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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0화 (20/250)
  • 제20화

    제20편

    “이럴 수가. 완전히 한 방 먹었군요.”

    “하하, 너무 미워하지는 마세요.”

    “미워하다니…… 당치도 않아요. 이런 사실을 몰랐다는 것도 다 제 능력이죠.”

    안사홍은 내게 다시 팔찌를 건넸다. 그는 테이블에 기대어 호흡을 가다듬으며 머리를 천천히 저었다.

    “놀랍군요. 손님은 어떻게……. 그보다, 제 말을 무시하고 모른 척할 수도 있었는데 이 귀한 정보를 저에게 알려 줘도 되는 겁니까?”

    “글쎄요. 제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상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라면 어쩌시겠어요?”

    “……그런. 아까부터 계속 대한민국 최고의 상인이라고 하시는데, 대체 어디서 그런 말을 듣고 오신 겁니까?”

    안사홍은 약간 난처한 얼굴을 했다. 아직 그 정도로 유명해지지는 않았나? 하여튼, 어쨌든! 그래도 대한민국 최고의 상인이 될 건 뻔한 미래니까.

    “게다가 제게 잘 보이고 싶으시다니…….”

    그의 얼굴에 비즈니스적인 미소가 아닌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반응을 보니, 확실히 잘 보인 게 맞는 것 같군. 그리고 내게는 숨겨진 능력을 갖춘 아이템에 관한 정보가 더 있다. 앞으로도 몇 개를 소개해 주면서 안사홍과 친분을 다질 수 있을 테지.’

    이 금룡의 힘줄은 무한히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다.

    히든 능력을 발견하고도 한동안 가격이 폭등하지 않았던 이유는 골드 드래곤을 잡으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이 아이템은 세계적으로 12개가 최대 수량이었다. 그중에 절반 정도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게 됐고 나머지는 전격계가 아닌 엉뚱한 각성자가 사용하거나, 완전히 박살 나 폐기되고 만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리 한결이가 이 아이템을 손에 넣은 게 중요하다는 말씀!

    나는 다시 한결이에게 팔찌를 채워 주면서 피식 웃었다.

    그래, 한결이가 이 아이템을 손에 넣은 게 중요하다.

    앞으로는 2억에 절대 구할 수 없을 이 아이템을!!

    “자, 그러면 이제 남은 금액으로 제 아이템을 살 건데요.”

    내 말에 안사홍이 번뜩 정신을 차린 듯 자세를 고쳐 섰다.

    “아, 아아. 그렇죠. 이번에는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남은 금액은 4백 18만 원입니다.”

    “음…… 그게, 대충 마력 증가 아이템 좀 보여 주시겠어요?”

    굳이 아이템을 맞춘다면 지금 필요한 건 당장에 스킬을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마력을 보강하는 게 좋다.

    “금액에 맞춰 보여 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겠군요.”

    스으윽.

    책상 위로 작은 반지 두 개와 은색 팔찌가 떠올랐다.

    “오른쪽 반지는 마력 +1, 왼쪽은 마법 공격력 +2%, 팔찌는 마나 회복력 상승입니다.”

    “흐으음. 이걸로 할게요.”

    “팔찌를 선택하셨군요. 좋습니다.”

    남은 금액이 얼마 되지 않아서 그다지 대단한 아이템들은 아니었다. 금룡의 힘줄에 비하면 너무 시시하다.

    대부분은 마법 공격력 +2% 능력이 붙은 반지를 고르겠지만, 나는 마법 공격력이랑은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도깨비불과 팔찌 능력이 중첩되면, 소모된 마나가 훨씬 빨리 회복될 테니, 오래 쓸 건 아니어도 당분간은 쓰기 괜찮군. 어차피 나는 스킬 자체가 마나를 많이 소모하는 편도 아니니까.’

    안사홍이 내미는 팔찌를 순순히 차고 들여다보니 썩 마음에 든다.

    “맞춘 거 같다, 안 그러냐? 왜 우정 팔찌 그런 거.”

    솔직히 말해서 오늘의 성과가 너무 좋다. 내심 뿌듯해져 싱글벙글 한결이의 손목과 내 손목을 붙여 놓고 팔찌를 보았다.

    뭔가 팔찌가 비슷하게 생겨서 기념일 같은 기분도 들었다. 우리 인생에서 달리 기념할 만한 날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이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둘 다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다짐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뻐근할 만큼 기분이 좋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굳이 기념일을 챙기는구나 싶은 생각도 들 정도로.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더 미안하네. 나는, 나는 정말 엄청난 물건을 받아 버렸는데.”

    “참 나. 우리 사이에 별게 다 미안하다. 게다가 내가 완전히 사 준 것도 아닌데 뭘, 절반 넘게 네 돈이었잖아.”

    겉으로 봐도 내 팔찌가 훨씬 싼 것이어서 그런지 한결이는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었다. 꼴이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잘못한 줄 알고 주눅 든 강아지 같다.

    그래도 이걸로 내 도깨비불이나 헤르메스의 신발 아이템에 관한 질투는 완전히 사그라들겠는데.

    “하하, 참 나. 걱정하지 마. 너 인마. 강해졌으니까 나중에 던전에서 잔뜩 굴려 줄 거야. 알겠냐? 열심히 일해서 이 형님한테 보답해라. 앞으로는 돈 벌어서 내 아이템만 맞출 거니까.”

    “……응.”

    결이가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소리에 또 한마디 얹으리라 생각했는데. 짜식이.

    뭐랄까, 이게 자식 키우는 부모의 보람 같은 건가?

    나이가 드니까 별것 아닌 일에 계속 마음이 찡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지금 이건 시작에 불과해. 앞으로 더욱더 강해질 거야, 우리는.’

    나는 안사홍을 향해 눈을 빛냈다.

    “그리고 남은 금액으로 소비 아이템을 몇 개 사려고 해요.”

    “어떤 걸 찾으시죠?”

    “별로 대단한 건 아니고요. 체력 회복 포션이랑 마력 회복 포션 몇 개, 거기다가 해독제 정도요.”

    “좋습니다.”

    안사홍은 손을 흔들어 작은 유리병에 담긴 아이템 몇 개를 소환해 냈다. 거기서 하급 포션들 몇 개와 일반 해독제 4개를 산 뒤 거래를 모두 끝냈다.

    * * *

    “그럼, 더 찾으시는 물건은 없으신가요?”

    “아, 네. 이제 돈도 없고요. 오늘 거래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한데……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테이블 위를 정리하던 안사홍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미루고 미루던 질문을 던졌다.

    “혹시 영혼석이라는 아이템에 관해 아는 게 있으신가요?”

    제발, 이라고 속으로 곱씹었다. 영혼석에 관해 조금이라도 알 만한 사람은 지금 당장 안사홍밖에 없으니까.

    “……영혼석이라고요?”

    “네. 영혼석이요.”

    “……글쎄요. 그런 건 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아이템 이름이 확실히 영혼석이 맞나요?”

    “아…….”

    실망감이 몰려왔다. 안사홍조차 모르는 아이템이란 말인가.

    “모양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혹시 지금 가지고 있나요?”

    “아, 잠시만요.”

    츠츠츳. 인벤토리를 조작하자, 손바닥 위로 영혼석 5개가 생겨났다.

    고블린 부대를 상대하고 얻은 영혼석. 안사홍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아직 먹지 않고 남겨 두었었다.

    “음?”

    영혼석을 보자마자 안사홍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뭐, 뭔가 아는 게 있는 건가?!

    “알아보시겠나요?”

    “그게.”

    두근, 두근.

    심장이 고동친다.

    “……이건, 별사탕이지 않습니까?”

    “네?”

    나는 안사홍의 대답에 얼이 빠지고 말았다.

    물론 영혼석의 모양이 별사탕을 닮은 건 인정한다. 인정한다고. 솔직히 맛도 비슷하니까.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상인이라면 척 보고도 아이템의 진가를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론 금룡의 힘줄의 숨겨진 속성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건 히든 설정이니까!!

    이 자식, 내가 알던 안사홍이 맞는 건가?!

    “……별사탕 아닌데요.”

    내 말에 안사홍의 표정은 점점 더 의아해졌다.

    “좀 자세히 봐도 될까요?”

    “네, 여기.”

    나는 당당하게 손을 뻗었다. 안사홍은 벗었던 장갑을 다시 끼고 영혼석 하나를 집어 올렸다. 그리고 유심히 영혼석을 관찰했다.

    “……손님, 죄송합니다만.”

    “네?”

    “정말로 별사탕이 아닌가요?”

    “그런…….”

    “별사탕 같은 게 인벤토리에서 나올 리 없잖아.”

    안사홍은 정말로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뒤로 물러나 상황을 살펴보던 한결이가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분명 팔찌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었는데 언제 다시 저렇게 까칠해졌지? 팔찌의 정신력 고양 능력은 어디 가고? 2배잖아!

    “아이고, 한결아. 진정, 진정.”

    나는 안사홍에게 뭐라 덧붙이려는 한결이를 막아서고 침울한 얼굴로 내 손에 있던 영혼석을 다시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흠.”

    하지만 안사홍은 꺼 두었던 테이블 위의 스킬을 다시 발동했다. 그리고 내게서 영혼석을 받아 간 뒤, 그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

    아이템을 올려놓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던 정보 창 역시 묵묵부답이다. 스킬이 발동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안사홍의 스킬이 인식할 수 없다는 건, 그로선 이것을 아이템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금룡의 힘줄로 내가 보여 준 것이 있기에 안사홍은 쉽게 영혼석을 포기하지 않았다.

    츠츠츳. 그가 몇 가지 스킬을 더 사용하는 것 같았다. 아마 아이템 감정 스킬이겠지.

    “확실히 물건에서 포털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긴 합니다만. 사실 포털이 생긴 이후로 근처에 몇 시간만 노출되어도 이 정도의 기운이 감지되기는 하거든요.”

    “그런가요…….”

    “이걸 사용하신 적은 있으신가요?”

    “아.”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용하기야 했지만, 그 사실을 말하려면 스텟을 증가시키는 아이템이라 말해야 하지 않은가.

    ……그럴 수는 없지.

    “아직 사용해 본 적은 없어요. 사용하는 법도 모르겠고, 그냥 전투 후에 인벤토리 안에 들어와 있길래요. 검색해 봐도 정보가 뜨질 않아서 여쭤본 거예요.”

    “혹시 허락하신다면 제게 물건을 맡기시고 계속 조사해 볼 수도 있습니다.”

    “아, 아뇨. 그렇게까지는.”

    “당신을 뭘 믿고.”

    이번에도 결이가 날 선 말을 툭 던졌지만, 이번엔 내 마음을 대변해 준 셈이었다. 안사홍이 영혼석에 관해 조사해 주기를 원하면서도 그에게 영혼석을 완전히 맡길 수는 없다.

    혹시 안사홍도 영혼석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엄청난 아이템의 능력을 탐내지 않을 리가 없다.

    안사홍은 그런 내 표정 역시 읽은 듯했다.

    “충분히 손님을 이해합니다. 제가 오늘 거래에서 신뢰를 드리지 못했죠.”

    “아뇨, 오늘 거래 자체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안사홍과 친해지고 싶은 마당에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니 꽤 곤란할 지경이다.

    “괜찮습니다. 손님의 재구매와 의뢰가 이어지도록 노력하는 건 상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까요. 제 실력을 믿으시니 문의하신 걸 텐데,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지 못해서 안타깝군요.”

    안사홍은 결이의 반응에도, 나의 망설임에도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는 듯이 능숙하게 말했다.

    누가 보아도 우리는 갓 각성한 풋내기들로 보일 텐데도 얕보는 태도도 전혀 없었다. 금룡의 팔찌 때도 우릴 걱정해서 조언한 것이니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는 어떤 상황이든 전혀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역시 사람을 상대하는 기술이 뛰어난 상인.

    갑자기 누군가 떠오른다.

    군인에, 왠지 피곤한 얼굴이고, 대위인 사람.

    그 사람과는 딴판이다.

    난 안사홍이랑 잘 맞는 것 같아.

    “그리고 오늘 흥미로운 물건을 보여 주셨으니, 저도 보답하고 싶군요. 그 영혼석에 관한 자료를 따로 찾아보고 뭔가 있다면 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자, 물건은 돌려 드리죠.”

    안사홍은 영혼석을 다시 한번 살펴본 뒤, 내 손 위에 올려놓았다.

    “정보를 찾는 대가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도 호기심이 생겼거든요. 게다가 저 역시 은하준 님께 잘 보이고 싶고요.”

    그리고 그는 마주친 후 처음으로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미소 지었다.

    * * *

    “왜 표정이 불퉁해. 걱정돼?”

    “아니, 그게 아니라.”

    “검증 안 된 던전이라 불안할 수 있지. 이해해. 하지만 형님만 믿어라.”

    “아니야.”

    결이는 덜컹거리는 버스에 앉아 찡그린 얼굴로 창문만 노려보고 있었다.

    “참 나, 너 나 못 믿냐?!”

    한결이는 대답이 없었다. 하여튼, 얘가 어려서 그런지 너무 금방 토라져서 문제다. 나이 차가 심하다 보니, 말을 안 해 주면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도 참 문제고.

    나는 휴대폰 액정 위로 손가락을 놀려 안사홍과 거래 약속을 마저 잡았다.

    장비도 맞췄겠다, 오늘 아무도 모르는 미확인 던전을 털어 볼 생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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