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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36화 (36/250)

제36화

제36편

‘염태규? 그 이름이 여기서 왜 나오냐?’

나는 얼빠진 채로 강사의 호명에 앞으로 나가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나나 한결이와 또래로 보이는, 아니 좀 더 앳되어 보이는 빨간 머리로 염색한 녀석은 내가 기억하는 염태규가 맞았다.

회귀 전, 마지막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 짰던 팀에 그가 있었다.

언제나 내게 꼬투리를 잡던 녀석. 내 속을 긁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던 녀석.

그놈이 지금 눈앞에 있다.

‘4기라고. 녀석도 생각보다 빠른 기수였잖아?’

녀석 옆을 보니 똑 닮은 녀석이 서 있었다. 아까 인화 선배와 부딪치고 시비를 건 그 녀석.

‘동생인가 보네. 어쩐지 아는 얼굴 닮았더라니. 성격도 똑같네. 동생 쪽이 더 나쁠지도.’

못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게다가 죽기 직전까지 함께 있었던 동료 아닌가.

‘마지막으로 한결이와 이야기할 때쯤엔 팀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 그럼 저 녀석도 그날 나처럼 죽은 걸 테지.’

회귀 전을 생각하면 늘 심장이 서늘해진다. 거기에는 항상 죽음이 있다.

지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말이다.

“한결 씨, 은하준 씨, 지승훈 씨까지가 10팀입니다. 자, 다들 이 번호판 앞에 팀별로 서 주시고요. 앞으로 실습 과정을 함께할 팀원들과 인사 좀 나누시고요.”

여기저기 다른 팀에서는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지만, 10팀은 어쩐지 분위기가 어색하다.

그도 그럴 게 이 양아치 녀석들이 잔뜩 눈을 부라리고 있다. 자기들끼리만 벌써 7명이니 분위기를 휘어잡기 딱 좋은 것이다.

염태규의 동생 녀석은 벌써 우리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얼씨구, 얼굴 뚫리겠다. 다른 건 몰라도 이후로 팀 활동이 순조롭지 않겠다는 건 아주 잘 알겠다.

“아, 다들 잘 부탁드립니다!”

누군가 적막을 깼다.

10팀 전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제 이름은 강민혁입니다.”

척 보기에도 덩치가 크고 체구가 단단해 보이는 남자였다. 연령대도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으로 보이고.

얼굴도 푸근하니 사람 좋은 인상이었다. 곰? 저런 얼굴을 곰상이라고 하던가?

“이렇게 수료 과정을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전 이주아예요.”

“안녕하세요! 저는…….”

강민혁을 시작으로 팀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지고 하나둘씩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팀원들을 대충 살펴보니 염태규 무리 일곱을 제외하고는 딱히 걱정되는 인물 없이 평이했다.

서로 소개하고 인사하는 분위기로 변하자 염태규 무리도 마지못해 하나씩 자기소개를 했고 다음으로 인화 선배와 한결이, 나까지 모두 인사를 마쳤다.

‘염진혁이라, 역시 동생이었구나. 그럼 염태규도 A등급, 동생도 A등급? 형제가 쌍으로 등급이 높네. 다른 녀석들은 어떨지 몰라도 일단 A급이 두 명이니까 방심하지는 말아야겠어.’

염태규는 성격이 모나긴 했어도 실력만은 인정할 만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꼴은 빨간 머리에 양아치라도 말이다.

늘 자신의 전투 센스는 타고난 거라며 자랑해 대던 말이 맞는다면 지금도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 자식, 사실 양아치라서 그렇게 잘 싸웠던 건가?’

어쨌든, 인화 선배가 자신을 소개하는 동안 염진혁이 염태규에게 뭐라 속닥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래. 회귀해서도 난 염태규한테 찍히는 운명이라 그거지?

“자, 이제 인사들은 다 나누셨죠? 첫 실습 시간입니다. 사실 당분간은 팀별로 활동할 일이 없어요. 이 시설 안에서는 여러분이 다 같이 스킬을 쓰기 힘들거든요?”

윤지한이 단상에서 훌쩍 내려와 중앙에 줄지어 서 있는 거대한 링 같은 구조물로 다가갔다.

모두 궁금한 얼굴로 윤지한과 구조물을 구경했다.

한결이 역시 저 거대한 기계가 무엇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살짝 목을 빼고 기계 위를 살펴보고 있었다.

여기 모인 사람 대부분이 저 거대한 기계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지. 물론 나는 이게 뭔지 안다.

이건 입체 가상 전투장이다.

쉽게 말하자면 4D 체험관이랄까. 각성자들이 몬스터와의 전투를 몸에 익히기 위해 증강 현실 시스템으로 훈련하는 곳.

“이게 지금 다섯 기체가 있으니까, 두 팀씩 나눠 사용하면 될 것 같고. 그러면 마흔 분씩 한 개를 쓰게 되겠죠? 원래는 그렇게 많은 인원이 같이 쓰지는 않는데, 이번이 좀 특이한 케이스잖아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합니다~!”

그는 링 옆 부분에 만들어진 조작판 앞으로 가서는 몇 가지 버튼을 눌렀다.

“나누어 쓰다 보면 정도 들고 그렇죠? 그러면 나중에 실기 시험 때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어쨌거나 뭐, 그런 거죠. 다 때와 상황에 적응해야 하니까. 그렇죠?”

우우웅.

전투장이 진동하더니, 네 개의 모서리에 있는 기둥들에서 레이저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곧 링 위에 고블린 셋이 나타났다.

“허어억!”

“어머! 세상에……!”

“이, 이럴 수가.”

사람들이 놀라 뒷걸음을 치거나 휘청거렸다. 아무리 각성한 지 2주가 넘었어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몬스터를 마주해 본 사람은 적을 테니까.

“아아,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홀로그램 같은 거니까요. 훈련을 위해 기구를 착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대미지를 받지 않아요. 이 몬스터들은 링 아래로 내려올 수도 없고. 한마디로 이건 진짜 몬스터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윤지한이 들어 보인 건 팔찌와 발찌였다. 그것을 차례로 착용하더니, 허리띠와 헬멧까지 썼다.

말이 헬멧이었지, 고글이 달린 머리띠 같은 형태였다.

“이걸 쓰면 이 링 위에서 몬스터와의 가상 대결이 가능하게 되는 거죠.”

그는 전투장 위로 훌쩍 올라갔다. 일반인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윤지한 역시 각성자였던 것.

“헐, 우리 강사님도 각성자셨네.”

“몰랐어. 너무 평범하게 생기셔서…….”

“저런 수다쟁이가…….”

“그게 무슨 상관이야.”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동안 윤지한은 링 위에서 자세를 잡다가 뭔가 놓친 걸 기억해 냈다는 듯 난간에 기대어 아래의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아, 지금 시범을 보여 드릴 건데요. 저 혼자서는 아니고, 이 위에서 한 번 바로 같이 해 볼 분을 뽑을게요.”

그의 말에 각성자들이 조금 긴장하는 게 보였다.

솔직히 이 자리에 모인 사람 중 스킬을 제대로 사용해 보고 전투를 직접 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와 한결이의 경우와는 완전히 달랐다.

옆에 있는 인화 선배만 해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누구를 뽑을 거냐면…… 아까 쪽지 시험에서 1등을 한 분이 있거든요~!”

윤지한은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톡톡 두드려 화면을 확인하더니 각성자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응?

그러니까, 설마 이렇게 뻔하게 흘러간다고?

“아! 저기 계시네요. 은하준 씨?”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이럴까 봐 일부러 문제를 틀렸는데…….’

아는 문제를 일부러 틀리기란 생각보다 어려웠다. 또 너무 틀리면 오히려 이목을 끌까 봐 적당히 평균치를 맞춰 흐릿한 인상을 남기려 했는데 그게 패인이었나 보다.

생각보다 문제를 너무 많이 맞힌 거다.

아무래도 4기 동료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예습에 소홀한 모양이었다.

“하준아. 괜찮겠어?”

“새삼스럽긴. 뭐, 여기서의 수업 정도야 너무 걱정하지 마.”

이미 던전 하나를 클리어하고 죽을 고비도 넘겨 봤는데 자격증 시험의 첫 실습 정도야 뭐가 위험하겠냐만, 한결이 얼굴에선 걱정이 뚝뚝 떨어졌다.

게다가 이건 진짜 몬스터도 아닌데 말이다.

앞으로 나서자 보조 강사가 내게 장비를 채워 주었다.

“너무 떨지 마시고요.”

“앗, 넵.”

한결이의 반응 때문인지 윤지한은 링 위로 올라오는 나에게 마치 어린애를 달래듯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공부를 많이 하고 왔나 봐요. 성적이 제일 높았어요. 대단해요. 1기부터 3기까지 쭉 해 보니까. 첫 수업 쪽지 시험엔 대부분 절반도 잘 못 맞히더라고요. 하준 씨는 준비를 많이 했네~ 4기의 모범생!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별로 어렵지 않을 거예요. 난도도 낮춰 놨고, 그러니까 떨지 말고요.”

모두의 이목이 쏠린 게 부담스러울 뿐인데, 그래서 굳어진 표정을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얼른 해치우고 내려가야지. ……음?’

마주 보고 있던 윤지한의 뒤에서 몽둥이가 날아오고 있었다.

휘이익!!

어느새 다가온 고블린이 나와 대화하느라 한창 바쁜 윤지한의 뒤통수에 몽둥이를 휘두른 것이다.

“엇차!”

나는 본능적으로 윤지한을 끌어당겨 공격을 피해 냈고, 고블린의 몽둥이는 그대로 링 바닥에 꽂혔다.

퍼억! 쿵!

고블린은 무게중심을 잃고 링에 쳐진 줄에 몸을 부딪쳤다.

“어, 어라?”

내동댕이쳐진 윤지한이 놀란 얼굴로 나와 고블린을 번갈아 보았다. 그가 떨어트린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더니 얼굴이 새빨개졌다.

“어, 어어…… 서, 설정을……. 이게 왜 재설정이 안 되지?”

네, 알겠습니다. 설정이 잘못됐겠죠.

원래는 첫 수업답게 움직임만 익힐 수 있도록 0단계로 조정해 둬야 맞는 거겠지. 지금은 실수로 뭔가 단계가 잘못됐고.

링 위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아래에서도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과격한 거 아냐?”

“맙소사, 내가 저걸 한다고?”

“너무 무서워!”

“다치겠어!”

다들 생각보다 과격한 고블린의 움직임에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진짜 고블린은 이것보다 훨씬 사납고 강하니까, 어차피 적응해야 한다.

이 정도에 겁을 먹고 움직이지 못할 사람이라면 애초에 헌터 자격증을 수료할 인재가 되지 못하는 거고.

“크에에엑!!”

첫 번째 공격이 실패한 뒤, 대기하고 있던 고블린 두 마리가 공격 자세를 잡고는 곧장 돌진해 왔다.

슬쩍 보니, 당황한 얼굴의 강사가 태블릿을 거의 때리다시피 하고 있다. 태블릿이 말을 듣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는 건 하필이면 지금 시스템 오류가 났다는 말.

‘멈추려면 이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나.’

첫날부터 굳이 스킬까지 쓸 생각은 없었는데, 강사님께서 많이 당황하신 걸 보니 안 되겠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억압의 손길.”

차르르륵!

링 바닥에서 반투명한 사슬이 솟구쳐 오른다. 그리고 단박에 고블린 셋의 몸을 속박한다.

이미 레벨이 꽤 올랐기 때문에 고블린 세 마리 정도 동시에 묶어 두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

“케에에엑!”

“키이익!”

“크르르르……!!”

사슬에 묶인 고블린들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다.

“오, 우와아!”

“빨라!”

“대단하다!”

링 아래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기어코 박수까지 쏟아졌다. 박수를 받을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닌데 이렇게 되다니. 좀 민망할 정도다.

윤지한 역시 태블릿을 겨드랑이에 끼우고는 손뼉을 쳤다.

“세상에.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 4기의 엘리트네요!”

“그…… 감사하지만, 기계 좀 꺼 주시겠어요?”

“앗, 아아. 아아아! 알겠습니다.”

다행히 훈련장 1개만이 시스템 오류를 냈을 뿐 큰 문제는 없었다. 해서 그날은 4개의 링을 10개 팀이 함께 사용했고, 수리를 마친 후로는 원래의 계획대로 훈련에 돌입했다.

* * *

이후로 헌터 자격증 발급 과정은 순조롭기 그지없었다.

조금 지루할 정도로? 솔직히 나에게는 이미 아는 내용들이었으니까.

처음에 받았던 관심도 초반에만 반짝이었을 뿐,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야 그럴 게 우리 10팀에는 S급 각성자인 한결이가 있으니까.

다만 초기에 내가 쓸데없이 이목을 끌었던 게 묘하게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 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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