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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34화 (34/250)
  • 제34화

    제34편

    “오호…… 그래? 욕심이 좀 있는 타입? 좋네. 그런데 헌터 자격증이 왜 없어? 빨리 따.”

    어쩐지 방금 대화로 류환희에게 점수를 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표정이 확연히 풀어졌다.

    이런 면에서 둘이 남매인 게 티가 나는군. 누구한테든 금방 마음을 열어 버리고 친근하게 구는 건 집안 내력인 것 같다.

    “세컨드 오픈 때문에 헌터 자격증 교육이 중단됐잖아.”

    “응? 아, 그런가?”

    류환희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내 코앞에 쓱 들이댔다.

    “어제부터 다시 시작했다는데?”

    휴대폰 액정에 비치는 기사 내용은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였다. 헌터 자격증 과정이 다시 시작되었으니 새로 각성한 각성자들의 많은 참여를 바라고 있었다.

    내 기억보다 훨씬 빨리 재개된 것 같은 느낌인데. 일주일이 날아가 버려서 그런가? 뭐, 나한테는 오히려 좋지만.

    “좋다. 그럼 얼른 헌터 자격증부터 따자. 그럼 내 밑에 넣어 줄게.”

    류환희가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밑으로 들어오라니.

    “당신이 속한 길드에?”

    “아니? 나 길드 소속 아닌데?”

    “엥? 그럼 무슨…….”

    “만들면 되지. 어차피 오빠도 나한테 협조하기로 했고, 그쪽 친구는 S급이라며. 딱 됐어. 안 그래도 전에 같이 다니던 녀석들이랑 싸워서 팀이 공중분해 됐거든.”

    음?

    이건 또 무슨 흐름이야? 아니 잠깐, 이렇게 되면 류환희가 그 길드장을 만날 일은 없어지는 거 아닌가? 어째 일이 좀 꼬인 것 같다.

    * * *

    폭풍같이 나타났던 류환희는 자신과 일하면 무엇이 좋은지, 어떤 혜택을 주겠다느니 하는 말을 한참 늘어놓다가 자정이 훌쩍 넘어서야 집을 나섰다.

    도로까지 바래다주려고 했지만, 이미 1층에서 그녀의 기사가 대기 중이었다.

    정장에 검은 선글라스. 밤에 선글라스를 쓰면 뭐가 보이긴 하나? 운전은? 싶었지만 뭐 어련히 알아서 하겠어.

    커다란 덩치의 경호원 겸 기사의 안내를 받으며 그녀는 쾌활하게 떠났다.

    다음에 보자는 인사를 빼놓지 않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정신없게 만드는 사람이다.

    첫인상에 비해 그다지 폭력적이진 않다는 점이 그나마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하지만 친해지면 류창희에게 하듯이 변할 수 있으니 거리를 좀 둬야겠다.

    떠들썩하던 집이 조용해지니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한결이 역시 그랬는지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었다.

    “그래서, 정말로 저 여자가 만든다는 길드에 가입할 거야?”

    “하아…… 글쎄. 잘 모르겠네.”

    “저 여자가 길드장 역할을 제대로 해낼 것 같아?”

    “끄응…….”

    따지고 보면 내 원래 목적은 류환희.

    그녀의 무기 개발과 길드의 떡상.

    거기다가 원래는 없었던 S급 힐러 류창희가 추가됐으니 오히려 좋다.

    하지만 한결이의 말이 맞다.

    류환희가 길드의 장이 되어서 단체를 제대로 이끌 자질이 있을까?

    하루 만에 보여 준 모습들은 그다지 듬직한 모습이 아니었다. 게다가 미성년자는 길드장이 될 수 없고.

    그렇다면 그의 오빠 류창희의 경우는 어떤가.

    ‘솔직히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 역시 리더의 자리에 있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역시…… 회귀 전에는 없었던 류창희라는 조력자가 류환희에게 생긴 거니까. 그 길드장과 길드를 만들 길은, 가능성이 희박해진 걸까?’

    “내 생각에 길드장은 네가 해야 해.”

    “뭐라고?”

    하마터면 머리를 벽에 찧을 뻔했다.

    길드장이라고? 내가? 한결아, 미쳤어?

    “그렇잖아. 넌 정말 침착하고 식견이 넓어. 그러면서도 뽐내지 않고. 친절하면서도 손해는 보지 않잖아. 충분히 다른 사람을 이끌 자질이 있어.”

    “아, 아니. 무슨 소리야. 일단 나는 랭크가 너무 낮기도 하고.”

    “길드장이 되는 데 랭크가 뭐가 중요해? 길드 등록법에 길드장이 S급이어야 한다는 규칙은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초기 길드장은 공격대를 이끌어야 하는데……. 이번에 경험했다시피 나는 물몸이라.”

    “내가 있잖아.”

    “응?”

    “다시는 네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게. 너한테 그 어떤 공격도 닿지 않게 할게. 내가 네 방패가 될게.”

    고맙기는 하지만, 한결이가 너무 진지해서 간지러운 기분이다. 뭔가 촉촉해진 결이의 새카만 눈을 보고 있자니 뭐라고 말도 못 하겠다.

    “네가 깨어나지 않는 동안 생각 많이 했어.”

    “어…… 뭐를?”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데?”

    “너한테서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거야. 옛날에 네가 그랬잖아. 가족이니까. 서로를 꼭 지켜 주자고. 내가, 다음에는 정말로 그런 일이 없게 할게. 네가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한결이는 내 팔뚝을 잡았다. 꼿꼿하던 시선이 천천히 떨궈진다.

    껍질이 하나도 없는 모습이다. 심장이 철렁한다.

    마치 그때처럼, 우리가 어리던 시절처럼.

    이런, 또 ‘그 모드’ 온인가.

    “사실 차라리 네가 각성자가 아니었다면 하고 바라기도 했어. 그러면 널 지키는 게 더 쉬웠을 텐데. 너는 강하고, 나는 약하니까. 내가 부족하니까.”

    이제 결이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 알게 됐어. 너한테는 내가 꼭 필요하단 걸. 내가 더 얼른 강해질게.”

    아이고, 이 착한 것.

    하여간에 결이는 너무 착해서 문제라니까.

    “네가 죽는 줄 알았어. 정말로……. 네가, 없으면. 난 정말 아무것도 안 남는데. 그러면…….”

    “그럴 일 없어, 한결아.”

    푹 숙였던 한결이의 얼굴이 슬쩍 올라온다.

    “네가 있는데 왜 죽어.”

    씩 웃어 보이긴 했지만, 회귀 전이 떠올라 조금 민망하다.

    그땐 결이를 두고 죽어 버렸지.

    그래도 한결이한테는 위로가 된 모양이다.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이걸 언제 다 키운담.

    까만 머리통을 토닥여 주고는 결심한다.

    ‘그 길드장’을 찾아야겠다고.

    * * *

    “안녀엉~!”

    근 3주 만에 다시 만난 인화 선배는 겨우 우리가 보일 만큼 먼 거리에서부터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가 만난 곳은 각성자 관리부.

    재개된 헌터 등록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서였다.

    헌터 등록증이 없으면 애초에 뭘 할 수가 없으니까. 없을 때 할 수 있는 건 이미 다 했거든.

    “둘 다 너무 오랜만이야~!”

    “네.”

    “잘 지내셨어요?”

    한 번 봤으니 괜찮으리라고 생각했건만, 선배 얼굴을 보자마자 코끝이 찡해진다.

    “나야 너무 잘 지냈죠! 한동안은 집에서만 지냈는데, 몸이 너무 근질거려서 말이에요. 우리 동네에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조금씩 도왔지만, 아직 능력을 사용하는 건 너무 힘들더라고요. 누가 좀 알려 주면 좋겠는데 정부 기관은 연락도 잘 안 되고.”

    인화 선배가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세컨드 오픈이 발생한 이후로 정부 기관에서는 사태 수습 외에는 신경을 전혀 쓸 수 없는 상황이었을 테니까.

    “지난주에 연락했을 땐 왜 안 받았어요? 밥 사기로 한 약속 지키려고 그랬는데. 바쁘게 지냈나? 조금 섭섭할 뻔했어요.”

    선배는 장난기 섞인 얼굴로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

    “하준이는 다쳤었어요.”

    내가 뭐라 설명하기도 전에 결이가 치고 나왔다.

    “다쳤다고요? 세상에. 어디를?”

    “전신 타박상이요. 병원에 입원했고 일주일 동안 의식을 잃었었어요.”

    “어머! 세상에!”

    인화 선배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지금은 괜찮은 거예요? 그럼 퇴원한 지도 얼마 안 됐을 텐데 조금 더 쉬다가 헌터 자격증 발급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과정 중에 실기도 있다고 하니까요.”

    “아, 괜찮아요. 지금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아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결이 녀석은 한발 물러나서 뚱한 얼굴로 우리 둘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참 나, 한결이 이 녀석. 좀 쿠션을 깔아서 이야기할 수도 있지 않나?

    “그 전에는 특수 괴물 부대 일을 도왔어요. 사실 그러다가 다치게 된 거죠.”

    “특수 괴물 부대?! 세상에. 이제 막 각성한 각성자들한테 무슨 일을 시켰길래……. 물론 두 사람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요.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된 거잖아요.”

    인화 선배의 목소리는 차갑고, 침착해졌다. 그리고 나왔다.

    선배의 호랑이 표정.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그 성정이 폭발할 때의 표정!

    “아, 아니에요. 사실 원래라면 아무 문제도 없었어야 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좀…… 이상한 사람들이랑 엮이는 바람에.”

    “아무 문제도 없었어야 하는 게 당연하죠. 어쨌든 간에 사고가 터질 위험성이 충분히 있었는데 두 분을 임무에 파견한 거잖아요. 그걸 예상 못 했다면, 그것도 특수부대의 잘못이고요. 심지어 여러분은 아직 헌터 자격증도 없는데요.”

    “그…….”

    큰일이다.

    이대로는 인화 선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털어놓아야 할 판이다.

    회귀 전에도 그랬다.

    인화 선배는 걸리는 게 있을 때 절대로 참지 않는 성격이었다. 특히 자기 팀원들이 엮인 일이라면.

    그런 모습을 다시 보니 뭔가 굉장히 그립고 좋은 기분이 들기는 하는데…….

    냉정해진 표정에 비해 눈동자는 마치 안에서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이글거렸다.

    ‘서늘한 불꽃’이라는 별명이 붙게끔 만든 인화 선배의 이 표정. 이건 선배가 무진장 화났다는 신호다.

    “일단 진정하세요. 그, 치료비랑 이런 것도 다 그쪽에서 댔고 덕분에 좋은 의사 선생님도 만났고요. 사실 저도 노리는 게 있어서 그쪽에 협조한 거고요.”

    “치료비를 그쪽에서 대는 건 당연한 일이고요.”

    야단났다.

    솔직히 선배 말이 다 맞아서 뭐라고 맞받아치기가 어렵다. 하지만 다 이유가 있었다고요! 좀 틀어지긴 했지만, 게다가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얻은 것들도 꽤 있고.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순 없겠지.

    “그러니까…….”

    나는 각성자 관리부 앞에서 30분이나 선배를 설득해야 했다. 내가 회귀자라거나 발견되지 않은 던전에서 몰래 레벨을 올렸다거나 인류 멸망 때문에 한시도 쉴 수 없으니 괴물 특수부대의 일을 자진해서 도왔다거나 하는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열띤 내 설명에도 선배의 화는 완전히 풀린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 됐든 선배가 특수 괴물 부대로 달려가 따지는 것만큼은 막았으니 됐다.

    “하하, 이제 슬슬 입실해야 할 것 같은데요. 시간이…… 간당간당해졌네요. 하하하.”

    선배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아주 부드러운, 그렇지만 힘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준 씨. 좀 더 자신을 소중히 여겨도 돼요. 이 세상에는 분명 좋은 점들도 많지만, 착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착취하려는 존재들이 많아요.”

    “네. 알겠어요.”

    “하준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니까 분명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믿음을 잃지 않되, 늘 자신이 더 가치 있다는 걸 명심해요.”

    진심 어린 걱정과 함께 선배는 먼저 각성자 관리부로 향했다.

    수습하느라 진을 빼긴 했지만, 선배의 그 걱정이 너무나 고마웠다. 지금은 아직 깊은 사이도 아닌 우릴 위해서 진심으로 화내 주다니.

    선배가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이번에는 언젠가 꼭 말하고 싶다.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후. 아이고야.”

    선배를 보며 뒷머리를 긁다 보니 상황을 이렇게 만든 한결이가 어쩐지 괘씸해져서 고개를 홱 돌려 노려보았지만, 결이의 시선은 여전히 선배의 등에 꽂혀 있었다.

    “정말 마음에 안 드네…….”

    지금 얘가 뭐라고 중얼거린 거지?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왜 인화 선배한테만 이렇게 뾰족하게 구는 거지?

    아 물론 성현준 대위한테도……. 안사홍에게도……. 또…….

    그냥 우리 결이가 성격이 나쁜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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