남자애들은 20살 넘어서도 큰다더라. 봐, 그사이에 또 좀 큰 거 같은데?”

“……고맙습니다. 누나.”

한결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선배의 도시락을 넘겨받았다.

선배를 경계할 때는 언제고, 갈비찜 이후부터 마음을 꽤 연 모양이었다. 귀엽긴.

이제 셋이 있을 때의 기묘한 어색함은 사라졌다. 얼마나 다행인지.

“자, 다 모이셨으면 출발하도록 하죠! 자, 팀장들! 팀원들 챙겨 주세요!”

10팀의 팀장이 된 인화 선배가 흩어져 있던 팀원들을 모아 줄을 세웠다.

인화 선배가 다시 팀장이 되고 내가 또 팀원이 되다니. 아이러니하달까.

선배의 인솔을 따라 센터의 바깥 큰 도로로 나가니 40인승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고, 두 팀씩 같은 버스에 올랐다.

염태규 무리는 차가 출발하기 직전에야 나타나 탑승했다.

‘그간 팀별로 하는 게 별로 없어서 그런지, 딱히 부딪치는 일은 없었어. 음…… 인화 선배가 팀장이 되어서 그런 건가.’

아무래도 다행이었다. 가끔 복도를 지날 때 염진혁이나 다른 똘마니들이 노려본다든지 위아래를 훑어본다든지 하는 소소한 도발은 있었지만 말이다.

역시 권력 앞에선 함부로 반항하기 어렵지.

녀석들은 마치 수학여행이라도 가는 듯 가장 뒷자리로 가 좌석을 차지했다.

“아무리 낮은 단계의 던전이라고는 해도, 던전은 위험한 곳입니다. 진짜 몬스터가 있고 진짜 전투가 있는 것이죠. 물론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참 잘해 주었습니다만.”

버스가 출발하고 우리 차에 함께 탄 윤지한이 마이크를 잡고 중얼거렸다.

“정말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네요. 항상 그렇지만, 이번 4기수는 제게 많은 깨달음을 얻게 했습니다. 9팀과 10팀. 여러분은 그중 특히나 실력이 출중한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눈을 슬쩍 감았다. 이제는 윤지한이 설교를 시작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잠이 왔다.

그는 어쩌면 수면 유도 스킬이 있는 걸지도……라고 생각하며 수마에 빠져들고 말았다.

* * *

한결이가 톡톡 건드리는 바람에 깨고 보니 이미 버스는 정차했고 사람들이 하나둘 내리고 있었다.

“이번에 진짜 역대급이었어. 내리기 직전까지 마이크를 들고 있더라니까.”

버스에서 내리는 내내 한결이가 혀를 내둘렀다.

“너도 대단하다. 졸리지 않았어?”

“난 졸면 안 되지.”

“음?”

주위에 다른 버스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각 팀당 다른 던전을 공략하는 듯했다.

“자아, 여러분 이쪽으로~! 질서를 지켜 주세요! 혹시 잘못해서 혼자 던전으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윤지한은 농담이 마음에 들었는지 작게 킬킬거리고는 인솔을 시작했다.

“대충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하품을 늘어지게 했더니 잠이 좀 깨는 기분이 들었다. 한결이가 주머니에서 음료수를 한 병 꺼내더니 내게 건넸다.

“왜, 너무 시시해서?”

“응, 그렇기도 하고. 지금 이 수업 듣느라 특수 괴물 부대 일을 전혀 못 하고 있잖아.”

“그 일을 또 하려고?”

“뭐 물론 헌터 자격증이 나오면 굳이 안 그래도 되긴 하는데……. 도움이 되잖아?”

“도움? 이때까지 그쪽 일들 때문에 위험한 일만 있었어.”

“……음, 그건 그렇지만 말이야.”

한결이 반응을 보니, 역시 특수 괴물 부대 일을 다시 돕는 건 어려울 것 같다. 하긴 그런 사고가 있었으니. 대위도 이해해 주겠지. 이해해 주려나?

얼마나 걸었을까.

이미 포털이 눈에 보이기 전부터 피부를 울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곧 나온다.

고오오오.

생각하기가 무섭게 거대한 포털이 모습을 드러냈다.

포털의 빛 앞에 선 4기 참가자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감격스러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굳은 결심을 하는 얼굴이었다.

“여기 있는 포털로 말하자면, 여러분이 처음 실습을 진행할 던전이고요. 앞으로 각성자 센터에서 관리하는 10개의 던전을 돌아가며 공략할 겁니다. 그게 다 전산 시스템에 기록될 거고요.”

“각성자 센터에서 관리하는 던전이라고요?”

10팀의 부팀장인 강민혁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모든 던전이 괴물 특수부대의 관리를 받지만, 모든 검증이 끝난 안전하고 낮은 등급의 10개 던전은 우리 각성자 센터 소관이 되었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프로 헌터들이 들어오기에는 너무 시시한 던전입니다. 오로지 현장 실습용으로 쓰이니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들어갈 일이 없을 겁니다.”

더 길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윤지한은 그러니 한 번에 제대로 해내라는 듯 결의가 단단한 표정으로 씩 웃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포털을 지키고 서 있는 사람들이나 대기소의 인원들이 모두 각성자 센터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이런 하급 던전은 너무 오래간만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이 포털 안에는 오른쪽 던전과 왼쪽 던전이 나눠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9팀과 10팀이 각각 한쪽씩. 공략하고 나오면 되겠죠? 절반만 공략하는 거니까, 어렵지도 않아요. 알겠죠? 오늘은 첫 시간이니까, 만약 도중에 힘에 부친다. 그러면 그냥 포기하고 나와도 됩니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드디어 여러분들의 팀워크를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까,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협력하면서 실습해 봅시다! 이제 헌터 자격증이 나와서 앞으로 활동하게 되면 거의 다 이런 것들만 하니까. 제일 중요한 수업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저도 함께 들어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내 쪽을 바라보았다.

첫 실기 수업 때 실수한 뒤로 이렇게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수업을 잘 이끌어 나갔기 때문에 이젠 좀 그만 의식했으면 싶은데, 아무래도 수료까지 저럴 모양인가 보다.

나는 윤지한의 시선을 피하며 눈앞의 크랙을 보았다.

‘다른 포털들보다 입구 면적이 좀 큰데.’

그래 봤자 완전한 초급 각성자들이 실습하기 위해 지정된 크랙이니까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미 수많은 각성자가 헌터 시험을 보았던 장소다. 세컨드 임팩트 이후 1기와 3기까지도 이 크랙을 거쳐 갔을 테고. 변수가 생기기는 어렵겠지.

솔직히 말해서 그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헌터 자격증 과정은 어렵지 않았으니까. 그저 수업에 참여만 하면 따라갈 수 있는 정도랄까.

이번 던전 실습도 그럴 것이다.

“참 나, 던전 저게 뭐라고.”

“야, 넌 가상 전투 실습 때 성적 장난 아녔잖아. 오늘 완전 네가 캐리하는 거 아니냐?”

“당연하지. 내 덕에 버스 타는 줄 알아라.”

“이여얼~!”

염태규 무리는 이미 흥분 상태인 것 같았다. 녀석들은 지난 2주 내내 가상 전투 수업이 지겹다며 계속 칭얼거렸었다.

그런데 드디어 던전에서 실제 몬스터를 마주하는 것이니까.

처음 녀석들을 만났을 땐 그 기세를 봐서 몬스터와 전투 경험이 있는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녀석들 전 기수에서 얼마나 빨리 사고를 쳤던 건지.

“자 자, 정비하고요! 그럼 어느 팀부터 들어갈지 정해 볼까요?”

“아 당연히 저희죠!”

염태규가 외치자 염색모 무리가 소리를 질러 댔다.

‘오, 태규~ 역시 실전에 강하다 이건가?’

이때까지 실전을 대비한 훈련에서 염태규는 두각을 드러냈다.

무리 중에서도 가장 전투 센스가 좋았고, 스킬 역시 강했다.

아직 레벨이 낮아 자랑거리인 염화맹편이나 낙화권을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가상 전투 시합장을 태워 먹을 뻔했다.

회귀 전에도 놈의 실력만큼은 인정했으니까. 어린 시절의 염태규는 훌륭한 헌터가 될 자질이 충분했다.

‘성격만 좀 죽이면 좋을 텐데.’

그 순간 염태규와 눈이 마주쳤으나 날 보자마자 인상을 확 찌푸리기에 머쓱해지고 말았다. 역시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 친분(이라고 하기는 어폐가 있으나)이 있던 사람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이상한 기분이다.

“우리가 먼저……. 떨린다…….”

“어떡해!”

나머지 10팀 인원들은 움찔거리며 놀라긴 했으나, 다들 크게 반대하지는 않는 기색이었다.

모두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게다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슬쩍 한결이를 보는 와중에 강민혁이 다가왔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뭘요. 형님도 강하시잖아요.”

“에이, 내가 무슨.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지만 하준 씨랑 한결 씨 덕분에 우리 10팀이 정말 배운 것도 많고 항상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에에~~이, 신세는요! 민혁 형님께서 부팀장 맡으셔서 힘든 일은 다 도맡아 하고 계시는데요.”

내 말에 강민혁이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2주간 팀 내에서 별 분란이 없었던 것은 팀장과 부팀장 덕분이기도 했다.

팀장인 인화 선배가 나서서 진도를 따라오지 못하거나 의기소침해진 팀원을 챙기고 격려했다. 모임을 주도해 서로 빨리 친해지도록 하기도 했고.

덕분에 초반 제일 살벌한 분위기이던 10팀이 가장 사이좋은 팀이 되었다.

물론 염씨 형제들의 무리는 겉돌긴 했지만, 이 역시 강민혁이 보조해 최대한 참여시켰고.

“전 한 게 없습니다. 인화 팀장님이 워낙에 통솔력이 좋으셔서.”

그의 눈이 팀원들에게 던전 입장 전 마지막 체크를 하는 인화 선배에게 닿는다.

……어째 좀 눈빛이 딥한 것 같은데? 형님, 그러지 마요. 이미 저 집 애들이 유치원 다닙니다.

“앗, 어쨌거나 오늘 던전 공략도 많이 도와주십시오. 하기야 하준 씨는 워낙에 센스가 좋고, 한결 씨는 강하니까 걱정이 안 되긴 합니다만. 하하하. 그럼 저도 팀원들이 제대로 잘 챙겨서 들어가는지 확인해 볼게요. 흠흠.”

내 눈빛을 읽은 건지 강민혁은 목을 가다듬으며 자리를 떠났다.

“자아! 그럼 10팀~! 들어갑시다!”

윤지한의 외침과 함께 10팀이 움직였다.

“너무 나서면 안 돼. 우리한테는 너무 쉬운 난이도니까. 다른 팀원들이 각자 자신들 스킬을 사용해 볼 수 있도록 해야 해.”

“알고 있어.”

“낙오되지 않는지 잘 보고.”

한결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순서로 포털을 지나갔다.

츠츠츳.

포털의 기운이 몸을 감싸고 뒤바뀐 시야는 정글이었다.

“우, 엄청 찜통이네.”

조금 전까지는 쌀쌀한 봄 날씨였는데 순식간에 찌는 듯한 더위 속에 내던져진 것이다.

“자, 다들 겉옷은 벗되 팔과 다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 주세요!”

인화 선배의 말에 팀원들이 짐을 정리했다.

“오, 좋아요. 좋아. 좋은 선택이네요. 안내는 제가 따로 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다들 팀원들과 협력해서 보스 룸까지 전진해 보도록 하죠.”

윤지한이 인화 선배에게 웃어 보였다. 인화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20명의 팀원 중 진보라에게 시선을 보냈다.

“보라 씨, 길 안내 마법 부탁해요.”

진보라는 등급은 D로 나처럼 높지 않았지만, 마법 계열 각성자였다. 게다가 특이하게도 정말 옛날 고전 판타지에서 나오는 마법사들처럼 다양한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빛을 불러오거나 파이어볼을 만들거나 하는 것처럼.

“매직 컴퍼스.”

그녀가 외치자 주변으로 바람이 부는 듯하면서 빛 무리가 일렁였다.

“어디를 찾으면 될까요?”

“포털을 기준으로 왼쪽, 가장 큰 마력이 느껴지는 곳을 찾아보죠.”

“네.”

몬스터들은 그 어떤 종류라도 소량의 마나를 가지고 있었다. 마치 각성자들이 아무리 낮은 등급이라도 그러한 것처럼.

그러니 추적 마법을 사용할 때 마력을 쫓는 게 일반적인 방법.

특히나 이곳처럼 정확하게 길이 난 곳이 없는 지형의 던전 안에서라면 추적 마법 계열의 스킬이 있는 각성자와 동행하는 것이 편했다.

마나를 감지할 줄 모른다면 이 넓은 정글 숲을 맨땅에 헤딩하듯 뒤져야 할 테니까.

‘결이랑 같이 갔었던 그 사막 지형도 마찬가지였지. 물론 그때는 내가 골백번도 더 갔었던 곳이라 길을 익히고 있었지만. 도깨비불 녀석도 도움이 됐고. 응? 생각해 보니 이번에도 그 녀석이 길을 알까?’

어차피 팀원이 20명이나 되고 난이도도 낮은 던전이라 굳이 도깨비불을 꺼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궁금한 건 못 참으니까. 슬쩍 도깨비불 녀석을 소환했다.

“무앙!!”

푸르륵 나타난 작은 불꽃이 찰싹 들러붙었다.

어차피 센터에 있을 때만 소환을 자제할 뿐 하루의 대부분을 소환해 두는 데도 뭐가 그리 반가운지.

“도깨비불. 이전처럼 길잡이 할 수 있냐?”

“무? 왕!”

도깨비불이 당연한 걸 묻냐는 것처럼 불꽃을 이글거렸다.

“호오, 상당한데? 그럼, 너무 나대진 말고 나한테 바짝 붙어서 설명만 해 봐.”

“뭉?”

작게 속삭이자 도깨비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빙글거렸지만, 내 말은 확실히 알아들은 것 같았다.

‘이 녀석이 제대로 길잡이를 할 수 있는지 이번 기회에 확인할 수 있겠군. ……설마 모든 던전의 길을 알고 있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겠지. 그건 너무 사기니까.’

혼자서 긴장하는 사이 윤지한 역시 인화 선배의 선택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지이잉, 진보라가 몇 마디 더 중얼거리자 빛 무리는 어느새 그녀의 손 위에서 형태를 갖추었다.

빛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마법 바늘이 빙글빙글 돌더니 한 방향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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