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24화 (24/250)
  • 제24화

    제24편

    “이런 구멍이 있었다고?”

    회귀 전에는 본 적 없는 거다. 물론 아주 구석에 있어서 어지간하면 발견하기 힘들기는 한 위치다.

    하지만 정말로 이걸 발견하지 못했다고?

    그래도 이 던전이 발견된 지 5년은 됐었는데?

    “야, 도깨비불. 너 이거 어떻게 알았어?”

    “므왕!”

    도깨비불은 쭈욱 늘어났던 불길을 도로 집어넣으며 몸을 부풀렸다.

    어때. 나 정말 대단하지? 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주 의기양양했다.

    “가 보려고?”

    한결이는 약간 당황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응? 음…… 괜찮지 않겠어?”

    “위험할 수도 있어. 게다가 우린 체력과 마력을 거의 다 소진했잖아. 보스급 몬스터라도 나오면…….”

    “므왕!!”

    한결이의 말에 도깨비불은 거칠게 몸을 흔들었다.

    “참 나, 또 이 귀여운 녀석 말을 어떻게 무시하냐?”

    “뭐? 은하준, 너 설마 진짜 그런 이유로.”

    한결이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진다. 하지만 저런 비밀 통로를 찾은 마당에 안 들어가 보는 것도 이상하잖아?

    던전 공략이 끝나고 나면 한동안은 이 던전에 다시 들어올 수도 없는데.

    “괜찮아, 괜찮아. 시스템도 말했잖아. 1층은 완전히 클리어됐다고. 던전은 한 번 클리어 되면 한동안은 몬스터가 나오지 않아. 그러니까 이 길을 조금 탐색해 본다고 해도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내 설명에도 한결이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한결이가 이렇게 조심성이 많았던가.

    “게다가 S급인 네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지켜 줄 거죠~?”

    익살스럽게 윙크를 날렸더니 의외의 공격에 열받은 모양인지 얼굴이 요상하게 일그러졌다.

    “……그럼 조금만 살펴보기야.”

    “살펴보면 보는 거지, 무슨 조금만이야!”

    나는 좁은 통로로 먼저 몸을 구겨 넣었다.

    스으으. 통로 안쪽에서 희미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바람이라고? 그렇다면 밖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는 건가? 회귀 전엔 아무도 찾지 못한 거였는데…….’

    어쩐지 보스 몹을 사냥할 때보다 훨씬 두근거리는 기분이다.

    좁았던 통로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넓어졌다.

    조금 서늘한 기분이 들 뿐, 몬스터의 기척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또옥, 똑…….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쯤, 작은 공간에 도착했다.

    “이건…….”

    동굴을 깎아 만든 것 같은 둥그런 방의 중앙에 돌로 만들어진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건 마치 작은 사당처럼 보였다.

    그 주변을 천장에서 떨어지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신비로운 풍경이랄까.

    게다가 D급인 내가 슬쩍 보기에도 사당에서는 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건 던전이나 우리의 몸에 흐르는 각성자의 에너지와도 흡사했고 농도는 더욱 짙었다.

    애초에 내가 느꼈던 바람도 이 사당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만들어 낸 바람이었다.

    “무앙!”

    도깨비불이 사당 가까이 가 재촉하는 듯 불을 이글거렸다.

    “설마 저걸 열어 볼 생각은 아니지?”

    “당연히 열어 봐야지.”

    “위험할지도 몰라. 내가 열어 볼게.”

    “어허. 재밌는 건 내 거야.”

    던전 클리어 후 나타난 비밀 공간의 사당.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난 보상이 들어 있을 것 같잖아?

    저지하는 한결이의 팔을 살짝 피해 사당 앞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하지만 한결이는 나보다 빨랐다.

    “안 돼. 지켜 달라며.”

    사당의 작은 문을 열려던 내 손을 쳐 내곤 제가 먼저 문을 열었다.

    “아야야…….”

    얼얼한 손을 만지작거리며 결이를 노려보았다. 결이는 묘한 얼굴로 사당 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뭔데?”

    얼굴을 들이밀어 문 안쪽을 확인하자, 돌을 파 쓴 작은 글이 보였다. 놀랍게도 그 문장들은 한국어로 쓰여 있었다.

    [속이는 자의 혀의 눈물과 굶주림을 두려워하는 무리의 거센 이. 그리고 여덟 왕의 구슬을 바쳐라.]

    “흐음, 뭔가 비유 같은데. 결이 네가 똑똑하니까 뭘지 한번 말해 봐.”

    “놀리냐.”

    사당에 그 외에는 달리 특별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사당을 둘러보길 멈추지 않았다.

    “이게 다일 리가 없어.”

    그러기에는 사당이 뿜어내는 기운이 너무나 선명했다.

    “거대한 에테르석이라도 박혀 있을 것 같은 분위기라고.”

    그러나 외관을 아무리 살펴도 마땅한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역시 이걸 해석하는 수밖에 없는 거 같네. 어이, 도깨비불 이 녀석아. 네가 이곳으로 우리를 끌고 왔잖아. 어떻게 해결할 방법 없어?!”

    화살이 도깨비불에게 돌아가자, 녀석이 화들짝 놀라며 불꽃을 키웠다가 쭈그러트렸다.

    “……무아아아.”

    “너한테도 딱히 답이 있는 건 아니란 거지? 흐으음.”

    사실 이 녀석도 사당이 뿜어내는 기운을 기민하게 알아차렸을 뿐일지도. 몬스터들을 샅샅이 찾아낸 것처럼 말이다.

    풀썩. 나는 아예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뭔가를 바치라면 이 던전에서 구할 수 있는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너무 양심이 없는데. 속이는 자의 혀의 눈물이라. 속이는 자…….’

    골몰하는 동안 머릿속으로 번뜩이는 것이 있었다.

    “뱀?”

    “응? 뱀?”

    한결이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하지만 내가 거짓말과 뱀을 연상시킬 수 있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다.

    우리가 시설에 있을 때, 매일 아침 성경을 읽어야 했으니까.

    “뱀은 거짓말로 아담과 이브를 속였잖아.”

    “하……. 그거랑 관련이 있다는 거야?”

    “그 외에는 연상할 수 있는 마땅한 게 없어. 게다가 이 던전에서 우린 뱀 형태의 몬스터를 상대했잖아!”

    “그건 그렇지.”

    한결이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혀의 눈물……. 설마 이건가.”

    나는 곧장 인벤토리를 열었다.

    거기에는 샌드 스네이크의 독주머니가 있었다. 놈을 사냥하고 보상 아이템으로 받은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지.”

    인벤토리에서 소환해 낸 독주머니를 사당의 문 안에 들이밀었다. 샌드 스네이크의 커다란 덩치에 맞게 독주머니 역시 엄청나게 큰 크기여서 사당 안으로 완전히 집어넣는 것이 힘들었다.

    중간쯤 밀어 넣었을까.

    쑤욱. 마치 사당 안쪽에 아공간이라도 열린 것처럼 독주머니가 빨려 들어갔다. 독주머니가 완전히 빨려 들어가자 사당의 문이 벌컥 닫혔다.

    “이거…… 아무래도 우리가 맞힌 거 같지?”

    “그런 것 같은데.”

    위험한 뻘건 불빛이나 갑자기 모든 걸 삼켜 버릴 듯한 에너지 폭발 같은 건 없으니까.

    한결이와 내가 숨을 죽이고 있자, 곧 사당의 문이 저절로 달칵하고 열렸다.

    “꺼~억.”

    “음?”

    나와 한결이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방금…….”

    “나, 나 아냐!”

    분명히 트림 소리였다. 나는 한결이에게 물으면서도 그 소리를 낸 것이 결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진짜 이상한 놈이네.”

    “므왕! 뫙!”

    도깨비불이 다시 재촉하기 시작했다.

    “너 대체 뭘 알고 있는 거냐?”

    “무우웅…….”

    “이럴 땐 쓸모가 없구나.”

    “무아아아아…….”

    녀석과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생각에 잠겨 있던 한결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굶주림을 두려워하는 무리의 거센 이라는 건, 데저트 빅 앤트의 집게를 뜻하는 걸까?”

    “아!”

    이 사막의 보스 룸까지 오는 동안 우리가 상대한 몬스터는 샌드 스네이크나 데저트 빅 앤트뿐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당이 말하는 조건을 맞출 수 있는 건 데저트 빅 앤트뿐이었다.

    “무리를 지어 살고, 둥지에 먹이를 저장하는 건 놈들밖에 없지. 그리고 이건...... 확실히 거센 이처럼 보이네."

    스으으. 인벤토리에서 소환된 데저트 빅 앤트의 집게이빨이다. 거대한 사슴벌레의 것처럼 무시무시한 모습이다.

    나는 곧바로 다시 열린 사당의 문 안으로 집게이빨을 밀어 넣었다.

    쑤우우욱.

    이번에도 사당은 집게이빨을 삼키듯이 빨아들였다.

    “이제 하나만 더 찾으면 돼.”

    “하지만 여덟 왕의 구슬이라니. 이건 너무 어려운데.”

    한결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쉽게 연상되는 건 없었다.

    “던전을 돈 덕분에 인벤토리 안에 아이템이 엄청나게 많아. 이걸 하나하나 쑤셔 넣어 볼 수도 없고.”

    “하여튼 결이 너는 항상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니까.”

    여덟 왕. 나는 단어를 곱씹었다.

    우린 여덟이나 되는 왕을 만난 적이 없다.

    데저트 빅 앤트 무리의 여왕 정도? 하지만 놈에게서 얻은 아이템 중 구슬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만난 왕이라고 해 봤자 보스 몬스터였던 샤프투스 정도 아닌가.

    “어.”

    “응?”

    “거미 다리가 8개지?”

    “어…… 그렇지?”

    나는 인벤토리 창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샤프투스에게서 얻은 몬스터 부산물이라고는 놈의 껍데기와 거미줄뿐이었다.

    “구슬, 구슬……. 여덟 왕이 아니라…… 왕의 여덟 구슬이라면.”

    곧장 들어왔던 통로를 향해 튀어 나갔다. 마음이 급한 채로 점점 좁아지는 통로로 나가려니 몸 여기저기가 부딪혔다.

    하지만 마음속에 드는 확신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보스 룸에는 아직도 샤프투스의 사체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보이는 건, 놈의 번들거리는 8개의 눈알이었다.

    “이거네.”

    “은하준 너 진짜 천재구나?”

    뒤따라 보스 룸에 도착한 한결이가 놀랍다는 듯 눈을 빛냈다.

    “한데, 이거. 눈과 머리를 보호하고 있는 막이 워낙 단단해서…….”

    “막은 중요한 게 아니지.”

    한결이가 샤프투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놈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어, 결아. 너……!”

    와지직!!

    샤프투스의 목이 마치 솜사탕처럼 찢겼다.

    “결이 너…….”

    “레벨 오르니까 쉽네.”

    “언제는 실감 안 난다더니.”

    죽어 있는 상태긴 해도 보스 몬스터의 목을 단번에 찢어발기는 모습에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역시 S급의 레벨 업은 고작 1이라도 어마어마하다니까. 한결이한테 절대로 까불지 말아야지.

    한결이가 샤프투스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고 절단면 쪽으로 얼굴을 들이댔다.

    앞면에는 강력한 보호 껍데기가 있지만, 내부에는 여린 살들이 있다.

    “우웩, 그거 만지려고? 그 속에 팔 넣으려고?”

    “아니. 그럴 필요 없지.”

    파직, 파지지직!!

    주변이 번쩍이더니 결이가 들고 있던 샤프투스의 머리가 터져 버렸다.

    촤아악! 샤프투스의 머리 파편이 사방으로 튄다.

    “으악!”

    재빨리 파편을 피하면서 나한테 영혼석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냥도 다 끝난 마당에 지저분해지고 싶진 않았다. 단홍 상사도 들러야 하는데…….

    툭, 투두둑.

    익어 버린 샤프투스의 눈알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전격을 쓰는 게 더 섬세해졌네? 눈알이 손상되지 않았어.”

    “응, 오늘 개미를 200마리나 잡았잖아.”

    한결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샤프투스의 눈알을 줍기 시작했다. 이제 눈알들을 사당에 가져다 놓기만 하면 끝이다.

    “음, 도깨비불아 너도 거들어라.”

    “무우우…….”

    “이럴 때라도 도움이 되어야지 않겠어?”

    “그냥 인벤토리에 넣으면 되잖아.”

    “앗.”

    눈치 없는 한결이 녀석 탓에 통로를 지나는 동안 도깨비불은 내게 계속해서 박치기해 댔다. 귀여워. 점점 놀려 먹고 싶어진다.

    소란 끝에 우리는 다시 사당 앞에 섰고 세 번째 제물을 바쳤다.

    쑤우욱, 탁!

    사당의 문이 닫히고 다시 열리며 꺼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사당이 있는 작은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뒤에 서.”

    한결이가 경계 태세를 취하는 동안 사당에는 옅은 불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무너지면 곤란한데.”

    공간을 흔드는 진동은 더더욱 커졌다. 통로를 통해 대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설 때쯤 갑자기 모든 진동이 멈췄다.

    그리고 덜그럭거리며 빛을 내던 사당의 문이 열리며 무엇인가를 뱉어 냈다. 하지만 뭘 뱉어 낸 것인지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시스템 창의 알림이 눈앞을 가렸기 때문이었다.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업적: 299번째 수수께끼를 푼 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