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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8화 (28/250)
  • 제28화

    제28편

    얼마나 이동했을까.

    아직 뒤를 습격당한 적은 없었다. 다행이라고 하기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컸다.

    몬스터가 한 놈이라도 더 나와야 경험치와 아이템을 얻어 갈 수 있으니까. 한결이도 마찬가지인지 돌아볼 때마다 눈이 마주쳤다.

    “얼마나 더 가야 하죠?”

    “아, 이제 거의 다 와 가는데. 보자, 보자…….”

    신태석이 잠깐 멈추더니 뒤따르던 일행들을 체크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굳이…….

    철컥.

    별안간 뭔가 작동되는 소리에 보니 신태석이 벽에 붙은 레버를 당긴 거였다.

    “무슨…….”

    찰칵. 철크럭. 드드드드……!

    미궁 전체가 흔들렸다. 마치 무너지기라도 할 것 같은 찰나.

    드드득!!

    통로의 중간이 끊어지더니 회전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통로 그 자체가 휘익 돌아간 것이다.

    해리X터 1권에서 호그X트 기숙사 계단이 마구 움직이며 이어지는 곳이 달라지는 것에 비유하면 될까?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중간에 통로가 끊어져 돌아가는 바람에 한결이와 김두문이 낙오됐다는 거다.

    “한결……! 아니, 이게 뭡니까? 두 사람은 괜찮은 거예요?!”

    나의 다급한 외침에 신태석이 피식 웃었다.

    “S급 친구를 걱정할 때가 아닌데.”

    “뭐라고요?”

    신태석의 말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당장 소울메이트로 이어진 한결이에게 집중했다. 이걸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안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건 한결이가 무사하다는 것을 뜻했다.

    ‘그냥 단순하게 통로가 어긋나는 것뿐인가. 던전 트릭.’

    일단 트릭 자체가 위협되는 것 같지는 않아 안심됐다.

    드드드드드.

    무자비하게 진동하며 움직이던 통로가 멈췄다. 통로 앞뒤로 새로운 길이 펼쳐져 있었다.

    한결이와 김두문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런 던전을 처음 접해 보는 건 아니었기에 재빨리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애초에 한결이와 떨어진 것 때문에 놀랐을 뿐.

    “헤헤……. 어때, S급 친구랑 떨어지니까 좀 무섭긴 하지?”

    “제가 무서울 이유가 어딨어요?”

    “푸하학!! 센 척하기는!”

    신태석은 웃겨 죽겠다는 듯 배까지 잡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내가 무서울 이유가 어딨겠는가.

    미궁에서 길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찾으면 그만이고, 한결이와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다시 만나면 그만인데.

    하지만 내 의문은 신태석이 나서서 금방 풀어 주었다.

    “이제 아무도 널 지켜 줄 수가 없으니까.”

    신태석과 그의 무리가 둥그렇게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뮤, 무웅!”

    험상궂어진 분위기에 도깨비불이 놀라 삑삑거리기 시작했다. 또 불안한 듯 내 볼에 찰싹 달라붙었다.

    ‘아아, 이런 거였나.’

    단번에 촉이 왔다. 한심하긴.

    그래, 항상 이런 놈들이 있었다. 던전 내에서 헌터를 사냥하는 녀석들. 돈이나 아이템이 목적일 때도 있었고 단순히 힘겨루기나 살인을 좋아해서 그러기도 했다. 그래도 길드에서 활동할 때쯤엔 이런 놈들과 자주 마주치진 않았는데.

    하여튼 아무 놈에게나 힘이 생기면 안 된다. 이미 나는 20년은 이런 놈들과 부대끼며 살아왔으니까.

    “무앙! 무아아앙~!”

    “에휴.”

    겁먹은 도깨비불을 진정시키려 토닥이다 보니 한숨이 나왔다. 어차피 이들에게 별다른 기대를 했던 것도 아니지만, 이들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오늘은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짜증이 확 일었다.

    시간은 금인데 말이다.

    “얼씨구, 땅 꺼지겠네. 젊은 놈이 웬 한숨이야.”

    “눈치가 영 없는 건 아닌가 보구나?”

    “걱정하지 마. 너만 당한 건 아니니까.”

    신태석의 부하들이 킬킬거렸다. 그들은 내가 겁먹기를 잔뜩 기대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를 자극하기 위해서 쓸데없는 말을 계속 늘어놓았다. 그중에는 그들에게 당한 과거 피해자들에 관한 조롱도 있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겁을 먹으리라 생각한 모양이지만, 틀렸다.

    점점 더 열받을 뿐이라고.

    “상습범이셨구나? 정말 나쁜 사람들이었네. 선입견을 품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말이야. 다 소용없는 일이었어.”

    간단히 전략을 짜 본다. 차라리 아까 한결이만 뛰게 하지 말고 이놈들이 설치게 놔둘 걸 그랬나 보다. 아직 그들의 전투 스타일을 모르겠다.

    그래도 여덟 명 정도는…….

    “X랄. 침착한 척 잘하네?”

    “척을 잘하는 건지. 아니면 S급이랑 붙어 다니다 보니까 겁이 없는 건지 모르겠네.”

    “크크크, 아무래도 후자겠지.”

    “난 너무 떨려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는 것에 1만 원 건다.”

    똘마니들의 잡담에 신태석은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이놈아. 어지간하면 얌전히 있지, 그랬냐. 그랬으면 무사히 살아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안 그래도 성 대위가 보낸 애들이라 그래서 적당히 잘 대해 주다가 보내려고 했다고.”

    얼씨구. 그래, 성 대위까지 얽혀 있는데 손을 대다니. 이놈들이 얼마나 간댕이가 부었는지 나도 잘 알겠다.

    “빽이 있으니까 적당히 병X 만들어서 돌려보내기도 뭐하고. 그냥 죽어 줘야겠다. 깔끔하게.”

    “무, 무웅!! 무웅!!”

    결국 도깨비불이 내 옷 속으로 숨어 버렸다.

    “참 나.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그냥 다 같이 보스 몹 잡고 퇴근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지 않냐고.”

    헛웃음을 섞어 반문하자 신태석의 눈이 부릅떠진다.

    “이 새끼가 새파랗게 어린 게 어른한테 자꾸 반말을.”

    그가 아주 빠른 속도로 양손에 단검을 꺼내 들었다. 어쌔신 타입인가 본데.

    신태석이 움직이자 나를 둘러싼 똘마니들도 익숙하다는 듯 자세를 잡았다. 익숙하다라……. 진짜 열받네.

    * * *

    타앗!

    신태석이 은하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도 정면에서.

    그는 어쌔신 계열의 각성자였다. 그래서 뒤를 노려 습격하거나 빈틈을 노려 크리티컬을 넣는 스킬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은하준을 상대로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은하준은 지금까지 한결이 싸우는 동안 보조를 할 뿐이었고, 그의 펫조차도 변변한 지원 공격 하나 하지 않았다.

    ‘공격 거리가 전혀 없는 서포터 타입인가 보지. 정말로 불쌍한 놈이라니까.’

    기왕에 각성자가 되었는데, 남을 보조하기만 할 뿐이라니. 만약 자신이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죽고 싶었을 거라고 신태석은 생각했다.

    우위에 서지 못할 거라면 살아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신태석의 생각이 들어맞았던 건지, 그가 은하준의 코앞까지 가도록 은하준은 반응이 없었다.

    ‘아예 내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하는 건가.’

    쉬이익!

    신태석의 날카로운 두 검날이 은하준이 있는 곳을 세차게 베어 낸다. 이 단검은 날 자체에 독성을 품고 있는 무기. 간단하게 스치기만 해도 중독으로 꼼짝 못 하게 될 터였다.

    하지만 신태석은 굳이 그럴 생각이 없었다. 물론 독에 취한 상대를 오랫동안 괴롭히며 가지고 노는 게 취향이기는 했지만, 은하준의 친구인 S급 각성자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까 일을 빨리 처리하고 싶었다.

    왜 영화나 소설을 보면 항상 악당들이 그 짓거리를 하다가 결국 주인공에게 역전당하지 않는가.

    자신들의 처지가 악당이라는 것도, 미련하게 굴다가는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신태석은 영리했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응? 베이는 감각이…….’

    두 검이 완전히 그어졌지만, 손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라?”

    은하준이 베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눈앞에 있어야 할 은하준이 없다.

    “흠, 대충 속도는 그 정돈가?”

    어린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깜짝 놀란 신태석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은하준은 마치 처음부터 거기 서 있었던 것처럼 평온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어어?”

    “응?”

    당황하기는 신태석의 똘마니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들 신태석이 뭔가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쐐액!!

    신태석의 단검이 이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은하준이 있는 곳을 겨냥해 선을 그었다. 이미 똘마니들의 눈으로는 겨우 좇을 수 있을 정도로 신태석은 최선을 다해 빠르게 공격했다.

    하지만.

    “조금 빨라진 건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은하준의 목소리가 신태석의 뒤통수에서 들려왔다.

    “뭐, 뭐야 이 새끼.”

    신태석은 곧장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 이번에는 한두 타가 아니라, 연쇄 공격. 무자비한 검의 세례였다. 공격당하는 상대를 갈가리 찢어발길 검의 난무. 하지만 신태석은 공격이 끝나기 전에 이미 깨달았다.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잖아.’

    닿는 감각이 전혀 없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둘러보자 이번에는 약간 더 거리를 벌린 은하준이 서 있었다. 은하준은 조금도 헐떡거리지 않고 있었다.

    “이…… 이 새끼가!! 야! 다들 뭐 해?! 저 새끼 조져!!”

    신태석의 말에 놀라 어벙하게 서 있던 똘마니들이 하나둘씩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츠츠츳.

    마법을 시전하는 자, 검을 휘두를 준비를 끝마친 자, 주먹에 각성자의 에너지를 담아 강화한 자.

    모두가 은하준을 노리고 공격을 퍼부었다.

    타다닷! 휘익! 퍼억! 퍽!!

    먼저 단거리 공격이 차례로 은하준을 향해 쏟아졌다.

    “어?”

    “윽!”

    하지만 놀랍게도 난전 속에 은하준의 모습은 없었다. 급한 마음에 휘두른 공격들은 똘마니들 서로에게 가해져 바닥을 구르는 놈까지 생겼다.

    “이런 젠장!”

    “움직임을 따라갈 수가 없잖아!”

    “어디에 있냐!”

    “저기다!”

    이제 은하준은 꽤 그들과 거리가 멀어진 곳에 서 있었다.

    “치잇!”

    “놈을 놓쳐선 안 돼!”

    외침과 함께 신태석이 통로의 벽에 달린 레버를 잡아당겼다.

    쿠구구구궁.

    다시 한번 크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통로.

    앞뒤로 연결되는 곳이 뒤바뀌는 통에 은하준은 더 멀리 빠질 수가 없었다. 독 안에 든 쥐가 된 셈이었지만, 하준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괜찮겠어? 이거, 오히려 당신들한테 손해일걸.”

    “닥쳐! 언제까지 도망만 칠 셈이냐. 퇴로도 이제 없다!”

    신태석의 외침과 함께 드디어 준비된 마법이 발사됐다.

    “아이스 스피어!”

    마법사의 주위로 순식간에 냉기로 얼어붙은 거대한 고드름이 생겨났다. 그리고 쉬이이이익! 대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3개의 아이스 스피어가 내다 꽂혔다.

    퍼억! 퍼어억!!

    분명 은하준이 서 있던 곳이었다. 한데 은하준은 또 없었다.

    “학습이 안 돼? 당신들 실력으로는 날 눈으로도 좇을 수 없다니까?”

    하준의 목소리가 곧장 옆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똘마니들 사이에 섞여 서 있던 것이다.

    신태석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대체, 대체 뭐란 말야! 이럴 수가 있어? 절대 D등급의 속도가 아니야. 아무리 민첩 스킬이 높은 특성의 각성자라도…….’

    잔뜩 약이 올라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던 신태석의 머릿속에 슬슬 이성이 돌아오고 있었다.

    속도가 이렇게 빠르다면, 공격력은 어떨까.

    신태석이 판단하기로 눈앞의 은하준은 적어도 B급, 낮은 레벨을 생각한다면 A급 각성자일 수도 있었다.

    그게 정말이라면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신태석 일당이 은하준을 처치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제껏 저질러 온 많은 범죄를 이실직고해 버렸으니.

    물러날 길이 없으니 어떻게든 은하준을 잡아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너, D등급이라는 건 거짓말이었구나.”

    “설마. 전 거짓말 안 하는데요.”

    “거짓말하지 마라! D등급이 이렇게 빠를 리가 없다!”

    “세컨드 오픈으로 세상이 뒤집히고 있는데, 확신할 수 있어?”

    은하준의 말에 신태석은 입을 다물었다.

    하기야 지금 이 지구에 퍼스트 오픈보다 더 기괴한 일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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