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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33화 (33/250)
  • 제33화

    제33편

    골이 아프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까.

    일단 류환희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는데 일이 복잡하게 흘러갔다.

    류창희가 던전에서 활동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니.

    S급 힐러 계열 각성자가 말이다.

    내 궁극적인 목표는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는 게 아니다.

    인류 멸망을 막아야 한다.

    전투에 나서지 않았던 S급 힐러가 마지막 퀘스트에 힘을 보탠다면 확실히 전세가 뒤바뀔지도 모른다.

    “환희는 제 선택에 불만이 많았어요. 함께 던전 안에 들어가서 각성자들과 함께 전투하고 던전의 비밀을 알아내길 바랐죠. 하지만 바깥에서도 제 능력이 필요한 환자들이 너무 많아요. 몬스터가 튀어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욱 많아졌죠.”

    류창희의 얼굴은 진지했다.

    “처음엔 정부의 지시에 따랐어요. 임무를 몇 번 뛰었죠. 아직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때라……. 여하튼 진료 시간 중에 갑자기 호출된 적이 있어요. 전 던전으로 들어갔고 제가 없는 사이 상태가 나빠진 제 환자는…….”

    그가 던전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단지 겁이 나서가 아니었다.

    “전 제 환자들이 소중해요. 알 수 없는 이상한 힘보다는 확실히 아는 힘으로 최선을 다해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제게는 진료에 스킬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큰 도전이에요. 게다가 전투라니. 그런 건…… 정말 엄두가 안 나고요.”

    그래. 각성자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이해할 수 있다. 의사로서 소명 의식도 이해할 수 있고.

    사람은 모두 똑같지 않으니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지향하는 것이 다르니까.

    하지만 미래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모든 걸 알고 있는데 류창희를 그냥 둘 순 없다.

    반드시 설득해야 한다.

    “선생님. 이건 그냥 제 생각이긴 한데요.”

    “네, 말해 보세요.”

    “만약 이번 세컨드 오픈의 징조를 누군가 알아차렸다면, 지금 같은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네? 그건…… 아무래도 그렇겠죠?”

    류창희가 어리둥절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죠. 다 던전에 관한 정보가 너무 없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던전을 조사하는 일은 꼭 필요해요.”

    “……환희도, 정부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죠. 저를 설득하려고요.”

    류창희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던전 조사가 불필요하다거나 던전에 들어가는 다른 각성자들을 깎아내린다거나 그런 게 아니에요. 저는 각성자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죠.”

    “만약 세컨드 오픈 이후에 있을 다른 변화가 인류 종말을 야기한다면 어떻겠어요?”

    “네?”

    반들거리는 안경알 너머로 류창희의 까만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 갑자기 그런 비약적인…….”

    “갑자기인가요? 과연? 그럼 오늘의 세컨드 오픈은 갑자기가 아니었나요?”

    “…….”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죠? 우리는 던전에 관해서 아는 게 거의 없는데. 저뿐만이 아니라 정부에서도 그렇겠죠. 물론 일반인들에게 숨기는 것도 있겠지만. 던전에 관해 알아낸 게 거의 없다는 건 전 세계 공통 사항일걸요.”

    류창희는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던 오른손을 꽉 쥐고 있었다.

    “애초에 퍼스트 오픈도 그렇죠. 기후 변화를 예측하는 것처럼. 누군가 그걸 예측할 수 있었다면. 오늘 하루는 바깥에 나가는 걸 삼가고 집 안에 있기를 경고했다면.”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이제 슬슬 덤덤해질 때도 됐는데 말이다.

    “그랬다면 제 부모님도 아직 살아 계셨을지 몰라요.”

    “……그런. 그런 일이 있었군요. 힘들었겠어요.”

    옆에 앉아 가만히 듣고 있던 한결이가 시선을 보내왔다.

    고개를 살짝 숙였던 나는 괜찮다고 결이의 허벅지를 살짝 토닥이다가 다시 류창희를 보았다.

    “못 하겠다는, 하고 싶지 않다는 선생님을 억지로 던전에 끌고 갈 순 없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누구도 쉽게 가질 수 없는 힘을 타고나셨죠. 그런 능력을 썩히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에요.”

    그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하지만 목숨을 잃으면, 치료할 시간도 없어진다는 걸.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걸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 이미 잘 아시겠지만. 선생님 능력은 아주 특별한 거니까요.”

    나는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 천천히 일어났다.

    여기서 더 있어 봐야 압박을 가할 뿐 아닌가.

    어차피 내가 했던 이야기들도 이미 류창희가 질리게 들은 소리일 거다.

    그 똑똑한 여동생과 무슨 일이 있어도 각성자를 활용해야 하는 정부의 말에도 꿈쩍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맹한 것 같으면서도 고집이 세단 말이지.’

    일단은 이 자리에서 물러나 계획을 좀 더 세워야겠다.

    류창희와 류환희를 내 편으로 만들 방법.

    2보 전진하기 위해 1보 후퇴하는 거다. ……갈 길이 구만 리처럼 보이는 건 아마 착각이 아니겠지.

    달칵.

    드디어 진료실에서 탈출했다.

    “괜찮아?”

    “응?”

    “부모님 이야기. 하지 않은 지 오래됐었잖아.”

    새카맣고 깊은 눈이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다.

    “괜찮지 않으면 뭐 어쩌겠냐. 어차피 일어난 일인데. 고아라고 징징거릴 나이는 지났다고.”

    “…….”

    “응? 왜?”

    눈동자에서 걱정은 걷히고 알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이 담겨 있었다.

    “뭔가 좀 변한 거 같아.”

    “어엉? 당연히 변했지. 난 이제 각성자라고.”

    “……그래서 그런가?”

    “게다가 내 친구가 S급인데 얼마나 든든하겠어.”

    한결이의 등을 퍽 소리 나게 쳤다.

    “으악!”

    아픈 건 분명 나뿐인데 그사이에 까먹고 말았다.

    * * *

    왜 이렇게 된 걸까.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고민을 좀 해 봤다.

    하지만 머릿속을 뒤져 봐도 소용없다.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으니까.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너희 괜찮은 녀석들이었구나.”

    눈앞에 있는 건 류환희다.

    흰색인데도 왠지 모르게 칙칙한 벽지를 배경으로 디자인이 형편없는 우리 집 식탁에 똑바로 앉아 있다. 그녀 앞에는 내가 준 포도 맛 탄산음료가 있지만, 류환희는 캔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금 시각은 밤 10시 45분.

    심지어 오늘은 내가 퇴원한 바로 그날이다.

    그러니까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인 거다.

    웃긴 농담 같은 이 상황을 떼어 놓고 보자면, 정말 인형같이 생겨서 너무 예쁘다. 아이돌 뭐 그런 걸 해도 되겠는데. 회귀 전에도 외모까지 뛰어난 류환희가 스타처럼 소비되기는 했어도 연예계 활동을 했던 기억은 없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 보고 있자니 진작에 연예인을 왜 안 했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잘 안 믿기…….

    “첫인상은 나빴지만, 나도 고마움을 표현 못 하는 망나니는 아니야.”

    “네…….”

    “너희들이 오빠를 설득해 주었으니까. 대체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너희에게 큰 빚을 졌어. 난 절대로 빚지고는 못 살거든.”

    커다랗고 반짝이는 눈이 굳은 의지를 내비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류환희가 이 한밤중에 어떻게 알아냈는지 우리 집까지 찾아와서 한다는 이야기가…… 류창희가 류환희의 던전 연구를 돕겠다고 말했다는 거다.

    “별다른…… 특이한 말은 안 했는데요.”

    “사실 나도 그게 의문이거든. 그 멍청한 오빠가 네게 들었다면서 하는 말은 이미 내가 천 번은 더 했었던 이야기야. 그걸 엄청나게 장황하게 말하는데……. 네가 그렇게 유식하게 말했을 것 같지도 않고.”

    음? 이거 내가 무식하다는 건가?

    왼쪽 눈썹이 쑥 올라간다.

    생각해 보니 류환희가 나보다 훨씬 어릴 것 같은데 왜 저쪽은 반말이고 내 쪽은 존대하고 있지?

    회귀했다는 점을 빼고서라도 류환희는 지금 미성년자 아닌가?

    그녀는 20대에 마도 병기를 개발한 엄청난 천재니까.

    아니, 미성년자가 지금 남자 둘이 사는 집에 있어도 되는 시간인가?

    머리가 엉망진창이 되면서, 휩쓸리고 있는 이 상황이 약간 억울하면서도 류창희가 설득되었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 류환희가 고맙다고 말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 아닌가.

    ‘왜 설득당한 거지? 솔직히 그렇게 대단한 말도 아니었는데.’

    그저 그 상황을 진정시키고 적당히 내 의견을 내비치면서 자리를 뜰 수 있을 정도의 말을 했을 뿐이다.

    류창희가 생각보다 이상한 사람……인 건 확실하다. 친분도 없는 내게 가족 걱정을 해 댔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라고 생각하자마자 번뜩하고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설마…… 업적 효과인가?’

    컨디션도 별로였고 각종 검사를 받느라 다시 확인해 보는 걸 깜빡했었다. 사실 이름도 희한해서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 들었는데.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순간에 뭔가 달라진 거라고는 이것밖에는 없다.

    [업적: 황천에서 되돌아온]

    찬란하게 빛나는 금색 글자.

    그래, 골드 등급이면 꽤 좋은 업적인데…….

    나는 업적 설명을 읽어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그래, 그래서 그렇게 된 거구먼?

    [사망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자가 죽음을 언급할 때, 이야기에 힘이 실린다. 대상은 당신의 말에 영혼이 흔들린다.]

    부모님 이야기를 할 때 이 업적 효과가 발동된 모양이다.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지만, 좋군.

    일주일 동안 의식이 없었던 게 만회되는 기분이다. 류창희를 설득하는 일이 이렇게 손쉽게 해결되다니.

    “그쪽이 얼마나 던전을 경험해 봤는지는 모르지만, 오빠처럼 급이 높은 힐러가 있다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거든. 이전에 오빠와 함께 던전을 누빌 때가 정말 그리웠어. 참 나, 던전에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해 놓고 성현준 그놈이 불러내면 꼬리 치는 개처럼 쫓아가고 말이야. 이봐, 듣고 있어?”

    “어, 어엉. 네. 듣고 있죠.”

    성현준 대위랑 나이 차가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 이름을 막 부른다. 그게 류환희가 싸가지 없는 녀석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막역한 사이라 그런 건지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전자가…….

    “성 대위님이 부르는 일은 던전에 들어가지 않고도 각성자와 관련된 일이었나 보죠?”

    “흥, 뭐. 오빠 말로는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오빠는 성현준이 하는 말이라면 고분고분하게 들으니까. 완전히 헌터로 전향하는 거 빼곤. 게다가 성현준이 하는 일이 매번 그렇잖아. 난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뒤가 구리다고 항상.”

    “에이, 뒤가 구리다뇨. 그래도 특수 괴물 부대에서 일하시는 분인데.”

    내가 사석에서 성현준 대위를 두둔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이러는 편이 그녀가 정보를 늘어놓을 것 같았다.

    “몰라? 걔 각성자들 협박해서 군에 입대시키는 거?”

    “어, 알아요. 사실 저도 당했어요.”

    “하, 그것 봐. 당신들 성현준 밑에서 일하면 안 된다니까. 알아보니까 당신 죽을 뻔해서 오빠 병원에 입원했다며? 성현준이 시킨 임무 하다가 그렇게 된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건 따지고 보면 성현준 때문이라기보다 운이 나빴던 거다. 하필이면 그런 사람들과 엮이는 바람에. 이런 일이 성현준의 계략이라거나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몇 시간 사이에 우리를 조사했다니, 류환희 역시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류환희의 눈에 빛이 돌았다.

    “그렇다니까? 그런데 왜 그 자식 밑에서 일하는 건데? 내가 듣기론 성현준이랑 엮이고 벌써 두 번째 사고 아냐? 왜, 뭔가 책잡힌 게 있어서 성현준 밑에서 못 나오는 거야?”

    맞는 말이지만, 지금 시국이 이런데 당연하지 싶다. 사건 사고가 안 터지는 게 이상하지.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아직 헌터 자격증이 없는데 레벨 업은 하고 싶어서.”

    나는 은근슬쩍 말을 놓으며 생수를 한 잔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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