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26화 (26/250)
  • 제26화

    제26편

    “물론 방어구 하나를 사는 데 가지고 계신 금액을 모두 소모하기는 해야 하지만……. 그래도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제가 좀 빨라서요. 제 등급에 맞는 전투라면 어지간해선 다 피할 수 있어요.”

    설명에도 그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D등급이 빠르면 얼마나 빠르겠는가.

    게다가 어떤 종류의 아이템을 사는지를 보면 각성자의 타입도 알 수 있을 텐데, 안사홍이 보기에 나는 무척 불안하긴 할 거다.

    “하긴, 각성하신 지 얼마 안 됐다고 하셨으면서 이렇게 많은 아이템을 처분하기 위해 오신 걸 보면 실력을 의심해선 안 되겠지요. 제가 경솔했습니다.”

    “뭐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네요. 하하.”

    내가 구매하기로 한 것은 마력을 보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들 몇 개였다. 공격력이 붙은 것도 괜찮지만, 억압의 손길을 최대한 많이 소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우리 한결이 전투를 더욱 잘 서포트할 수 있을 테니까.

    [달빛 요정의 목걸이]

    마력 +21

    체력 +3

    [호수의 반지]

    마력 +3%

    나는 안사홍의 테이블에 있는 아이템을 착용했다. 목걸이는 걸자마자 투명한 색으로 녹아 눈에 보이지 않게 됐다.

    반지는 왼쪽 엄지에 끼웠는데, 내 손가락에 맞게 순식간에 조정되었다. 디자인도 아주 얇은 은색이어서 튀지 않아 좋았다.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에테르석으로 하신다고 했죠?”

    “네, 이곳에 창고를 개설하고 물건을 맡길 수 있다고 하시던데요.”

    “그렇습니다. 가능합니다. 은하준 님께는 특별히 더 넓은 창고를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만. 정말로 에테르석을 구입하시는 겁니까?”

    반쯤은 호기심이 어린 빛으로 빛나는 안사홍의 짙은 눈과 마주쳤다.

    “네. 제가 쓸 일이 있어서요.”

    지금은 에테르석이 별 가치가 없지만, 곧 아니게 된다.

    싼값에 에테르석을 잔뜩 사서 쟁여 놓을 거다. 그리고 에테르석으로 장비를 제작할 때가 됐을 때 팔 생각이었다.

    그때는 에테르석의 값어치가 천정부지로 치솟겠지.

    이 방법으로는 던전에 가지 않고도 돈을 잔뜩 벌 수 있다. 내게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오다니, 다시 생각해도 정말 최고다!

    나를 회귀시켜 준 게 누군지는 몰라도 하여튼 감사합니다!

    “창고에 맡겨 두신다는 건 당장 쓰실 건 아니라는 거고요.”

    “흠, 네. 좀 장기로 맡겨 둘 생각인데 그것도 가능하죠?”

    “물론입니다.”

    안사홍은 고개를 갸웃하며 웃어 보였다.

    “비밀이 많은 은하준 님께서 꾸미는 일이시니, 분명 뭔가 있기는 하겠군요.”

    “에이, 제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을 일 있나요.”

    하마터면 미스터릭 차원의 상인에게! 라고 외칠 뻔했다.

    “네?”

    “아하하, 아니에요. 그저 별난 취미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럼 이제 들어가 볼게요. 던전에서 바로 오느라 피곤하거든요.”

    “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지친 척을 하자 안사홍은 살짝 웃으며 테이블을 정리하고 작은 키를 건넸다.

    “제가 없을 때도 창고를 사용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오? 어떻게요?”

    사실 들어 본 적이 있다.

    이 열쇠를 받을 수 있는 건 상단의 VIP들뿐인데. 맙소사. 심장이 쿵쿵 뛴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렇게 가까워지다니. 회귀를 하면서 내 인생의 운이 어떻게 바뀐 게 아닌가 싶다.

    “아마 항상 제가 있겠지만요. 혹시나 그때가 되어서 이곳에 오시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실 거예요.”

    “이것 봐, 역시 비밀이 많잖아요. 여하튼 감사합니다!”

    작고 반짝이는 열쇠를 꼬옥 쥐고 단홍 상사의 문을 나섰다.

    이제 또 할 일이 있거든. 바쁘다 바빠.

    * * *

    타악.

    문이 닫히고 왁자지껄하던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정말 특이한 사람이네.”

    안사홍은 중얼거렸다.

    내뱉은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은하준. 그는 정말 특이했다.

    “이렇게 당당하게 정보를 흘리는 이유는 뭘까.”

    은하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요.’ 정말 이상한 말이었다.

    그는 자신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얼마나 많은 걸 알고 있는 걸까?

    안사홍이 그를 경계하는 이유였다. 어떤 이유에서건, 어떤 상황에서건 정보가 많이 노출된 쪽이 위험하다.

    하지만 은하준은 의도가 있어서 일부러 자신의 수를 사홍에게 내보이고 있는 거다.

    물론 자신에게만 알려 준다는 말이 완전히 믿기지는 않지만 말이다.

    “친구보다 적을 가까이하라고 했지.”

    지금 상황으로서는 은하준이 정말로 친구이든, 가면을 쓴 적이든 경계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지금 당장은 그의 정보가 안사홍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맞았다.

    금룡의 힘줄이라는 아이템에 관한 정보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코앞에서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사실 도움이 되는 정도가 아니다.

    ‘어쩌면 앞으로 내게 큰 힘이 될 사람인지도.’

    안사홍에게는 힘이 필요했다. 확실하고 강력한 힘이.

    은하준을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를 이용할 수 있다면.

    ‘그’와의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을지 몰랐다.

    “에테르석이라.”

    안사홍은 에테르석을 끌어모을 수 있는 곳들을 떠올렸다.

    “바빠지겠는걸.”

    그리고 단홍 상사의 문을 안에서 걸어 잠갔다. 잠시 후 단홍 상사의 창문으로 불길한 녹색과 보라색의 빛이 새어 나왔다.

    * * *

    [먼저 연락해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때 많이 놀라셨던 것 같기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만.]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건 성현준 대위의 목소리였다.

    “물론 입대하려고 연락드린 건 아니고요.”

    옅은 웃음소리가 대답한다.

    [그럼 무슨 용건이십니까?]

    “입대는 못 하지만, 군에서 저희에게 맡길 일이 있다고 하셨죠? 기꺼이 도울 생각이 있다고 말씀드리려고요.”

    우리에게 아무리 숨겨진 던전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번 몬스터를 사냥하고 나면 다시 몬스터가 생기는 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게 단 1층뿐이라도 그랬다.

    그러니 몬스터가 리젠되는 시간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 없는 노릇.

    한결이와 나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아직 10년이나 남았다고 하더라도 종말 퀘스트는 반드시 찾아온다.

    그러니 1분 1초라도 더 강해지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다른 던전 위치를 몇 개 더 알고 있지만 거긴 지금 레벨로 갈 수 없는 곳이야.’

    기억하고 있는 곳의 던전 레벨이 너무 높았다.

    어제 다녀온 곳도 1층 정도만 커버가 가능한 것이지, 2층 이후로는 우리 레벨에 맞지 않는다.

    무리해서 강행한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 도박을 할 생각은 없으니까.

    게다가 특수 괴물 부대에 잘 보일 생각이기도 하니, 그들을 도우면서 정보를 얻고 환심도 사는 것이 좋다.

    [저희 군에서는 두 분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필요한 장비는 갖췄습니다. D급 던전 정도는 무리 없이 투입될 수 있는 수준일 거예요. 그러니까 되도록 빨리 작전에 투입되면 좋겠네요. 인명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니까요.”

    [대단하십니다. 단기간에 장비까지 맞추시다니. 게다가 좋은 결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오늘 바로도 가능하십니까?]

    “아, 네. 물론이죠.”

    솔직히 곧장 부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좋다.

    가 보자고!

    한결이를 향해 눈짓하자 반듯한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 미간을 다시 펴는 동안, 괴물 특수부대에서 보낸 차가 도착했고 한결이와 나는 낯선 공간에 도착했다.

    공사장처럼 보이는 곳 중앙에 커다란 크기의 던전 포털이 보였다.

    이미 그곳에는 특수 괴물 부대를 제외하고도 많은 각성자가 모여 있었다.

    “신태석. 이쪽이 오늘 충원될 각성자들이다.”

    특수 괴물 부대원의 안내를 따라 한 중년 남성을 소개받았다.

    그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아저씨처럼 보였다. 배가 나오고 수염이 덥수룩한.

    그런 그가 나와 한결이를 훑어보더니, 피식 웃었다.

    “아아, 그 자격증도 없는 녀석들?”

    옆에 선 한결이가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럴 만한 게 신태석의 말투는 무척이나 오만하고 무례했다.

    “우리보고 나가 죽으라는 건지.”

    “이분들의 실력은 성현준 대위님께서 보증한다.”

    “성현준이라고? 참 나, 그놈은 우리 따위 안중에도 없잖소. 부품처럼 쓰다가 헌신짝처럼 버리기 일쑤인데.”

    “여러분은 할당받은 형량을 각성자의 능력을 사용하는 노동으로 차감하는 데 이미 동의했다. 거부권은 없을 텐데.”

    “물론 동의했지. 하지만 죽을 생각은 없단 말이오. 우리가 죽을죄를 지었나? 그건 아니잖아! 저번에 우리 팀에 붙여 준 놈들 때문에 전부 몰살당할 뻔했단 말이야.”

    특수 괴물 부대원과 신태석의 대화가 묘했다.

    ‘아아, 이놈들. 각성 범죄자들이군.’

    각성자이면서 그 힘을 가지고 범죄를 저지른 자들.

    세컨드 오픈이 일어나기 전이면 각성자의 수가 전국을 통틀어도 백만 명이 넘지 않는 때다. 그런데 이 장소에만 각성 범죄자들이 이만큼 있다.

    그들의 능력을 썩히기 아까워 이런 식으로 던전 공략에 투입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물론 내가 회귀하기 전까지도 그랬겠지만, 사실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었다.

    ‘참 나. 성 대위가 까다로운 일을 맡겼네.’

    다른 게 아니라, 눈앞의 신태석 반응만 보아도 오늘의 임무가 뻔히 보였다.

    온갖 핑계를 대며 우릴 구박하고 괴롭히겠지. 그거야 무시하고 참으면 그만이지만, 아마 팀워크도 제대로 맞춰 주지 않을 거다.

    목숨이 걸린 던전 안에서도 말이지.

    “후우.”

    “걱정하지 마, 하준아.”

    “응?”

    한숨을 내쉬는 내 어깨를 결이가 토닥였다.

    “여차하면 쓸어버릴 테니까.”

    “응? 뭔 소리야. 쓸어버린다니? 당연히 안 되지.”

    “하지만 널 건드리는 건 용서할 수 없어.”

    “아니, 아직 안 건드렸으니까 진정해. 게다가 애초에…….”

    솔직히 날 건드릴 수는 있을까 싶다. 난 지금 S급의 속도를 가졌는걸. 레벨 1의 수준이라고 해도 말이다.

    성 대위에게 D급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다고 미리 말해 뒀으니, 저쪽이 강하고 노련하다고 해도 높아 봐야 C등급 정도일 거다.

    B급 이상을 이런 곳에 묶어 놓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그렇다면 속도만으로는 날 따라올 수 없다.

    정말 죽이려고 작정하는 게 아니라면 허튼짓은 통하지 않는다는 거다.

    “협조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돌려보내겠다.”

    “쳇, 지금 국민이 죽어 나가는데 배가 불렀구먼. 됐슈.”

    일을 쉬는 건 싫은 모양인지 드디어 신태석이 꼬리를 말고 우리 쪽으로 어적어적 걸어왔다.

    나와 결이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내 쪽으로 얼굴을 확 들이밀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결이의 팔에 가로막혔다.

    “뭐야, 빠르네?”

    “……떨어져.”

    “체. 그래, 성 대위가 보냈다 이 말이지.”

    신태석은 뒤로 물러나며 결이가 쥐었던 어깨를 신경질적으로 문질렀다.

    분명 아팠을 거고, 자존심도 상했을 거다.

    “똑바로 못하면 던전 안에서 다 죽는 거야.”

    그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던 신태석의 동료들도 험악한 인상으로 우릴 위협해 왔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의 이런 행동이 이제까지의 전투를 위험하게 만든 것 같은데 말이다.

    잔뜩 심기가 불편해진 한결이를 달래며, 나는 그저 방긋이 웃어 줄 뿐이었다.

    * * *

    “혀, 형님…… 저 자식들 완전히 미친놈들인데요.”

    “저, 저런…….”

    김두문의 말에 신태석은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앞의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