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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32화 (32/250)
  • 제32화

    제32편

    여기서 류창희랑 인연이 생기다니.

    성현준 대위랑은 친분이 있는 것 같다. S급 힐러 류창희라니, 그를 만날 기회는 다시 없을 거다. 이참에 성현준 대위와의 관계를 이용해서 좀 더 친해지면 정말 좋을 텐데.

    하지만 이내 과연 그러는 게 좋을지 고민이 됐다.

    물론 류창희를 만난 덕분에 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으니 당연히 고맙고 기뻐해야겠지만, 앞으로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이 그와 관계가 좋지 않다고 알고 있으니까.

    악연……이라고 하기에는 좀 과한가?

    이게 또 이렇게 되네.

    “그런 일에 휘말리셨다니, 고생이 많으셨네요.”

    “아, 뭐…… 던전 일이 다 그런 것 아니겠어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음, 역시. 신기하네요.”

    “네?”

    “현준이가 그랬거든요. 하준 님은 좀 특이하다고.”

    “제, 제가요?”

    성현준 대위가 도대체 어떤 말을 했길래?

    그래도 류창희의 표정이 나쁘진 않다. 나쁜 말을 하진 않았겠지. 아니, 나에 대해 나쁘게 말할 건덕지나 있나?

    이렇게 협조적인데?

    “몹쓸 일을 당하셨는데도 이렇게나 침착한 경우는 보기 힘들거든요.”

    “아, 그런가요. 사실 호들갑 떨어도 바뀌는 건 없으니까요.”

    응, 사실 한 번 죽어 봐서요. 아무래도 처음 죽어 본 것보다는 침착할 수 있달까.

    “바로 이런 점이 참 신기하네요. 나이도 어리신데, 아, 아니. 나이로 유세를 부리려는 건 아닙니다만.”

    “하하하, 그런 말 많이 들어요.”

    그랬지. 그걸로 신태석한테도 온종일 시달렸었지. 일주일 전에 말이다.

    “참, 혹시 하준 님의 각성자 능력 중에 뭔가 특별한 게 더 있을까요?”

    “네?”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류창희는 S급 힐러고, 일주일간이나 내 몸을 진료했으니 뭔가 알아낸 것일까. 내가 회귀했다는 걸……. 소울 포인트로 스텟을 상승시켰단 걸.

    “한결 님과 룸메이트라고 들었어요. 우연히도 두 분 다 각성자시니까 서로 이야기 나눈 것이 많으리라 생각하는데요. 특별히 신경 쓰이는 점이나 서로 다른 점이 없나 싶어서요.”

    “왜, 왜요? 무슨 문제라도…….”

    “사실 이건 제 스킬로 느낀 거라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S급의 스킬인데 정확하지 않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잔뜩 긴장한 탓에 침이 꼴깍 넘어간다.

    류창희가 안경을 고쳐 쓰며 눈을 빛냈다.

    “각성 에너지 흐름이 일반적인 분들이랑 달라서요. 물론 제가 진료를 봤던 각성자에 한해서지만.”

    “글쎄요. 전 잘 모르겠어요. 세컨드 오픈 때 각성해서…… 사실 아는 게 많이 없어요.”

    그렇게 말하기에는 이때까지 아는 척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어리숙해 보여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준이겠지.

    시원찮은 대답에도 류창희는 표정을 굳히거나 눈치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시죠. 현준이한테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오히려 이쪽에서 가르쳐 드려야 하겠네요. 혹시 궁금하신 건 없나요?”

    “아…… 사실 뭘 궁금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하하. 그렇죠. 뭘 좀 알아야 궁금증이 생길 테니까요. 각성 자체로도 놀라셨을 텐데 현준이 일도 도와주시고, 그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신 겁니다.”

    류창희는 링거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뭔가 더 유의미한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각성자 에너지 흐름이 특이하다는 말이 심경을 복잡하게 했다.

    온갖 신규 각성자가 출현하는 마당이니 당장에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쿵쿵쿵.

    류창희가 병실을 나서려는데 요란하게 복도를 걷는 소리가 났다.

    무척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엄청난 덩치를 가진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찰나.

    드르륵! 쾅!!

    내 병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류창희!! 너!!”

    류창희가 바로 문 앞에 있었던 탓에 침입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카랑카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병실을 왱왱 울렸다.

    “정말 나랑 장난해?”

    퍼억!

    소리와 함께 류창희가 휘청 밀려났다.

    한결이는 어느새 침대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 완전한 경계 태세. 어느새 허리에 찬 검집에 손을 올려 두기까지 했다.

    ‘여, 여기서 검을 뽑으려고?’

    우당탕! 결국 류창희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제야 나는 무시무시한 침입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그녀는 생각보다 훨씬 조그마했다.

    160cm를 넘지 않을 것 같은 키에 칼 단발, 주먹만 한 얼굴에 눈 코 입은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연예인이라도 되는 것 같은 외모였다.

    “죽고 싶어?!”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커다란 눈이 이글거렸다. 정말 뱉은 말처럼 류창희를 죽여 버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저기요. 남의 병실에서 뭐 하는 겁니까.”

    드디어 한결이 나섰다.

    “아, 한결 님. 죄송해요.”

    하지만 사과를 하는 건 류창희였다.

    “선생님.”

    한결이 손을 내밀자 류창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면목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웃어 보였다.

    “이건 또 뭐야?”

    잔뜩 화가 난 여성은 류창희와 한결이를 번갈아 보더니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 이것들도 다 성현준 따까리들이지?”

    “환희야. 말 좀…….”

    여성을 달래려는 류창희의 말에 나는 눈이 번뜩 뜨였다.

    환희? 환희라고? 저 사람이 여기 왜?

    어느새 그녀는 나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거지? 걱정했던 대로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잖아.

    “그래, 그렇게 성현준한테 휘둘리면서 평생 살아. 오빠한테 다시 한번 실망했어. 이 겁쟁이.”

    그녀는 류창희에게 쏘아붙이고는 휙 돌아 병실을 나가 버렸다.

    폭풍이 휩쓸고 간 듯 병실에는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죄송해요. 제 동생이랑 제가…… 좀 트러블이 있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류창희는 겨우 정신을 추슬러 재빨리 사과하고 병실을 빠져나갔다.

    “저 여자 대체 뭐야? 괜찮아?”

    결이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살폈다.

    “나야 침대에서 꼼짝도 안 했으니까. 그나저나 큰일이네.”

    “뭐가?”

    류환희.

    이번 생에서 친해져야 할 각성자다.

    A급 마도술사. 바로 그녀가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마도 병기의 개발자다.

    오빠인 류창희와 사이가 안 좋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라 알고 있었지만, 성현준까지 껴 있다는 건 몰랐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게 생겼군.’

    몰래 류창희와 류환희, 둘 다와 친분을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당장 맞닥뜨리게 될 줄 몰랐다.

    ‘심지어 얼굴을 외우려는 것처럼 유심히 보던데 말이야.’

    분명 기억하겠지.

    그녀는 뛰어난 계산 능력과 기억력으로 마도 무기 및 각종 아이템 개발의 구원자였다.

    그렇게 특별한 두뇌를 가지고 있으니 사람 얼굴 외우는 것쯤이야 일도 아닐 터. 나한테는 정말 곤란한 일이었다.

    무슨 수를 쓰든 류환희와 좋은 관계를 맺고 그녀와 같은 길드에 가입해야 했다.

    ‘그 길드의 장이 류환희와 만나면서 길드를 설립하게 됐으니까. 류환희 쪽에 바싹 붙어 있는 편이 그나마 쉬운 루트였는데.’

    길드가 만들어지기 전엔 무엇을 했는지 정보가 전혀 없는 사람이 길드장이었기에 내가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내게는 류환희와 친해져야 할 이유가 절대적으로 있었던 건데.

    ‘단단히 꼬였네.’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한결을 바라보며 얕은 숨을 내쉬었다.

    * * *

    몇 가지 검사를 마친 뒤, 퇴원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사와 면담하기 위해 류창희의 진료실에 도착했다.

    “앞으로 작은 이상이라도 있으면 곧장 병원에 오시고요. 워낙에 오래 의식을 잃으셨으니까요.”

    뭔가 어색한 분위기에서 진료 면담은 끝이 났는데, 류창희는 누가 봐도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복잡한 표정이었다.

    “저번에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네? 아…… 괜찮아요. 조금 놀라긴 했지만, 직접적인 피해를 본 것도 아니고요. 그나저나 넘어지셨는데 괜찮으세요?”

    환자가 의사에게 몸 상태를 물어보는 희한한 상황이다.

    “아아, 네. 괜찮습니다. 그 정도는 뭐 익숙해서요.”

    익숙? 뭔가 묘하다. 하기야 류환희도 완전한 공격형 각성자는 아니고 힐러 계열이라도 류창희는 S급이니까 괜찮은 건 맞겠지만.

    “하아…….”

    류창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음…… 저, 선생님. 혹시 뭔가 고민이 있으신 건가요?”

    그런데 솔직히 이 정도면 찔러서 절 받기 아닌가?

    대놓고 물어봐 달라고 하는 수준인데. 하지만 또 내가 이야기 들어 주는 건 잘하니까. 필살 미소까지 곁들이면 류환희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지 않을까 싶다.

    “아, 아니에요. 가족 일인데요. 그걸 어떻게…….”

    하긴, 역시 그렇겠지.

    거의 모르는 사이고. 의사와 환자인데 갑자기 고민을 털어놓기는 그렇겠지.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일어서려고 했다.

    “그럼 저흰 이만…….”

    “……에휴.”

    음? 방금 그렇게 말해 놓고 그 깊은 한숨은 뭡니까? 도저히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잖아!

    나는 반쯤 일어난 한결이를 자리에 앉히고는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요. 서로 돕고 사는 세상 아니겠어요? 저희가 앞으로 뭐 얼마나 마주치겠어요? 원래 지나칠 사람들한테 털어놓기 편하다고 하잖아요.”

    “……역시, 그럴까요? 사실 하준 님이 오전 진료 마지막 환자시거든요. 오후에는 진료가 없고요.”

    이렇게 쉽게 미끼를 물다니. 대학 병원에서 일할 정도면서……. 공부만 한 샌님인가 싶기도 하다. 하긴 나이도 어린 것 같고.

    아니 그 전에 그냥 말하고 싶어서 자리를 다 깔아 놓은 것 같기도 한데.

    “여러분도 다 같은 각성자라 좀 더 편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날 소란을 벌인 건 제 여동생 환희예요. 사실 전 여동생이랑 요즘 사이가 안 좋아졌거든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가 봐도 안 좋은 사이 같다.

    “전…… 전 환희가 너무 걱정돼요.”

    “환희 씨가요?”

    “네. 그 애는…… 던전에 들어가거든요.”

    “음…… 각성자니까 아무래도…….”

    “전 던전에 들어갈 수 없어요.”

    “네?”

    “아니, 환희 말대로…… 안 간다는 게 맞을지도요.”

    류창희는 슬픈 눈으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당신은 대한민국 유일한 S급 힐러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솔직히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전 각성자의 힘을 되도록 쓰고 싶지 않거든요.”

    “네?”

    정말 의외의 말에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지금 이 사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게 무슨…….”

    “전 의사고 제가 있어야 할 곳은 병원이에요.”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류창희를 보았다.

    그래,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 아닌가.

    각성자가 되더라도 각성자로 살고 싶지 않다면, 누군가 그걸 막을 순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유일한, 그것도 S급인 힐러가 각성자이기를 거부하다니.

    ‘워, 원래 이랬었나? 아니…… 말이 안 되잖아? 물론 세컨드 오픈 이후로는 크랙 안쪽이 아니더라도 힐러가 할 일은 얼마든지 있지만…….’

    회귀 전에도 그가 바깥에서만 활동했던가?

    그럴 리가 없다. 그가 S급이라는 사실만으로 이목을 끌었다가 더는 각성자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할 리가 없다.

    분명 류환희의 오빠로…… 국내 유일의 S급 힐러로…….

    ……생각해 보니 정말 딱 그 정도의 정보만 기억이 났다.

    일반인도 다룰 수 있는 마도 병기를 개발해 몬스터와 인류의 전투에 크게 이바지한 그녀의 오빠. 그리고 그녀가 증오하던, 각성 이후로 만나지 않게 됐다던 오빠.

    ‘세상에, 이게 진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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