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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30화 (30/250)
  • 제30화

    제30편

    ‘아, X 됐네.’

    다가오는 신태석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바닥에 처박은 뺨과 무릎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걸 보면 감각은 남아 있다.

    스웜프 리치의 침이려나. 늪지대에 사는 팔뚝만 한 거머리 몬스터. C급에 D급인 신태석 무리의 수준을 생각하면 지금 그들이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은 그 정도겠지.

    ‘역시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을 빼돌리고 있었잖아.’

    콰악!

    머리가 죄다 뽑힐 것 같은 통증과 함께 눈앞에 신태석의 얼굴이 있었다. 머리채가 잡혀 일으켜진 거다.

    “이제 좋은 날 다 갔다. 안 그래? 이 애X끼야. 엉? 대답 안 해?!”

    억센 손이 머리를 뒤흔들지만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자식 바보 아냐? 네가 스웜프 리치의 침을 썼잖냐! 혀조차 움직이지 않는다고.

    대답 대신 내 입에서는 침이 죽 흘러내렸다.

    “으이씨. 지저분하구만. 아까 그 당당하고 똘똘하던 모습은 어디 갔나? 으응?”

    신태석이 즐거운 듯 낄낄거렸다.

    그래, 이놈은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그렇게 애를 먹었으니, 쉽게 끝낼 순 없다 이건가.

    “아이 씨, 원래는 한 방에 쓱싹하려고 그랬더니. 그래, 드디어 잡았는데. 너무 간단하게 죽이면 재미가 없겠지? 고생한 게 억울하잖아.”

    역시.

    “그나저나 덕분에 사고가 있었다는 말을 네 친구가 잘 믿겠어. 우리 모두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됐거든.”

    “형님,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는데 괜찮겠습니까?”

    멀찍이 떨어져 있던 똘마니들이 슬슬 다가왔다. 다행히 몸의 마비 정도로 스킬은 풀리지 않기 때문에 내 사슬에 묶여 있지 않은 세 놈뿐이다.

    “어. 이 정도면 충분하지. 두문이 자식이 평소에는 X신 같아도 이 미궁에서만큼은 머리가 잘 돌아간단 말이야. 그 S급 꼬맹이 녀석이랑 던전 안을 빙빙 돌고 있을 거다. 게다가 이 블록에 접근하려면 미리 소리가 나게 되어 있거든. 한두 번 와 보는 것도 아니고.”

    “오오, 역시 형님들이십니다.”

    신태석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낡은 헝겊을 꺼냈다. 아니, 손수건인가? 그걸 한 번 탁 털더니 턱에 흐르는 내 침을 닦으며 그대로 입 안으로 쑤셔 넣었다.

    “더러워지는 건 싫거든.”

    빠악!!

    신태석의 목소리와 함께 눈앞이 번쩍한다. 그가 있는 힘껏 얼굴을 내려쳤기 때문이다.

    더러운 헝겊 때문에 역겨웠던 마음은 순식간에 날아갔다. 헝겊이 없었다면 방금 주먹질로 이가 몇 개는 나갔을 거다.

    진심으로 개 아프다.

    마비는 되지만 감각은 여전한 스웜프 리치의 침이라니. 신태석은 정말이지 사악한 새끼다.

    “그래, 보자. 네 녀석 펫도 있었지?”

    신태석의 손이 쑤욱 하고 목덜미를 뒤진다.

    “무앙!!”

    도깨비불이 튀어나와 신태석의 얼굴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도깨비불은 퍽 하고 흩어질 뿐이었다.

    신태석 역시 도깨비불을 잡아 보려 하지만 불가능했다.

    ‘도깨비불은 나만 만질 수 있는 건가.’

    신태석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쳇, 이거 건드릴 수가 없는데. 주인이고 펫이고 귀찮게 하는 데는 재주가 있는 놈들이라니까. 야! 권효성!”

    그의 부름에 마법사가 더 가까이 붙었다.

    “마법으로 어떻게 안 되냐?”

    “그런 스킬은 없지만, 아이템이 있는뎁쇼. 사실 이건 몬스터용 포획 틀이라 펫에게도 먹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 녀석 좀 잡아 봐.”

    스슷. 마법사의 손 위로 새장처럼 생긴 아이템이 소환됐다. 그러고는 스킬을 발동하기 시작한다.

    새장 아이템은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바람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무! 무왕! 뭉!”

    도깨비불이 당황하며 멀리 달아나려 하지만 불길은 서서히 새장 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안 되지.’

    스킬이 취소되지 않는다면 이 상태에서 스킬을 발동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소환을 해제하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새로 스킬을 발동시킬 수 없었다.

    ‘안 돼. 도깨비불아! 알아서 들어갈 수 있잖아! 들어가!!’

    마음속으로 힘껏 외쳤지만, 도깨비불에게 들릴 리가 없었다.

    슈와아아악!

    도망치려던 도깨비불은 새장의 바람에 휩쓸려 안쪽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새장의 문이 닫혔다.

    “뭉! 무앙!!”

    새장에 갇힌 도깨비불이 빠져나가기 위해 이리저리 몸부림을 쳤지만, 역시 마법 아이템이어서 그런지 형태가 모호한 도깨비불일지라도 창살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젠장, 내가 죽으면 도깨비불 녀석은 어떻게 되는 거지.

    “어이, 어이. 지금 네 펫을 걱정할 때가 아냐.”

    신태석은 기름기 낀 얼굴을 씰룩거리며 내 어깨를 짓밟았다. 관절이 박살 날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지만, 비명조차 지를 수가 없었다.

    빠아악! 퍼어억!

    곧이어 주먹과 발길질이 난무한다. 솔직히 어디를 어떻게 맞는지도 모르겠을 정도로 지독한 구타가 시작됐다.

    죽을 것 같은데 아직 죽지는 않는다. 놈들은 좀 더 즐기기 위해 힘 조절을 하는 것 같았다.

    ‘젠장.’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회귀까지 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게 될 줄이야. 역시 다른 스텟도 올려놨어야 했나. 내 판단이 잘못된 걸까.

    고통이 극한에 달하니 나쁜 생각만 밀려왔다.

    회귀 전보다 더 비참하게 개죽음을 당한다니. 차라리 전에는 한결이를 위해 의미 있는 죽음이기나 했지.

    지금은…….

    인류 멸망은 어떻게 되는 거지.

    다시 반복될 뿐인가. 하필이면 S급도 아닌 내가 회귀를 하는 바람에. 차라리 한결이가 회귀자였다면.

    퍼억!

    무방비 상태로 복부가 제대로 걷어차이자 순간적으로 숨을 쉴 수가 없다. 본능적으로 숨을 끌어당기려고 하지만, 뻣뻣한 몸으로는 그조차도 어려웠다.

    ‘와, 진짜 이러다가 죽겠다.’

    막막한 상황에서 눈을 질끈 감을 수조차 없다.

    이미 한 번 느껴 봤던 죽었을 때의 공포가 뇌를 점령해 가고 있었다. 그때.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마구 쏟아지던 발길질이 뚝 멈췄다.

    시선이 닿는 곳엔 돌가루와 흙먼지가 흩날리고 있었다.

    “뭐, 뭐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히, 히익?”

    “혀, 형님! 저거…… 김두문, 아, 아닙니까?”

    “이런…….”

    신태석과 똘마니들이 당황하는 소리가 귓가에 왱왱 울렸다.

    스스스스……. 먼지가 걷히면서 내 시야에서도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검고 곧게 뻗은 생머리.

    그 아래로 진한 눈썹과 날카로운 눈이 보였다. 새카만 눈동자가 살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

    아, 그때랑 같은 눈이다.

    처음 만났을 때랑 똑같은 눈이다.

    한결이가 왔구나.

    순간 안심이 되면서 감기지 않는 눈이 촉촉해진다.

    ‘이 자식이……. 좀만 더 일찍 오지.’

    한결이의 시선이 곧 내게 닿는다.

    녀석의 미간이 볼썽사납게 찡그려지고 손에 쥔 것을 냅다 집어 던졌다.

    퍼억!!

    바닥에 처박힌 건…….

    김두문이었다.

    * * *

    김두문이 세 번째 블록으로 이동했을 때.

    이미 한결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찾아왔다.

    “왠지 빙빙 둘러 가는 것 같은데.”

    “아니, 뭐, 뭔 소립니까. 지금 여기는 미궁이라고요? 둘러 갈 수밖에 없는 곳에 와 있다는 말입니다.”

    김두문이 짜증을 내려다 겨우 참으며 굽실거렸다.

    하지만 한결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너무 초조했다.

    하준과 소울메이트로 연결되면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어쩐지 소통하는 것과 같은 느낌.

    상대의 상태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느낌. 그것이 왠지 불안하고 어쩐지 불길한 정도로 흐릿한 것일지라 해도 말이다.

    ‘그래, 아직 무사한 것 같아.’

    만약 하준에게 심각한 일이 발생했다면 이 감각으로 알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스킬이 풀리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심할 수 없었다.

    ‘이 자식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애초에 범죄자들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이 잘못이었다.

    어릴 적부터 하준이 경계한 것이 있었다. 범죄.

    하준이 없었다면 한결은 나쁜 길로 빠졌을지도 몰랐다. 여러 번 위험한 순간이 있었지만, 하준이 챙겨 준 덕분에 선을 지킬 수 있었다.

    ‘애초에 성현준과 엮이지 않았어야 했어. 그 재수 없는 놈. 그놈이랑 엮일 때마다 하준이가 위험해지잖아.’

    성현준을 떠올리니 더욱 감각이 예민해졌다.

    기세 싸움에서 진 뒤로 그 무기력한 얼굴을 떠올리기만 해도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확실히, 이 녀석은 길을 돌고 있는 것 같구나.]

    황룡의 목소리가 한결에게 말을 걸어왔다.

    ‘뭐?’

    당장에 사라지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뭔가 알고 있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한결은 집중했다.

    [모르는가. 이 통로가 돌아가는 방향과 각도를 계산하면……. 하긴 우매한 인간의 머리로는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군.]

    ‘긴말 말고. 그래서 놈이 의도해서 길을 둘러 간다는 거지?’

    [오랜만에 말을 거는 것인데, 어찌 이리 차갑단 말인가. 본인이 삐치면 어쩌려고 그러지?]

    ‘……한 번쯤은 도움이 돼라.’

    [한 번쯤이라니, 점점 느는 검술 실력도 본인이 가르쳐 준 덕분일 텐데. 역시 인간들은 건방지다니까. 어쨌든,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구나.]

    ‘확실해?’

    [당연하지. 이 몸의 두뇌를 의심하는 것인가? 이자는 아주 차분하게 원래의 통로에서 멀어지면서 그 통로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니 기준점을 잃지는 않겠다는 것 같구나. 잘 보면 패턴이…….]

    콰아앙!!

    금룡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결의 발이 김두문의 머리를 가격했다. 완벽한 돌려차기였다.

    김두문은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내가 말했지. 꿍꿍이가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푸스스스…….

    금이 간 벽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김두문은 이미 한결의 발차기 한 방에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아이고, 이럴 수가. 길잡이를 기절시키면 어떡하나.]

    “……네가 알잖아. 하준이가 있는 통로.”

    [응?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직 통로가 움직이는 길을 다 알지는 못한다.]

    “괜찮아.”

    [으응?]

    “통로가 연결되는 규칙을 몰라도 돼. 그냥 박살 내고 전진하면 되니까.”

    [오호…….]

    한결은 김두문의 목덜미를 쥐고 허리에 차고 있던 검집에 손을 얹었다.

    [하이고……. 정말 이번 제자는 성난 황소 같구나. 쯧쯧쯧.]

    금룡의 한숨과 함께 한결은 통로를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소울메이트로 연결된 하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은 후로는 그 속도가 마치 벼락같았다.

    그리고 드디어 신태석 무리가 있는 통로에 도착한 한결 앞에 있는 건, 죽도록 얻어터진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은하준이었다.

    * * *

    “이런 X발 X도 도움 안 되는 새끼.”

    신태석이 욕설을 짓씹으며 나를 들쳐 올리더니 목에 칼을 댔다.

    “이 건방진 새끼야. 네가 뭘 어쩌고 싶은지 알겠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이 기생오라비 같은 새끼는 죽는 거야. 알겠어?”

    꾸욱.

    들이미는 단검이 결국 목을 살짝 베어 피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X발…… 던전 통로를 죄다 박살 내고 오는 놈이 어딨어. 아무리 S급이라도…….”

    내지른 고함과는 달리 신태석은 작게 중얼거리며 떨고 있었다.

    눈알을 굴려 보니 신태석의 똘마니들이 그에게 원망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 그냥 빨리 죽였으면 이렇게 현장 검거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목숨이 간당간당한 순간인데도 나는 결이가 나타나자마자 배부른 생각이나 하고 있다.

    스스로가 어이없긴 하지만, 솔직히 여기 남아 있는 신태석 무리를 상대로는 한결이로 충분했다.

    물론 신태석은 날 미끼로 어떻게든 던전을 탈출하고 싶을 테지만, 한결이 표정을 보면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것 같다.

    츠팟!!

    순간 한결이의 모습이 깜빡이는 듯하더니, 머리통 위에서 ‘억’ 하는 소리가 들린다.

    털썩.

    신태석이 쓰러지며 힘을 잃은 팔에서 해방된다. 다행히 부드러운 손길에 부축받아 바닥으로 다시 처박히지는 않았다.

    입 안에 쑤셔 박힌 손수건이 빼내어지고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하준아…….”

    한결이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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