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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1화 (21/250)

제21화

제21편

“자아, 단홍 상사에는 오늘 저녁에 들르기로 했으니까. 서두르자고.”

결이의 어깨를 툭 치며 주위를 둘러보니 빽빽하게 우거진 산이다. 서울에서 벗어난 지는 한참 지났고 마을버스에서 내린 뒤로 두 시간이나 더 걸었다. 게다가 일반인의 걸음도 아니라 각성자의 빠른 걸음으로.

이곳은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다. 포털은 원래 인구가 많은 곳에 생기는 경우가 많아서 회귀 전 이곳의 발견은 현저히 늦었었다. 지금 우리에겐 오히려 굉장한 행운이 되어 주었지만.

“무앙!”

이미 소환해 둔 도깨비불이 내 머리 주위를 뱅글뱅글 맴돌았다. 녀석은 소환될 때마다 무척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물어볼 순 없지만, 몸짓만 봐도 알 수 있달까.

‘얼른 강해져서 펫을 꺼내 두고 다녀도 괜찮아지면 좋겠군.’

지금은 괜한 관심을 끄는 게 싫으니까, 어쩔 수 없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도깨비불 녀석을 끌어안고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무앙♡ 뫙~♡”

“대체 이런 곳을 어떻게 아는 거야? 이런 덴 처음 와 봐.”

한결이는 내 품에 안긴 도깨비불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 그러니까. 사홍 씨가 알려 줬어.”

“안사홍이?”

“응, 그 사람. 이런 식의 미발견 던전을 몇 군데 아는 것 같더라고. 어떻게 아이템을 수급하는지 비밀이라고 했잖아? 그 비밀을 조금 알겠네.”

준비한 것도 아닌데 이제는 거짓말이 술술 나온다.

‘앞으로도 대충 비밀스러운 일에 관해서는 안사홍 핑계를 대면 수월할 것 같군. 원래도 비밀이 많은 사람이니까, 몇 가지 덧붙인대도 상관없겠지. 결이가 남들한테 나불거리는 타입도 아니니까. 역시 안사홍이랑 안면을 터놓길 잘했다!’

나는 씩 웃으면서 앞장섰다.

아무리 오지 수준이더라도 주변의 길은 내 눈에 훤하다. 이 던전은 회귀 전 내가 속했던 길드가 주로 활동하던 곳이니까.

정신계 몬스터도 없어서 거의 우리 팀이 맡아서 임무를 수행했다.

게다가 던전 내부에 층수가 나누어져 있어서 레벨에 맞는 층수까지만 공략하고 나와도 되는 아주 편리한 던전. 심지어 크랙인 주제에 몬스터를 뱉지 않는 특이 케이스인 안정 크랙이다.

솔직히 이 정도 수준이면 던전의 가치가 너무 높기에 우리 길드 같은 중위급 길드에게는 기회가 없고 대형 길드가 꿰차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때 국가에서 강력하게 개입했다. 공정성을 위해 추첨 형식으로 담당 길드가 배당된 덕분에 이 던전은 우리 길드 차지가 된 것이다.

말하자면 복권에 당첨된 거나 다름없었다. 이 던전 덕분에 우리가 속했던 길드가 마지막 전쟁까지도 존재할 만큼 중상위급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미리 좀 털겠습니다. 어차피 여기서 레어 아이템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애초에 추첨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우리 한결이가 S급인 덕이었으니까!’

레어 아이템.

내 회귀 전 기억으로 이곳에 레어 아이템이 나온 적은 절대로 없다.

대부분의 던전은 장소마다 나오는 몬스터와 아이템에 변동이 없다. 게임에서 몬스터가 리젠되는 것처럼 말이다. 항상 비슷한 아이템을 드롭한다.

하지만 레어 아이템은 달랐다. 누군가 던전을 공략하고 레어가 붙은 아이템을 가지게 되면, 그 아이템은 리젠되지 않는다.

‘금룡의 힘줄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금룡의 힘줄 아이템에도 레어 속성은 붙어 있지 않지.’

레어 아이템은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각각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간에 그런 대단한 아이템을 몰래 먼저 먹으러 온 것도 아니니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아무리 내가 10여 년간 몸담았던 길드의 아이템을 선점한다고 해도.’

생각해 보니 또 억울하다.

‘……내가 양심의 가책을 왜 느껴야 하지? 회귀했으니, 이렇게 독식하는 게 당연하지 않아?’

하지만 눈앞에 10여 년을 함께했던 길드의 동료들이 떠올랐다.

물론, 앞에서나 뒤에서나 내 욕을 하던 놈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역시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겠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제 그 길드에는 가입하지 않을 거니, 이전 길드원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거다.

게다가 이게 다 인류를 구하기 위한 거니까.

‘그럼 인화 선배는 어떻게 되는 거지. 가만히 두면 또 그 길드에 들어가게 되는 운명인 건가? 굳이 그러지 않아도……. 어쩌면 정말로 다른 길드로 가게 되면 선배는 죽음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인화 선배를 다시 만나려면 서울이 진정되고 헌터 자격증 발급 과정이 재개되어야 한다. 그때 만나서 인화 선배의 선택을 바꾸게 한다면.

생각이 깊어지려는 찰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목적지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역시 있네.”

사방으로는 울창한 나무에 어둑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무 그늘 따위는 상관이 없다는 듯, 눈앞으로 언제 보아도 신비로운 던전 포털의 빛깔이 우리를 맞이했다.

“정말이네. 진짜 던전이 있잖아.”

이곳까지 온 수고를 생각하면 신나는 게 정상일 터인데, 한결이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어두웠다.

마치 이곳에 던전이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는 것처럼.

“하준아.”

“응?”

“난 네가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안사홍이 보낸 거라며. 여기.”

물론 그렇게 둘러대긴 했지만, 사실을 말할 수 없으니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 군인도 그렇고, 이상한 상인 녀석도 그렇고. 전부 우릴 이용하려고 하잖아.”

“뭐, 그렇긴 하지만…….”

“난 네가 이용당하는 거 싫어. 이제 더는.”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결이의 얼굴을 보니 말문이 턱 막힌다. 막상 이용하고 있는 건 난데…….

“에이, 한결이 너는 무슨. 너무 과하게 생각하네. 이용까지는 아니고 그냥 상부상조하는 거지.”

“넌 좀 더 조심할 필요가 있어.”

결이 얼굴이 심각해지는 게, 또 한 바가지 쏟아 낼 것 같은 분위기다. 안 돼, 안 돼.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애초에 그건 전부 다 오해라고! 하지만 그걸 설명할 순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래서, 던전 들어갈 거야 말 거야? 내 장비 맞춰 준다던 약속을 잊은 건 아니겠지.”

한결이의 정신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으름장을 놓으니 결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 그건 당연히 맞춰 주지!”

“그럼 어서 들어가자고.”

나는 한결이의 등을 떠밀었다. 이 자식 아무리 10년도 더 전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성인인데……라고 말하기에는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20대 초반이면 완전 아기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어린애를 나무랄 순 없지 않은가. 이 형님이 최대한 어르고 달래야지. 뭐, 지금은 달랜다기보다 그냥 밀어붙인 것뿐이지만. 흠흠.

쑤우욱.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은 던전의 포털 안으로 한결이와 내 몸이 빨려 들어갔다.

‘그러고 보면 회귀한 뒤로 포털 안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지.’

침을 꿀꺽이는 찰나의 순간에 시야가 뒤바뀌었다.

“헉.”

앞섰던 한결이가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아무리 S급의 결이라도 던전 안으로 들어온 것은 난생처음이다. 게다가 이 안은 바깥과는 다른 신비스러운 힘으로 가득 차 있다. 각성자가 되면서 몸 안에 들어찬 그것과 같은.

“괜찮아?”

“어? 응, 괜찮아.”

한결이의 어깨를 추슬러 준 다음, 주위를 둘러보았다.

울창한 숲이었던 바깥과는 달리 이곳은 온통 붉은 흙이 가득한 건조한 기후의 협곡이었다. 바닥은 바짝 말라 있고 흙과 모래가 나부낀다.

협곡 밖으로 나가면 광활한 사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변한 것 하나 없이 내 기억대로다.

“뮤웅!!”

마치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도깨비불이 몸을 흔들어 댔다.

“뮤마마! 뮹!!”

“응? 뭐야. 길이라도 안내하려는 거야?”

“뮹!”

도깨비불이 방향을 제시하듯 앞서 나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쓸데없는 것이 아니라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걸 믿어도 될까?”

한결이는 미심쩍은 얼굴로 도깨비불을 노려봤다.

“무앙!”

도깨비불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으르릉거렸다.

“싸우지 말고. 뭐, 1층은 그다지 위험한 몬스터도 없으니까 이 녀석을 따라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흠.”

“뭉뭉!”

내 말을 알아듣곤 도깨비불이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우리도 곧 도깨비불을 따라 달렸다.

한참을 달렸을까.

파츠츠츠츠! 이질적인 소리가 우리 뒤를 쫓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곧 주위의 모래가 일렁이고 굼실거리며 주위를 에워싸는 움직임들이 보였다.

“몬스터다.”

푸화아악!

곧장 바로 내 앞에서 모래가 꺼지며 몬스터가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었다.

“핫!”

나는 오히려 몬스터의 날카로운 어금니를 딛고 점프했다. S급의 속도를 가지니 이쯤은 쉬웠다.

이전 같았으면 절반은 삼켜지고 한결이가 날 삼킨 놈의 몸을 동강 냈을 텐데.

아, 레벨 1이니까 아직 무리려나?

파앗! 도약하며 살펴보니 날 삼키려 모래 속에서 몸을 쭈욱 뽑아내는 놈의 몸체가 선명하게 보인다.

완전한 모래색 비늘로 위장한 아름다운 사막의 습격자.

“샌드 스네이크다.”

길이가 15m는 되는 중형종. 송곳니에는 치명적인 독이 있고, 등에서부터 꼬리까지 돋친 가시가 칼날처럼 날카롭다.

심지어 그 가시를 펼쳐 배의 돛처럼 바람을 이용해 사막에서 빠르게 이동하기도 한다.

“하준아!!”

“머리가 약점이야!”

이런 것들은 굳이 약점을 찾을 필요도 없다.

뻔한 곳이기 때문이다.

“억압의 손길!”

모래 아래에서 순식간에 투명한 영혼의 사슬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샌드 스네이크의 목을 휘감았다.

태애앵!!

놈의 아가리가 내게 닿지 못하고 멈춘다.

‘이때 헤르메스의 신발을 이용하면…….’

토옥.

허공이 마치 발판이라도 있는 것처럼 디뎌진다.

‘대박.’

하늘 위를 걸을 수 있다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 혼자 스스로 이런 움직임으로.

두두두두. 아래로 뱀의 몸통을 타고 오르는 한결이가 보인다.

등에 돋은 가시를 발판 삼아 달리고 있는 것이다. 하도 날카로워서 조심해야 하는데 S급의 능력치로 무리 없이 등반 중이다.

‘얼씨구, 대단한데.’

타앗!

그 틈에 나는 허공을 다시 한번 더 박차고는 땅으로 내려왔다.

티잉! 팅!

샌드 스네이크가 몸을 비틀자 내 사슬들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덩치가 커서…….’

게다가 아무리 1층이라고는 하지만 여기엔 D등급 정도의 몬스터가 나온다.

휘이익! 홰엑!

놈이 요동치기 시작하고 등의 가시를 접었다 펴기 시작했다. 결국 한결이가 휘청인다.

“한결아! 조심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촤아악!

순식간에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날카로운 놈의 가시에 결국 팔뚝을 베여 버린 것이다.

“결아!!”

10m 높이에 있던 한결이가 결국 놈에게서 튕겨 나와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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