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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7화 (27/250)
  • 제27화

    제27편

    “미친 새끼들.”

    쿠과앙!! 콰과과광!!

    번쩍이는 전격 앞에서 신태석을 포함한 A-17 팀원 전부가 말을 잃었다.

    “S급이라고? 처음 봐.”

    “심지어 저런 자연계 능력이라니.”

    “그래도 레벨이 낮다고 들었는데.”

    “골렘은 전격계 각성자한테 강하지 않아?”

    옳은 말이었다.

    각성자들이 가진 특성에 따라 상대하기 좋은 몬스터가 있지만, 역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몬스터들도 있었다.

    특히나 무생물인 몬스터에게는 감전 대미지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먹히는 대미지 자체가 떨어졌다.

    하지만 지금의 한결에게는 거의 상관없는 말이라고 해도 좋았다.

    신태석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한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번개 검은 대체 뭐란 말이야.”

    미발견 던전에서 수수께끼를 풀고 얻은 한결의 아이템. 벽조목 손잡이 때문이었다.

    단정한 모양의 검 손잡이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전기가 뭉쳐진 검. 마치 검날의 형태로 번개가 붙잡혀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 검으로 골렘을 내려치면, 상성이 맞지 않는 몬스터인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단번에 골렘의 돌로 된 머리가 박살 나 버렸다.

    척 보기에도 값비싼 아이템.

    어쩐지 곱상해 보이더니, 부잣집 도련님들이었구나.

    얼마 전 포털 오픈 사건과 함께 각성한 초짜들이 저런 아이템을 얻었을 리가 없었다. 든든할 부자 부모가 챙겨 준 게 틀림없다고 신태석은 생각했다.

    ‘이런 제기랄, 아까 그렇게 면박을 줬는데, 이거 X 되는 거 아냐?’

    신태석은 속이 답답하고 입 안이 썼다.

    아까 이 어린놈들의 속을 벅벅 긁은 게 후회가 됐다.

    ‘젠장, 팔다리 하나쯤은 병X으로 만들어 주려고 했더니.’

    그는 한결의 생각보다 너무 뛰어난 전투 능력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비릿하게 웃었다.

    지금까지 그가 짓밟아 준 쓰레기들의 면상을 떠올렸다.

    솔직히 말해 던전 안에서 어떤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 해도 그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단 몇 명이 입을 맞추면 될 일이었다.

    던전 안에서는 불운한 사건 사고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으니까. 어지간해서는 증거도 남지 않는다. 던전 안에서는 카메라나 녹음기 같은 바깥의 기기들이 완전히 먹통이 된다.

    하여 이때까지 신태석이 늘 사냥꾼의 자리에 있었다.

    그는 눈에 거슬리는 놈들이 있으면 은근슬쩍 함께 팀을 맺고 던전 안에서 ‘징벌’했다.

    사고를 가장해 불구로 만들거나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으면 아예 목숨을 앗아 갔다.

    물론 처음 신태석이 갇히게 된 이유는 능력을 이용해 재물을 손괴하고 상해를 입힌 것 정도였지만, 각성자 범죄자들이 있는 수용소 안에서 그는 더욱 악랄해졌다.

    폭행에서 살인까지.

    죄의 미끄럼틀은 너무 쉽게 그를 바닥으로 데려갔다.

    환경과 주변 사람이 사람을 바꾸는 법.

    지금 곁에 있는 김두문과 남춘식과 또 그 아래 따르는 녀석들은 완전히 신태석의 손과 발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신태석의 선택에 토를 단 적이 없었다. 오히려 신태석의 명령을 즐기는 것 같았다.

    피 맛에 길든 신태석의 개들.

    ‘이번 임무에선 몸을 사려야겠군.’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신태석은 오히려 열이 차올랐다.

    ‘저렇게 새파랗게 어린 새끼들한테 굽실거려야 한다니. X팔리게. 그래 봤자, 부모 잘 만나서 인생 꿀 빠는 새끼들이.’

    생각하면 할수록 더 열이 받았다. 신태석은 한결이 싸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의 친구인지 뭔지도.

    ‘그래 저 녀석은 약하다. 등급도 D라고 했지. 그 정도면 식은 죽 먹기지.’

    은하준이라고 했던가. 희멀겋고 비쩍 말라서 남자구실도 제대로 못할 것 같은 인상이었다.

    ‘다 큰 사내놈이 친구 서포트나 하고 자빠졌고. 그래, 시다 짓이나 할 것처럼 생겼다. 그래서 두 놈이 같이 다니는 거로구만.’

    신태석은 오로지 공격형 스킬을 가진 각성자만 헌터 취급을 해 줬다.

    그 외에는 다들 낙오자일 뿐이다. 살기 위해서 구질구질하게 공격형 헌터에게 기생할 뿐인 거머리들.

    “퉤엣!”

    신태석은 은하준을 보며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 * *

    통로는 거대한 돌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주 반듯한, 누군가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미궁처럼.

    이 던전의 메인 몬스터는 돌 골렘.

    놈들의 공격 패턴이나 약점 같은 건 이미 훤하게 알고 있었다.

    ‘솔직히 결이랑 상성이 맞지 않는 몬스터지만 이전 던전에서 얻은 검 손잡이 덕분에 이거 뭐, 너무 쉬운 싸움이 됐네.’

    골렘은 그저 평범한 돌로 된 몬스터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마법의 힘으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애초에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생물체보다 전격의 힘이 덜 먹힌다.

    ‘원래라면 골렘 안쪽에 마법을 발동시키는 핵을 노리는 전법을 이용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전술이고 나발이고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결이의 힘이 압도적이다.’

    벽조목 손잡이에 붙은 특성 공격력 +108 덕분이다. 상성이 상관없을 정도로 힘의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자동차도 쉽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천장마저 높은 이 통로의 뒤로는 한결이가 박살 낸 골렘 파편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굴러떨어진 골렘의 핵들도 반짝인다.

    ‘아까 아저씨들 표정이 장난 아니었지.’

    아무리 그래도 나는 싸가지가 있는 편이니까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았다.

    신태석과 동료들은 초장부터 의기양양하게 던전 안을 누볐다.

    그들의 기세는 이미 몇 번이나 클리어해서 익숙한 던전이라는 사실에 기인했지만, 그 의기양양함은 순식간에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대형을 만드는 동안 한결이가 튀어 나가 골렘들을 쓸어버렸으니까.

    ‘원래 보통의 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완전 무례한 상황이지만, 딱히 이 사람들한테까지 예의를 차릴 생각은 없어서 말이지.’

    그들이 범죄자라서가 아니었다. 사람은 언제나 갱생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 준 행동들에서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자랑처럼 늘어놓은 오랜 수용 기간에도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전혀 반성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아질 마음도 없었다.

    게다가 한결이가 실력을 보여 주기 전까지 계속해서 우리를 긁어 댔다.

    ‘지금 내 겉모습이랑 적어도 20살은 차이 날 것 같은데, 나이 먹은 게 부끄럽지도 않나.’

    말이 20살 차이지, 솔직히 그들의 겉모습은 이미 50대가 훌쩍 넘어 보였다.

    ‘슬슬 아재들도 기가 팍 죽은 것 같고.’

    툭, 투두둑.

    산산조각이 난 골렘 파편이 쏟아지고 한결이가 빛나는 번개의 검을 검집 안으로 밀어 넣는다.

    눈이 부시던 빛이 사그라들고 아저씨들의 시선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한결이는 그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내 앞으로 곧장 걸어왔다.

    “끝났어.”

    “응, 수고했다.”

    나는 신태석을 살짝 돌아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어차피 여러분들은 던전 부산물에 권한이 없으시다고 그래서요. 저희가 다 먹어도 괜찮으신 거 맞죠?”

    이들은 자신이 받은 형량을 줄이기 위해 노동 봉사를 하는 것이기에 던전 부산물에는 손을 댈 수 없었다.

    던전 공략 후 얻는 아이템들은 전부 반납해야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들이 정직하게 모든 아이템을 뱉어 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인벤토리를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열어 볼 수 없으니까.

    그들이 아이템을 빼돌린다는 건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한결이와 내가 아이템을 독식하는 상황에서 탐욕이 가득한 눈알이 데굴데굴 굴러간다.

    ‘특수부대에서도 이미 이 던전에서 어떤 아이템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는지 확인을 마친 상태겠지. 그러니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도로만 아이템을 제출할 거다.’

    마치 하이에나처럼, 대머리독수리처럼. 남은 찌꺼기를 모아 형량이 끝났을 때를 대비하고 있겠지.

    아니면 수용소 내에서 권력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하든.

    어쨌든 이 노동 봉사로 경험치도 얻는 주제에 괘씸한 짓이 아닐 수 없다.

    ‘경험치를 못 받게 할 수 있는 기술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어쨌든 나와 결이는 저들과 상황이 다르다.

    성 대위가 직접 지시했다. 우리가 특수 괴물 부대의 일을 돕는 대가로 획득한 아이템의 소유권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이 행동은 합법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아까부터 자꾸 시비를 거니까 더 약 올리고 싶잖아.’

    그래, 사실 난 그다지 착하지 않다고. 이제 더는 마찰을 빚기 귀찮은 나이가 됐을 뿐이지.

    “정말 대단한 청년들이네. 그래, 아주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

    신태석은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

    ‘보기보다 생각이 죄다 보이는 사람이란 말이야.’

    그의 똘마니들도 그랬다. 다들 한결이의 실력에 기가 팍 죽어 있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더 자극하지는 말아야지.

    보스를 상대할 즘엔 이런 놈들이라도 힘을 좀 빌려야 하니까.

    지금 상황을 보면 굳이 말을 안 들을 이유는 없다. 저들도 자기 목숨은 아까울 테니까.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던전이지만, 난도도 낮고 딱히 걱정할 건 없겠어.’

    이곳은 D급 던전이다. 한결이와 단둘이 깨던 때와는 다르다. 처음부터 잡음이 있긴 해도 D급 정도에서는 유능한 각성자들이니까.

    사실 한결이가 너무 강해져 버리기도 해서 내가 나설 일도 없다.

    “그럼 길 안내를 부탁드릴게요.”

    “고럼, 고럼. 우리 청년들이 힘을 많이 써 주니까, 이 형님들이 익숙한 길 정도는 안내해야지. 그래도 이렇게 길 안내를 할 때마다 앞장설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신태석은 나를 돌아보며 코를 찡긋거렸다. 저건 또 무슨 표정이래.

    “아이 참, 이렇게 대단한 청년들이 팀이어서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몰라. 응? 자네들도 우리 같은 선배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가 내 곁으로 바짝 다가오며 말을 붙였다. 자연스럽게 그의 곁에서 걷게 된 나를 보며 한결이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팼다.

    그걸 의식해서인지 김두문이 한결이 옆으로 붙어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한결 님. 아까 전투가 정말 대단하던데. 저도 검을 쓰는 타입이라, 좋은 본보기가 되었달까요? 검술은 어디서 배운 겁니까?”

    “배운 적 없는데.”

    “……아하, 그러시구나. 독학했는데도 이렇게 움직임이 대단하다니! 타고난 천재 뭐 이런 건가! 역시~ 부모님들이 굉장하신가 봐요?”

    김두문은 딱딱한 한결이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절대기 시작했다.

    ‘존댓말까지? 뭐야,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는. 슬슬 보스 방에 다다를 때가 되었으니까. 몸을 사리는 건가.’

    처음 신태석이 설명한 걸 기준으로 던전에서 보낸 시간을 어림잡아 계산하면 이미 절반 이상 클리어가 된 상태.

    한결이가 아니었다면 훨씬 오래 걸렸을 터였다. 애초에 이 팀으로는 비슷한 급 한두 명이 추가되더라도 보스를 힘겹게 이기는 구성이었을 테니까.

    결이의 실력을 보고 배는 아프지만, 보스 방에서 할 수고를 덜어 줄 테니 잘 보이고 싶기야 할 거다.

    보스 방에서까지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래서 나는 관용을 베풀어 신태석의 시시한 질문들을 성의껏 받아 주는 척하기로 했다.

    “아니, 그럼 어떤 식으로 수련을 하길래 저렇게 강해질 수 있는 건가?”

    “뭐, 타고난 것 아니겠어요? 하하하.”

    “아……. 아이고, 요즘 젊은 애들은 낯을 안 가려, 참. 하하하! 아주 예쁘구만. 예뻐. 하하하하.”

    “하하하. 그렇죠? 요즘은 자기 PR의 시대니까요. 자신감이 없는 것보다 넉넉한 게 좋지 않겠어요? 하하!”

    서로 칭찬인지 욕인지 눈치 주는 것인지 대화인지 모를 이상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언뜻 한결이에게 말을 거는 김두문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돌아보니 역시나 두 사람은 약간 뒤로 빠져 있었다. 김두문이 자꾸 자기 자세를 좀 보라며 한결이를 멈춰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결이는 짜증이 날 대로 났고 겨우 소리 지르고 싶은 걸 참고 있었다. 저 찡그린 얼굴만 봐도 뻔하다.

    대답도 단답형으로 짧게 하는데 김두문은 좀처럼 민망해하지 않았다.

    짜증이 가득한 까만 눈과 마주치자 억울함을 가득 담아 눈빛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조금만 참으면 보스 방이 나올 테고, 오늘의 임무는 끝날 것이다. 다시는 이 팀과 같이할 일은……. 설마 계속 이 아저씨들이랑 하는 건 아니겠지.

    사실 어느 팀으로 가든 상황이 크게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아, 이 부분부터는 뒤에서 기습 몬스터가 자주 나오는데 말이야. 마침 한결 군이 뒤쪽에 있군. 계속 뒤를 좀 지켜 줬으면 좋겠는데.”

    신태석이 한결이를 돌아보고 있는 내게 말했다. 어찌나 크게 말하던지 뒤에 있던 결이도 전부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다음 상황을 인지한 한결이의 미간은 더욱 찡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결이에게 그렇게 하라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신태석을 향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확실히 던전에 대해 다 꿰고 계신 선배님이 있어 다행이에요.”

    “암.”

    그리고 난 그 말을 곧바로 후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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