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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9화 (29/250)
  • 제29화

    제29편

    “크으윽.”

    “혀, 형님. 어쩝니까.”

    “저 녀석에게 공격이 전혀 닿질 않습니다.”

    신태석의 얼굴은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은하준을 잡아 족칠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은하준은 아직 그렇다 할 공격은 하지 않고 있다. 공격할 마음이 없는 걸까.

    그렇다면 잘 설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신태석은 곧장 마음을 접었다.

    설득은 무슨 설득. 그렇게 해서 밖으로 나가 봤자 성 대위에게 모든 것이 보고될 터였다.

    ‘죽기 살기로 덤벼 봐야지. 그 상대가 고작 21살짜리라고 해도. 그래,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생각을 정리하던 신태석이 눈을 반짝였다.

    “형님?”

    그리고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이 발칙한 꼬맹이가 어째서 우릴 공격하지 않는 걸까?”

    “그, 글쎄요. 봐주려는 걸까요?”

    “미친 새끼. 저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봐준다고?”

    신태석이 똘마니 녀석 하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공격을 못 하는 거야.”

    “예?”

    그가 이를 드러내며 똘마니를 내려다보았다.

    * * *

    확실히 놈들의 속력은 별 볼 일 없었다. 대부분 D급이거나 그 이하. 신태석 정도가 겨우 C급으로 보였다.

    아, 이미 이 던전을 들어올 때 자랑을 했던가? 어쨌든 지금 나의 민첩 스텟은 그들의 공격을 피해 내기에 충분했다.

    ‘살인자들.’

    문제는 이 분노다.

    그들이 저지른 끔찍한 일들에 진저리칠 정도로 화가 났다.

    사람을 죽였다고? 거슬린다고 해서? 마음에 안 들기 때문에?

    겨우 그 정도의 일로 살인을 저지른다고?

    그걸 아무렇지 않게, 자랑스럽게 말한다고.

    할 수만 있다면 눈앞의 놈들을 다 쓸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공격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내 공격력으로는 놈들을 처치하기 힘들다. 사로잡는 것도…….’

    내 스텟은 민첩만 S급이지, 다른 것은 보잘것없다. 워낙에 수치가 낮다 보니 아이템을 마련했어도 겨우 D급 평균이 될까 한 수준.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보고, 신태석 무리도 일단 내 민첩 스텟을 맛봤으니 갑자기 숙이고 나올 수도 있다. 그러면 얌전히 인도해서 성 대위에게 넘기면 그만.’

    솔직히 사람을 죽이는 수준까지 간 놈들이 호락호락하게 굽히고 들어올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착각해 주면 나야 고맙거든.

    ‘굳이 내 손을 더럽히고 싶은 생각도 없고.’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이미 너무 많은 죽음을 겪었다. 되도록 아직은…….

    츠츠츳.

    몸 안쪽에서 각성자의 에너지가 순환하는 순간, 신태석 무리가 서 있는 통로의 벽에서 반투명한 사슬이 튀어나온다.

    ‘억압의 손길.’

    촤앗! 촤르르륵!

    신태석 무리의 수가 적지만, 고블린을 상대했을 때처럼 사슬을 얼기설기 엮어 굴비처럼 꿰어 버릴 작정이었다.

    “헉! 형님! 저 자식!”

    “공격하잖아?!”

    “크윽!”

    “피해!”

    똘마니 두엇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지만, 신태석과 다른 놈들은 재빨리 사슬을 피해 냈다.

    “호오…….”

    신태석은 사뭇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지만, 이내 다시 웃는 얼굴이 되더니 그의 인영이 사라진다.

    “뭐, 응용하면 가능하기도 하겠지만…… 이 스킬. 공격이 메인은 아니잖아?”

    어느새 뒤에서 들리는 신태석의 목소리에 놀라 돌아보자 순식간에 그의 검이 목을 노리고 들어온다. 어쌔신 각성자의 스킬 중에 꽤 쓸 만한 종류를 가진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적의 뒤쪽으로 이동하는 스킬. 스킬 없이는 날 상대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검은 느렸다. 공격을 쉽게 피해 내고 신태석과 거리를 벌린다.

    멀어진 신태석의 얼굴에서는 뭔가를 확신한 듯한 미소가 흘렀다. 젠장.

    눈치는 좀 빠르네.

    “적당히 하고 복귀하는 게 어때. 그렇다고 당신들 형량이 줄어들진 않겠지만.”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날 죽일 수 없으니까.”

    “푸하하하!!”

    신태석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놈이 눈치챘군. 입맛이 썼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

    “아무리 네 친구가 S급이라고 하더라도…… 자존심이 있을 텐데, 공격 스킬을 전혀 사용하지 않더군.”

    자존심은 무슨 자존심. 협동하는 전투에서 그런 게 뭐가 필요하단 말이야. 힐러는 힐을, 서포터는 서포터를 하면 그만이다. (물론 대부분 공격 스킬 한두 가지는 가지고 있다.)

    힐러가 자존심 때문에 힐에 집중 안 하고 공격이나 하고 있으면 되겠냐고. 하여튼 제대로 된 건 하나도 없고 얼빠진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그건 정말로 공격 스킬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 거겠지. 아주 정직한 친구야. 하마터면 깜빡 속을 뻔했잖아.”

    속아 줬으면 아주 고마울 뻔했는데 말이다.

    “빠른 건 속도뿐인가 봐.”

    신태석이 킬킬거렸다.

    나 역시 조금 감탄하기는 했다. 이렇게 빨리 정확하게 파악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체력이 적어서 한 대라도 잘못 맞으면 죽는다는 건 아직 모를 테지. 크게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런다고 뭔가 달라질까? 난 당신들을 성 대위 앞으로 끌고 갈 생각 변하지 않았는데.”

    “뭐라고? 그게 가능할 것 같아? 으하하! 역시 어린애들은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른다니까. 그래, 그걸 어떻게 해낼 건데?”

    “이렇게.”

    취리리릭! 신태석의 발밑에서 사슬이 튀어 오른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의 몸을 칭칭 휘감았다.

    “헉! 형님!”

    “이 자식!”

    똘마니 몇이 나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녀석들의 공격은 내 발끝도 스치지 못한다.

    “하하하. 그래……. 참 안타깝군. 이 스킬, 뭔가 사슬에 다른 능력이 더해졌다면 아주 훌륭한 공격 기술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직 입을 놀릴 만큼 여유로운가 보네.”

    꽈아아악.

    사슬에 조이는 힘을 더했다. 한결이가 있으니 굳이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냥 묶는 게 가능하다면 더 세게 묶어서 조일 수 있다고.

    신태석의 눈이 살짝 커진다. 하지만.

    기기기기…… 뚜욱, 뚝!

    그를 휘감은 사슬이 가래떡처럼 끊어져 버린다.

    “쳇.”

    역시 신태석은 이 무리에서 대장을 맡을 정도로 강했다. C급에 레벨도 꽤 올랐을 테니.

    “후후후후, 꼬맹아. 이런 약한 사슬 정도야 간단히 부숴 버릴 수 있다고.”

    “역시 형님!!”

    “대단하십니다!”

    휘이이익! 신태석이 달려들었다.

    “그래, 잘나셨수. 그런데 당신 역시 나를 건드리지도 못하는걸.”

    “……흥.”

    그의 단검이 몇 차례나 허공을 가른다.

    서로 귀찮게 됐다. 이제부터는 소모전일 테니까. 신태석도 지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서로 대미지를 줄 수 없으니 먼저 지치는 놈이 진다.

    원래라면 인원수가 많은 신태석 쪽이 유리하다.

    “므앙!!”

    여전히 옷깃에 숨어 있는 도깨비불이 부들거렸다. 난 이 녀석 때문에 웃을 수 있고.

    도깨비불 덕분에 난 쉽게 지치지 않을 테니까. 물론 체력 분배를 잘해 가며 싸워야겠지만.

    또다시 쏟아지는 공격을 죄다 피해 가며 놈들과의 생존 게임이 시작됐다.

    * * *

    “아…… 저, 저기. 이렇게 길을 찾다 보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김두문은 이 얼음장 같으면서도 불바다 같기도 한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지금 S급 헌터에게 멱살을 잡힌 채로 벽에 처박혀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자신을 보고 있는 S급 헌터의 눈깔은 그야말로 미친놈이었다.

    단지 던전 통로가 움직여 같은 팀과 떨어졌다는 사실에 이럴 일인가? 김두문은 이러다가 자신이 죽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소름이 쭉 끼쳤다.

    이렇게까지 말이 안 통하고 성격이 더러운 놈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그의 곁에 은하준이라는 제어 장치가 붙어 있었기에 몰랐던 것일 수도 있었다.

    ‘아이 씨, 길을 찾을 때쯤엔 그놈은 이미 뒈졌을 텐데. 이거 이 새끼 난리 치는 거 아냐? 하지만 뭐, 몬스터에게 당한 거라고 하면 제가 어쩔 건데.’

    김두문은 깜빡이지도 않고 자신을 노려보는 새카만 눈을 더는 마주 볼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나, 나도 이 던전에는 자주 들어와 봐서 안다고. 아무리 틀어졌다고 하더라도 결국 던전 안. 다른 레버를 찾아 패턴을 맞춰서 몇 번 돌려 주면 금방 다시 연결된다고.”

    김두문의 말에 한결의 손은 더욱 억세졌다.

    “켁, 케엑! 놔! 이러다가 죽겠어! 큭!”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럼 너도 저놈들도 모두 죽는다.”

    “히이익……. 꾸, 꿍꿍이는 무슨!! 우리가 몬스터를 대비하느라 너무 뒤쪽으로 떨어져서 이렇게 된 건데……요.”

    김두문은 한결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러려고 한결 쪽에 붙었다. 적당히 설득해서 다시 길을 찾아 합류하고, 도착했을 땐 이미 은하준은 불의의 사고를…….

    이게 신태석과 김두문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벌써 이 계획이 뭔가 잘못될 것 같다는 생각이 김두문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었다.

    “앞장서.”

    휘익. 퍼억!

    한결은 김두문을 던전 통로의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X발, 이 새끼는 길도 모르는 주제에. 내가 제대로 안 알려 주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고생 좀 해 봐라.’

    몸이 자유로워지니, 곧장 분노가 뒤따라왔다. 안 그래도 신태석이 매번 등급 하나 높다고 자신을 노예 부리듯 하던 것이 늘 불만이었다.

    신태석과는 앞으로도 계속 봐야 하니 뜻을 거스를 순 없었지만, 눈앞의 S급은 어차피 오늘 보고 말 것. 김두문은 지금껏 쌓인 스트레스를 좀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목이 졸리고 벽이 부서질 만큼 몰아붙여지기도 했으니 정당방위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번 빙빙 돌아보자고.’

    그는 마음속에서 칼을 갈았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 * *

    “허억, 허억.”

    “저 새끼, 지치질 않는 것 같아요.”

    “X발.”

    돌벽으로 된 던전의 통로에 거친 숨소리와 욕설이 난무했다.

    하지만 나 역시 지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무우웅, 뭉!!”

    도깨비불이 걱정스러운 소리를 내며 찰싹 들러붙었으나, 도깨비불의 능력으로 회복할 수 있는 체력과 마력은 느리고 적었다.

    ‘최대한 아껴 보려고 했는데…….’

    사실 8명을 상대로 이 정도까지 해낸 건 상당히 선방을 잘한 거였다. 이미 절반은 내 사슬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고. 나머지 넷도 무척이나 지쳐 있다. 회귀 전 지금과 같은 레벨인 나였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거다.

    쉬우우우.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신태석의 뒤편에서 마법이 발동되는 게 보인다.

    ‘칫, 그래도 헤르메스의 신발 쿨 타임이 다 차서 다행이다.’

    덕분에 좀 더 섬세한 이동이 가능하니까.

    츠츳!

    마법이 발동되고 순간 눈을 의심했다.

    띠요옹. 삐요옹.

    연푸른색의 점액질이 소환되어 바닥에 질퍽거렸다.

    ‘슬라임 소환이라고?’

    너무 뜬금없는 마법이었다. 저걸 소환해서 어쩌려는 거지? 분명 저쪽에서도. 라고 생각하는 순간 뒤통수에서 기척이 느껴져 몸을 움직였다.

    챙강!

    머리에 직접적으로 맞은 것은 아니지만, 바로 옆에서 작은 유리병이 깨지면서 머리가 온통 젖는다.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신태석이 있었다.

    이 거리라면 투척 스킬을 썼을 거다. 바로 뒤로 붙는 것보다 알아채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얼굴에 흐르는 물기를 닦으며 바닥에 떨어진 깨진 유리병과 신태석의 단검 하나를 보았다.

    ‘내가 피할 줄 알고 단검으로 직접 공격하지 않고 근처에서 유리병을 깨트렸다.’

    현 상황에서 내 집중력을 흐트러트리려 슬라임을 소환해 마력을 낭비해서까지 이 공격을 성공시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나마 바로 대미지가 들어가는 위험한 성분은 아닌 것 같은데.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 공격에 당해서는 안 됐어. 뭔지는 몰라도 당연히 내게 불리한…….’

    휘청. 강렬한 어지러움과 몸이 뻣뻣해지는 느낌이 드는 동시에 무릎이 꺾인다.

    역시는 역시다.

    마비 성분이 있는 몬스터의 체액 같은 거겠지.

    “아오, 드디어 잡았네. 이 쥐새끼. X발 사람을 X나게 고생시켜. 뒈졌다 너는.”

    기이한 웃음을 터트리며 신태석이 천천히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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