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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35화 (35/250)
  • 제35화

    제35편

    ‘마음에 안 들기는 무슨!’

    한마디 쏘아 주고 싶었지만, 정말 더 늦으면 입실 시간을 놓칠 것 같아서 단념하고는 인화 선배 뒤를 따라갔다.

    헌터 자격증 과정은 이미 며칠 전 신청을 완료해 둔 상태였고 온라인으로 간단한 예비 교육까지 끝낸 상태였다.

    오늘은 정말로 헌터다운 실습이 시작되는 첫날.

    각성자 관리부 1층에 들어서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간이 데스크가 마련되어 있었고 인화 선배는 이미 필요한 서류를 받아 기다리는 참이었다.

    신분증을 꺼내자 데스크 직원이 컴퓨터에 이것저것 기입하곤 프린트물을 한 뭉치 건넸다.

    “네, 한결 님. 은하준 님. 이건 간단한 쪽지 시험 같은 거고요. 강사님 입장하시기 전까지 작성해서 제출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거.”

    데스크 직원은 마지막으로 작은 카드를 꺼내 데스크 위에 올려놓았다. 각성자 등록증과 비슷하게 얼굴이 박혀 있었다.

    “헌터 자격증 과정을 밟으시는 동안, 출석 체크는 이 카드로 하시면 됩니다. 고유번호가 있고요. 별관 입구에서 체크할 수 있어요. 별관은 이쪽으로 곧장 나가시면 있고, 102호로 들어가 주세요.”

    한결이와 나는 그가 건네는 서류와 카드를 받고 인화 선배와 함께 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마주한 별관은 내 기억과 같은 듯 조금 달랐다.

    예전에는 이곳이 아주아주 큰 건물처럼 느껴졌었다. 모든 게 위험할 것 같아서 기가 팍 죽었었더랬지.

    ‘지금 와서 보니까 그냥 체육관처럼 보이네.’

    꽤 큰 건물이었지만, 그때만큼의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별관으로 들어서니 곧장 102호가 보였다.

    “우와. 사람이 엄청 많네.”

    인화 선배는 102호의 문을 열자마자 작게 탄성을 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꽤 커다란 강의실 같은 공간에 사람들이 빼곡했다.

    “앞자리만 비어 있네요.”

    나는 피식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뒷자리는 남는 자리가 전혀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차 있고 앞으로 갈수록 듬성듬성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이미 모인 사람만 해도 어림잡아 200명은 되는 듯 보였다.

    “우리가 벌써 4차 수강생이래요. 그리고 우리 뒤로도 계속 등록이 이어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아까 프런트의 그 직원이 그러더라고요.”

    맨 앞줄이지만, 정면에서 살짝 비낀 좌석에 앉으며 인화 선배가 속삭였다.

    ‘4기라, 세컨드 오픈이 일어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으니까 엄청나게 빠른 속도긴 하네.’

    아마 각성자들의 문의가 계속됐을 거다. 인화 선배 역시 A등급이나 되는 높은 등급으로 각성했지만, 크게 활약하지 못한 것처럼 혼자서는 힘을 제대로 다루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이런 교육과정이 꼭 필요하니까 말이다.

    어쨌든 혼란한 시기에 헌터 자격증 발급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니 무척 다행이다.

    회귀 전으로 치면 나는 아직도 그저 방 안에 처박혀 있을 때인데……. 그렇게 생각하니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많은 각성자가 다시 보였다.

    “서로 커닝하기 없기예요.”

    인화 선배의 장난스러운 웃음 다음으로 우리는 쪽지 시험지를 채우는 데 집중했다.

    쪽지 시험이라고는 해도 아주 기초적인 내용뿐이었다.

    각성자들의 상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 답을 채워 나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적당히 틀려 주는 미덕이 있어야지.

    혹시라도 눈에 띄는 건 질색이다.

    “아이고 4기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앞문이 열리면서 한 남성이 들어왔다.

    평범한 오피스 룩의 남자는 단숨에 중앙 강단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여러분들의 헌터 자격증 과정을 지도할 윤지한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각성자 및 헌터가 알아야 할 기본적인 규칙, 상식, 규범과 실무적인 기술까지 모두 배우게 될 겁니다.”

    강사는 뒤쪽까지 잘 보이도록 손을 흔들어 가며 헌터 자격증을 수료하기까지 어떤 과정들이 진행될지 설명했다.

    “그래서 오늘은 기본 상식과 지금까지 발견된 몬스터들에 관해 미리 익혀 두는 수업을 할 예정입니다. 다들 준비되셨죠?”

    그 후로 곧장 세 시간 동안의 이론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의 내용은 던전과 포털, 각성자의 능력에 관한 것, 몬스터들의 이름과 특성, 습성 등 국가에서 알아낸 것들이었다.

    ‘흠, 아직 이 정도인가?’

    강사가 나눠 준 프린트물을 뒤적거리는데 한숨이 나올 뻔한 걸 겨우 참았다.

    강의 준비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이 시기에는 몬스터에 관해 알아낸 것이 이 정도밖에 없는 것인지 몰라도 프린트물의 내용이 굉장히 간략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후자일 가능성이 더 컸다.

    ‘하긴 10년은 더 전이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자료가 다 너무 엉성해. 잘못된 정보도 있군. 몇 년 후에 정정될 테지만…….’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아는 사실들은 다 털어놓을 수도 없지 않은가. 때문에, 하품을 참아 가며 시간을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1시간 점심시간 후 실습장에서 다시 모여 봅시다. 맛있는 식사 하세요.”

    강사가 쾌활하게 떠나자 강의실은 금방 시끌시끌해졌다.

    개중에는 수업이 지루하다는 투덜거림도 있었다.

    “아오, 진짜 이게 뭐냐! 헌터 등록증 준다고 그래서 왔더니…….”

    “솔직히 이런 이론이 무슨 소용이 있어? 그냥 빨리 몬스터 죽이는 방법이나 알려 주면 될걸.”

    “사실 방법도 우리끼리 금방 알아냈잖아요. 이제 명중률도 높은데.”

    “이런 수업을 몇 주나 들어야 한다고?”

    “에이 씨, 헌터 등록증 없으면 던전에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되냐?”

    염색 머리가 알록달록한 그룹이 특히나 언성을 높이며 불만을 표현했다.

    말투도 거칠어서 그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달아났다.

    “좀 소란스러운 애들이네.”

    인화 선배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 * *

    “센터 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니 좋네요.”

    “그러게요. 맛도 좋고요.”

    “…….”

    맛이 좋다는 내 말에 한결이가 흘긋 노려본다.

    은근히 애들 입맛인 한결이 기준에서는 너무 건강하고 조금 심심한 맛이기는 했다.

    솔직히 난 뭐든 안 가리고 먹어서 상관없지만, 한결이는 강제로 균형 맞춘 식단을 먹게 된 거다.

    “맨날 사 먹기만 했었는데, 잘됐어요.”

    라면이나 삼각김밥에서 업그레이드된 덕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달이 된다니 역시 우리 민족은…….

    “어머, 그러면 안 되죠. 남자 둘이 산다고 해도 식사에 신경 써야 해요. 우리 집 반찬 좀 가져다줘야겠네.”

    “정말요? 그러면 저희야 고맙죠.”

    “마침 내일쯤 갈비찜을 하려고 했거든요. 두 사람 몫까지 해서 좀 줘야겠네.”

    갈비찜!

    한결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잘됐다.

    “와! 감사합니다!”

    “…….”

    내가 선배를 향해 꾸벅하자, 한결이도 슬쩍 고개를 까딱거렸다.

    “내가 맛있게 해 줄게요. 아직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까 우리 저쪽 마당에…….”

    퍽!

    식당에서 빠져나와 코너를 도는 순간, 인화 선배의 몸이 확 밀려났다.

    재빠르게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엉덩방아를 찧을 정도로 거세게 말이다.

    “괜찮으세요?”

    “앗, 으응…….”

    ‘선배가 A급인데 아무리 레벨이 낮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밀린다고? A급 각성자가?’

    나는 선배를 일으키며 고개를 들어 부딪친 사람의 얼굴을 봤다.

    음? 어디서 본 적이 있나? 싶지만, 눈썹이 없는 사람을 안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아이씨, 뭐야!”

    고개를 들어 보니 아까 그 요란한 염색을 한 무리였다.

    “앞을 제대로 보고 다니는 거야?”

    “아줌마 미쳤어요?”

    반응이 공격적이다. 아니 그런데 인화 선배는 20대 중후반에 엄청나게 동안인데 이 새끼들이, 아줌마?

    “미안해요.”

    인화 선배가 비틀거리며 곧장 사과했는데도 6명쯤 되는 무리는 더욱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

    “엥? 뭐라는 거야. 잘 안 들려요.”

    “잘못했으면 사과는 확실하게 해야지.”

    “진짜 재수 없네.”

    기가 막힌 선배와 나는 잠시 황당해하고 있다가 선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학생들.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이건 좀 정도가 너무하지 않아요?”

    “뭐? 너무? 학생들~?”

    “야 내가 잘못 들은 거냐?”

    “와~ 눈깔 보소. 이러다가 사람 하나 죽이겠다?”

    이런 양아치 놈들이 있나.

    그래 봤자 각성자답게 기세 싸움도 하지 못하는 애송이들 주제에!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한결이를 슬쩍 바라봤다.

    결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양아치 놈들을 보고만 있었다.

    ‘야……! 좀……!!’

    팔뚝으로 결이를 치려는 순간.

    삐이익!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저 먼 곳에서 덩치가 있는 남자가 달려오고 있었다.

    “싸움은 안 됩니다! 수업 등록증 주시죠. 일단 오늘은 첫날이니 봐 드리겠습니다만, 각성자 간 다툼이나 폭력 상황 발생 시 경고 1회입니다. 경고 3회는 퇴출입니다.”

    눈썹이 말끔한 양아치들에 비해 진한 눈썹을 가진 남자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쳇.”

    “저쪽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요~!”

    “에이씨.”

    양아치 놈들은 남자의 눈치를 살짝 보다가 황급하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생각보다 시시한 퇴장인데…….

    “정말로 퇴출당하기도 하나요?”

    내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많은 분이 퇴출당합니다. 다른 기수에 재신청을 할 수 있지만, 3회 이상 퇴출당한 각성자는 영구적으로 지원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저 무리 애들, 지금 벌써 두 번째거든요.”

    “두 번째라고요?”

    “네, 저번 기수에서 문제를 일으켜서 다시 지원한 녀석들입니다. 사람 하나를 거의……. 어휴. 못된 놈들이에요. 하지만 법이 그러니까요.”

    영구 제명.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는 각성자로서 활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하기야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각성자들을 제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능력을 가진 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난투극이 일어난다면 어떤 사태로 번질지 예상할 수 없다.

    흔하진 않겠지만 여기에는 한결이 같은 S급도 있지 않나.

    제정신이 박힌 놈이라면 헌터 자격증을 포기하지 않을 테지만, 웬 또라이 같은 놈이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남자는 진지한 얼굴로 몇 가지 조언을 덧붙이더니 처음에 나타난 방향으로 사라졌다.

    “여하튼, 그래서 저 양아치 놈들이 좀 고분고분했던 거구나.”

    “그렇다는 건, 지금 이곳에 저 녀석들 말고도 이미 재신청 각성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네.”

    “조심해야겠어요. 혹시라도 싸움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말이에요.”

    한결이와 인화 선배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내게 꽂혔다.

    * * *

    “설마 여기서 목숨까지 위협받을 일이 생기겠냐고요.”

    나는 어쩐지 모르게 한결이와 인화 선배의 호위를 받는 모양새로 실습수업을 듣는 장소까지 움직이게 됐다. 두 사람은 이제 스쳐 지나가는 모두를 꼼꼼하게 관찰했다.

    “그게 아니라, 하준 씨는 퇴원한 지도 얼마 안 됐으니까. 조심하는 거죠.”

    “그래. 미친놈들은 어디에나 있다고. 아까 그 녀석들처럼.”

    “하긴 정말 어이가 없었다니까요? 갑자기 시비를 걸다니. 게다가 부딪친 것만으로도 힘이 어찌나 세던지. 정말 놀랐어요. 경계해야겠어요. 놈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좀 친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면서도 하필이면 이런 상황 때문이라니 기가 찼다.

    “아, 도착했네요.”

    인화 선배가 앞을, 결이 녀석이 뒤를 한 번 체크하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끄으응…….’

    파란색 철문으로 된 입구를 지나자 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바닥은 매끈하고 약간은 폭신한 하얀 재질로 깔려 있고 중앙에는 커다란 링 같은 것이 연이어 놓여 있었다. 레슬링이나 복싱 경기에 사용될 것 같은 링 경기장 말이다.

    조금 독특한 실내 체육장 같달까.

    “자 4기 여러분 모두 모여 주세요!”

    윤지한 강사가 각성자들을 불러 모으고는 출석을 확인했다. 입구에서 카드 체크를 한 사람은 자동으로 카운트되는 형식이었다.

    “자, 그럼 먼저 실습을 진행할 팀을 만들 겁니다. 임의로 20명씩 한 팀이 되고, 이 팀은 어지간한 일 없으면 수료까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이후에 현장 실습을 진행하는 던전도 함께 클리어해야 하니까 사이좋게 지내세요!”

    그는 해맑게 설명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불길함이 스멀거리며 몸을 조이는 것 같았다.

    ‘항상 이럴 땐…… 참 재수 없게도 마주치게 되더란 말이야…….’

    글쎄, 내 인생에서 팀원 운이 좋았던가 하면, 딱히 손에 꼽기 어려웠다.

    그나마 인화 선배와 함께였던 때가 제일 좋았지만.

    “1팀부터 호명하겠습니다. 김민수 씨! 차영준 씨!”

    차례로 팀이 만들어지는 동안, 나나 한결이나 인화 선배의 이름은 한참 불리지 않았다.

    9번째 팀이 호명될 때까지도. 그리고 내가 확인하기로 아직 그 양아치 무리의 이름도 불리지 않았다.

    “자, 이제 이쪽으로 10번 팀 모이겠습니다. 강민혁 씨, 주서솔 씨, 진보라 씨…….”

    아니나 다를까. 한참 이름이 불린 뒤 양아치 녀석들이 순서대로 움직인다.

    전부 같이 움직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센터에 도착한 순서대로 그냥 팀을 만들었나 보다. 그렇다면 10팀이 마지막 팀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저 양아치 녀석들과 한 팀…….

    어째 불길한 생각은 비껴 가지도 않는지 모르겠다.

    “염태규 씨, 서인화 씨…….”

    응?

    누구라고? 염태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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